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브리태니커 사전을 읽으며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했고 이미 제가 알고 있던 사실이나, 제가 본 콘텐츠, 제가 작품을 쓰려 조사했던 정보들과 연관 지어 생각하기도 했어요. 이하는 백과사전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고 그에 대한 저의 경험이나 생각, 읽어봤거나 검색한 것 등을 정리한 것입니다. 부담 없이 읽으시면 좋겠네요.
* 혹시나 오류를 발견하셨다면 댓글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원고의 초안을 24년 10월 초에 썼는데 하필이면 12월 3일 계엄령 소동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아업로드하게 되어 정말 유감이다. 하필이면 '가격'이 가, 나, 다 순으로 하는 사전 배열의 초반에 나와있는 것도 유감이다. '가격' 뒤에 몇 단어 덧붙여 나오는 단어들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는 것도, '가격'이 들어가는 단어들과 정책을 떼어놓고 말할 수 없어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필연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도 유감이다.
상황이 바뀌었어도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초안 원고를 약간 교정하였어도 원래의 기조는 바꾸지 않고 그대로 올려본다.
『브리태니커』"가격안정대제도 (價格安定帶制度)" (1998)
가격안정대제도 (價格安定帶制度)
농산물을 수매·비축하여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를 동시에 보호하기 위한 제도.
한국에서는 1977년 쇠고기와 채소류 가격파동을 계기로 이 제도가 실시되었다. 이 제도를 관장하는 기관은 농어촌개발공사(지금의 농수산물 유통공사) 산하의 농수산물가격안정사업단이다.
이 제도의 실제 운용과정에서 하한가격을 밑돌 때는 방치하고, 상한 가격을 웃돌 때에는 수입이적극추진되었다. 결과적으로 생산자를 보호한다는 측면은 등한시되었다.
우리는 정치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를 자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정치는 너무 모호한 개념이다.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분’과도 같다. 너무 말하지 않아서 그가 눈이 몇 개인지, 코는 몇 개인지, 머리털은 있는지 없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다.
내 생각에는 우리나라 정치가 딱 그렇다. 윤곽으로만 정치를 파악하다 보니 쉬쉬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을 때 그렇게 당황스러운 게 아닐까. (이 글을 쓸 때까지만 해도 그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계엄령이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당색이 없다. 지지자도 없다.
정치 얘기를 하면서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려면 정책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당에서도 나와 잘 맞는 정책, 상충하는 정책이 있을 수 있고 개개의 입후보자들이 제시한 공약에서도 그렇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이 당연한 얘기를 뭐 기록으로 남기기까지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그 당연한 얘기를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 아직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는데 다들 눈을 휘둥그레 뜨며 ‘정치 얘기는 하는 게 아냐’라며 손사래를 치니까.
희한하기도 하지. 자유대한민국인데.
가격안정대제도에 대해 내가 놀란 것은 이 제도가 무려 1977년부터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에도 썼듯이 백과사전조차 이 정책이 생산자를 보호한다는 측면은 등한시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내가 가진 브리태니커 한국어판은 1998년도 연감을 가지고 있고 초판은 1992년, 3쇄는 1995년에 찍었다. 그러니 1995년에 변동사항이 있었다면 그 기록도 남아 있을 텐데 사전은 여전히 ‘생산자를 보호한다는 측면은 등한시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1977년에도 1995년에도 ‘가격안정대제도’로 인한 소비자 가계 도움, 농가 안정은 어려웠던가 보다.
2024년은 어떤지 궁금해서 검색해 봤다.
일단 임정빈 서울대 교수이자 그린바이오과학기술원장의 2024년 1월 31일 자 농민신문 오피니언에서 흥미로운 이야기 몇 가지를 볼 수 있었다.
최근 국내외적으로 농산물 가격 등락폭이 과거보다 훨씬 커지고 있다. (중략)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면 물가상승의 원인이 되고, 서민 생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반대로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면 농업소득이 보장되지 못해 농가의 영농활동을 어렵게 한다. 특히 경제이론상 농산물 가격이 변동하면 가격변동률보다 소득변동률이 몇 배로 증폭돼 농업경영 위험이 커진다.
농산물은 원재료다. 원재료 없이 신선한 식탁은 불가능하고, 원재료 없이는 가공 식품도 없다. (물론 여기서의 원재료는 농, 축, 수산을 아우르는 말이다.) 원재료의 특성상 중간 유통과정이 많다. 그러니 소비자가 지불한 가격의 대부분은 유통비일 뿐 농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런데 농산물 가격이 폭락까지 한다면, 영농활동은 당연히 어려워진다.
농산물과 관련한 가격변동률과 소득변동률 사이의 관계는 도시사는 비 경제학 전공, 서민인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이다. 다만, 고정비 변동은 없는데 소득이 감소하게 되어 2차, 3차 타격이 늘어날 수도 있겠다고 미루어 짐작해 봤다.
헌법 제123조 4항에 ‘국가는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에 노력하여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농민의 이익을 보호한다’고 명시한다. 농산물 가격안정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농업기본법)’ 제42조에서 재차 확인된다.
농수산물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이 헌법으로 명시되어 있었는지 몰랐다.
정부와 여당은 평년 가격에 농가 생산비와 물가상승률 등을 더해 기준가격을 설정할 경우 인위적인 가격 지지효과로 농산물이 과잉으로 생산되고 재정이 막대하게 소요된다며 반대한다. 반면 야당은 이 제도가 쌀뿐만 아니라 주요 농산물에 적용되기 때문에 농가가 하나의 작목에 쏠릴 가능성은 낮으며, 다양한 작목으로 분산되면 농산물 수급이 균형을 이뤄 가격이 폭락할 가능성도 낮아 재정 부담이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농산물 가격안정제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지금처럼 서로 한 치의 양보나 타협 없이 정쟁으로만 치닫는다면 종국에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아예 폐기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농수산물 가격 안정에 대한 정부의 입장도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주요 농산물 중 하나인 쌀을 보자면 우리나라의 쌀 생산량은 370만 톤가량으로 보고 있다. 이 수치는 그나마 전년 대비 1.6%가 감소한 양이다. (2023년 기준. KREI 「농업관측 2023년 12월호(쌀), 생산동향」)
그런데 이 중 수출하는 양은 2024년 8월 기준 103,196톤이다. 코로나 이전에 비해 오히려 늘어난 양이다. 2018년의 수출총량은 85,153.6톤이었고 2019년 91,989.2톤이었다.
그럼 나머지 약 360만 톤의 쌀은 어떻게 되는 걸까? 매해 그만큼 소비가 될까? 우리나라 정서로는 누구나 햅쌀을 원하지 한 해만 지나도 가치가 하락하는 묵은쌀을 원하지 않을 텐데.
통계만 봐서는 분명 쌀은 내수시장에서 주로 소비되고 있다. 그런데 인구는 해마다 줄고 생산기술은 좋아지는 주요 농산물을 정부예산으로 다 감당하기에는 분명히 무리가 있어 보인다.
배추, 무, 마늘, 양파 등의 가격안정제 대상인 다른 농작물들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낫다. 이들은 다양한 요리에 들어가는 식재료 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는 김치를 만들 수 있고 김치는 세계적으로 수출되고 있다.
다음은 검색엔진에서 '양곡법'을 검색해서 2024년 4월 18일, 국회에서 의결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 (이하 양곡법 개정안),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이하 농안법 개정안)에 관한 농림축산부 식량정책과의 입장에 대한 더 명확한 글을 찾을 수 있었다.
농림축산식품부 〉알림 소식 〉보도자료
「쌀 의무매입」, 「농산물가격안정제」는 과잉생산을 유발하고 미래 농업에 투자될 재원을 잠식하는 등 농업·농촌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음
정부예산을 줄이자고 하는 것에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은 알겠다. 더구나 우리나라 농업은 지금 분기점에 있다. 스마트 농장으로 기술적 성장을 도모하고 있고 이에 따라 적은 인원으로 대량의 생산을 도모하고 있으며 양적 성장뿐 아니라 질적 성장도 상당하다. 구황작물이라는 말은 이제 문헌에서나 찾을 수 있다. 이제 배고파서 먹는다기 보단 행복감을 위해 먹는다.
그러니 주요 농산물이 수요보다 공급이 과하며 그 과잉 공급분 처치가 문제가 된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
개발과 진전에 할애되어야 할 예산이 뒷감당을 하기 위해 너무 소모된다니, 효율성 측면과 대체 식량을 위한 대비를 생각하면 아쉽기도 하다.
다만, 하나의 정책이 다음 정책으로 넘어갈 때에는 과도기의 소요를 줄이기 위한 과도기 정책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이제 감당 안 되니 그만하겠다고만 한다면 그로 인해 생존권을 침해받는 당사자 중 그 정책에 동의하는 사람을 없을 것 같다.
여기서 과도기 정책이란 주요 농산물이 기준가 미만으로 하락 시 생산자에게 차액을 지불한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부는 여전히 예산이 과중되는 것이 못마땅하고, 생산자는 여전히 마이너스를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2024년 4월 19일 농림축산식품부에 게재된 식량정책과 식량정책관의 글로 정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고 야당 측의 입장이 왜 한계가 있는지 이해했다.
그러나 ‘쌀 의무 매입’과 ‘농산물가격안정성’을 논의하는 데 있어 농가 소득은 ‘가격안정제도’의 대상이 되는 작물 소득에 한해야 할 것을 농외소득 증가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의문이 든다. 더불어 전체적으로 야당 측 주장의 반박은 잘 이해했으니 개선안이 보고 싶다.
여기서 다시『브리태니커』"가격 [시장기능의 한계]" (1998)를 살펴보자.
가격 [시장기능의 한계]
시장기구는 희소성의 지표인 가격에 의해 자원배분이 이루어지도록 함으로써 경제의 효율을 높인다. 그러나 시장기구가 적절히 작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중략) 시장기구가 충분히 기능하지 못할 경우 적당한 정책으로 수정을 가해야만 한다.
정부의 정책이 야당에 대한 반박으로 그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 주요 이유는 '식탁'에 대한 고민이 없기 때문이다. 농산물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성이 변한 주요 요인은 '식탁'이 변했기 때문이다. 이전의 식탁은 원재료로 요리한 음식이 주로 다수를 위해 차려졌다. 하지만 지금의 식탁은 밀키트, 냉동 도시락과 같은 완제품 등의 비중이 높아졌고 소수를 위해 차려진다.
앞서 다른 회차에서도 말했듯이 변화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변화에 대한 대응으로써 기존의 방법을 고수할 것인가,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인 현장 조사가 없다는 게 아쉽다. 다시 말해 생산자와 소비자, 유통업자 등에 대한 실질적 공감대 형성이 없기 때문에 여당이든 야당이든 동어 반복만 계속하니 보는 사람들은 질렸고, 마치 내 얘기가 아닌 것처럼 등한시해 버리게 된다. 우리는 매일 '식탁'을 마주하며, 그렇게도 국내산을 찾는데도 말이다.
이래서는 브리태니커 2025년판이 나온다 해도 '결과적으로 생산자를 보호한다는 측면은 등한시되었다.'라고 표기될 것 같다.
아래는 '양곡법'과 '농안법'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가 내놓은 현재의 입장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정책홍보, 주요 내용 및 정부 입장 _
"쌀의무매입제(양곡법) · 농산물차액지급제(농안법)는 미래 농업 · 농촌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