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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입은 사람을 보거나, 그려진 회화 작품을 볼 때 우리는 옷을 통해서 그 사람의 개성, 사회적 지위 등을 통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파악하려고 한다. 그러나 누드화를 볼 때, 인체라는 하나의 본질을 파악하고 집중할 수 있다.
예술은 많은 것을 재현한다. 동식물과 자연 세상의 모든 것을 재현해왔다. 그중에서 가장 오래된 재현의 모델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인체다. 인체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인간이 항상 지니고 있었던 예술의 대상이었다. 역사적으로 인체는 다양한 모습으로 작품화되었다.
구석기시대의 동굴 벽화, 신과 성인들의 모습을 담고자 했던 중세시대, 아름다운 선의 표현으로 인체를 담고자 했던 바로크와 르네상스 시대, 추상적인 형태와 삼차원적 입체적인 모습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들에게 인체는 끊임없는 영감을 주는 소재였다. 현대미술에 와서는 대량 생산되는 물질의 소재나 상업주의 속에 인체의 의미 등을 담기도 한다.
물론 동양의 미술가들과 서양인의 사고방식과 문화의 차이로 인간을 담고자 하는 방식의 차이는 있었다. 동양은 신체 표면을 넘어선 정신세계와 내면을 담고자 했고, 서양 미술사에서 인체를 ‘모방’하고 ‘재현’하는 작업으로 오랫동안 회화, 조각을 끌어오는 힘이었다. 인체 표현은 유럽의 문화와 역사, 철학과 함께 흘러왔다.
인상파 시기로 넘어오면서, 누드화 역시 전설, 종교, 신화의 관념적인 것을 떠났다. 신고전주의 화풍의 아름다운 곡선에 집중하는 선을 버리고, 쿠르베, 마네는 서양미술사에서 내려오던 전통적인 누드 화법을 파괴했다. 이들은 사실적인 표현, 색, 스타일, 빛의 표현으로 넘어갔다. 누드화를 따라가다 보면 시대의 사상이 변하고 화가들의 화풍을 엿볼 수 있다.
앤디 워홀의 작품이 등장하면서 미술 평론가 아서 단토(Arthur C. Danto, 1924-2013)는 서양 미술을 이끌어온 모방과 재현은 더 이상 끝났다고 하는 [예술 종말론]을 말했다.
현재 21세기 현대 미술 작품에서 인체는 더 이상 작가의 붓 끝에서 완성되는 것을 넘어 ‘공장’라는 곳으로 아이디어 스케치를 넘기면 조수들이 작업을 하거나 공장에서 찍어내는 과정을 통해 작품이 탄생된다. 또한 예술가들은 자신의 몸을 사용해서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관객과 함께 행동하면서 작품을 탄생시킨다.
누드화라고 불리는 미술작품들은 인류 문명 초기에는 없던 단어이다. 인류 조상들은 단지 그들 자신의 모습을 그렸을 뿐이었다. 자연의 아름다움보다, 인체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표현하고 작품화했다.
누드는 인간을 세계에서 분리되어 보느냐, 아니면 함께 자연과 일치되는 것으로 보느냐, 인간이란 사회 속에서 무엇인가? 예술을 어떻게 사람들은 바라봐왔는가?라는 질문들을 모두 포함할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 인체. 몸을 그린 그림들의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