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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두의 만물상 2/2

ARTRAVEL Vol.19

by ARTRAVEL


마드리드 엘 라스트로


image_1498448734338.jpg ⓒ케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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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에서 새해를 맞이했던 언젠가의 겨울날이 떠오릅니다. 여행지에서 맞이하는 1월 1일 아침은 무척이나 썰렁하고 황량한 경우가 많죠. 그날도 그랬어요. 전날 밤 새해를 축하하며 파티로 거리를 물들인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버리고, 텅 빈 거리와 함께 문을 닫은 가게들만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1월 2일이 찾아오자 분위기는 달라졌지요. 무엇보다 마드리드의 유명한 마켓, 엘 라스트로를 새해 처음으로 만날 수 있는 날이었으니까요. 엘 라스트로는 매주 일요일이면 열리는 마드리드 최대 규모의 프리마켓으로, 쁠라자 데 까스꼬로를 중심으로 노점상들의 행렬이 끝을 모를 만큼 길게 늘어지며 여행자들을 유혹합니다. 저의 눈을 사로 잡았던 것은 무엇보다도 오래된 물건들이었는데요, 잔뜩 나이를 먹은 우표나 서적들부터 각종 액세서리와 가구들은 그들만의 클래식한 매력을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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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채


게다가 저 늙은 카메라들! 이런 빈티지한 물건들이 가득한 마켓에서 사진가인 저는 역시나 카메라들에 가장 환호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런 제 모습처럼 모두가 자신들의 흥미를 돋우는 물건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시간을 들여 둘러보는 모습들이 참 따뜻했습니다. 이 모든 호기심이 모여 거대한 마켓은 이내 축제 분위기로 가득 차버리기 마련이죠.


골목 곳곳에는 축제 분위기를 더욱 뜨겁게 만들어주는 멋진 뮤지션들의 공연이 펼쳐집니다. 무엇을 사든 사지 않든 엘 라스트로 방문의 끝은 근처 타파스 바에서 맥주와 타파를 즐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제 고작 점심때지만 아무렴 어떻습니까. 자, 얼큰하게 취합시다! 엘 라스트로에는 살짝 취기가 올라 설렁설렁 히죽히죽 즐기고만 싶은 그런 마법이 숨어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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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쉬의 가축 시장


중국의 서쪽 끝 카쉬(Kashi)에도 매주 한 번씩 서는 장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느낌이나 그곳에서 파는 물건은 마드리드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죠. 물론 많은 소수민족의 시장과 장이 매일같이 서는 도시이지만, 카쉬에서 가장 유명한 마켓은 역시나 매주 일요일에 열리는 가축 시장입니다. 이름 그대로 다양한 상인들이 소나 돼지 등의 가축을 사고 파는 장으로, 때로는 낙타같이 우리에겐 조금 낯선 동물들 또한 함께 거래됩니다. 이는 이 지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주민들인 위구르 사람들의 전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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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가 그랬듯 중국 정부는 이 지역을 중국스럽게(?!) 만들기 위해 한족들을 이주시키고 그들 특유의 못생긴 현대적 빌딩들을 지어놓았지만, 중심가를 조금만 벗어나보면 아직도 위구르의 사람들의 문화와 전통은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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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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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 주장하는 과격 시위가 종종 열릴 만큼 위구르 사람들의 자긍심은 강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 삶의 모습 날 것 그대로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가축 시장인 거죠. 서로가 데리고 나온 동물을 유심히 관찰하고 튼실한 녀석으로 골라 거래를 성사시키는 농장주. 그들의 능수능란한 사업수완을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밖으로 길을 나서니 많은 노점상들, 장날의 분위기에 취한 사람들이 저를 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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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웃음이라니요! 이런 색깔과 이런 생생함이라니요! 쉽지 않은 현실에도 서로에 의지해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 카쉬의 시장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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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경제적인 지표로 보자면 가난한 사람들일 수 있지만 그들의 마음만큼은 절대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라호르의 시장에서 제가 만난 것은 물건을 사고파는 상거래를 넘어서는 무엇이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마음의 온기였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재미나고 신기한 시장과 가게들을 많이 다녀봤지만 실제로 무언가를 산 경우는 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많은 것을 받고 또 얻어오기만 했습니다. 세상을 여행하다 보면 때론 사람에 실망할 수도 있고 안 좋은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 어디라고 나쁜 사람이 없을까요. 하지만 시장에 올 때면 저는 다시금 사람을 믿게 됩니다. 사람을 좇게 됩니다. 사람이 가진 선의를, 사람을 향한 그 마음을. 저는 그것이 아직 이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라고 믿습니다. 제가 가장 사진으로 담고 싶어하는 순간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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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시장에서 사고자 한 것은 단지 그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돈 한푼 내지 않고 덤까지 잔뜩 받아와서 참으로 난감할 따름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 눈부신 삶의 조각들을 담은 이 사진들로 비용을 대신하는 것뿐이겠죠? 많이 부족하지만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부탁합니다.



글│케이채

사진│케이채


여행의 영감을 위한 책 AR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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