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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명 Jun 10. 2018

사막에서 그린 오아시스

작가 조철수를 기리며 

그는 사막을 보고 있었다. 그에겐 사막만이 실제로 존재하는 유일한 실체였다. 사막은 일종의 캔버스였다. 그렇지만 그는 일렁이는 풍경들을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묘사해 나갔다. 사막이라는 캔버스에는 마음속에서 또 다른 언어의 형상으로 변모한 낯선 풍경들이 펼쳐진다. 현실세계에서, 그에게는 소통이라는 단순하고도 직접적인 과정마저 어렵고 불필요한 장식물에 불과했다. 그를 둘러싼 모든 환경은 사실상 그를 오해하기 좋은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조건들에 불과했다. 오히려 아득하게 보이는 아련한 사막의 신기루를 포착하고 어렵지 않은 형상으로 붙잡아 두는 것이 그에게는 더욱 마음을 끌어당기는 시간이 되어준다. 그건 물 위에서 동심원을 그려나가며 퍼지는 물결을 바라보며 낚시의 찌를 드리우는 것과 같다. 그는 사막을 온전히 건너고 나서야 그토록 원하던 마르지 않는 바다에 도달할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다.   



그는 보지 않았으나 그가 사막위에 선채로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공간 1989



지난한 일상과 정신의 여정을 보내는 시간들 사이에 선 어느 작가가 그려낸 풍경들은 우리에게 낯설지 만은 않은 추상의 물결들을 보여준다. 아무래도 익숙한 색감이나 어떤 규칙적인 전개들이 보여주는 형태감들이 우리에겐 풍경이라고 부를만한 익숙한 기시감이 존재하기에 그런 것 같다. 그렇지만 풍경들은 천천히 바라볼수록 단지 사물들을 추상적으로 도식화하여 분해한 일종의 격정이나 진지하게 대상을 관찰한 탐구물의 결과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작가가 스스로 인식을 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림에는 인간의 눈으로는 자각이 되지 않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과 움직임들이 서서히 드러난다. 


공간 1972 



공간은 왠지 아래위가 뒤섞여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도 하고 어쩌면 시간의 간섭으로 부터도 벗어난 듯이 보인다. 분명 풍경의 일부나 운동이 드러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그것을 아름답게 묘사한 그림은 아니다. 그것은 사실상 풍경은 아니고 공간도 아니면서 우리의 시신경에 맺히는 미세하게 떨리는 파동이나 물결에 가깝게 느껴진다. 이 물결들은 전혀 인간적인 인식의 카테고리에 (혹은 언어에) 묶여 있지 않은 조그만 양자적인 전기 작용, 혹은 미시적인 세계의 단위가 반짝하고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조그만 흔적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굳이 시작과 끝이 연관되어 연결되지 않는다. 동시다발적인 연쇄의 움직임으로 물결처럼 일렁거리게 되는 어느 기상학 학자의 연구실 실험의 한 단계처럼, 작가가 직접 그렸다기 보다 그저 어떠한 상황의 결론으로 화폭에 세겨진다. 한 인간의 심적 상태를 나타낸 것도 아니다. 연기가 서로 분자적으로 연쇄하여 다양한 모습의 덩어리처럼 복잡한 형태를 만들어 내었지만, 그것은 풍경은 아니다. 그가 바라보던 사막은 그렇게 그의 정신에 단지 자각되었던 것이다. 






그런 움직임들을 떠올린 순간, 그에게 수많은 단위의 요소들은 하나하나 오롯이 살아나 그의 인식의 빈틈을 채워 나갔다. 그 단위들은 물질적인 형상이 아니라 우리가 소리를 내듯 공기나 여백을 채워나가는 하나의 진동 같은 것들이다. 작은 단위들의 요소들이 기묘한 울림을 주면 또한 좀 더 커다란 울림들이 형태를 변주해 나가는 복잡하고 예측이 힘든 연쇄적인 운동들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것들은 그의 정신 여백을 계속해서 채워 나갔는데, 그리고 나서 다시금 겹겹이 그 운동들을 그려나간 뒤 가만히 쳐다볼 때 마치 끝없는 차원이 덧입혀진 텅 빈 영원의 공간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것은 그가 형태적인 탐구를 하거나 관찰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는 분명 본 것들을 그렸지만, 또한 볼 수 없었기에 존재하지 않은 대상들이기도 하다. 그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혹은 아무것도 보지 않았던 것일까? 





작가는 어떤 알 수 없는 자각몽 속에서, 연상되거나 자각되는 끝없는 운동의 연쇄를 보았던 것일까? 나는 작가의 어마어마한 형태의 강박 속에서 참으로 상상하기가 벅찬 시간의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종류의 울림은 완전히 스스로의 실존을 시간의 흐름을 잊고 침잠했을때 만이 드러나는 시적인 파동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렇다. 민감하게 현실과 반응하며 그 반응들을 예측해 내고 파릇하게 먹기에 적합한 접시에 담아내는 그런 종류의 감각과는 많은 차이들이 있다. 현실 언어가 지닌 기호들의 주고받기에서 이탈하여 어떠한 명상의 과정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가들이 종종 선적 세계를 추상회화의 무아의 명징한 세계를 그려내는 듯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나는 그의 그림은 그것과도 다른 것이라고 느낀다. 



습작 1980년대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기 위해서는 인식이나 선택을 하는 자율적 의지의 자아가 존재해야 한다. 자아를 시뮬레이션을 하여 선택적 결정을 하는 '정신작용'이 전재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풍경이나 대상들이 우리에게 쉽사리 취사선택할 수 없는 요소나 단위들의 움직임을 보여준다면? 혹시 그것을 자각한 작가들이 성취한 그림이 있었다면 아마도 이러한 성질의 그림들이 아닐까? 물론 그것이 풍경을 닮아 있긴 하지만 그것은 실제 하지 않는 사물일 가능성도 있다. 우리가 보는 전자파의 극히 일부인 가시광선이 우리에게 어떤 유기적인 세상의 '의미'를 주었다는 전제가 가능하다. 우리는 풍경이나 그림을 대상화하여 개념적으로 언어화한다. 그리고 소통해 낸다. 반면에 가시적인 빛의 그 너머에 있는 운동들은 우리에게 인식되지 않기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작가는 타고날 때부터 사람들과 소통하는 재주가 없었다. 그러니까 소통은 언어적으로 현상적인 기호, 그림, 통념을 있다고 전제하거나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는 소위 우리가 주변머리라고 부르는 정신작용으로부터 이탈하여 창으로 빛이 들어오는 화실과 오로지 풍경을 찾아서 떠돌아다닌다. 그런데, 그의 캔버스에 확실하다고 할만한 풍경을 드러나지 않는다. 미세한 작은 요소들이 지속적으로 운동의 연쇄를 반들어 내고 그것이 정신에 아로새겨져서 평평하고도 끝없이 펼쳐지는 패턴의 무한해 보이는 형상들을 보여준다. 아마 그 활동들은 거의 집처럼 생활했던 자연 속에서 문득 그의 정신세계 속으로 이입되었거나 펼쳐진 것처럼 상상해 볼 수 있다. 나는 작가가 탁월한 관찰자나 자율의지의 통제를 전제하는 선사상의 철학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럴싸한 소통의 네트워크에서 단절된 사막 위에서, 그것만을 기원하며 집중하던 그에게 어느 날 주어졌을 그림들이었을 것이다. 



습작 1980년대 



작가는 어쩌면 현상 세계를 탈출하고 우리의 통념 속에서 소통이라고 이름 붙여진 크고 작은 오해들과 착시의 과정 속에서 또 다른 본질의 공간들을 보거나 자각할 수 있는 문을 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 문을 열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작가라는 직함을 얻었지만, (엄청난 양의 그림을 남겨두었지만) 또한 엄밀하게 작가적인 사회적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현대적인 의미의 작가는 아니다. 그는 일단 소통의 역학들 속에 스스로를 차단하고, 그가 연상할 수 있는 최대한을 그림으로 남긴 사람이었다.  



바다소리 1990




그림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빈 공간이나 웅덩이는 나에겐 오아시스처럼 보인다. 그래서 채색된 그림이나 활기찬 새들의 동작들이 바다 위를 나는 것처럼 보일 때도 나는 그가 사막을 보고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아마 부산의 자연들이 어떤 싸인처럼 그림에는 그런 형상의 일류전을 만들어 내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의 세계에서 중력이나 자의식 같은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붓질을 강조하거나 어떤 사상을 강조하는 일체의 퍼포먼스도 좀체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어떤 종류의 만남이나 의미부여를 극도로 거부하는 듯이 보인다. 자율적 의지의 인간적 자각이 아니라 그에게는 세상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환영적 운동의 본질을 포착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마치 공간처럼 보인다면, 그건 우리가 문화적으로 오랜 착시의 경험상 그런 것이다. 



바다소리 2010 



결국 우리는 추상의 어떠한 본질의 면모에 조금은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그토록 명징하다고 생각해 왔던 자율적인 의지는 일종의 형상적인 통제이다. 시뮬레이션이라고 부르면 조금 더 산뜻한 표현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하거나 선택당하며 소통했다고 느낀다. 작가는 도무지 그런 식의 인간적 선택에 관해서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예술에 관해서도 일정한 거리를 둔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지난 뒤 우리는 과거를 꼭 기억 속에서만 만나는 것일까? 그래서 추상적인 요소들은 현실로부터 무력하게 만드는 단지 창조의 퍼포먼스에 불과한 것일까? (우리는 오래된 추상의 예술적 관념이 현실과 무관한 관념적 활동이라는 두 세계의 극단적 대조를 당연한 것으로 오인하고 있다.) 오히려 미세한 단위의 운동의 조각들 (혹은 상념들이) 미래에도 지속되는 우리의 존재를 어떠한 추상적 자각몽을 통해서 만나게 해주는 것은 아닐까? 그는 어떠한 현실 시뮬레이션에 관한 시각적 코딩을 끈기있게 구조화 했던 것인 지도 모른다. 



부산의 그리 알려지지 않은 지금은 작고하신 어느 작가의 그림들을 나는 우연한 기회에 연작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저 그런 지역의 무명작가는 우리에게 철 지난 과거의 소소한 정보에 불과할 뿐이다. '이름값'이 주는 전율이나 감동은 우리에게 커다란 종교적인 감흥까지 준다. 특히 미디어와 스토리가 결합했을 때, 우리는 그 떨림을 잊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이 그림의 주인인 작가의 연작들과 에피스드들을 접하면서 그 못지않은 감동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어떠한 예술적 실험에 천착했다기보다 70-80년대 지난 난 한국적 상황에서 현실과 차단하고 자신으로부터도 이탈하여 어떠한 정신적 자각에 관해 추상적인 흔적을 집요하면서도 거의 강박적으로 그려내었다. 



그는 사막을 보고 있었다. 70년대와 80년대를 관통하면서, 작가는 아마도 사막이라는 현실세계라는 캔버스를 확실하게 획득하였을 것이다.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오히려 그 순간 새겨지는 정신작용에 관해 집중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 그것은 현실만을 잘 이해하여서 본질적으로 도달하기 힘든 일종의 구원의 과정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현실에서 좀처럼 타협하기 힘든 추상의 과정과 현상적인 소통의 메커니즘을 그는 지난한 집중의 시간들 속에서 그래도 공존시키며 자존을 획득하였을 것이다. 끝내 부산에서 그는 작가의 최종 종착지이자 구원의 증명으로서의 이름값을 획득하지 못했다. 나는 작가의 그림들을 하나하나 접하면서 그에게 경건한 찬사와 존경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그토록 작가가 당겨 도달하고자 했던 바로 그 미래에 도달하였을까? 그는 과연 구원에 이르렀을까? 




조철수 (趙哲秀/ 1938~2012) 작가는 경남 통영태생으로 부산에서 196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며, 작고하는 시기까지 꾸준하게 그림을 그려 내었다. 화풍의 변화를 겪기도 했지만 절대 추상적 형태에 본인만의 고유한 관념과 풍경을 섞은 듯한 독특한 일관성을 한결같이 유지했다. 화단의 중심에서 활발하게 발언하거나 직함을 얻지는 않았으나, 남겨진 그의 그림은 수천 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진정 작가로서 또 다른 차원의 본질과 자기 길을 걸었던 그에게 존경과 추모의 마음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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