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노 Art Nomad Mar 19. 2018

세엣. 빨강빨강 하시군요

각 조직의 특성부터 파악하기 

앞선 회차에서 올케에 대한 언급이 혹시나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걱정된다. 나는 그녀를 존중하고 좋아한다. 단지 내가 속한 가족과 그 관계 면에서 연관성이 부족한 사건을 '기도가 부족한 탓'으로 해석하는 이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의 이 발언은 단지 일례일 뿐이고 나를 둘러싼 환경에서 이러한 해석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프레드릭이 보라색 다음으로 언급한 건 적색이다. 적색의 패러다임을 한마디로 하자면 '충동'과 '폭력'이다. 워크샵을 통해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땐 아직 한국에 #metoo 운동이 퍼지지 않았을 때다. 최근 미투운동을 통해 폭로된 연극계는 그 분야에 종사했던 나에게 조차 충격이었다. 적색 패러다임을 읽으며 들었던 기시감이 사실확인을 통해 드러나자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적색 패러다임과 조직

지금으로부터 10,000년 전에 최초로 추장족과 초기국가 단계가 탄생하였다. 거기에서 최초의 조직생활 형태가 출현하였다. (나는 이를 적색 조직이라고 표현할 것이다.) 

(중략) 

이 단계에서 볼 때 세상은 위험한 장소처럼 보이며, 이곳에서는 개인의 욕구를 충족하는 것은 힘과 강인함에 달려 있다. 세상에서 통하는 것은 권력이다. 만일 내가 너보다 강하다면 내가 필요한 것을 너에게 요구할 수 있고, 네가 나보다 더 세면 나는 네가 나를 보살펴 줄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너에게 복종할 것이다. 사람들의 정서수준은 아직 조잡한 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분노나 폭력을 통해 종종 표현한다. 

(중략) 

생각은 극단적인 방식으로 형성되어 흑백론적 세계관을 지향한다. 예를 들면 강함/약함, 나의 방식/ 너의 방식 등과 같이 말이다.  

                                                                                                           프레드릭 라루 

                                                                                                               조직의 재창조 




연극판을 비롯 일부 드라마판, 영화판, 연기관련 교육판 등에서 횡행했던 '성차별', '성추행'은 너무나 일상적이라서 그것이 문제라고 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관성이 되어 있었다. 미투에 이어 요즈음 여배우들 사이에 '묵인한 나도 반성합니다.' 라는 취지의 운동들 역시 아주 아프게 공감된다. 나이, 경력에 상관없이 인기도에 따라 후배 남주의 서열이 더 높다던가, '내가 널 성공 시킬 순 없어도 망칠 순 있어' 라는 말을 스스럼 없이 한다던가, 좁은 분장실을 핑계로 지나가던 여배우를 무릎 위에 앉히고 희롱한다던가 하는 것들을 모두 '이 바닥의 특성'으로 여기며 수용해왔다. 이 말들을 해체 해보면 물리적 강함만이 강함이고 1년이라도 더 먼저 진행된 방식만이 옳은 방식이다. 불합리한 힘의 논리와 위계로 이루워진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이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남성, 여성간의 문제 뿐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 역시도 간과 할 수 없다. 작년 말쯤 이슈가 된 배우 허정도의 인터뷰가 이 부분에 대해 면밀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29917.html

 * 위 기사가 문제가 되면 차후에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그 바닥에 꽤 오래 있었던 만큼 SNS상에도 관련된 직군이 많은데 몇 단계를 타고 가다 한 음악감독의 글을 읽게되었다. 해당 음악감독은 영화, 드라마, 전시 외 공연 등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로 몇 년 전 연극작업과 콜라보 할 기회를 얻었다고 한다. 그 때 받았던 인상은 연극계가 마치 '씨족농경사회' 같았다고 한다. 프레드릭 라루는 적색 조직의 예로 부족 국가, 현대사회에선 마피아를 들고 있다.   

2007년 한 에이젼시에서 연기아카데미교육을 받은 이후 2015년 사기사건을 계기로 공식적인 연기활동은 그만 두기까지 계약서를 쓴 기억은 별로 없다. 몇 건의 계약서 마저도 조항을 제대로 읽어볼 수 없는 분위기였거나 계약서는 제작사측의 계약서 1장 뿐 일 때도 있었다. 즉 간인을 찍지도 않았고 내가 가져 갈 수 있는 계약서가 없는 거다. 계약서 조항 미이행시에도 반발을 제기할 수 없었다. 계약서에 싸인한 그 순간부터 내가 지불하게 될 교육비나 나의 시간은 그저 '나에게 기회를 줄 수도 있는 힘을 가진' 그들의 것이었다. 

계약 관계가 있는 성립될 수 있는 작품은 그나마 양호 할지도 모른다. 제작사와 소속사 관계가 좀 더 명확한 드라마판과 영화판과는 달리 연극판의 캐스팅은 보통 전화 한통으로 이루어진다. 간단한 안부를 물은 후 보통 '스케줄이 되는지' 즉 시간여유가 나는지 여부만 묻는게 통상적 절차다. 페이정도나 계약사항, 계약서에 관한 이야기는 주로 '나중'으로 밀린다. 사전협의는 애매하고도 모호하게 그냥 넘긴다. 품앗이에 시시콜콜 따지는 배우는 소문도 참 빨리 돌아 품앗이 자리조차 나지 않을 수 있다. '모든' 작품이 이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경험의 꽤 많은 경우는 이랬다. 

한 편으로 지나간 내가 연출했던 작품들에 대해서도 돌아봤다. *버스킹 연극 몇 편과 *살롱연극 몇 편. 공식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수익금을 1/N 형식으로 나누는 방식임에도 일종의 계약서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우리가 맺었던 약속들에 대해 구두계약과 단체미팅 외에 문서화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혹시라도 그들이 정보 불충분으로 느꼈을 불편함이 있진 않았을까 돌아보게 된다. 


*버스킹연극 : 길에서 불특정다수의 관객을 대상으로 한편의 재연형식 공연을 진행하며 관객의 참여를 독려하는 참여형 연극이다. 아우구스토 보알의 거리공연 형식에 감명을 받아 필자가 작, 연출 한 공연에 대해 직접 명명한 장르적 용어다. 비슷한 장르를 지칭하면서 더 많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용어에는 스트릿퍼포먼스, 거리예술 등이 있다. 

*살롱연극 : 무대와 객석을 분리해놓은 통상적인 의미의 극장인 프로시니엄 형식이 아닌 장소에서 하는 공연을  말한다. 인디밴드나 실험적인 연극을 하는 팀들이 많아지면서 이 용어가 쓰이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필자의 경우엔 까페나 지하주차장, 게스트하우스 같은 독특한 장소에서 공연하는 'site-specific'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site-specific'으로 공연장을 고르는 건 '극연구소 마찰'에게 큰 영감을 받았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버스킹연극 때와 동일했는데 관객이 불특정다수에서 특정소수로 변한다는 것만 다르다.

 


계약서와 계약을 이행하는 절차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내용 역시도 빨강빨강하다.  현역에 있을 때 이마저도 군대용어군 쩝  약 2013-4년 즈음 많이 나돌던 이야기다. 대한민국 영화에는 자뻑에 빠진 무수한 남자배우들 사이에 여신하나가 있을 뿐이라고들 했다. 그마저도 여신이면 다행이지만 많은 건달물과 그 브로맨스 사이엔 흔히 '창녀'와 '순정'사이의 어떤 인물들이 보인다. 실제로 2007년부터 약 3년정도 관계맺었던 아카데미에선 '주연급' 이 되기 어려운 여배우들에게 '몸파는 혹은 술파는 여인'의 연기를 자주 교육했다. 교육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시장에서 상업화 되는 작품이라면 이런 역할들이 자주 요구 되었다. 2009년경 해당 아카데미의  월례행사인 오디션에서 '성균관스캔들의 박신혜격'인 역할을 중국어로 했을 때, 한국의 춘향뎐 만큼 유명한 양축이라는 설화이자 작품의 소재로 자주 쓰이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축영대라는 남장여자역을 연기했었다. 심사위원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조언을 들었다. '일단 한국에 중국어 역할이 없고 그런 역은 너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슬프지만 당시의 상황으로는 그의 말이 반쯤은 맞았다. 미래를 꿈꾸지 않는 가부장적 사회에게 새롭고 다양한 역할은 수용되지 않았으니.


하나의 조직이 하나의 패러다임만 띄는 것은 아니다. 지난 이야기에서 나와 나를 둘러싼 가족, 친인척들이 보라색 패러다임을 띄는 면에 대해서 얘기했었다. 이야기 말미에 주폭에 대해서 언급했으니 물리적 강함으로 인한 폭력성은 이미 나왔다. 그 외에 다른 면에 대해서 보자 꽤 현대적이면서 많은 자녀들이 겪어본 적 있는 폭력일거다. 경제적 압박. 2018년 요즈음, 체감상으로는 가정에서 교육에 관한 태도들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e-러닝, 대안교육을 선호하는 사람도 많이 늘었고 자녀의 희망직업이나 삶철학을 존중하고 대화로 공감하고 있다는 가정도 많이 늘어간다. 대학의 선택이 네임밸류가 아닌 적성에 기인한 자녀도 많고 아예 대학을 스무살 무렵의 선택지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늘고 있다. 내 스무살은 이런 현상들과 거리가 멀었다. '대학만 가면 뭐든지 원하는 대로 해도 된다' 했던 엄마는 막상 내가 원하는 것을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경제적 제재를 해왔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당시에도 엄마는 나보다 경제적으로 '강했고' 지금도 그렇다.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살아볼테고' '증명해 보일거라던' 내가 20대를 모두 다 보내고도 약 3년을 방황하다 깨달은 것이 있다. 경제적 제재로 상황이 악화될 때 마다 내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건 위험부담이 크고 모험적인 일들이었다. 그렇게 한 고비를 무마한 듯이 보이는 결과물은 지속성과 안정성이 약해 또 다시 위험부담이 크고 모험적인 일을 택해야 했다. 경제적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다. 이런 면모를 드러내면 '그러게 내가 뭐라고 하디.' 라는 말을 듣는게 참 싫었다. 가끔 '엄마 마음에 들만한 행위의 결과'로 '보상'을 받을 때조차 감사한 마음보다 비참함이 커졌다. 어록을 만들 수도 있을 만큼 황당했던 그녀의 말 중엔 '장학금의 2배를 줄테니 너도 장학금 좀 받아와.'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두울. 위기가 아니어도 괜찮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