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날레

시장을 벗어난 예술의 순환장

by Art n Money in New York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이 첫 선을 보였을 때, 국내에서는 이 전시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조차 명확하게 아는 이가 드물었다. 작품은 팔리지 않았고(전시 중 판매는 금지), 평론은 난해했으며, 관람객도 적었다. 그러나 그 조용한 진동이 몇 년 후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적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미술 시장의 최전선에 선 이들에게조차 ‘비엔날레’는 종종 난해하거나 추상적인 단어로 들리지만, 실상 그것은 미술 생태계의 지형을 조용히, 그러나 깊이 흔드는 지진대와도 같다.


비엔날레는 전통적으로 ‘비시장적’ 공간으로 간주되어 왔다. 작품의 매매가 주요 목적이 아니며, 갤러리나 경매의 로직에서 다소 비껴 나 있는 장소로 여겨진다. 그러나 오늘날 이 이분법은 점점 더 유효하지 않게 느껴진다. 베니스, 카셀, 뮌스터, 리옹, 광주, 이스탄불… 이 지구 곳곳의 국제 비엔날레들은 이제 단순한 전시 플랫폼이 아니라, 작가의 경력 구축, 담론의 방향 설정, 시장의 예열 과정이 복잡하게 얽힌 ‘담론적 무대’이자 ‘비공식적 시장의 장’으로 기능한다. 비엔날레는 어떤 작가가 지금 이 시대에 ‘중요한가’를 말해주는 가장 결정적인 신호 중 하나다. 특히 신진 작가의 경우, 주요 비엔날레에 선정되는 것은 단순한 ‘전시 기회’ 그 이상이다. 이는 그들이 국제 미술 무대에 입성했다는 선언이자, 주요 갤러리와 컬렉터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많은 비엔날레 참가 작가들이 그다음 해 바젤, 프리즈, 아모리쇼 같은 아트페어에 등장하고, 작품의 시세가 바뀌며, 국제 갤러리의 스카우트를 받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비엔날레가 단순히 시장의 하위 구조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엔날레는 시장이 다루기 어려운 예술, 즉 정치적이거나 실험적이고, 상업성이 떨어지지만 시대적으로 중요한 작업을 담아내는 ‘윤리적 안전지대’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예술이 자본의 언어에만 함몰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장치이자, 예술계 전체의 심리적 이념 공간이기도 하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작가가 그다음 시즌 경매에서 기록적인 낙찰가를 기록하는 것은 단순한 인과관계가 아니다. 큐레이터, 평론가, 갤러리스트, 아트딜러, 그리고 전시장을 찾는 국제 관람객들의 시선이 그 작가에게 일제히 집중되는 순간, 이미 작품의 ‘시장성’은 담론의 토대 위에서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비엔날레는 미술 시장을 회피하는 장소가 아니라, 시장의 언어 이전에 예술의 이유를 묻는 질문지이며, 그 질문은 시장에 가장 결정적인 신호로 되돌아온다. 이런 맥락에서 비엔날레는 미술시장의 생태계 안에서 비공식적 촉매제로 작동한다. 작품은 판매되지 않지만, 작가의 경력은 성장하고, 시장은 그에 반응하며, 컬렉터는 그 움직임을 읽는다. 마치 자본의 공식적인 루트 밖에서 일어나는 ‘사전 가속 장치’처럼, 비엔날레는 시장이 포착하지 못한 가치를 먼저 발굴하고, 그것에 시간을 부여한다. 한국 현대미술 역시 비엔날레를 통해 세계로 나아갔다. 이불, 양혜규, 문경원과 전준호, 정금형 등의 작가들은 베니스, 카셀, 샤르자 등지의 비엔날레를 발판 삼아, 세계 미술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획득했다. 그들의 작업은 단순히 ‘팔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는 것’이 되었고, 이는 오늘날 미술시장에서 더욱 강력한 자산으로 작동하고 있다.


결국 비엔날레는 예술과 자본 사이의 경계에서 균형을 잡는 거대한 진자와 같다. 상업성과 순수성, 지역성과 세계성, 감각성과 개념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그 운동 속에서 우리는 예술의 시간, 혹은 시장의 시간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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