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바로 쓰는 법
글·사진 조익현
정겨운 멜로디와 친근한 가사에 듬뿍 담겨있는 따뜻함이 매력인 'WHITE'의 노래 <네모의 꿈>. 언제 처음 들었는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된 노래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가까이 네모의 꿈을 들었다. 둥글게 살기 힘들다는 걸 아는 지금, 둥근 척하는 네모가 된 것 같다. 깎이지 않은 것들은 스스로 아팠다. 어렴풋이 들리던 '세상은 둥글게 살라'는 가사가 새삼 와 닿을 때, 그리고 그 말과 내 사이가 너무 멀어 무기력할 때.
네모난 마음을 다듬으러 집을 나섰다.
정말 갑자기.
집에서 서울역까지 약 한 시간. 대충 짐을 챙겨 나와 전철에서 어딜 가면 좋을까, 허튼 고민이 깊었다. 전주? 아니다, 왠지 바다가 보고 싶은데. 동해? 흠, 좀 더 삶이 적나라한 곳이면 좋겠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서울역에 도착. 안내판 가득 보이는 부산행 열차들. 좋아, 끝까지 가자. 어쩌면, 출발할 때부터 나는 부산으로 향했는지 모른다.
그나저나 가서 뭘 하지? 일정을 대충이라도 짤걸. 창가에 앉아 스치는 풍경을 보며 그렇게 많이 다닌 부산에 하룻밤 신세 질 친구 하나 없다는 게 문득 서럽다. 그런데 왜 하필 부산이어야 했을까? 마음을 문지를 무언가 그곳에 있나. 내게 부산은, 그래도 아직 한적하게 낭만을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동시에 삶의 질곡과 열심들이 고스란한 곳. 바람을 맞고 사는 사람들의 허허한 돼지 국밥 한 그릇이 곧 삶인 곳이다.
그들의 농숙한 냄새를 좇아 일정을 시작했다. 부산역 건너 차이나타운 근처 자주 가는 국밥집. 몇 년을 왔지만, 사장님은 날 모른다. 그게 무슨 상관일까. 일단 국밥에 소주로 아침 겸 점심을 챙겼다. 부산만 오면 소주가 참 맛있어진다. 끝 맛이 쌉쌀해 쯤 한 병이 다 비워진다.
이곳은 국밥과 소주 사이에 꾸려진 도시다.
술이 잔잔히 오르면 택시를 타고 영도대교를 건너 도로가 좁아지는 곳에서 불쑥 내린다. 영도는 동서의 느낌이 대비되는 곳. 국제터미널과 해양대학교, 박물관이 자리한 동쪽의 미래적인 정서와 흰 여울길이 자리한 서쪽의 고전적 느낌. 내가 좋아하는 영도는 서쪽에 있었다. 영도의 서쪽을 둘러보는 좋은 기술이 있다. 텅텅 빈 채 생각 없이 걸어 보는 것. 길을 따라 보는 풍경을 굳이 담을 것도 없다. 먼 배들도 모른 채 가고, 벽화의 주인들도 알 일이 없다. 간혹 보이는 갈매기도 고작 허튼 새.
영도는 부산이지만 부산을 바라볼 수 있어 좋다. 저 멀리 높다란 건물들이 내가 있는 곳과 달라 좋다. 반쯤 변한 것 같아 덜 미안하고, 반쯤 변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놓여 좋다. 게다가 이곳은 외지인을 격하게 반기지 않는다. 내가 들어도 애써 반가울 것이 없는 곳. 오히려 고요한 마을에 정적을 깨고 있진 않나 하는 걱정이 들 정도의 차분함. 비록 최근 여러 영화와 TV 프로그램에 배경으로 방영돼 방문객이 조금 늘었지만 슬슬 지는 해를 혼자 볼만큼은 비어있다.
마지막으로 택시를 잡고 태종대로 향했다. 많이 어둡지는 않다. 풍경들이 아직은 선명하다. 바닷가 근처에 해산물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분위기를 보니 내가 마지막 손님. 이런 시간에 마지막 손님이면 어찌 장사를 한대요? 그녀들이 들은 듯 못 들은 듯 비켜 웃는다. 그럼 나도 허투루 웃으면 그만. 멍게에 초장을 듬뿍 찍어 입에 쩌-억 넣고, 알싸한 소주도 툴툴 털어 넣으면 그만. 그러면 나는 문득, 세상에 진지할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그제야 부산에 온 목적을 다시 눈치챈다. 뾰족한 것 쑤셔서. 이들처럼 엄벙덤벙한 것들을 소심하게 닮고 나면, 얼마간 세상이 덜 모나게 흘려지니깐.
네모를 닮아 맘 편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괜찮다. 부산에 가서 네 귀퉁이 몇 번 문지르고 오면 그만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