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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n Money in New York Feb 10. 2024

[100 챌린지] 단지의 독서노트_56

이민자의 삶

그래서 나는 한국을 떠났다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서, 좀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

김병철, 안선희 저

위즈덤하우스 출판

2018.12.17. 출간

나도 모르는 사이 국경을 넘어 있던 유럽 여행은 머리 한쪽에 박혀 있던 국경의 개념을 사뿐히 밟아주었다. 최동섭 씨가 드라이브를 시켜주겠다며 오스트리아로 차를 몰고 갔을 땐, 슬로바키아와 오스트리아의 경계조차 모호해 보였다. 한국을 떠나면 알게 된다. 우리가 얼마나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경쟁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있는지 말이다.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꼭 이 안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다.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3억 원 버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3억 원 벌면 10억 원 버는 사람이 부러워졌다. 10억 원 벌면 ‘나는 뼈 빠지게 일해서 10억 원 버는데 저 놈은 부모가 부자라…’ 이렇게 되는 것이다.

리: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으로 갈 생각은 줄어들었다. 2년에 한 번 정도 한국에 가는데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가족이 있긴 한데 공기도 너무 나쁘고 점점 머뭇거리게 되었다. 만나는 사람들도 직장, 관계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기도 했다. “우리 정말 행복해”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신기해했다. 그런 말을 TV 아닌 곳에서 듣기는 어려운 거였다. 제일 중요한 건 ‘한국에 있었으면 우리 부부 관계가 지금 같을까’였다.

원철: 제가 ‘제일 좋은 남편’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제일 대화를 많이 하는 남편’이라고 생각한다. 집에 오면 같이 산책하면서 낮에 회사에서 했던 일이나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다 한다.

리: 한국에서 함께 산 3년은 지금의 깊이, 양과 비교가 안된다. 한국에선 하숙 생활도 아닌 같이 침대를 쓰는 룸메이트였다. 밥도 거의 밖에서 먹었다. (국회) 의원실에서 저만 여자니까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더 일찍 나가고, 더 늦게까지 악착 같이 일했다. 몸도 축나고 관계도 망가졌다. 5년 동안 국회에 있으면서 친구 결혼식도 한 번 못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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