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노 Art Nomad Feb 12. 2019

열. 노를 저으려면 방향을 알아야지.

그저 노를 젓는 건 표류가 아닐까.

중도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에밀리 와프닉의 <모든 것이 되는 법(How to be everything)>에 다능인 묘사 부분을 읽고 극심한 공감에 소리 지를 뻔했던 나는 관심사가 지극히 많다. 많은 도전을 해봤고 그만큼 '도전 중지' 중인 분야도 참 많다. 지난 약 1년간 디지털 드로잉은 도전 중지 상태였다. 주변의 평가는 보통 산만하고 끈기가 없다는 식이다. 대부분이 그렇듯 나도 '니가 그럼 그렇지.'라는 말 참 많이도 들었다. 나중엔 누가 직접 이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그럼 그렇지.' 하고 자폭하고 있더라. 앤절라 더크워스의 <그릿>이나 '1만 시간의 법칙'으로 더 많이 알려진 왜곡된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 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1년 전 이 맘 때 즈음, 디지털 드로잉을 배워가는 과정을 연재하다 말고 단 9화 만에 질리고 말았다. 산발적, 무작위 배움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을 '왜' 배우면 내가 원하는 표현이 가능한지 알려주질 않았다. 나는 그저 무작정 부딪히면서 실력이 늘지 않는 것에 답답해하고 있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실력이 늘지 않는 건 언뜻 당연한데 시간과 숙달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걸 곧 직감하게 되었다. 검색만 하면 필요한 정보는 다 나오는 세상인데도 모니터 앞에서 멀뚱 거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뭣을 검색해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어쩌다 원하는 정보를 얻어도 그때뿐, 검색으로 얻은 정보들을 조합해도 방향성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되는 법>이란 책을 알지 못했고 다른 많은 자기 개발서들이 한 소리로 외치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우물만 파보다 보면 알게 되는 날이 있어'라는 함정에서 나오질 못했다. 그들의 강조에도 불구하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노를 저어야만 할 것 같아 힘차게 팔을 흔들다 보니 어느 순간 하기 싫어졌다. 변화를 사랑하지만 모호함 만으로는 동력이 계속 생기지 않았다. 노를 젓기를 망설이는 나에게 마음의 소리가 죄책감마저 심어 주었다. 


뭐 하고 있는 거야. 일단 노를 젓다 보면 어디로 가는지 알게 되니까
일단 노부터 저으라고!!


......... 태블릿을 곱게 정리해 상자 안에 넣고 다시 열지 않았다. 




분명 손으로 그렸습니다. ( 발로 그린게 아니에요; )


지난 12월 31일, 기간이 지나기 전 *독서포인트를 쓰겠다는 마음으로 서점에 갔다가 나가타 도요시의 <Visual Thinking 그림으로 그리는 생각정리기술>라는 책을 사들고 왔다. 원래 사려던 책이 아니었는데 무언가에 홀린 거 같았다. 사각형과 화살표 만으로 많은 것을 깔끔하게 해주는 도해 정리. 우연히 산 책 치고는 수확이 좋았다. 나같이 관심사가 많은데 실행이 더딘 사람에게 강추다. 복잡성을 간결해하게 정리해주는 마법을 알아가는 것 같았다. 마치 웹브라우저의 뒤의 코드가 언뜻 복잡해 보여도 그 문법을 알면 상당히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걸 깨닫는 것과 같았다. 생각이란 추상적 복잡성을 간결한 기호로 형체와 흐름을 나타 낼 수 있다니. 이 책에서는 아이콘을 잘 활용하는 것도 정리의 기술이라고 알려준다. 아이콘 공유 소스 플랫폼, Iconfinder를 오랜만에 들러봤다. 


*독서포인트 : 대전에서는 공공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면 1 권당 50포인트의 독서 포인트를 제공한다. 

                       이 포인트는 서점에서 책을 살 때 할인받을 수 있다. 유효기간은 매년 12월 31일까지다. 

http://www.u-library.kr/bls/bookStoreInfo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검색어에 'dog'라고 치고 있었다. <비주얼 씽킹>의 참고 아이콘을 찾으려면 rectangle(사각형)이나 arrow(화살표)를 검색해야 한다. 개어멍이라 그런가 'dog' 검색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주로 원, 선, 점으로 되어 있는 단순화된 아이콘들은 분명 '개'였다. 오래전, 드로잉 연재를 할 때 배웠던 몇 가지가 떠오른다. 원 2개를 그려 각각 머리와 몸통의 비율을 가늠하고 눈과 눈 사이의 거리를 재고 빛이 오는 방향을 고려해서 명암을 주는 법 등. 아이콘들은 이런 그림그리는 법을 따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분명 나는 이걸 보고 '개'라고 느꼈다. 

순간 번쩍 하고 머리에 뭔가가 지나갔다. 동물을 그리는 건 실사화 즉 정물화를 그리듯 실제와 똑같이 그리는 방법만 있는 게 아니다! 

Youtube에 들어가 검색하는 손이 바빠졌다. 


그렇게 10개월간 도전 중지해놓고 

마음 한편은 밑 덜 닦은 거 같아 찝찝했지만 다시 꺼낼 기약은 없었던 

태블릿을 꺼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홉. 요즈음 제 브러쉬엔 '털'이 없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