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예술가의, 그의 시선

by 정유진

지금 어디 쳐다봐? 친구가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나는 친구의 눈을 보고, 그의 시선을 따라 창 밖을 봅니다. "어른한테 어디 눈 똑바로 들고 쳐다봐." 오랜 동양 문화에서는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서구 문화에서는 대화할 때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으면 예의가 아닐 때가 많았습니다. 우리는 매일 시선들을 마주하고, 피하고, 교차하며 살고 있습니다.


시선은 많은 의미를 내포합니다. 우월한 자, 누가 권력자인가 하는 사회적 의미도 들어있습니다. 미술 작품 속에서도 시선은 중요한 단서입니다. 내가 캔버스 속 인물의 눈을 봅니다. 그들은 어디를 보고 있나요?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는지, 우리의 시선을 피해 어딘가를 보고 있는지. 시선은 그림 속 중요한 힌트입니다.



시선의 개념


20세기 이전까지 시선은 단순히 매개체 역할이었습니다. 초기 비평가들은 시선들이 그림 안에서 돌아오고 반영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시선의 개념은 포스트모던 철학과 사회 이론이 발달하면서 부각되었습니다.


1960년대 처음으로 시선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습니다. 미셀 푸코의 의학적 시선에 대한 설명과 라캉의 인간 정신 발달 단계인 '거울 단계'에서 시선의 역할 분석이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이 개념은 후에 페미니즘 이론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어떻게 남성이 여성을 보는가, 어떻게 여성이 자신과 다른 여성을 보는가 하는 관점이 생겨났습니다.


남성의 시선에 관한 중요한 텍스트는 로라 멀비의 『시각적 쾌락과 내러티브 영화』(Visual Pleasure and Narrative Cinema, 1975)입니다. 시각 문화 밖에서 시선은 종종 관음증과도 연결됩니다.



누가 보고 있는가?


그림 속 시선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관객의 시선입니다. 우리가 그림을 보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그림 속 등장인물들이 서로를 보는 시선입니다.

세 번째는 그림 속 방관자의 시선으로, 곁눈질하거나 우리처럼 자신 역시 관람객인 듯 힐끗 쳐다보고 있는 인물입니다.

마지막은 화가의 시선입니다.


누군가를 본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알려줍니다. 시선은 그림 속 상황을 보여주고, 권력관계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조나단 슈로더는 "시선은 권력의 심리학적 관계를 의미한다. 보는 이는 시선을 당하는 입장보다 우월하다"고 말합니다. 또한 시선은 말없는 감정을 표출하기도 합니다.


벨라스케스 <시녀들> 1656 캔버스유화,프라도미술관 소장ⓒwikipedia

복잡한 시선의 그물망


벨라스케스의 속에는 무려 11명의 시선이 얽혀 있습니다. 가운데 서 있는 늦둥이 딸 마르가리타 공주는 정면을 바라보는 듯하지만 고개를 살짝 돌려 방 어딘가를 보고 있습니다. 왼쪽 무릎을 꿇은 시종은 공주를 바라보고, 오른쪽 서 있는 시녀 이사벨 데 벨레스코는 살짝 째려보는 듯 그림 밖을 쳐다봅니다.


강아지 뒤의 푸른 옷을 입은 난쟁이 시녀 마리 바르볼라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옆에 더 작은 난쟁이 시녀가 왼쪽 발을 들어 자고 있는 강아지 등 위에 올리고 있습니다. 뒤편 어둠 속에는 시종장과 궁중 경호원이 서 있습니다.


반대편에는 화가 자신인 벨라스케스가 붓을 들고 서서 우리를 바라봅니다. 뒤편 벽 거울 속에는 공주의 부모인 필리프 4세 왕과 여왕 마리아나가 비칩니다. 화가가 바라보는 이들은 왕비 부부였겠지요.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 왕부부가 서 있었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장면을 보고 있는 시선은 왕비 부부의 시선일 것입니다.


거울을 통해 관람자의 시선과 관람을 당하는 자의 입장이 뒤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시선을 주는 자가 아닌 시선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시선이 오고 갑니다. 누가 이 작품의 주인공일까요? 우리는 진정한 감상자인가요, 아니면 그림 속 방에 함께 있는 사람일까요?



누구를 위한 시선인가

(좌)페르메이르<우유를 따르는 여인>1658ⓒwikiart (우)페르메이르 <편지를 읽는 파란 옷 여인>1663-64ⓒwikiart


페르메이르의 실내에 있는 여성들은 우리의 시선을 피합니다. 집안일에 열중하는 모습으로 유순하고, 부끄럽고, 내성적인 성격을 드러냅니다.


(좌)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8ⓒwikiart (우) 마네 <올림피아> 1863ⓒwikiart


반면 시선으로 세상을 뒤집은 마네의 는 도도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합니다. 올림피아 이전까지 여성은 남성 중심의 시선으로 그려졌습니다. 당시 미술관에 오는 관객은 대다수가 남성이었고, 신화 속 비너스처럼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으로 여성을 표현했습니다.


가 등장하자 화가 난 관객들은 지팡이로 그림을 손상시키려 했고, 그림을 더 높이 걸어야 했습니다. 올림피아의 시선에는 에로틱함도 여성스러움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네의 에서도 그림 밖 우리를 바라보는 여성은 처럼 당돌한 눈빛입니다. '뭘 봐?'라고 묻듯 누드이지만 당당한 시선을 보냅니다. 1863년 이 작품이 살롱에 전시되었을 때, 현실 속 매춘부를 그린 듯 너무나 당돌한 모습에 남성 관객들은 화가 나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마네 <풀밭위의 점심> 1863 캔버스에 유화 208x264.5cm 오르세미술관소장ⓒwikiart



그림 밖 시선


마네 <폴리 베르제르 바> 1882 96x130cm Courtauld Gallery런던 소장ⓒwikiart


마네의 에서 우리의 시선은 바텐더 여성의 멍한 눈빛에 다가갑니다. 수심에 찬 얼굴로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녀 뒤편 대형 거울에는 파리 저녁시간을 카바레로 즐기러 온 사람들이 보입니다. 카바레는 댄서, 저글링 하는 사람들, 가수, 광대들의 무대를 보며 즐기는 장소였습니다.


그녀는 저 많은 사람들을 보며 무엇인가 생각하는 듯합니다. 표정은 슬퍼 보이기도 하고 일상에 지친 듯 지루해 보입니다. 거울 속에 그녀의 뒷모습이 비칩니다. 앞모습을 보면 그녀는 똑바로 서 있지만, 거울 속 그녀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모자를 쓴 남성에게 가까이 다가가 있습니다. 그녀가 남성과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테이블 위의 오렌지가 그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Grant Wood <American Gothic> 1930 Wikimedia

그랜트 우드의 에서 치과 의사는 고정된 시선을 하고 있지만, 여동생은 우리와 눈을 마주치지 않습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그림 밖 어딘가를 곁눈질하고 있습니다. 경계의 눈초리 같기도 하고 어딘가 모르게 단호하면서 슬퍼 보입니다. 둘은 감정을 묶어둔 듯 금욕적인 초상화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림을 보는 시선, 그림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시선, 이 모든 시선들은 의미를 가집니다. 시선으로 캔버스 안과 밖을 넘나들며 그림과 현실의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시선의 주체는 그림 속에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숨겨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화가가 시선을 거울 속에 숨겨둘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그림들 속에는 어떤 시선들이 있나요? 다음번 미술관 방문에서는 작품 속 인물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세요.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keyword
이전 06화빛과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