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CIOUS VILLAGE
치즈케이크 위에는 라즈베리 시럽이 얹혔다. 간판도 없는 케이크 가게에 앉아 있던 이들은 십중팔구 골목을 지나다 우연히 들어오게 된 사람이거나, 그들이 데려온 친구, 아니면 그 친구가 다시 끌고 온 누군가였다. 이제 겨우 흰 머리 몇 가닥만 머리에 이고 있는 노인이 건반 뚜껑을 열고 연주를 시작한다. 목소리가 의외로 미성이라 깜짝 놀랐다. 케이크를 잘라 입에 넣었다. 달면서도 묵직한 뒷맛이 혀를 눌렀다. 눅진한 치즈향이 코끝을 감쌌다.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케이크라고 생각했다. 여러 번 방문해도 좀처럼 실망할 줄 몰랐다. 그 뒤로 무려 15년이 지난 후에야 나는 몇 달 전 다시 그 케이크 가게를 찾아갔다. 이제는 제대로 된 간판을 달고 있었고, 옆 가게까지 사들여 공사를 새로 한 덕에 예전의 몇 배 크기로 커져있었다. 점원들은 더 친절했고, 작고 오밀조밀 답답하던 테이블은 널찍널찍 놓였다. 손님들은 훨씬 많이 찾아와 빈 곳이 없었다.
.
그리고, 케이크는 전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이 없었다. 내가 떠났던 지난 15년 내내 그 가게를 다닌 폴란드 친구는 이 집 케이크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녀석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다. 노인의 노래와, 좁은 테이블 위 가느다란 촛불과, 숨은 가게를 혼자 알고 친한 친구들에게만 소개하는 은밀한 도취가 없었다. 스물 세 살이라는 그때 내 나이의 외로움과 결핍도 이제 없었다. 맛은 공감각적인 심상이다, 여행이 그런 것처럼. 많은 여행은 맛을 통해 기억된다. 그때 거기 참 맛있었다. 이 말은 참 좋은 여행을 했다는 뜻이다. 비밀은, 우리가 훗날 그곳을 다시 찾아도 그때 그 맛만큼은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데 있다. 같은 셰프, 같은 재료, 같은 레시피라도 말이다. 첫 입의 그 순간. 그때 나를 감쌌던 모든 사연과 모든 사람과 모든 장면이 모여 바로 그 맛이 완성됐던 거니까. 여행이 그런 것처럼. 우리들 사랑이 다 그런 것처럼.
_ Editor's Letter 편집장 양정훈
ART
SOUL FOOD - 아트래블 편집부
ITALIAN SLOW - 백상현
마스터스 - 아트래블 편집부
지구사용설명서
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다 - 페루│윤혜정
지구사용설명서 - 페루│아트래블 편집부
페루行 여행인문학 - 아트래블 편집부
TRAVEL
기껏해야 니우로우멘 - 대만│정태현
오사카의 부엌 - 오사카│일본│최갑수
초밥백과 - 아트래블 편집부
타이의 반전 - 치앙마이│태국│신예희
느린 여행에 가장 알맞은 곳들은 거대도시보다는 작은 마을 여행들이다.
충분히 느리게 걷고, 느리게 먹고, 느리고 봐도 마음이 쫓기지 않는 그런 곳들.
TRIP.30 백상현 <ITALIAN SLOW> 중에서
여행의 영감을 위한 책 ARTRAVEL
www.artrav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