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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명 May 06. 2018

현실논리와 현실

얼마전 두 작가분을 우연하게 만나, 커피를 한잔 했다. 그중 한 분이 '아무리 내면이 요구하는 작업이 있어도 당장 빨리 회전이 좋은 작품들이 내놓아야 한다. 결코 현실이 요구하는 대응에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 생각의 갈래들이 비단 창작의 분야에만 해당하는 고민들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일견 그럴 듯 한 어쩔 수 없는 현실 문제에 대해 수긍을 하면서도, 집으로 돌아오며 그 이야기에 왠지 깊이 공감을 이룰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햇살과 커피, 마당이 있는 카페에서의 독서가 주는 최고의 선물은 생생한 현실 


내면을 직면하여 진정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열매는 맺히지 않는다는 진리- 와 현실감각을 합리적으로 다루다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 것인지 궁금해진다. 당연히 우리는 현실 일반을 외면해서는 안되고 균형감각을 가져야 한다. 다만 여기엔 한 가지 착시가 존재한다. 누구나 객관적으로 일반화할 수 있는 '현실'을 전제할 수 있느냐 이다. 그럴듯한 현실감각은 약간은 허구이다. 또한 우선순위가 잘못되었다. 결국 현실도 사실에 대한, 내면에 대한 성실한 분별로부터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것이고, 따라서 현실과 내면은 그 다지 큰 차이가 없다. 이분법적 현실논리는 통념일 뿐이다. 


우리는 마음 속에 나름의 경험과 반응을 통해 현실이라는 인상의 조각들을 차곡차곡 쌓아 간다. 


그럴듯한 통념을 내세울 때에는 분명 논리적인 오류들이 존재한다. 그럴듯한 현실감각은 어쩌면 현실에 대한 지독한 외면일 수도 있다. 오히려 현실이 지니는 복잡 다난한 측면들을 외면하는 것일 수 있다. 내가 즉각적으로 알 수 있는 그것을 현실이라고, 오독하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안주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내적 분별능력이나 건강함에 주목하면서도 그것을 현실과 분리시키지 않는 것이, 진정한 균형감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순위는 분명 내면적인 건강함이나 성장이다. 내가 우선적으로 내적 분별에 근거하여 주변 현실과 의미 있는 관계들을 맺지 않으면 현실도 조화롭게 나와 만나주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즉각적으로 교환하는 '현실논리'는 일견 움직일 수 없는 조건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만큼 불안하다. (속물주의는 나의 결핍과 자신감을 집요하게 공격한다.) 누구나 아는 현실은 생각만큼 현실적이지 않다는 전제들을 늘 자각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일 수 있다. 


오늘 만났던 작가 선생님들은 나와는 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들인데, 성향이 참 다른 두 분이 자주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참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 모두가 서로를 잘 알고 또 필요로 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현실 문제와 우리의 내면도 서로를 잘 알고 필료로 하지만 또한 그만큼 아프고 부족한 부분도 잘아는 사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느 한쪽이 너무 강하게 지배를 하게 되면 두 사람의 관계는 의존적인 상태로 변질될 수도 있겠지만, 또한 서로가 불편할 때 잘 화해하고 배려하는 사이라면 그만큼 활력이 되는 관계도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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