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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진 Nov 26. 2019

죽음의 두려움

피카소

예술가로서 최고의 기량을 뽐낼 수 있는 인체 데생이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1907년, 캔버스에 유화, 243.9x233.7cm 뉴욕 현대미술관, 이미지:wikiart

<아비뇽의 처녀들>은 피카소가 스물여섯 살에 완성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유명한 홍등가, 아비뇽 거리 여인들을 표현했다. 몸은 부드러운 곡선이 아닌 모두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각진 선이다. 입체적인 원근법이 없다. 팔꿈치, 무릎, 어깨에 각진 모서리는 뾰쪽하다. 종이를 접어 겹쳐 놓은 듯 각진 무게감만 느껴진다.


오른쪽에 두 여성은 아프리카 부족 마스크를 쓰고 있다. 얼굴이 평면적이다.  피카소는 아프리카 가면이 악령으로부터 몸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아비뇽의 여인들 중 오른쪽 서 있는 여성과 그 아래 앉아있는 여성, 아프리카 조각들, 이미지:www.didatticarte.it/Blog/?p=4730


오른쪽 아래 앉아 있는 그로테스크하게 얼굴이 뒤틀려진 여성은 두 눈을 치켜뜨고 180도 고개를 돌려 우리를 향해 바라보고 있지만, 몸은 등을 보여주고 있다. 날카로운 각으로 공격적인 느낌을 준다.


가운데 두 여성은 아프리카 조각상을 떠올리게 한다. 몸의 선은 자연스러운 곡선을 버렸다. 기하학적인 조화로 표현한 이 작품은 입체파의 시작점이 되었다.


중앙에 두 여성과 맨 왼쪽 여성 얼굴 곡선은 이베리아(Iberian) 조각과 닮았다는 평론가들 말에 피카소는 "아프리카 예술? 난 들어보지도 못했어!"라며 반대했다.

<아비뇽의 여인들> 중 왼쪽 아래 여성의 얼굴, 아프리카 마스크 이미지:artetcinemas.over-blog.com

피카소는 반대했다. "아프리카 예술? 난 들어보지도 못했어!"



아프리카 조각의 영향


1900년 피카소파리에 도착했다. 그 시기 프랑스는 경제, 과학이 발전하고 있었다. 새로운 나라들을 식민지화해 다양한 민족들전시하는 민속학 전시회가 있었다. 1900년대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는 일종의 '인간 동물원(Human Zoo)'과 같은 전시가 있었다. 전시에는 주로 마다가스카, 세네갈, 아프리카 등에서 끌려온 가족 구성원으로 돈을 받고 전시회에 민속 의상을 입은 채 서 있었다. 때로 이들은 관람객들과 춤을 추기도 했다. 수많은 관람객이 이 전시회를 다녀갔다. 피카소도 이 시기 파리에 있었기 때문에, 전시회를 방문했거나, 방문하지 않았어도 들어서 알았을 것이다.  


1906년 파리 트로이카 인류 박물관(Musée d'Ethnographie du Trocadéro)에서 아프리카 부족들 작품 전시회가 열렸고, 헤이만(Heymann)이라는 작은 상점에서 아프리카 부족들이 만든 물건을 팔았다. 이런 아프리카 물건은 예술가와 컬렉터들이 'The Slave Trade'라 불렀다. 예술가들은 타지에서 온 신기한 아프리카 물건을 샀다. 아프리카 마스크, 부족민이 숭배하며 만들었던 주물, 조각품 등을 수집하고, 소장했다. 마티즈도 아프리카 조각을 구매했었다. 피카소는 입체파 친구들인 마티즈, 드랭(Derain), 블라맹크(Vlaminck)의 작업실을 드나들며 아프리카 작품을 보았을 것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림에 넣는다."


피카소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고전 회화, 조각을 보았을 것이다. <아비뇽 여인들> 중앙에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여성은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 포즈와 닮아 있다. 왼쪽 여성의 상체와 하체는 말로의 비너스를 착안한 듯 보인다.

(왼) 밀로의 비너스 BC130-100 (중앙) 미켈란젤로 <죽어가는 노예> 1513-1516 (오) 피카소 <아비뇽의 여인들> 이미지:www.didatticarte.it/Blog

 

루브르에 있는 앵그르의 <샘>과 <터키탕>이다. 피카소는 앵그르의 작품도 좋아했다. 앵그르의 <터키탕>은 원근법을 사용해 멀리 여인들이 앉아 있는 실내 공간을 표현한다. 앵그르는 창백하게 흰 피부에 풍만하고 매끄러운 선으로 여인을 표현했지만, 피카소는 날카로운 각과 직선을 선택했다.

(왼) 앵그르 <샘> 1856 (중앙) 피카소 <아비뇽의 여인들> (오) 앵그르 <터키탕> 1863 이미지:www.didatticarte.it/Blog

터키탕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문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탕을 옆 보는 듯한 관음증적 시야를 제공한다. 탕에 여인들의 시선은 우리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해 있다. 탕을 몰래 들여다보는 것을 모르는 듯 자유롭고 편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반면 피카소의 아비뇽에 여인은 정면을 향해있다. 우리와 마주보는 시선을 사용하기 위해 피카소는 평면을 사용했다. 앵그르처럼 생생한 현장감을 없앴음에도, 아비뇽 여인들의 시선은 현실에서처럼 우리와 눈을 정면으로 마주치고 있다. 홍등가의 여인처럼 수줍어하지 않는 눈빛이다. 


 

두려움

피카소는 초기 데생에서 누드 여성 5명과 두개골을 들고 있는 의대생을 그렸다. 여성들은 자신의 매력을 보이며 두 남성에게 공격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 초기 데생에서 의대생은 성과 죽음, 생명에 위협적인 질병을 전해주는 여성에 대한 증오심을 상징한다. 스물여섯 살 청년 피카소의 성과 죽음에 대한 두려운 심정을 복합적으로 나타낸다.


아비뇽의 여인들을 위한 초기 스케치들 이미지: didatticarte.it/Blog/? p=4730

피카소는 아버지를 따라 홍등가에 갔다가 13, 14세 때 첫 경험을 한다. 심적으로 성병을 두려움을 가졌었다. 홍등가를 자주 드나들며 성병에 걸린 여성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비평가 게도 (Gedo)는 피카소 진료기록을 통해서 그림을 분석했다. 어느 비평가들은 매춘부로부터 성병에 걸린 트라우마를 캔버스 위에 격분하며 나타낸 것이라고 했다.


과일의 의미

아비뇽의 여인들 하단 과일

<아비뇽의 처녀들> 아랫부분에 보면 테이블에 과일이 놓여있다. 과일은 성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포도, 사과, 배, 멜론이 보인다. 수 세기 동안 예술가들은 과일을 삶과 죽음에 비유해 왔다. 신을 위한 과일은 원죄, 성, 관능이었다. 아담과 이브가 사과 때문에 쫓겨난 것과 관련돼 있다. 젊음, 유혹을 상징하기도 한다. 만약 사과가 황금이라면 그것은 인류의 멸망을 암시하기도 했다. 포도는 풍요, 배는 관능. 멜론은  폭식, 탐닉,  부, 관능을 표현한다.



고갱이 쓴 글을 읽었고, 세잔을 좋아했던 피카소



고갱의 책, <Noa Noa> 1987년 이미지:www.mchampetier.com/Paul-Gauguin

고갱의 화법과 세잔이 <아비뇽의 처녀들> 탄생에 영향 주었을 것이다. 고갱은 타히티 여행기를 기록한 노아 노아(Noa Noa)라는 책을 썼다. 원시주의와 인간의 영혼적 자연 상태에 대한 생각을을 적었다. 피카소는 이 책의 복사본을 가지고 있었다. 피카소는 고갱이 적어둔 예술에 대한 생각들에 매료되었었다. 


1903년 아를 Arles에서 고갱이 죽었고, 1903년 피카소 타이티 여인을 그린 그림에 "폴 피카소(Paul Picasso)"라고 사인한다. 폴 고갱의 이름과 피카소 자신의 이름을 합했다.

세잔 <대수욕도> 1905년 210.5cm x250.8 캔버스에 유화,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이미지:wikiart

세잔은 <대수욕도>에서 색으로 통일감을 주며 색채 원근법을 발견했고, 차가운 색은 멀리 보이게 하여 뒷배경으로 넣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색은 가까운 땅 색으로 칠했다. 가장 멀리 보이는 하늘은 흰색으로 트인 감을 준다. 평면적이지만 입체감 있는 기법으로 자연스러운 형태를 버렸다. 피카소는 이런 세잔을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며 극찬했다. 


(왼) 아비뇽의 여인들 중 과일 (오) 세잔의 정물화 중 이미지:didatticarte.it/Blog

세잔의 사과는 어딘가 모르게 뒤틀려 있다. 한 시점으로 바라보지 않고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다각도에서 한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을 취했다. 이 방법을 피카소는 인체 그리기에 적용해, 인체를 표현하는 새로운 회화 언어를 탄생시켰다. 예술은 단지 모방, 재현이라는 것을 뒤집는 분위기 속에서 자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비뇽의 처녀들>은 1916년까지 피카소의 작업실에 있다가, 1920년 프랑스 수집가가 작품을 샀고, 1937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구입해 소장 중이다.


스물여섯 살 청년 피카소에게 인체는 죽음의 공포에 다가가는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이 만들어낸 인체는 1900년대 현대 미술 시작점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작품이 되었다.





참고문헌


Christopher Green, Picasso's Les Demoiselles d'Avign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1

Coleen Harewood, Picasso's Les Demoiselles d'Avignon 1907

Daniel G. Williams, Black Skin, Blue Books: African Americans and Wales, 1845 - 1945,  , University of Wales Press, 2012

Jean-Louis Ferrier, Art of the Twentieth Century: The History of Art Year by Year from 1900 to 1999, Chene Publisher, 1999,  pp.14, 17

Stokstad Marilyn, Art History, New York, Harry N. Abrams, 1995

www.gauguingallery.com/gauguins-influence-on-picasso.aspx

en.wikipedia.org/wiki/Exposition_Universelle_(1900)


이미지

wikiart

didaticarte.it/blog/

artetcinemas.over-blo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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