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창의예술교육랩] 인문랩 활동 공유 ③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창의예술교육랩 지원사업>은 ‘생태-인문’을 아우르는 지역문화자원과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과학기술'을 문화예술교육에 기반해 융복합하고, 미래 지향적 창의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연구·개발·실행하고자 시작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출범한 '제주창의예술교육발전소'는 전문연구원들과 함께 과정의 실행 방향성을 이해하고 체계화하는 작업을 하는 R&D랩, 교육전문가와 청년연구원이 협업하여 프로그램을 연구·개발·실행하는 D&I랩으로 구성되어, 과정의 가치를 기록하고 확산하고자 합니다.
돌, 바람, 여자
제주창의예술교육랩 생태, 인문, 과학기술랩에 미션이 있었나니. 첫 번째는 연구 개발하는 프로그램에 제주의 지역적 특성을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과학기술과의 융복합 요소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역 특성이야 뭐, 느낌이 오잖아요. 육지와는 언어부터 다른 제주도 아닙니까. 하늘 길 나기 전엔 왕래도 어려웠던 망망대해에 떠있는 섬이자, 한라산 그 자체. 역사와 문화 모든 것이 육지와 다른 결을 지니고 있어 문화 자원이 풍부한 이곳, 바로 제주입니다.
돌, 바람, 여자가 많은 삼다의 섬. 흥미롭게도 과학기술랩은 ‘바람’을 주요 키워드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고, 생태랩은 '돌'을 키워드로 연구를 시작하여 ‘돌문화공원’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문랩은? 그런데 우리는 ‘공간’을 주요 키워드로 삼고 있잖아요. 하지만 제주의 대표적인 공간들을 떠올려보세요. 해녀들의 노동 공간 바다, 어머니들의 신앙 공간 신당, 집 안의 생활공간 모두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만들고 가꾸는 공간들입니다. 하아, 소름. 제주 창의예술교육랩은 서로 협의라도 한 듯, 계획된 퍼즐처럼 맞춰지고 있습니다.
모르면, 배우자!
만나면 인문학적 토론에 심취하는 인문랩, 잇문입니다. 회의 할 때마다 일을 만들고 키우는 시너지를 내는 우리들에게도 취약한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과학기술. 두둥. 모르면 배우자! 궁금하면 보러 가자! 지난 7월, 다 함께 과감하게 비행기표를 구매했습니다. 우리들의 픽(PICK)은 바로 이것.
경기도 문화의전당(수원)에서 2019.07.18(목)~24(수) 개최되었던 글로벌 개발자포럼 2019 <VR.AR 테크&아트 페스티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불온한 데이터>(2019.03.23~07.28), 2019 아르코 미술관 예술체험 프로그램 <놀이 아방가르드 풍경>(2019.07.12~08.31, 2차 운영 기간)
앞의 두 전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춘 VR(가상현실, Virtual Reality)과 AR(증강현실, Augmented reality) 등의 신기술과 예술의 만남을 보여 주는 전시입니다. <놀이 아방가르드 풍경>은 '개인의 삶을 통해 도시가 구축되어가는 모습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시민 참여형 전시'였습니다. 제주로 돌아온 우리는 '현재 인류의 신기술 발전 정도가 어디까지 왔는지', '각자 인상 깊었던 작품은 무엇인지', '인문랩 프로그램에 접목시킬 수 있는 기술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을 주제로 열띤 후기를 나눴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 박민희 청년연구원이 작성한 글로벌 개발자 포럼 2019 <VR.AR 테크&아트 페스티벌> 관람 후기가 경기문화창조허브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현장의 분위기를 느껴 보세요.
과학기술 융복합, 미션 클리어!
동필: 저는 오히려 콘텐츠의 메시지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신기술과 접목한 작품들을 보면서 감동을 받기보다는 작위적인 느낌을 받았거든요.
민선: 저도 전시들을 관람한 후에 이걸(과학기술 융복합을) "왜 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다시 하게 되었어요.
동필: 맞아요. "우리가 이걸 왜 하지?"라는 질문을 다시 해볼 필요가 있어요. 우리는 왜 아이들의 24시간을 궁금해하는지, 우리가 왜 공간을 만들려고 하는지, 우리가 왜 AR 융복합을 해야 하는지 말이에요. 신기술만 보면 흥미롭고 재미있었지만, 우리가 AR을 왜 활용해야 하는지 답을 얻지 못한 상태이니 전시가 와 닿지 않더라고요.
진희: 저 또한 워낙 아날로그를 추구하는 사람이라서, 창의예술교육랩이 구현해야 하는 과학기술 융복합 미션이 어렵게 느껴져요. 이 미션 때문에 본질이 흐려지지는 않았으면 해요. 우리가 ‘공간’에 집중했던 이유는 아이들에게 자발적이고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진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어요. 놀이를 통한 성찰의 장을 만드는 것이죠. 오히려 저의 관심사는 기존의 많은 프로그램 사이에서 인문랩의 프로그램이 어떤 차별성을 가질 수 있을까예요.
수광: 우리가 흔들리기 시작한 지점이 이 부분이에요. '기술적으로 된다, 안된다.' 가능성에 집중하다 보니까 프로그램 순서도 뒤바꾸게 되고 주객이 전도되는 것 같아요. 우리 프로그램이 거창한 융복합이 아니어도 되고. 기술적인 완성도를 쫓지는 않았으면 해요.
진희: 네, 우리가 처음 설계한 내용을 흔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고요,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장치 정도로 활용하면 되지 않을까요.
마침 방문해주신 협력기관 드론오렌지의 정념 대표님과 생산적인 논의를 이어갔습니다. 드론오렌지는 소프트웨어와 디지털 콘텐츠 개발, 제작, 공급업체입니다. 제주시 연동에서 VR 체험과 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 '플레이박스 VR'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궁금한 점이 많았던 우리들은 폭풍 질문을 했고, 각자의 아이디어의 기술 구현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민선: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핸드폰이 없거나 태블릿 PC가 없으면 교육에 참여할 수 없는 건가요?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핸드폰이 없는 아이들도 많아요. 학교에 도입이 되면 문제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런 부분들이 고민이 되네요.
민희: 네, 빈부격차에 따라서 위화감이 조성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동필: 스마트폰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야 되겠네요.
진희: 정말 중요한 문제의식이에요.
수광: 개인이 휴대해야 하는 도구 말고, 교육 현장에서 시설을 갖춰서 보급하는 형태여야 하지 않을까요?
동필: 수업에 필요한 교재와 도구 개념으로 접근하면 가능할 것 같아요. 동네에서 남는 스마트폰을 모아서 활용하는 방법으로요.
(중략)
민희: VR의 강점이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 같아요. "VR트리" 작품처럼 나무의 입장이 되어 볼 수도 있고요. 어머니와 할머니의 삶, 과거를 체험할 수 있다거나 미래를 상상하는데 자극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과학기술 융복합을 현장 강의를 대체하는 역할 정도의 활용은 어떨까요?
수광: 과거의 놀이를 체험하는 것도 가능하겠네요. 세대 간의 소통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요.
념: 대자연의 하루를 VR로 체험해볼 수 있어요. 도시의 빠른 하루를 타임랩스로 보여줄 수도 있고요. 숲 속의 하루를 경험할 수 있죠. 가상현실로 들어가서 다양한 하루 24시간을 체험해보면 사고의 확장을 가져다줄 수 있어요. 공간의 변화, 시간의 변화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해 주죠.
수광: 24시간을 다양한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방향이 아주 좋은 것 같아요.
우리는 매주 열띤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다듬고, 더 좋은 방향으로 논의를 이어가며 프로그램을 설계했습니다. 집단지성이란 이런 것일까요.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었던 일, 그 어려운 걸 창의예술교육랩에서 해내고 있습니다. 올여름, 뜨거웠던 날씨만큼 뜨거웠던 우리의 대화를 곱씹으며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지금, 파일럿 프로그램을 앞두고 있는데요. 프로그램 참여자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될까요?
인문랩이 과학기술 융복합 창의예술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의 놀 권리를 찾아가는 이야기, 다음 화에서 계속됩니다.
글: 박민희 / 편집: 이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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