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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n Money in New York Feb 04. 2024

[100 챌린지] 단지의 독서노트_45

다시 만난 세계

어휘 늘리는 법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

저자 박일환

출판 유유

발행 2018.03.24.

멘델의 유전법칙 용어로 사용되어 온 ‘우성’과 ‘열성’이란 용어는 유전자의 특징이 나타나기 쉬운지 여부를 표시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하지만 ‘뛰어나다’, ‘뒤떨어진다’라는 어감이 있어 오해받기 쉬웠다. ‘열성 유전병’으로 진단받은 사람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품게 되어 쉽게 불안해지곤 한다.

유전자학회는 일본 인류유전학회와의 협의를 통해 용어 사용 재검토를 진행해 왔다. 이에 따라 ‘우성’은 ‘현성’顯性, 눈에 띄는 성질, ‘열성’은 ‘잠성’潛性, 숨어 있는 성질’으로 바꾸어 사용키로 했다. 또 ‘Variation’의 번역어로 사용되는 ‘변이’는 ‘다양성’으로 바꾸기로 했다. 유전 정보의 다양성이 사람마다 다른 특징이 된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전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색깔이 보이는 방식이 사람에 따라 다양하다는 인식에 기초해 ‘색각 이상’이나 ‘색맹’이라는 용어를 ‘색각 다양성’으로 바꿨다.

  —『경향신문』(2017년 9월 7일 자)

어휘는 특정한 사물이나 현상을 지시하는 기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서로 다른 사회, 역사, 문화 경험과 종교 신념을 가진 경우 특정 어휘에 관해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최대한 중립적인 어휘를 만들어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으나 그조차도 쉽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렵더라도 꾸준히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으며,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어휘를 골라서 사용하면 된다. 그렇게 특정 어휘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그 어휘가 자연스레 자리 잡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가령 ‘노동자’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예전에는 노동자가 아니라 ‘근로자’라는 말을 쓰도록 강요당했으며, 노동자라는 말만 써도 불순분자나 빨갱이 취급을 받았다. 지금도 정부 차원에서는 5월 1일을 ‘노동절’이 아니라 ‘근로자의 날’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노동자라는 말을 쓴다고 해서 이상한 눈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다. 시대가 그만큼 달라졌다는 이야기고, 스스로를 근로자가 아니라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부르겠다고 나선 노동자가 많아진 결과다.

언어도 시대의 산물인 만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용하는 어휘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가 담긴 어휘를 만들어서 퍼뜨리고 꾸준히 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이규호 씨의 『말의 힘』이라는 책에 “언어 표현의 행위는 수사학修辭學이나 문학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또한 윤리학의 문제이다”(46쪽)라는 구절이 나온다. 말의 윤리학이라는 측면에서 고려해 본다면 왜 ‘병신’과 같은 말을 쓰지 말아야 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장애를 가진 가족의 구성원에게 ‘병신’이라는 말이 얼마나 아픈 상처로 다가갈 수 있는지를 생각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의 윤리 지수가 낮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정신병’이라는 말 대신 ‘조현병’이라는 말을 쓰는 게 윤리적으로 바른 행위가 된다. 오른쪽 손을 뜻하는 말로 ‘바른손’을 쓰는 사람은 왼손잡이가 그 말에 불편을 느낄 수도 있다는 점을 살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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