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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노 Art Nomad Mar 05. 2018

두울. 위기가 아니어도 괜찮아.

각 조직의 특성부터 파악하기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할거 같은데도 속수무책인 상태를 가장 깊이 느낀 건 아이러니 하게도 가장 큰 성취를 이뤄낸 직후였다. 2016년 12월, 나는 처음으로 핫하다는 연남동에 온전히 내 돈으로 세를 얻었다.


기쁨보다도 살아남았다는 안도가 컸다. 그리고 그 안도 뒤에 지나간 아픔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이사하고 혼자 남은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현관 앞에서 오열했다. 이 즈음 부터였다. 답답하고 먹먹하고 쓸모를 의심하고 존재의 이유에 회의를 가진 것이. 


이사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기를 당했을 때도 오디션에 수백번 떨어졌을 때도 가족이 불화할 때도 생활비가 없어 알바를 서너가지 할때도 잘 넘어갔다. 사회적 통념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도 성추행을 당했을 때도 나는 잘 살아 남았단 말이다. 그렇다. 잘 모면 했고 잘 살아남았다. 눈 앞에 닥친 것들을 해결하고 지지 않으려하고 이겨냈는데 오히려 그 후에 찾아 온 안정감을 받아들일 수 없어 더 답답했다. 안정 안에 선 나의 모습은 균형감 있게 성장하지 못한 채 여기저기 붕대 투성이였다. 그대로 계속 혼자였다면 어디서 얼마나 어떻게 어디를 다쳤는지도 모른채 여전히 붕대를 더 두껍게 감아가며 살아갔을 것이다. 또 다른 어려움을 찾아나서면서, 어려움이 없으면 불안해 하며 만들어서라도 그걸 극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를 기만하면서 아 오늘도 살아남았다, 삶이 다 그렇지. 이렇게 어설픈 푸념이나 하면서. 


인식의 변화를 가져다 준건 사회적 기업이자 스타트업인 M회사와 동료들이었다.  M사는 당시 '게임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에 기여하는 회사'를 기치로 하고 '사회적 약자들과 게임으로 관계맺기'위해 노력하는 회사였다. 나는 이 회사와 2016년 5월부터 함께했다. 2년만에 사회분위기가 참 많이 바뀌었다. 요즈음처럼 게임코딩, 교육, 게이미피케이션 등에 가치를 부여하는 모습을 당시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게임의 연관검색어는 도박, 중독 정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프로젝트와 교육, 사회적약자들을 위한 게임적 장치 등 만으로는 당장의 수익을 올리기 힘들다고 판단하여 공간운영 즉 보드게임방에 좀 더 주력하고 있었다. 공간을 기반으로 사업하시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케팅, 재무, 세무, 상품 개발, 이벤트 등 열정과 에너지에 비해 '사업 유지' 조차 버겁다는 것을. 2016년 12월 즈음엔 '최순실사건'의 여파로 기대했던 대목이 오지를 않자 유지가 삐그덕 되고 있었다. 여기에 반복되는 단순업무의 비중이 크며 성장을 위한 퀀텀이 부족하고 목적과 현실의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제기되기 시작되었다. 우리는 우리 각자와 사업을 돌아볼 만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워크샵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것이 M사의 혁신 뿐 아니라 내 인생의 질문을 위한 첫 번째 사건이었다.





 우리는 몇가지 현실적인 질문들로 부터 시작했다. 


_ 수평적 조직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이뤄낼 수 있을까? 

_ 일하는 공간과 시간은 어디가 좋을까? 또 어떻게 정해져야 하는가?

_ 모두가 원하는 방향성이란 무엇일까? 우리의 합의된 소명의식이란 뭘까? 


한 두시간의 토론으로 답이 나올 질문들이 아니었다. 수평적조직, 노마딕워크, 소명의식 등 단어의 함의에 대해 공통된 이해가 필요했다. 이해와 사례를 위해 <조직의 재창조>를 함께 읽고 대화하고, 읽고 대화 하는 작업을 계속해갔다. 개인적으로 책에서 이야기하는 조직의 유형들과 사례들은 그간 M사가 지나온 조직구성방식뿐 아니라 내가 지나쳐 온 많은 조직들을 상기하게 하고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지 돌아보게 했다.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한숨을 쉬었는지 모른다. 


저자 프레데릭 라루는 조직을 이루는 패러다임을 적외선, 자주색, 적색, 호박색, 오렌지, 그린 그리고 청록으로 나눈다. 내가 어렴풋 느끼고 있지만 자신 할 수 없었던 아픔의 원인이 이 조직 분석에 담겨 있었다.



자주색 패러다임 

자주색 패러다임이 단계의 자아는 신체적  및 정서적으로 타인들과 크게 분화 되지만 자아는 아직 자신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본다. 인과관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때문에 우주는 영혼들과 마법들로 가득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구름이 나를 따라 오는 것이고 나쁜 날씨는 나의 나쁜 행동에 대해 영혼들이 벌을 주는 것이다. 부족들은 이 마법의 세계를 달래기 위해서 제사를 지내 위안하기도 하고 노인과 무당을 따르기도 한다. 사람들은 주로 현재상태에 살며 일부 과거와 뒤섞인 상태에서 살지도 하지만 미래를 투사해보지 않는다. 

(중략) 

나이든 사람들이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상당한 권한을 행사하지만 과업분화 정도는 매우 제한되어 있다. 오늘날 이 단계는 전형적으로 3개월에서 24개월 연령의 아동들이 경험한다. 

                                                                                                                  프레드릭 라루 

                                                                                                                    조직의 재창조 





자주색 패러다임조차 나는 그냥 넘기기 어려웠다. 나는 고등학교때까지 내가 아픈 것은 나의 나쁜 행동에 대해 벌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반성하는 기도를 했다. 나쁜 날씨는 나의 우울함 때문이라 생각했고 이 우울함을 극복하지 못하는 나를 또 탓했다. 국가적 경제 위기는 내 성과가 부진하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했다. 아픈 것을 반성하는 기도는 십대즈음까지였지만 자연현상과 사회 그리고 나를 연과지어 생각하는 버릇은 그 후로도 오래 되었다. 나 개인의 성향이었을까? 글쎄. 나는 주변 환경이 이런 태도를 독려했다고 본다. 실제로 나는 아플 때, 성과가 부진할 때 가족과 가족을 기반으로 알게 된 사람들로부터  '회개하고 기도하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고 듣고 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또다른 넌센스는 '네가 이러니 나라가 이 모양이지.' 

프레데릭 라루는 이 단계를 3개월에서 24개월령의 아동들이 경험한다고 하지만 아직 이 사회에는 이런 가치관을 가진 조직이 존재한다고 본다. 기복신앙에 치우쳐서 도덕이란, 정의란, 소망이란, 사랑이란 질문에 성찰은 부족하고 자아중심의 가치판단으로 누군가를 정죄하면서 그것과 사회를 무리하게 연관시키는 기독교조직들, 2018년과 그 이후의 미래를 보지 못하고 1950년 60년 70년 즈음에 머물러 있으며 P 전 대통령을 자신의 대리인으로 삼고 그 대리인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나이가 들었다는 것 만으로 특별한 지위를 차지 할 수 없는 시대에 광분하는 어버이 연합, 나와 상대가 같은 주체성과 존엄을 지닐 수 있는 분리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자아만이 소중하고 모든 것 위에 있다는 듯이 행동하는 일베 등. 나는 이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고 이것은 현재진행형이다. 


며칠 전. 집 안에서 주폭사건이 일어났고 그 사건의 물리적 피해자는 나였다. 나를 걱정한 올케는 시어머니인 우리 엄마에게 문자를 했다. 


'저와 그이의 기도가 부족한 탓인거 같아요.'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1112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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