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팬데믹, 그리고 예술의 전환점”
2020년의 봄, 전 세계 미술관과 갤러리가 멈췄다. 도시는 닫혔고, 전시는 사라졌으며, 작가의 작업실도 조용해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기, 사람들은 예술을 더 간절히 찾기 시작했다. 화면 너머로 전시를 보고, 온라인 경매에 참여하며, SNS 속 작가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이 변화는 우연이 아니었다. 예술은 기술의 진보, 인간의 위기, 연결의 욕망이 겹치는 지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시장으로 다시 태어나기 시작했다.
NFT와 블록체인: 소유의 의미가 바뀔 때
― 우리는 무엇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 젊은 작가가 있었다. 그녀는 아크릴 물감을 내려놓고 디지털 펜을 들었다. 아이패드 위에 그림을 그리고, 트위터에 과정을 공유하고, 마지막에는 NFT 플랫폼에 작품을 등록했다. 몇 시간 후, 그녀의 첫 NFT는 이더리움 2개, 당시 환율로 약 7,000달러에 판매되었다.
그녀는 물었다. “내가 판 건 무엇이었을까요? 이미지는 아직 내 컴퓨터에 있어요. 그림도, 원본 파일도, 어디 안 간 건데… 그럼 구매자는 뭘 가져간 거죠?” 이 질문은 NFT가 제기한 본질적인 의문이다. 예술에서 ‘소유’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소유’는 기술이 바뀔 때 어떻게 재정의되는가?
- 블록체인과 NFT란 무엇인가?
• 블록체인(Blockchain)
: 변경이 불가능한 데이터의 분산 저장 네트워크 소유 이력, 거래 기록, 원작 증명을 투명하게 기록 가능
• NFT(Non-Fungible Token)
: 대체 불가능한 토큰 디지털 자산에 유일성을 부여함, JPEG, GIF, 영상, 코드, 음악 등 다양한 디지털 창작물이 대상
NFT는 ‘파일 자체’를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그 파일에 부여된 고유한 소유권의 인증서를 사고파는 구조다. 이 개념은 예술 시장에 두 가지 거대한 충격을 안겼다.
첫 번째 충격: 예술의 물성에서 벗어난 거래
전통 미술은 항상 물성(materiality)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 종이, 캔버스, 조각, 설치, 사진. 작품이 존재한다는 건, 그 질감과 무게, 부피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NFT는 그림자가 없는 예술을 상정한다. 손에 잡히지 않지만, 대신 코드와 서명이 있다.
이로 인해 예술의 개념은 다음과 같이 이동한다:
전통 미술 NFT 예술
감상 경험 감상 + 거래 기록
공간적 전시 디지털 공간 유통
원본=물성 원본=토큰 인증
복제=가치 하락 복제=가능하지만 소유권은 불변
두 번째 충격: 작가-컬렉터 관계의 직접화
NFT는 중개자의 존재를 최소화한다. 갤러리, 경매사, 딜러 없이도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등록하고 판매할 수 있다.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에 의해 작가가 재판매 수익(로열티)까지 자동 수령 가능 (예: 10%의 재판매 수익이 계속 작가에게 돌아감)
이 구조는
• 작가의 경제적 자율성 향상
• 신진 작가의 시장 진입 허들 하락
• 컬렉터와 작가의 직접적 소통 활성화
라는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동시에
• 큐레이션 부재
• 품질의 난립
• 투기적 거래 증가
라는 새로운 문제도 함께 안겼다.
예술, 코드, 그리고 영혼
예술은 본래부터 ‘형식’과 ‘표현’, ‘재현’과 ‘추상’ 사이를 오가며 진화해 왔다. NFT는 이 역사에서 형식의 마지막 물성을 밀어낸 진화의 한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둘러싼 욕망의 구조다.
• 예술이 파일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여전히 감동할 수 있을까?
• 작품이 시장에 의해 수천 배 가치로 변할 때,
그 예술성은 그대로일까?
• 그리고 그 모든 이력과 코드가
블록체인에 기록될 때,
예술은 더 자유로워졌는가,
아니면 더 감시받고 있는가?
NFT는 예술의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 거울에 비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소유에 대한 상상력이다.
온라인 플랫폼과 글로벌 시장: 클릭과 알고리즘이 만든 생태계
― 예술은 어떻게 ‘접속의 예술’이 되었는가
런던에 있는 작가의 작품을 서울에 사는 컬렉터가 클릭 한 번으로 구매하고, 결제는 스위스를 거쳐 암호화폐로 이루어지며, 배송은 뉴욕의 물류 창고에서 포장되어 보내진다. 이것은 상상화에 등장하는 미래가 아니다. 현실이 된 오늘의 미술시장이다. 이제 예술은 ‘벽’보다 ‘화면’에서 먼저 만난다. 작품은 ‘공간’이 아닌 ‘알고리즘’ 위에 떠다닌다. 갤러리의 주소보다 웹사이트의 인터페이스가 중요해진 시대, 우리는 예술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새로운 질서를 마주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의 급부상: 물리적 시장의 경계를 넘다
COVID-19 팬데믹은 단순한 유행병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술 시장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한 분기점이었다.
주요 변화:
구분 오프라인 중심 온라인 중심
전시 장소 갤러리, 박람회 웹사이트, SNS, 메타버스
거래 방식 작가-갤러리-컬렉터 플랫폼 직접 거래, 경매 API
감상 방식 현장 경험 중심 고해상도 이미지, AR 프리뷰
소비자 층 전통 컬렉터 MZ세대, 디지털 네이티브
온라인 플랫폼은 물리적 거리, 언어, 시간의 장벽을 제거하며 시장 진입의 민주화를 가능케 했다.
알고리즘이 선택한 예술
문제는 이제 ‘작품을 만들 것인가’보다 ‘어떻게 보일 것인가’가 된다. 인스타그램의 피드 알고리즘은 예술을 ‘참을성 없는 시선’ 앞에 놓는다. 구글, 아트시(Artsy), 오픈씨(OpenSea) 같은 플랫폼은 ‘추천’의 질서를 통해 유행을 만든다. 작품이 보이기 위해선 좋은 이미지, 자극적인 캡션, 해시태그 최적화, 업로드 타이밍까지 고려해야 한다. 예술이 ‘보이기 위한 예술’로 진화하는 순간, 창작은 스크롤의 속도와 싸우게 된다.
플랫폼은 유통의 장인가, 권력의 축적인가?
디지털 플랫폼은 표면적으로 ‘개방’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또 다른 새로운 권력 구조를 형성한다.
예시:
• 아트시(Artsy):
갤러리의 구독료, 광고 순위, 작가의 프로필 최적화가 영향
• 파운데이션(Foundation), 슈퍼레어(SuperRare):
큐레이터·플랫폼 추천이 중심, 진입 장벽 존재
•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가시성에 미치는 영향 절대적
(좋아요 수, 리치, 저장률 등)
이 플랫폼의 세계에서 작가는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콘텐츠 생산자이자 데이터 제공자가 된다.
글로벌화된 감각: 지역성의 소멸 혹은 재탄생
온라인을 통해 국경이 사라진 시장에서, 작품의 지역성은 어떻게 작동할까? 한편으론 ‘비슷한 이미지’가 전 세계를 순환하며 스타일의 평준화, 서사의 단편화를 낳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플랫폼을 통해 로컬 작가들이 세계와 연결되는 창이 되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건 “어디의 작가인가”가 아니라, “누구에게 연결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접속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접속이 편리해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평등해진 것은 아니다. 온라인 플랫폼은 더 많은 작가를 노출시키지만, 동시에 더 많은 작가를 ‘잊히게 만드는 구조’이기도 하다. 누구나 진입할 수 있지만, 지속가능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이는 소수다. 그렇기에 플랫폼에 대한 환호와 비판은 동시에 필요하다. “우리는 연결되었지만, 그 연결 속에서 더 쉽게 사라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작가의 역할 변화: 콘텐츠 크리에이터인가, 예술가인가
― 팔리는 이미지와 남는 예술 사이에서, 작가는 누구인가
그녀는 매일 아침 같은 루틴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커피를 내리고, 작업실에 들어가 그날의 드로잉을 1시간 내외로 완성한 뒤, 고화질로 촬영하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다.
#dailydrawing #minimalart #workinprogress #artistlife
좋아요는 평균 1,200개. DM으로는 구매 문의가 몇 건씩 들어온다. 그녀는 성공한 작가다. 적어도 알고리즘은 그렇게 말해준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 작업실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오늘 그림을 그린 걸까, 아니면 ‘포스팅할 무언가’를 만든 걸까?”
‘예술가’의 역할은 어떻게 바뀌었는가?
예술가의 정체성은 시대에 따라 수없이 변화했다.
• 고전 시대: 신의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도구
• 르네상스 이후: 기술과 노동의 장인
• 20세기 아방가르드: 체제를 흔드는 급진적 존재
• 현대: 자기 서사를 구성하고 확장하는 창조자
그리고 지금, 디지털 시대의 예술가는 어느새 크리에이터(creator)라는 단어로 대체되고 있다.
콘텐츠 크리에이터와 예술가의 교차점
오늘날 작가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넘어 다음과 같은 다양한 역할을 병행한다:
역할 설명
콘텐츠 크리에이터. SNS에 주기적 이미지 업로드, 팔로워와 소통
마케터 작품 가격 책정, 시리즈 기획, 전시 PR
에디터 작업 영상 편집, 릴스와 쇼츠 제작
디자이너 아트북, 굿즈 기획 및 제작
프로젝트 매니저 전시 일정 조율, 협업 기획 운영
그 변화는 작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지만, 동시에 더 깊은 분열도 안긴다.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콘텐츠인가?
둘은 늘 겹쳐져 있다. 그러나 한 끗 차이는 존재한다. 콘텐츠는 반복적으로 소비되는 것, 예술은 시간이 지날수록 질문을 남기는 것, 콘텐츠는 클릭을 유도하지만, 예술은 침묵 속에서 기억된다.
작가는 이 경계에서 매일 선택한다. “오늘 이 드로잉은 얼마나 좋아요를 받을까?” 그리고 “이 작품이 10년 후에도 나의 것이길 바라는가?” 사이에서 말이다.
플랫폼은 작가에게 자유를 주었는가?
작가는 더 이상 갤러리에 의존하지 않는다. 자신의 작업을 전 세계에 직접 소개할 수 있다. SNS, 온라인 갤러리, NFT, 유튜브, 온라인 클래스까지 — 자기 유통(self-distribution)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그 자유는 새로운 종류의 강박과 보이지 않는 평가 체계도 가져왔다.
• 하루의 작업물이 ‘업로드 가능한가’로 결정되고,
• 포스팅 시간이 도달률을 좌우하며,
• 팔로워 수가 작품 가격에까지 영향을 준다.
플랫폼은 작가에게 자유를 주었다. 하지만 그 자유는, 보이지 않는 틀이 되기도 한다.
작가의 고독은 여전히 필요한가? 예술은 늘 혼자의 시간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작가의 하루는 ‘혼자 있는 시간’보다 ‘보여주는 시간’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다: 시대에도 작가에게 ‘침묵의 시간’은 필요한가? 그 고독은 클릭되지 않는, 팔리지 않는, 도달하지 않는 그 순간들은 여전히 예술에 필수적인가? 예술은 결국 말한다. “좋아요는 잊히지만, 진심은 오래 남는다.” 작가는 선택한다. 오늘 하루, 자신이 생산자로 살아갈지, 아니면 여전히 창작자로 남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