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가족들이 앓고 있나 보다
대략 오 년 반 만에 브런치를 다시 시작하며 얼마나 떨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보고 듣고 읽을 게 많은 세상에, 성장을 위한 자기 계발 분야가 아닌, 위로를 주는 에세이도 아닌 덜 떨어지고 모자란 습작들을 읽어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어 많이 쫄았다.
올리고 나니 별로 창피하지 않았고, 돈 안 되는 짓거리에 사력을 다하는 스스로에게 짜증이 나지도 않았다. 쓸 때는 그렇게 즐거운데 보여줄 때가 되면 왜 그리 지레 겁을 먹는지 당황스럽기는 했다.
앞서 #00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아메리칸 뷰티」는 글쓰기 모임 과제로 쓰기 시작했다.
내가 주인공으로 삼은 바바라 피츠는 영화 속 대사가 약 다섯 마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멍 때리고 식탁에 하염없이 앉아 있을 때도 있어 대사에 비해 등장하는 시간은 짧지 않다. 보면서 생각했다. 역할을 맡은 배우는 저 다섯 마디를 위해 어떤 전사를 생각했을까?
그즈음 EBS 「[다큐프라임] 돈의 얼굴」 외 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했고, 『프레이저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덕분에 주인공으로 삼은 바바라 피츠의 어린 시절, 리처드 닉슨 정권 당시의 분위기를 묘사할 수 있었다. 전혀 다른 두 작품을 위해 자료 조사 하던 중 아이디어가 얻어걸린 셈이다. 천운이었다.
「아메리칸 뷰티」 ③ 에 나오는 성경 (욥기서 3:3-4)에 나오는 구절은 원래 ‘you’가 아니라 ‘I’이다. 본래 욥이 자기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인데 소설을 위해 한 단어를 변형했다.
상류사회를 묘사한 근래의 한국 드라마, 한국 영화는 대체로 「아메리칸 뷰티」의 후예들 같다.
가족은 ‘전시할 것’과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들로 일상이 양분되어 버렸다. 기성세대의 인간관계는 나와 내 가족을 잘 전시하는 한 유지되지만, 본질이 드러나는 순간 깨진다. 기성세대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의 2세 혹은 3세들의 눈이다. 아직 미성숙한 2, 3세 들은 이해 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어딘가 곪아버린다. 그들의 고름이 터지는 순간 기성세대의 관계도 모두 파탄이 난다.
한국 드라마, 한국 영화뿐 아니라 요즈음 한국 교양예능 계열에서도 많이 보이는 패턴이다. 그만큼 많은 개인과 가족들이 앓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