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만두│네팔│박승근
네팔의 암(暗)과 명(明)
카트만두 | 네팔 | 박승근
2015년 4월, 네팔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1만 명이 죽고, 2만 명이 다쳤다. 영혼의 나라를 아끼던 여행자들은 가슴을 아파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목적을 배경 삼아 자신이 사는 곳을 잠시 떠나서 다시 돌아오는 일을 '여행'이라고 한다면, 오직 사람을 돕는다는 목적으로 네팔 행을 결정한 구조대 역시 큰 틀에서 여행자. 여행매거진이 다루기에는 다소 무거운 주제이리라. 그러나 믿을 수 없는 헌신과 사랑을 보여준 구조대의 모습을 꼭 알리고 싶었다. 멋지고 예쁜 여행이 있다면 아프고 둔탁한 여행도 존재하니까. 그런 경험이 우리가 누리는 작은 여행의 가치를 더욱 크게 만들어 준다고 나는 믿는다.
세상은 밝음과 어둠으로 구성된다. 양과 음이 존재하고, 차가움과 더움이 있기에 그 중간쯤 어딘가에 따스함이 스민다. 빛과 그림자가 함께 주어지지 않는다면 인간은 눈앞의 피사체를 볼 수 없다. 지진이라는 그림자가 덮치면서 모두가 뛰쳐나온 공간은 꺼져버린 생명의 흔적만 남아있다. 짙게 드리운 슬픔의 그림자다. 그러나 이 곳에서 다시 싹이 돋고, 빛은 태어난다.
슬픔의 그림자 속에서 인간의 마지막을 어떻게라도 수습하려는 이들이 험난한 여행을 떠나왔다. UN의 요청에 망설임도 없이 달려온 세계 각국의 구조대는 여진의 위험을 무릅쓰고 빛을 몰아낸 그림자 속으로 꾸역꾸역 들어간다. 몰아치는 심장의 박동소리를 무시하고 한 발을 내딛기란 정말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당연하게 누리던 문명이 사라지면 그에 맞춰진 모든 생각이 멈춘다. 신호가 사라진 휴대전화는 무용지물이 됐고, 시내는 미약한 신호라도 살아있는 통신사에 가입하려는 사람들로 난리 통이다. 급하게 오느라 장거리 무전기를 싣지 못했다. 잠시 살아났던 인터넷으로 한국에 부탁한 위성전화는 언제 도착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구조 활동을 멈출 수는 없어서 세 번의 환전을 하고 나서야 겨우 마련된 돈을 가지고 유심이 남아있는 통신 대리점을 찾았다. 전화를 살리지 못하면 담당구역에 따라 흩어진 다른 팀이나 본부와 연락할 방법이 없다. 한정된 구조장비와 인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구조대를 따라다니는 숙제다.
밤낮을 여행자들로 들끓었던 카트만두 다운타운을 셔터가 내려진 모습으로 만난 건 처음이다. 물과 전기가 끊어지면서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닫았다. 물을 사려고 주변을 돌다가 문이 열린 어느 카페를 발견했다. 널 부러진 집기와 깨진 유리창을 넘어서 카운터로 갔다. 장사를 하려던 건 아닌데, 손님이 오니 얼떨결에 주문을 받는 것 같았다. 생수가 없어서 커피를 시켰다. 불가능할 줄 알았던 아이스라떼가 20분쯤 지나서 나왔다. 주인은 "지진이 나기 전에 만들어진 얼음"이라고 한다. 뭔가 허전한지, 크기가 맞지 않아서 있으나 마나한 뚜껑인데도 굳이 올려놓는다. 함께 있던 팀원과 이날 처음으로 웃었다. 미적지근한 라떼지만 나머지 팀원들이 생각나서 왠지 죄스럽게 느껴졌다. 얼른 들이키고 카페를 나왔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살아남은 자의 일상은 빠르게 회복된다. 삶이란 어떤 면에서 잔인한 구석이 있다. 우리는 그런 삶의 공간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떠나온 곳에는 아름다운 장면만 가득할 것으로 '믿고 싶어' 한다. 아름답고 밝은 장면만 '골라서 보려고' 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행하는 곳도 누군가의 삶이 얽히고설킨 지극히 인간다운 공간이다.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을 뿐이다.
한낱 종이 한 장이 모두의 안전을 지킨다. 경험 많은 대원이 기울어진 벽의 틈에 종이를 끼워 넣었다. 뭔가 미심쩍은 상황이 생기면 종이를 빼본다. 종이가 쑥하고 빠지지 않으면 곧 건물이 무너진다는 신호다. 그때는 모든 걸 멈추고 즉시 대피하는 걸로 약속했다. 예외는 없다.
결국 몸을 구겨 넣는다. 손으로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부패하기 시작한 사체에서 나는 악취가 코를 찌른다. 한 번이라도 그 냄새를 맡아보면 절대 잊지 못한다. 빈틈을 만들며 조금씩 전진한다. 악취가 강하게 날수록 현장의 집중력은 높아간다. 수습해야 될 사체에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공간으로 망설임 없이 몸을 집어넣는 일, 어떤 마음이면 가능할까? 무엇이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게 만들까?
영원한 어둠도 영원한 빛도 없다. 한 줄기 빛이 차가운 그림자 사이를 뚫는다. 슬픔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몸부림이 스스로 빛을 만들기 시작했다. 네팔인들은 구조대의 안전을 걱정하며 무엇이라도 돕고 싶어 한다. 집에 남아있던 소독약을 몽땅 가지고 나와서 건낸다. 언어가 통하지 않지만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은 완벽하게 전해진다. 모두에게 사라졌던 미소가 조심스럽게 찾아든다. 인간은 어려운 상황에 놓일수록 언어를 하찮게 만든다.
모든 구조대는 약속이나 한 듯 어둠 속으로 움직인다. 마치 훈련된 반응처럼 철저하게 그림자 속에 스스로를 가둔다. 같은 어둠 속에 있어야만 보이는 흔적 때문이다. 하나의 흔적이 발견되면 완벽하게 수습할 때까지 떠나지 않는다.
바닥과 벽의 잔해를 작게 조각 낸다. 하나씩 들어서 밖으로 치운다. 매몰된 사체를 수습하는 작업은 이런 원시적인 동작의 끝없는 반복이다. 무너진 천장 3개를 파고 들어갔다. 잔해가 하나씩 빠져 나올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건물의 축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아서 섬뜩하다. 무너진다면 이 많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쓰러진다. 한국과 오만의 구조대는 이 자리에서 꼬박 3일을 지냈다.
네팔의 배낭여행자라면 한번쯤 들린다는 공가부의 게스트하우스 밀집지역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고요하고 쓸쓸한 기운이 여행자를 품었던 모든 공간을 점령했다. 고개를 뒤로 돌렸다. 힘겹게 버티고 서있는 또 다른 게스트하우스의 벽에 내 그림자가 겹쳐진다. 그림자의 무게만으로도 쓰러질 것 같다. 여행자가 사라지면서 건물의 기운도 날아갔다. 여행의 흔적과 추억과 기억도 건물과 함께 사라졌다.
구조대가 노트 몇 권을 회수했다. 친구를 찾으려는 친구, 부인과 셋째 아이를 찾는 아빠, 동생을 찾는 형이 소식을 듣고 나타났다. 그 주위로 사람들이 점점 모여든다. 노트에 남은 흔적을 알아보는 이도 하나 둘씩 나타났다. 폐허로 변한 건물의 주인은 구조대에게 노트가 발견된 위치를 물어본다. "실종된 직원이 분명하다"며 "그 위치에서 더 깊이 확인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런 요청이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한다. 구조대의 입에서 "알았다"는 말만 반복된다. 실제로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No"나 "Sorry"란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빛의 자리를 다시 어둠이 차지한다. 붕괴 위험 때문에 주민들은 모두 임시캠프로 옮겼다. 지진이 발생한지 하루 만에 아무도 없는 텅 빈 도시로 변했다. 촛불의 깜빡임조차 사라진 검은 공간이 주위를 둘러싼다. 저 끝에서 작은 불빛이 점점 커지며 어둠을 찢는다.
"Everything is out!"
기계도 사람도 모두 지친다. 곳곳에서 탈진이 일어나고 장비의 피로도가 쌓인다. 매몰된 사체를 수습하는 작업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진다. 두 다리로 버티지 못하고 주저 않는 구조대를 보면서 '저들도 사람인데'라는 생각이 든다. 생전처음 얼굴에서 흐르는 땀방울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봤다. 맹렬하게 돌아가는 절단기 소리를 뚫고 들리는 기적 같은 소리다.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들린다.
직접 보지 않으면 믿기 힘든 상태로 쓰러진 건물이 골목을 하나씩 돌 때마다 길을 가로막는다. 주민들 말을 들어보니 제법 유명한 게스트하우스였다. 저 안에서만 20여명의 여행자가 맨몸으로 뛰쳐나왔다고 한다. 지진이 지나가면 철거가 남는다. 중장비가 절실히 필요한데 반경 5km 내에 한 대도 없다. 일본이 보냈다는 굴삭기 30대가 내일쯤 도착한다고 전해진다. 카트만두 공항에서 사용 가능한 활주로는 단 하나 밖에 없다. 구호물자를 실은 비행기를 먼저 착륙시키다보니 발이 묶인 사람들과 착륙순위에서 밀린 비행기로 하늘과 땅이 전부 복잡하다. 한국에서 후발대 인편으로 보낸 위성전화와 지원물자를 찾으러 공항에 갔다. 착륙순위에서 밀린 여객기는 하염없이 공항 상공을 떠돈다. 답답한 시간이 한참 흘렀다. 그리고 후발대와 만나서 공항을 빠져 나오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이렇게 사라지는 시간이 야속하다.
"Evac!"
바닥을 뚫고 내려가는 작업이 계속된다. 바닥 하나를 파냈는데 또 하나가 나타난다. 마지막 바닥이라고 생각하며 파다보니 3층을 뚫었다. 붕괴 직전의 건물에 많은 진동이 전해졌다. 지금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험한 건물에 들어간 상태라서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서너 명이 천장과 벽의 균열 상태를 확인한다. 누구라도 이상을 감지하면 대피 명령인 "Evac"을 외치기로 했다. 그 소리를 듣는 즉시 모든 걸 멈추고 뛰쳐나가면 된다. 사실은... 정말 건물이 무너진다면 여기서 빠져나가기도 전에 깔리는 상황임을 모두 알고 있다. 그저 '그렇게 약속이나 해놓고 작업하자'는 일종의 형식이었다. 구조대를 이끄는 각 나라의 대장은 작업구역의 가장 깊숙한 곳, 그러니까 빠져나갈 수 있는 출입구와 가장 먼 곳에서 현장을 지휘한다.
"대장님, 굳이 위험하게 왜 거기 계십니까, 조금 이쪽으로 나와서 통제하시죠?"
"제가 직접 땅을 파는 것도 아닌데, 아직은 제가 몸으로 하는 일은 별로 없어요. 작업하는 대원들도 불안한 마음이 있어요. 그냥 꾹 참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가장 깊고 위험한 곳에 그냥 버티고 있는 겁니다. 내가 여기 있을 정도니까 괜찮다, 안심해도 된다고, 부담을 덜어 주려고요. 만에 하나 사고가 생기면 최소한 제 뒤에는 아무도 없으니까요."
예상대로 진행되는 상황은 10개 중에 2-3개쯤 되려나? 하나를 해결하면 하나의 새로운 문제가 생기는 것도 버거운데, 보란 듯이 예상을 빗나가는 현지 상황은 여기가 재난 지역임을 증명하듯 구조대의 발목을 물고 늘어진다. 몇 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던 바닥 들어내기는 엑스레이 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철근더미가 나타나면서 중단됐다. '필요 없다'고 판단해서 다른 곳에 보낸 장비를 가져와야지만 해결되는 문제였다. 밤늦게 도착한 장비로 하루를 꼬박 소비하며 철근 더미를 치웠더니 이번에는 말려진 셔터가 사체를 누르고 있다. 셔터를 자르던 절단기가 부하를 이기지 못하고 고장 나더니, 콘크리트 잔해가 너무 많아서 우회로를 파야 되는 상황에 처했다. 이 구역을 앞선 3개국이 포기하고 지나간 이유가 이거였다.
도움의 손길이 급하긴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한 쪽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에 대한 적절한 판단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결정이 어떻게 나든,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도 않겠지만 고민과 미안함에 시달리는 건 똑같다. 한국과 오만의 구조대는 시간과 상관없이 끝을 보기로 결정했다. 모든 구조대원들이 다시 일어났다. 정말로 가슴 속에 큰 파도가 일어난다.
3일 만에 매몰된 사체 한 구를 수습했다. 구조대는 처음으로 웃었다. 서로를 격려하는 응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난생 처음 만난 사람들이 가족이 된다. 같은 여행의 목적, 같은 일, 같은 자리에서 함께 여행한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미소다.
여행의 찰나를 누리는 행복은 따뜻한 감정이 틀림없다. 그러나 '따스함'이 차갑게 식어가는 더위인지, 뜨겁게 달궈지는 차가움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여행하는 우리가 당연한 듯 차지하는 따스함은 또 다른 누군가가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며 자리를 비껴줬기 때문이다. 여행이 만들어지는 원리가 있다면 오직 그것뿐이다. 그 원리를 Humanity, 인간애라 부르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 어디라도 나를 받아주는 여행의 공간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세계 각국의 구조대는 지진의 폐허 속으로 '여행'을 떠나왔다. 그들을 보면서 인간이라는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1년이 훌쩍 지난 지금 네팔에 드리운 그림자는 놀라울 만큼 사라졌다. 소식을 듣자마자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든 구조대와 네팔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이 크게 작용한 결과다. 구조대라 할지라도 허락된 시간만큼 머물다가 돌아가는, 결국은 여행자이기에 한 줌의 빛이라도 더 뿌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한 줌 두 줌 뿌려진 빛이 모여서 어느새 그림자를 덮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영혼의 나라 네팔은 빛을 찾아 떠나온 여행자를 다시 반긴다. 우리가 여행의 밝음에만 길들여져 있는 동안 똑같은 크기의 그림자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림자 여행'만 주어진 이들에게 "숭고하다"는 말을 감히 붙여본다. 행복한 여행을 즐기는 우리는 숭고한 자들의 어깨를 밝고 있다.
글│박승근
사진│박승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