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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명 May 18. 2016

에스페란자 스팔딩의 재즈

모던 재즈의 현재 

  2009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미국의 대통령인 오바마의 백안관 기념 연주회에는 의외의 젊은 흑인 여성 연주가가 무대로 올라섰다. 명망 있는 클래식 연주가나 이미 미국 대중음악계의 알려진 연주자였던 스티비 원더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의 무명이었던 이 20대 중반의 여성 연주자의 등장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여성은 커다란 베이스를 들고 올라서 흔히 여성들이 연주하지 않는 콘드라 베이스의 활을 튕기며 전혀 예상치 못한 아름답지만 유색인다운 풍부한 음색으로 참여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렸다. 그해 이제껏 중동과 전쟁을 이끌고 핵문제로 긴장을 유지해 왔던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의외의 노벨 평화상을 받은 오바마에게도 이날은 아마도 특별한 의미의 연주가 되었을 것이다.





  이날 대중에게 처음으로 광범위하게 소개되었는 던 여성 베이스 연주가가 바로  에스페란자 스팔딩 Esperanza spalding이다. 그녀는 16세 때부터 베이스를 연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15세 때까지 다니던 일반학교를 그만두고 그녀는 홈스쿨링을 시작하며 이때부터 재즈 베이스의 세계에 빠져든다. 일반학교에 그다지 적응을 제대로 못했다고 하는 그녀는 음악을 시작하면서 곧바로 작사 작곡을 해내는 놀라운 재능을 보여 주었다. 



  이때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던) 그녀는 주로 자신이 가지고 놀던 자동차나 사물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붙여 작사를 했다고 하는데, 처음에 이를 다른 사람들은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순수하게 음악으로 자신의 이야기나 감성을 전달하고자 했던 그녀의 창작의 천재성만큼은 충분히 알 수 있을 듯하다. 수년간의 재즈 공부와 창작을 하면서 그녀는 Pat Metheny, Charlie Haden, Dave Samuel 등과 투어와 협주를 병행하며 이미 20대에 접어들며 대가의 향취를 보여준다. 



  이 이야기에는 천재적인 어떤 여성 연주자의 성공스토리 이상의 것이 있다. 그녀는 유색인종으로서 제도권 교육으로부터 이탈하였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꿈에 집중하였다. 그녀는 여성에게 왠지 어울리지 않는 콘드라 베이스를 붓으로 삼고 재즈를 펜으로 삼아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 나갔다. 음악이나 재즈나 연주가 곧 목적 그 자체는 아니었다. 꿈이나 자신의 약점을 오히려 그녀는 이야기하고 그것을 날개로 삼아 비상하였다. 


  나는 그녀의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어쩌면 무엇인가를 아주 잘해낸다는 것이 반드시 목적이 될 수는 없겠다는 것을 깨닫는다. 단지 꿈을 지켜나간다는 것, 반드시 자신으로 솔직한 상태(혹은 약점)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주변의 아름다움을 잘 분별해야 한다는 것 등을 깨닫는다. 그녀가 곡으로 이름봍히고 이야기했던 장난감과 사물들을 그녀가 미국의 경쟁력 있는 재즈 필드에서 살아남게 했으며 오히려 뛰어난 존재로 부각하는 데에 커다란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의 음악이, 우리의 지역이 지배와 통제의 논리가 아닌, 비록 작고 약한 지점이지만 사람이 살고 있다는 솔직한 지점에서 출발한다면 에스페란자 나 뛰어난 이웃과 만나는 의미 있는 일상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녀의 재즈는 단지 뮤지션으로 서의 기량만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제3세계 음악, 아프리칸, 브라질 음악에 대한 해석과 스페니쉬, 포르투갈어 등의 다양한 언어로 전달되고 있다. 역시 음악에도 그녀의 이러한 다양한 세계 음악의 영향이 잘 드러난다. 높은 음역대의 맬로디와 저음대의 콘드라 베이스를 동시에 연주하는 그녀의 재즈는 경이로울 지경이다. 


  훵크 하고 소울 풀한 흑인적 음악 언어를 재즈적인 기본 바탕 위에 효과적으로 결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의 환경, 인종과 지역적인 다양성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오바마의 특별한 초청에 의해 서게 되었던 그날의 연주회는, 세계의 평화를 유지해 달라는 노벨평화상의 의미만큼이나 에스페란자 스몰딩 개인의 의미도 특별했을 것이다. (2011년 에스페란자 스팰딩은 팝 아이돌인 저스틴 비버를 제치고 재즈 연주자 최초로 그래미상 신인상을 수상한다.)




올해 발매된 그녀의 앨범은 특히나 컨셉추얼 한 접근이 강한 음악이다. 자신의 얼터-에고인 어린 시절의 애밀리가 등장해 자유로운 자아의 다양한 측면들을 담아낸 앨범이라고 한다. 사이키텔릭, 록, 퍼포먼스가 두루 혼합된 양상을 보이는 그의 새로운 앨범은 진보적이면서 혼란스럽게 느껴지지도 하지만 분명히 재즈이다. 분명 이번 앨범은 혁신적이지만, 한편으로 70년대 자유분방함에 관한 향수와도 관련을 맺고 있는 듯하다. 어린 애밀리와 대화를 통해 풀어 나가는 성인이 된 에스페란자의 초자아적인 무대를 보며 재즈라는 틀 안에서 무한하게 자유로운 상상을 펼쳐나가는 현대적인 아티스트의 면모를 본다.   





  재즈가 오울드 한 음악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에스페란자의 음악은 확실한 충격을 준다. 그러나 재즈는 계속 그래 왔듯 진화 중이다. 특히 에스페란자의 애밀리와 같이 강력한 이야기와 만났을 때는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간단하게 '이야기'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안에는 사실 지역, 교육, 공간, 진취적인 대가들과의 만남과 천재적 감수성등 많은 것들을 축약 하고 있다. 음악 역시 (우리의 지역에서 통제나 관리, 혹은 천편일률적인 분류가 낳은 죽은 범주의 경계들안이 아니라) 비록 작고 약한 지점이지만, 사람과 이야기라는 솔직한 지점에서 출발한다면 에스페란자나 뛰어난 이웃과 만나는 의미 있는 일상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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