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주 박향미 작가의 우리 집 우리 동네
우리 모두에게는 지워진 짐이 하나씩 있다. 그것은 일상에서 직면하는 진부함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과제이다. 제각각 모습은 다소 다를지라도 이러한 숙제들은 새롭고 흥분된 삶 속에서도 해묵은 친구처럼 언제나 나의 어느 한 부분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 벗고 나선 현대미술이 한때나마 우리에게 구원의 손짓을 보내기도 했지만 실제로 우리의 내적 불안감을 좀처럼 진실로 해결해 주지는 못하고 있다. 아마 이러한 진부함은 우리의 지난 기억들과 많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어렴풋이 추측해 본다. 시간은 앞으로 흐르지만 우리는 어쩌면 기억을 미래에 투영하며 무거운 일상 속 무게들을 쉽게 내려놓고 있지 못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박향미 작가가 나무합판으로 만드는 평평한 조형작업들은 흔히 보이는 가정집의 내부를 소재로 하고 있다. 마치 캔버스를 박차고 나온 듯한 오브제 작업 같기도 아파트의 내부 조감도 같기도 한 가장 익숙한 공간을 기본적인 구성요소로 삼고 있다. 우리가 마음속으로 그리는 가장 평범한 형태의 일반적 가정집의 모습 그대로이다. 티브이나 소파 같은 사물과 공간은 어쩌면 우리가 가장 편안한 휴식을 취하며 우리의 내적인 휴식의 시간과 결부된 상태적인 표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태와 결부된 내부의 사물들 사이에 동화책에서 본 듯한 민화의 동물들이 불쑥 나타나 우리에게 맥락 없는 꿈처럼 스스로의 존재를 알린다.
프레임을 개의치 않는 독특하고도 개방적인 공간적 전개는 이방 저방을 건너 다니며 전개되는 이야기의 구조를 지닌다. 나는 박향미 작가가 구성한 일상적 내부 공간의 형태를 마치 지나간 어느 순간을 담아낸 동화책의 한 페이지처럼 느끼게 된다. 마치 책처럼 열고 다시금 닫을 수 있는 페이지와 같은 마음의 집이 있다고 상상해 보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펼쳐지는 일상 공간으로 침범한 한국적 민화 속 동물들의 캐릭터는 익살스럽고 친근하게 우리와 깊은 내적 관련을 맺고 있는 사물들과 격 없이 어우러 진다. 유쾌하지만 한편으로 나의 지난 기억에 담긴 내적 심상으로부터 늘 말을 건네는 애잔한 자기연민을 소소하게 깨닫게 하는 미소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나무로 만든 장난감 같은 작은 집들을 겹겹이 쌓아 벽면 가득 채워진 동네를 만나는 사람들은 누구나 순결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어린 시절의 ‘우리 동네’를 떠올리게 된다. 지금도 이러한 동네는 여전히 존재한다. 지역의 환경개선이나 공공미술에 활발히 참여 중인 나인주 작가의 ‘동네’에 관한 관심은 단지 이것을 개선의 대상이나 복지행정이라는 수치적 단위로만 대상화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의 작업을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주로 재개발 지에서 폐자재로 재활용된 나무를 사용하여 실지로 존재하는 지역 동네의 요모조모를 그대로 옮기는 그의 작업들은 외적 환경이 우리의 내면적 환경으로까지 결부되어 있다는 지점을 포착하는 특별함이 숨어 있다.
특히 생각보다 사실적인 묘사를 띄고 있는 그 지역의 실지 건물과 거리를 발견하는 관객들의 놀라움을 만날 때는 그러한 공간적 포착들을 더욱 확실하게 증명하고 있다. 일종의 오브제 미술의 외양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내 기억 속에 존재했던 순간의 페이지로써 그 동네의 집들을 또다시 마주한다. 작은 집들과 동네를 시선으로 여기저기 거닐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기억의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지극히 우리에게 친숙한 재료와 물감, 작가가 하나씩 쌓아가는 행위의 흔적들, 손때 묻은 재료와의 친밀감은 우리가 기억하는 지나친 순간의 한 페이지와 비로소 화해하게 해 주고 깨닫게 해준다.
두 작가들의 (하나의 ‘작품’으로 소비되기 이전의) 이러한 과정들은 우리에게 답을 내려달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작업에서 드러난 공간의 내부를 함께 경험하자고 권유하고 있다. 이 작업들은 두 작가들이 각자의 터전과 영역에서 해오던 작업들을 우리의 기억이라는 친밀하고도 보편적인 공간에서 다시금 만나게 한다. 우리에게 함께 작업들을 바라보며 손을 잡도록 요청하는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지역적으로 친근한 소재나 환경적 기법으로 접근하고 그 내적 관점을 담아내는 방법으로 풀어내고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우리에게는 나와 결부된 색다른 미술적 경험을 손쉽게 이어주는 표현을 하고 있다.
이쯤에서 내가 이야기한 일상 속 진부함의 실체에 관해서 한 번쯤 돌이켜 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이 진부함에 대한 실체에 대해 파악하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그만큼 우리는 멀리 복잡한 것들을 헤치고 쌓아놓고 살아왔고, 그런 것들과의 관련 없이 나를 정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는 겉과 속, 과거와 현재, 제도와 일상을 보다 친밀하게 화해시킬 필요가 있다. 나는 (그 모든 제도, 권위와 의미를 파악하기 이전 - 기억에 관한 조작조차도 없었던 그 이전의 시기에 ) 이들 작가들의 작품에서 드러난 시선과도 같이, 우리의 터전과 기억의 공간을 바라보는 심미안을 간단하게 변화시켜 보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지나친 의미의 세례에서 약간은 빗겨 나 모두의 공동체적인 보편타당한 기억 속으로 한 번쯤 두 발을 담그고 모두가 신비로운 눈빛을 반짝이며 넘기던 기억의 페이지로 다가가 보도록 하자. 두 작가가 겸손하게 드러낸 작품 속 페이지를 함께 넘겨보며 우리의 일상 속에 뿌리내린 생기 없는 시선의 무거운 짐들을 한 번쯤 벗어던지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