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나라 이웃나라라고 하더라
부산행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았다. 혼자 떠나는 첫 여행에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용기 있는 결정에 박수라도 보내듯 창밖에는 첫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양쪽 귀에 이어폰을 끼고 18인치 캐리어를 끌었던 그때, 내 나이는 열여덟이었다.
목적지는 일본
‘일단 부산에서 내리면 티켓을 찾고... 배 안에서는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
한 숨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부산에 도착했다. 철저히 준비해왔음에도 나는 어쩔 줄 몰랐다. 나와 같은 포즈로 캐리어를 끌고 가는 무리를 따라갔다. 곧 일본 오사카로 가는 배에 탈 것이다. 미리 예약해둔 표를 찾고 보니 시간이 이르다. 떨리는 마음에 너무 일찍 출발했는지 시간이 많이 남아 분식점에서 우동 한 그릇 사 먹었다. 지루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나에게 한 할머니가 다가와 말을 붙였다. 무당 역할 엑스트라로 자주 나올만한 인상이었다.
“학생, 일본 여행 가나? 담배를 사가려 하는데 세관 때문에... 한 보루만 맡아줄 수 있겠나?”
나쁜 할머니 같지 않아 나는 흔쾌히 알겠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내 심장은 두근두근 터질 것 같았다. 나는 미성년자였다. 대학생이긴 하지만 빠른 생일로 학교를 일찍 들어가 호프집도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하는 내가 담배라니, 승낙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오사카로 가는 팬스타 페리에서 꽤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여행 정보를 공유하거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저녁에는 로비에 있는 레스토랑 테이블을 오픈해 마술쇼나 음악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배를 타는 것도 처음, 모든 것이 새로웠다.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배의 침대칸에 누워 ‘이대로 죽는 건 아닐까? 엄마한테 말도 안 하고 왔는데...’ 걱정도 했지만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10년짜리 여권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일본 땅이었지만 사람들은 한국말을 했다.
최대한 사람들과 많이 마주치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건물 귀퉁이 작은 가게에서 파는 다코야끼가 너무 맛있어 보였다. 힘차게 문을 열자 인사를 하려던 아주머니는 내 모습을 보고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말이 얼마나 빠른지 ‘이랏샤이 마세’와 ‘아리가또 고자이 마시타’ 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간단하게 배를 채우곤 다시 숙소를 찾아 나섰다. 한국에서 준비해온 지도를 따라갔으나 휑~ 하니 도로만 있고 집은 없어 보였다. 이상하게 숙소를 찾으려 할수록 이상한 길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연히 공사장의 한 아저씨에게 길을 물었더니 자기도 모른다는 듯 ‘고멘- 고멘-’을 외쳤다. 어느 만화에 나올 것 같은 아저씨였다. 문득 내가 일본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다른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그. 런. 데. 이게 웬일? 이 남자, 한국말을 한다. 워킹홀리데이로 한국에 있는 동안 한국어를 배웠다고 했다. 시간이 없어 데려다줄 수 없으니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사람들에게 보여주라며 일본어로 쪽지를 써주었다. 일본 사람들이 개인주의가 심하긴 하지만 도움을 요청했을 땐 더없이 친절하게 도와주는 모습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도톤보리로 나섰다. 도톤보리의 메인 간판 아래엔 참으로 일본인 같은 일본인들이 서 있었다. 시간은 이미 오후 7시를 지나 어두웠지만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빼빼 마른 젓가락 다리에 가죽 스키니 바지도 입었다. 그리고 신밧드도 울고 갈 말구두까지. 물론 내가 아니고 일본 남자 이야기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