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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명 Sep 01. 2016

세상의 모든 September

EW&F 의 명곡 september에 관한 단상 

영화 언터쳐블(Intourchable,france 2010)을 보면 농담조이지만 예술에 대한 코멘트가 꽤 나온다. 사지마비 장애자 갑부인 필립이 실내악단을 불러 자신이 고용한 흑인 간호사인 드리스에게 들려주지만 드리스는 배경음악으로 쓰인 만화의 타이틀을 댄다.  '프랑스 구직센터!’ ‘톰과제리!’ 이런 식이다. 또한 붉은색이 칠해진 추상회화를 보고 드리스는 "도화지에 코피를 쏟아놓고 3만유로라니!" 하고 놀란다. 이 영화에는 다양한 현대인에 대한 은유들이 뒤섞여 나오는데, 특히 생명력이 없는 것에 대한 해학적인 묘사가 주인공들의 관계를 통해 코믹하게 잘 표현된다. 


이 영화의 잔잔하고도 관계에 대한 진지한 코멘트는 은근한 즐거움을 주고 있는데, 특히 이 영화의 커다란 모티브가 되는 것이 어스 윈 앤 파이어 Earth wind & fire의 곡이다. 이 곡을 통해 영화는 생명의 주된 본질이 ‘기쁨’이라는 테마에 접근하고 있다. 예술, 혹은 전통적인 것들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것을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 따르고 있는 경직된 모든 것이라고 등치 해 볼 때, 이 영화에서 표현하는 기쁨이라는 테마와 Earth wind & fire의 노래는 썩 잘 어울린다.



겉보기에 모든 것을 이룬 듯 보이는 필립이지만, 그는 자살충동,무력감에 시달리는 정서적인 불구이기도 하다.  하반신 마비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무언가 내적인 갈망이 없는 무력함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의 불구이다.  


9월이 되면 어김없이 나의 친구들 주변 지인들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명곡 September를 페북이나 개인 블로그, 혹은 다른 SNS에 올리며 축하한다. 마치 크리스마스나 된 듯한 분위기이다. Earth wind & fire september를 듣고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면 9월의 이 소리 없는 조용한 페스티벌에 새롭게 참여해도 무방하다. 영어의 달을 이야기하는 단어 중에 어감도 제일 멋지고 친밀감이 생기지 않는가. September는 바로 우리의 주제곡이나 다름없다! 


  

우리의 주제곡으로 당당하게 첫 번째로 꼽힐만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 곡이 바로 ‘기쁨’에 대한 노래이기 때문이다. 또한 강인함에 대한 노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류의 기쁨은 딱히 이유가 없다. 우리가 지금 현재 지나고 있는 터널 속에서는 그다지 기쁨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오 당신은 늘 기쁘다고? 그렇다면 당신은 거짓된 감정에 휩쓸려 있거나, 혹은 영적으로 많은 내공을 쌓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Marcela Mangabeira – September

 

확실히 흑인음악은 많은 경우에 영적인 상태에 관한 음악이다. 그래서 우리는 흑인음악을 소울이라는 카테고리에 묶는다. 이러한 종류의 기쁨은 마땅하고 확실한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기쁘다는 것이다. 지금 어떠한 조건과 환경과 무관하게 이 노래는 우리가 영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완전히 기쁨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준다. 그래서 우리의 현실적인 상태와 무관한 완전한 미래에 대해 꿈꾸게 하는 것이다. 미래는 우리의 그러한 기쁨의 상태가 결정하는 기대의 결과물일 것 같다는 꿈을 꾸게 해 주는 것이다.


 september라는 곡에는, 흑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집단적으로 사냥감을 찾거나 전장에 나가기 직전 부르던 그 시기의 춤과 민속음악으로부터 시작하여, 미국에서 가장 번영한 나라의 노예로 살며 부르짖던 가스펄의 영혼, 그리고 라틴 민족과 남부 혼혈들이 부르던 격렬한 축제와 재즈의 리듬, 그리고 현대적인 디스코에까지 이르러 인류의 번영과 고통과 불합리의 역사를 관통하는 끈끈한 인류의 강인함이 다 녹아있다. 그것을 어떠한 과시적인 미학이나 저항이 아닌 가장 근본적인 강인함의 원천인 원시성, 토속성이라는 몸의 언어로 표현해 낸다. 나는 이러한 점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근본적인 음악의 또 다른 형태를 본다. 

                              

 september라는 곡에는, 흑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집단적으로 사냥감을 찾거나 전장에 나가기 직전 부르던 그 시기의 춤과 민속음악으로부터 시작하여, 미국에서 가장 번영한 나라의 노예로 살며 부르짖던 가스펄의 영혼, 그리고 라틴 민족과 남부 혼혈들이 부르던 격렬한 축제와 재즈의 리듬, 그리고 현대적인 디스코에까지 이르러 인류의 번영과 고통과 불합리의 역사를 관통하는 끈끈한 인류의 강인함이 다 녹아있다. 


full flava featuring chantay savage -september

 

september를 들으며 나는 기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기쁨 그 자체는 그저 아무런 이유 없이 주어지는 축복이다. 그것이 이 노래의 핵심이다. ‘기억해 봐요. 9월의 어느 저녁 사랑에 빠졌던 당신과 나의 그날 밤을 말이에요’라는 약간은 통속적인 가사와는 별개로 말이다. 그러한 종류의 기쁨은 - 고통 속에서 내면의 우물을 깊이 길어 보았던 인간의 지혜와 유산을 몸으로 느껴본 자들의 기쁨이다. 우리는 (근대주의적인) 예술이라는 권위의 이름으로, 또는 도덕이나 윤리의 이름으로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절박하게 행했던 많은 것들로 기쁨을 훼손하고 엄숙함으로 많은 것들을 행해 왔는지도 모른다.  


Kirk Franklin - “September”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과학자들이 힉스 입자를 발견하기도 하며 열심히 찾아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러한 종류의 (자연법칙이나 역사의) 조건과 무관하게 인류가 유산으로 물려받았던 원시성의 또 다른 모습 속에서 엿보이는 기쁨에 관한 상태와 우주의 미래가 어쩌면 막연한 관련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는 꿈을 가져본다. 이것은 어쩌면 인간이 생각만큼 자발적인 주체가 아니라, 또 하나의 음악적 화모니의 매개(전달자)나 메시지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이것이 하나의 과대망상인지, 아니면 우리의 선조들이 많은 토속적인 음악이나 예술적 성실함 들을 통해 전해준 진실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조금 더 인생을 살아 보아야 할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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