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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RAVEL Apr 23. 2018

어느 성직자와 히피

artravel vol. 27

어느 성직자와 히피

샌프란시스코│미국│김윤경


ⓒ김윤경
ⓒ김윤경


한국에 돌아온 지 어느덧 3년. 유난히 청명한 날, 샌프란시스코의 빛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면 그 빛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베이 에어리어의 내음과 바다를 품고 밀려드는 파동이 그립다. 버클리 거리의 너저분한 느낌과 대마초 냄새에 찌든 히피들, 여행자들 특유의 정서가 그립다. 샌프란시스코의 빛, 냄새, 정서는 나에게 생명이었던 동시에 외로움이었다. 그때의 사진은 삼키고 넘겨버렸던 외로움의 기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2010년 7월 22일, 군대를 제대하고 딱 한 달 후에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나는 몸을 싣고 있었다. 신학을 공부하러 떠나는 길이었다.


내가 나고 자란 땅으로부터 9,000km 떨어진 곳. 그 물리적 거리로 인해 나는 처음으로 나라는 사람을,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나는 누구일까,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을까. 대책 없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신학이라는 학문은 다행히 이런 질문들을 좋은 질문이라 독려해주었고, 내 안의 상처와 본질적 외로움을 마주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고통스러웠지만 버텨내야만 했고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끝나지 않는 질문들의 반복 속에서 우울증이 찾아올 무렵, 카메라를 손에 쥐게 됐다. 그때부터 숨쉬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로 느껴질 때면 카메라를 들고 버클리 거리로 나갔다. 거리에는 언제나 나와 닮은 사람들이 있었다.


예술가들, 히피들, 여행자들, 노숙인들이 보였다. 심장이 뛰었다.


ⓒ김윤경












툭하면 길을 잃은 심정이 되곤 했다.

Shattuck Ave. Berkeley



ⓒ김윤경










그들에게 이 첫 모금은 행복 그 자체일지도

Durant Ave. Berkeley
















ⓒ김윤경





사라지는 라이터를 찾는 표정은 만국공통이다.

Durant Ave. Berkeley







ⓒ김윤경




Secret Sunshine!

La Val's Pizza, Euclid Ave. Berkeley








ⓒ김윤경













그가 곧 레게였다.

Asian Ghetto, Durant Ave. Berkeley













ⓒ김윤경




음악과 춤은 결국 날개니까

Shattuck Ave. Berkeley









ⓒ김윤경











한바탕 신나게 춤을 추고는 다시 길을 떠난다.

Shattuck Ave. Berkeley















ⓒ김윤경







아빠와 거리에서 구걸하던 아이. 맑은 눈망울을 지나칠 수 없어, 아빠에게 물었다. $3를 내라고 했다. 그는 아이의 얼굴을 마른 헝겊으로 닦아냈다. 아이의 눈빛은 무기력했고 슬펐다. 


Ferry Building의 활기찬 발걸음들과 대비되어 더욱 슬퍼 보였다.


The Embarcadero & Ferry Building, San Francisco











ⓒ김윤경











열여덟이다.

Shattuck Ave. Berkeley















ⓒ김윤경





무서웠다. 그러나 다가갈 수밖에.

Shattuck Ave. Berkeley








ⓒ김윤경









Digeridoo를 만들어 팔면서 여행하던 친구였다.함께 놀다가 그의 Digeridoo를 $120에 사고 말았다.


$70에 간신히 되팔고 귀국했다.


Telegraph Ave. Berkeley












ⓒ김윤경











Happy Hippy

Telegraph Ave. Berkeley















ⓒ김윤경











다시, 결국, 한번 더 사랑이다.

Down Town San Francisco















ⓒ김윤경





애견이 아니다. 히피다.


Down Town Berkeley Bart Station, Shattuck Ave. Berkeley







처음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큰 두려움이었지만, 알 수 없는 흥분과 끌림이 더 강했다. 어느새 그들 곁에 다가가 담배를 나눠 피웠고, 이야기와 노래를 들었다. 그들의 춤을 느꼈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눈길이 닿는 대로 사진을 찍으며 나는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모두가 억눌려 있고, 헤매고 있었으며, 외로웠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으며 그들을 위로했고, 그들은 다시 나를 위로해주었다.


충분했던 것 같다. 충분히 질문했고, 충분히 찾아보았다. 4년여의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마침내 한국으로 돌아왔다. 결핍을 자각하고 버티는 삶에 충분히 지쳤던 나는 지난 3년간 스스로 그 몰입감에서 벗어났었다. 건강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내면을 살필 틈도, 외부로 시선을 돌릴 여유도 없었다. 그저 분주하게 살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문득, 때로는 아주 깊게 사진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 절실함이나 치열함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때의 몰입감만큼은 그리워진다. 피사체에 완전히 매료되어 내가 사라지는 그 경험이.


지난 사진들을 돌아보면서 내 안의 결핍과 두려움, 그리고 외로움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음을 느꼈다. 이제는 나를 둘러싼 관계들과 책임들 속에 파묻히거나 숨지 않고 나 자신을 마주해야 할 때가 다시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중요한 건 잊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내면을 직시하는 끈질김, 그것이 결국 내가 아는 사진이 삶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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