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일 때ㆍ아그네스 마틴

Agnes Martin

by 정유진

아그네스 마틴. 1912년 캐나다 생. 잭슨 폴록과 동갑. 침묵이 무기였던 어머니. 어린 시절 미움받는 아이라고 생각던 아이. 훗날 친구에게 자신은 어린 시절 정서적 학대받았다고 말했다. 19살 처음 미국 워싱턴에 갔다. 처음 본 미국은 그녀에게 매력적이었다. 서른 살에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1 년 교사 과정을 신청했다.


35세 여름 처음 뉴 멕시코를 여행했다. 멕시코에서 돌아와 콜롬비아 대학에서 일본인 스즈키의 선불교 강의를 듣고 아시아 사상에 매력을 느낀다. 멕시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두 나라를 오가며 작품을 시작했다.


1957년 45세 뉴욕 맨해튼 남쪽에 코니 슬립 Coenties Slip 거리로 이사한다. 물이 안 나오는 작은 다락방을 얻었다. 추운 바람이 드는 다락방에서 그녀의 기하학적 추상화 회화는 천천히 완성되었다. 코니 슬립 지역에는 젊은 이들이 있었다. 미국 미술의 주류를 이끄는 게이 예술가들도 있었다. 제스퍼 존슨, 로버트 라우센버그, 로버트 인디애나, 엘스워스 켈리 등이 모여 있었다. 마틴은 레즈비언이었다.


아그네스 마틴 <The Egg> 1963 Ink on paper 21.6x15.2cm2020 Estate of Agnes Martin


실처럼 가느다란 선으로 반듯하게 늘어놓은 듯 실선이 정갈하다. 모든 복잡한 세상은 선 안으로 압축되고 정리된다. 외할아버지는 어느 날 책 한 권을 준다. 이 책이 그녀 삶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것이 되었다. 존 번연 John Bunyan(1628-1688)이 쓴 <The Pilgrim's Progress(1678)>였다. 번연이 12년간 감옥에서 쓴 이 책은 내면의 목소리에 대해 담고 있다.


마틴은 구약성서, 칼뱅주의, 그리스도교, 플라톤주의, 초월주의 Transcendentalism, 인도의 베단타 Vedanta 철학, 동양의 선불교, 도교를 접했다. 이것들은 그녀에게 정신적인 것. 내면을 화두로 평생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자양분이 된다.


아그네스 마틴 <나무 The Tree> 1964 Oil and pencil on canvas 6x6 in 2020 Estate of Agnes Martin


그녀는 반복되는 격자무늬 패턴으로 새로운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첫 격자무늬 작품이다.


"나는 순수한 나무를 생각했어. 그리고 격자무늬가 떠올랐지. 순수함을 표현해."


순수한 감정이야말로 예술을 창조하는 최상의 것이라는 추상회화의 개념이 엿보인다. 미니멀리즘 발전의 한 부분을 보여주기도 한다. 수수께끼처럼 알 수 없는 격자 안을 계속 쳐다보다면 무아를 향해 들어가는 듯하다. 도교와 선불교에 대한 관심이 작품에 물질성을 배제하게 했다. 간소하고 정갈해 보이는 회화는 마음 (心, mind, hsin)에서 출발한 것이기도 했다.


아그네스 마틴 <Summer> 1964watercolor, ink, gouache on paperEstate of Agnes Martin


1967년 여름, 마틴은 다시 뉴욕을 떠났다. 당시 뉴욕 미술계는 혼돈과 압박이 있었다.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뒤로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해 멕시코로 갔다. 쿠바에 작은 오두막집을 짓고 정착했다. 조현병 앓던 그녀는 약과 치료하던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인터뷰도 거절하고, 지인들을 뉴 멕시코에 방문하지 못하게 했다. 사실상 은둔 생활에 들어간 것이었다. 딜러가 조심스럽게 부탁하면 가끔 시간을 내 인터뷰를 했다.


"나는 캠핑 여행을 했어. 숲에서 잤지. 아마 삼천 명 정도가 한꺼번에 잘 수 있을 만큼 큰 공간이었어. 아무도 없었어. 나 혼자였지. 즐거웠어. 한 가지 문제가 있었지. 난 내 마음을 나 자신을 위해 가져야 했어. 사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동안은 너의 마음은 너의 것이 아니잖아."


뉴멕시코 쿠바에서 1974년 사진 ⓒ Estate of Gianfranco Gorgoni


마틴은 영국 시인 웰리엄 블레이크를 좋아했다. 블레이크의 영향은 그녀가 쓴 글에 나타나 있다. 그녀의 문장들에는 시적인 영감과 철학, 종교적인 요소들이 나타난다. 그녀는 블레이크 시가 인도 베단타 철학에서 영향받은 것을 알게 되고, 인도로 향했다.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블레이크와 인도 바가바드기타Bhagavad Gita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 다른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 William Wordsworth 도 좋아했다. 두 시인 모두 자연과 어린 시절에 대하여 썼다.


"자연은 마치 커튼 같아. 그 안으로 들어가지. 나는 어떤 반응에 답하면서 그림을 그려. 나의 그림은 무형에 관한 것. 융합에 관한 것이지. 방해도, 욕구도 없는 세상."


아그네스 마틴 <무제Untitled>1977 watercolor and graphite on paper, Private CollectionEstate of Agnes Martin


1983년 어느 학자의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에게 가장 정신적인 영향을 준 것은 중국 사상가 노자였습니다. 그 다음은 중국 선종의 혜능이었습니다. 금강경과 혜능의 경전 복사본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불교 선승들과 장자 역시 매우 흥미롭습니다."


콜럼비아 대학 동기였던 에드 라인하르트. 그의 친구였던 토마스 머턴으로부터 동양 사상들을 접했다. 그녀의 추상화는 동양 철학과 연결된다.


아그네스 마틴 <나의 세상으로 돌아가 With My Back to the World> 1997 60x60in2020 Estate of Agnes Martin


<나의 세상으로 돌아가 With my back to the world>라는 제목으로 여섯 개 시리즈를 만들었다. 세상의 관심과 혼란에서 벗어난 그녀만의 세상을 담고 있다. 종종 시리즈 작품들을 만들었지만 혼자 감상하길 원했다.


파란색, 복숭아 색, 노란색 파스텔 띠를 보여준다. 계산된 듯 그어진 동일한 간격은 답답함이 아닌 오묘한 조화를 느끼게 한다. 마르코 로스코 회화보다 톤을 많이 덜어냈다. 그녀에게는 색이 중요하지 않았다. 은은한 빛의 존재, 그것이 순수한 감정에 방아쇠를 당겼을 것이다.

아그네스 마틴 <Happy Holiday> 1999 acrylic paint and graphite on canvas 1525x40mm Estate of Agnes Martin

멕시코에서 보낸 은둔 생활은 내면과 예술에 대한 화두를 가진 시간이었다.


어느 비평가는 고요하고 경건한 톤을 가졌다고 한다. 또는 종교적인 표현이라고 평한다. 마치 기도하는 이의 구성과도 같다.라고 한다. 명상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이와 같을까? 좌우로 끝없이 펼쳐질 것 같은 선 또한 초월적인 사실성을 담아낸다.


섬세하고 연약한 선들은 지적이면서도 우리를 멍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미니멀하다. 클래식하다. 로맨틱하다. 서로 다르게 느낄 수 있다.


아그네스 마틴<I Love the Whole world> 1999Acrylic paint and graphite on canvas 60x60inEstate Agnes Martin


추상적 표현주의와 미니멀리즘을 오고 갔던 마틴의 작품. 그녀의 작업은 반복적 공식이다. 선, 격자무늬, 흐린 파스텔톤의 색, 회색 바탕. 단순한 작업들이 미적 흥미를 떨어뜨릴 것 같아 보이지만 선과 색은 마음에서 천천히 다시 재 정의되고 서두르던 감정을 메워준다.


어린 시절 상처, 조현병과 은둔으로 그녀의 삶을 설명하기에는 작품들이 너무나 따뜻한 색을 품고 있다. 삶의 시간과 의미를 보듬어 주고 있는 듯하다. 현실을 보듬는 초월적인 따뜻함을 이끌어 냈다.


2016년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1000만 달러(약 122억 원)에 달하는 가격으로 낙찰되었다. 세상을 등지고 은둔 생활을 했던 그녀 작품은 세상 속에서 사랑받고 있다.


아그네스 마틴 <무제 Untitled> 2004 Acrylic on canvas, 60x60in ⓒ2015Agnes Martin



멕시코에서 20년 넘게 지내다 81세 은퇴 주거단지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마지막 생을 보내다 92세 나이로 2004년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당신도 그들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일은
당신이 혼자 있을 때 생깁니다.






참고문헌

moma.org

Jacqueline Bass, 'Agnes Martin:Readings for Writings, Agnes Martin' in Frances Morris and Tiffany Bell eds. Agnes Martin , Distributed Art publisher, New York, 2015

ARTnews.com What we make, Is What we Feel: Agnes Martin on Her Meditative Practice,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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