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촌 작은 갤러리에서 1주일 동안 오픈 스튜디오 이벤트를 하고 있다. 오늘 마지막 날이다. 행사 둘째 날, 어느 건장한 노익장이 뼈 있는 담론을 나누면서 나의 졸서 "개뿔"을 구입해갔다. 삶이 이슥하여 죽음을 유쾌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는 그의 인생관이 보기에도 좋았다. 이틀 후 그가 다시 왔다. 이벤트 중인 작은 갤러리에서 두 채 옆집에 위치한 그의 집으로 나를 초대를 했다.(그 집 저 쪽 두 채 옆집은 윤보선 대통령 집이다.)
이 집은 북촌에서는 "프랑슷집"으로 소문나 있다. 50여 년 전에 고택을 허물고 유럽풍으로 지었단다. 그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정원에는 목줄 없이 짖지 않는 진돗개가 경계를 한다. 주인 영감님의 경호를 받으며 실내로 들어섰다. 영화에서 더러 본 으리으리한 전형적인 회장님 저택의 실내풍경은 3층까지 이어졌다. 지하실 구조는 대략 말로만 들었다.
영감님이 손수 우려내 온 보이차를 따르면서 <개뿔>을 읽고 나서 흉중에서 꺼내는 말이란다. "나는 속초에 기거할 곳이 따로 있으니, 이 집을 황 화백님이 미술관이나 문화예술 공간으로 만들어 보시겠습니까? 사람들은 한정식 식당으로 내주라고 하지만, 나는 북촌의 전통을 살리는데 알맞은 일을 황 화백님께 부탁하려 합니다."
어머나, 오매불망 꿈에 그리던 시나리오가 아니던가! 그런데 뜨그랄, 1년 가까이 촌에서 채소 심고 나무하던 일상이 등골에 착 눌어붙은 나무꾼의 뱃속 저 아래로부터 하품이 스멀 새 나왔다.
"북촌"이라.... 어설픈 행정으로 망가져버린 인사동의 몰락을 몸소 지켜보지 않았던가! 고향집 텃밭에 상추 심고 뒷골 큰 밭에 고구마 심어야 하는데, 우야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