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서의 일주일
알람도 없이 벌떡 일어났다.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민박집 아주머니가 건네준 토스트와 우유를 마시며 상쾌한 아침을 즐겼다.
혼자 하는 여행은 못 갈 곳 없지만 딱히 갈 곳도 없다는 게 함정이다. 주요 관광지를 찍고 오다시피 하는 여행은 내 취향이 아니라 고민 끝에 준비해둔 일정표를 보며 길을 나섰다. 나의 일정표는 ‘여유’의 극치다. 주로 길거리를 방황하는 시간이 많다. 가능한 많은 시간을 걷는 데 투자한다. 누가 보면 “놀러 간 게 맞냐”고 물을 정도로, 누구나 들르는 장소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짜여 있다.
#1
유니버설 스튜디오
한국에서도 놀이공원을 자주 가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애니메이션 마니아로서 이곳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나의 사랑 슈렉과 ET가 있었기에...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가는 전용 지하철이 있었다. 물론 캐릭터 스티커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장난감 같은 지하철이었지만, 이조차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지하철에 타자 시끌벅적했다. 그런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말을 알아듣고 있는 것 같은... 그건 기분탓이 아니었다. 내가 탄 칸에는 같은 곳으로 가는 한국인들로 꽉 차있었던 것이다.
일본에서 놀이공원이나 영화관을 들러 놀랐던 점이 한 가지 있다. 매표소 저~멀리 끝자락에 줄을 서있어도 직원들이 지나다니며 일행이 몇 명인지 체크했다. 혼자 오는 손님은 빨리 입장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특권이 있단다. 물론 특권이라기보다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겠지만? 어쨌든 그러한 배려에 놀라며 ET를 만나러 갔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첫인상은 롯데월드 같은 에버랜드 느낌이었다. 롯데월드처럼 화려한데 에버랜드같이 넓었다. 한 직원이 이름을 묻는다. 자기 이름을 입력한 입장 카드를 준다고 했다. 한편으론 유치했지만 덕분에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후 스파이더맨의 작업실, 슈렉도 만났다.
놀이동산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츄러스’가 아닐까. 핑크색에 사탕가루가 묻은 츄러스는 일본 느낌이 물씬 풍겼다. (물론 딸기맛은 아니었지만) 특이하고 고운 색깔만큼 맛도 최고였다. 귀여운 캐릭터에 정신이 팔려 시간 가는 줄 모르다 문득 배고픔을 느꼈다.
#2
먹방의 시작
초밥집을 찾다가 크레페 가게를 발견했다. 원래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렇게 전문적인(?) 크레페는 처음이었다. 이때부터 크레페 가게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고질병에 걸렸다는 후문이... 일본어를 모르는 나는 사진을 보며 가장 맛있게 생긴 걸로 주문했다. 동전을 건네자 밀가루 반죽을 솩~올리더니 만드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기념사진을 찍겠다고 카메라를 들이댄 나에게 가게 주인은 버럭 화를 냈다. 인증샷 찍다가 인생을 마감할 뻔했지만 나는 일본어를 모른다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 연기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후훗) 요즘처럼 인터넷 블로그로 음식점이나 카페를 검색해보고 갈 수 없었지만, 우연히 발견한 가게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3
부지런한 새가 야경도 본다
이번 여행의 한 가지 목표가 있다면 밤마다 높은 빌딩을 하나씩 골라 야경을 보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 며칠은 많이 돌아다녔지만 여행이 끝날 즈음에는 체력 부족으로 숙소에 돌아가 잠들기에 바빴다. 하루는 우메다 스카이빌딩에 올라가 야경을 보는 것이 계획이었다. 그. 런. 데. 그 빌딩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지루함을 느꼈다. “야경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날따라 오래 걸어 다닌 탓도 있었다.
왠지 숙소로 그냥 돌아가기엔 아쉬워 내린 곳은 ‘남바 역’ 이었다. 남바 역은 우리나라의 센트럴 시티와 비슷해 보였다. 한 카페에 들어갔다. 생과일주스로 추정되는 사진이 걸려있어 키위주스라도 한 잔 할 생각이었다. 나는 메뉴의 초록색 음료 사진을 가리키며 되지도 않는 일본어로 “고레와 키위 데스까?” 했다. 오호. 맞단다. 계산을 하자 금방 음료가 나왔다. 한 모금 쭉- 들이키자 ‘헉;’. 느낌이. 응?. 녹차다! 게다가 위엔 아이스크림이 올려져 있었는데 느끼했다. 느끼한 녹차라니. “키위주스라고 했잖아요!!!”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나는 일본어를 몰랐고 카페 직원은 왜 그러냐는 듯,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4
새로운 룸메이트를 만나다
잠자는 나를 깨운 죄로 언니는 나와 원데이 여행친구가 되어야 했다. 나이는 23세로 추정. 일본에 자주 오는, 일본어도 수준급인 언니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도쿄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일본에 온 김에 오사카에 잠깐 들렀다고 했다. 계획 없는 두 여자가 만나 발길 닿는 대로 떠나는 여행.........이라고 쓰자니 그 언니는 가이드 급(?)이었다. 우리는 먼저 맛있는 것을 먹자며 길을 나섰다.
언니는 광화문 스무디킹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이야기, 일본어를 배우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며 CHIBO라는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우리는 오코노미야끼와 야끼소바를 주문했다. 요리를 기다리며 한국에 돌아가면 연락하고 지내자며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이후 연락은 닿지 않았다)
별 계획 없는 나에게 언니는 시부야의 한 거리에서 야경을 보라며 추천했다. 시부야에 유명한 오거리가 있는데 모든 횡단보도가 동시에 켜져 사람들이 건너는 모습이 장관이라고 했다. 또 그 광경을 제대로 보려면 근처 스타벅스 2층 유리창 쪽에 앉으라면서. 또 ‘돈이 부족할 땐 요시노야 음식점을 이용할 것’, ‘1엔짜리 동전은 편의점에서밖에 쓸모가 없다’ 등 일본 여행을 위한 기초지식들을 전수해줬다.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그날 밤 우리는 각자의 길로 떠났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