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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 재 Apr 11. 2022

답청절(삼월삼짇날)의 풍속

조선시대 미술 작품으로 살펴보는 우리의 삼짇날 풍속

며칠 전 4월 3일(음력 3월 3일)이 삼월 삼짇날이었다. 삼월 삼짇날이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고 했는데, 어린 시절 그 흔하게 보이던 제비가 언젠가부터 볼 수 없는 새가 되었다.  환경오염이 심해서 그런지 언젠가부터 제비들이 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다. 전깃줄에 졸졸이 앉아 있는 제비들을 보는 것이 참으로 흔한 풍경이었는데,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 제비들은 지금 어디로 가 있을까? 


삼월 삼짇날을 생각하다보니 문득 신윤복 그림〈연소답청(年少踏靑)이 떠올랐다. 여기서 "답청(절)"이란 바로 삼월 삼짇날을 일컫는 말이다. "답청절"이란 "들판에 나가 꽃놀이를 하고 새 풀을 밟으며 봄을 즐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신윤복, <연소답청(年少踏靑)>, 18세기 후기, 종이에 담채, 28.2×35.6㎝, 국보 제135호, 간송미술관




신윤복은 당시 지식인들의 이율배반적인 삶을 고발하는 그림들을 주로 그렸는데, <혜원전신첩>에도 당시의 풍속을 그린 작품들이 담겨있다. 그중 <연소답청>에는 공부에 힘써야 할 선비들이 기생들과 더불어 삼짇날 꽃놀이를 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하긴 제목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제 사춘기에 들어섰을 법한 수염도 제대로 나지 않은 젊은이들이 봄의 정취에 어찌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머리에 피도 안마른 놈들이 기생들과 꽃놀이라니... 개중에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수염 난 선비는 자기의 갓은 종에게 맡기고 종이 썼던 패랭이를 대신 쓰고 기생 말잡이를 자청하고 있으니, '에라이... 너네 부모님들은 너희들이 그러고 다니는 것 아시니?' 하고 묻고 싶어진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당돌하게 "우리 아버지도 기생들하고 이러고 놀고 계실걸요?" 하며 아래와 같은 증거 그림  <상춘야흥 (賞春野興)>을 슬그머니 내민다면....


신윤복, <상춘야흥 (賞春野興)>, 18세기 후기, 지본채색, 28.2X35.6cm, 간송미술관



대략난감하네~~~ ^^:: 

위 그림에도 아래 그림에도 진달래가 만발한 것으로 보아 같은 날, 다른 장소를 그린 남자들만의 답청절 놀음이라 봐도 무방할 듯하다. 


이미 10대면 성인으로 인정받고 일찍이 가정도 꾸리는 시대였으니 요즘의 청소년의 삶과 비교하면 안 되지만 꽃놀이는 자기들만 하고 싶을까? '집에서 살림하는 안사람들도 꽃놀이 가고 싶지 않았겠니? 안사람도 좀 데리고 나가주지?' 하고 냅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기왕 답청절 풍습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선시대의 풍속화를 보면서 당시의 풍습을 조금 더 살펴보자. 조선시대에는 답청절에 조정에서 기로연(기로연(耆老宴)은 조선시대 예조(禮曹)의 주관으로 기로소(耆老所)에 입소한 고령의 문신들을 위로하고 예우하기 위해 매년 봄 상사(上巳, 음력 3월 3일)와 가을 중양(重陽, 9월 9일)에 베푼 잔치를 뜻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을 교외에서 열었다. 


김홍도가 1804년 개성의 송악산 아래 만월대에서 펼쳐진 기로연을 그린 <기로세련계도(耆老世聯契圖)>나 작자 미상의 <이원기로회도(梨園耆老會圖)>는 아마도 답청절 즈음 열린 기로연을 그린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림을 보면 산에 진달래로 보이는 분홍색 꽃이 피어 있고, 버드나무 가지에 막 초록빛 물이 연하게 든 것을 보니 삼월 삼짇날이거나 그 즈음인 것 같다. 


김홍도, <기로세련계도(耆老世聯契圖)>, 1804, 비단에 수묵담채, 137×53.3㎝, 개인소장.

김홍도의 이 그림은 답청절에 열린 기로연인지, 가을 중양절에 열린 기로연인지 조금 헷갈린다. 산위의 붉은 색이 진달래 색인지, 또는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한 것인지 명확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가을의 풍경이라 하더라도 답청절에도 이런 기로연이 열렸으니 감안해서 보자. 그러나 아래의 <이원기로회도>는 답청절에 열린 것이 확실해 보인다. 버드나무에 연하게 물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작자 미상, <이원기로회도(梨園耆老會圖)>, 1730, 두루마리, 종이에 담채, 34X48.5cm, 국립중앙박물관



 

답청절에는 전국 각지의 활터에서 한량들이 편을 갈라 활쏘기 놀이도 하였다. 김홍도의 <단원풍속화첩>에 등장하는 <활쏘기> 그림처럼 평소 활쏘기 연습을 부지런히 한 한량들이 삼짇날 활터에 모여 기량을 뽐내었던가 보다. 궁수들 뒤에 서서 흥을 북돋아주던 기생들이 5순의 화살을 연달아 명중시킨 한량에게는 지화자~~~ 하는 소리와 함께 춤을 추며 축하했다고 하니, 한량들의 어깨가 으쓱했을 듯하다. 


김홍도, <활쏘기>, 18세기 후기, 종이에 수묵담채,  27X22.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수탉끼리 싸움을 붙이는 닭 쌈 놀이도 하였다 하는데, 다른 나라에서도 닭 쌈은 흔히 행해졌던 것으로 보아 세계적으로 행해진 인류의 오래된 놀이였던 모양이다. 


어린 사내아이들은 물이 오른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껍질만 잘 벗겨내어 버들피리를 불면서 놀았다고 하는데, 실제 나도 어린 시절에 남자 사촌들이 버드나무를 꺾어 껍질을 벗겨내어 버들피리를 불던 모습을 보았다. 나에게도 불어 보라고 건네주어 불어본 적도 있었다. 물이 잔뜩 오른 버드나무의 어린 가지는 연해서 가지를 꺾어 위아래를 깨끗이 다듬은 다음 가운데에 칼금을 넣어 살살 돌리면 껍질만 가지에서 분리가 되어 대롱처럼 쏙 빠진다. 꼬맹이였을 때 외가댁 동네에서 좀 큰 오빠야들이 버들피리 만드는 모습을 신기하게 지켜보았던 기억이 난다.  


자료를 읽어보니 삼짇날 먹는 전통 음식이 여러 가지가 소개되어 있는데, 내가 아는 음식이라고는 동굴 납작한 찹쌀떡에 진달래를 얹은 화전과 쑥을 뜯어 만든 쑥떡 외에는 아는 음식이 없다. 화면, 수면, 산떡, 고리떡 등 요리법과 이름이 소개되어 있지만 나에게는 낯선 음식들이다. 


세상이 산업화 시대로 바뀌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촌의 공동체 문화를 떠나 도시의 개별화된 삶으로 사는 시대가 되다 보니 세시풍속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 오늘 아침 삼월 삼짇날에 대한 글을 읽다 보니 내가 한국화에서 봤던 그림들 중에 삼짇날 행해진 풍속을 기반으로 그려진 것이 많았음을 새삼 깨달으며 관련 한국화 그림들을 다시 들추어 보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바뀌니 우리의 전통문화에서도 멀어지고, 우리의 문화와 풍습을 잘 모르니 그림도, 전통 음악도 머릿속에서 제각각 따로 논다. 가끔이라도 그 시대를 온전히 다시 짜 맞춰 보는 시간을 가져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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