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지?" "뭘 그린 거야?"
하나의 색으로만 칠해 놓은 단색화, 네모난 패턴만 있는 그림 앞에서 우리는 잠시 당황스러워합니다. 휘갈긴 듯한 선들 앞에서 '이런 그림 나도 그리겠네', '붓을 들고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그린 것 아니야?', '아이들이 장난스럽게 낙서해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주의 회화 방식이 서양 미술사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1840년 사진이 등장하면서 예술가들은 "우리가 할 일을 사진기가 가져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외부를 표현하는 것은 사진기가 가져갔으니, 더 내면적이고 주체적인 것,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가져보자는 생각이 생겨났습니다.
고갱이 "Paint by heart, 마음으로 그려라"라고 말했듯이 예술가들은 내면의 재료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주의를 벗어나 작가의 감정이나 대상의 본질을 색, 선, 면과 같은 요소들로 표현하는 작가들이 등장했습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과학의 발전과 물질문명을 옹호하며 확신했던 것에 회의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성과 합리적인 것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에 내면, 본질, 근원을 찾아보자는 움직임이 생겨났습니다.
생략했습니다.
"추상화 작품이란 없다.
당신은 항상 무엇인가와 함께 시작해야 한다.
그 이후, 당신은 현실의 모든 흔적을 지울 수 있습니다."
-피카소-
어린 조카가 작은 고모를 그려주겠다며 얼굴을 그렸습니다. 눈만 크게 그리고 코, 입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여동생은 눈이 큽니다. 가장 큰 특징인 눈을 중요한 요소로 잡고, 그 외의 것을 그리지 않은 것입니다. 현실을 관찰해서 부차적인 부분은 생략하고 한 가지 강하게 들어오는 특징을 딱 잡아내는 것! 그것이 추상화의 기본 원리입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있는 소머리를 보세요. 소 전체를 그리지 않았지만 소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피카소는 현실의 소를 먼저 그대로 스케치했습니다. 그리고 점차 많은 부분을 생략했습니다. 오늘날 미국 애플의 직원들도 피카소가 어떻게 사물을 단순화시켰는지 연구했다고 합니다. 추상화 작업은 보이는 모든 부분들 중에서 하나씩 생략해 가며 단순화시키는 과정입니다.
색과 선으로 단순화시켰습니다.
추상 회화는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을 최대한 단순화시켰습니다.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를 보세요. 선, 색, 공간, 면만으로 세상을 함축시켰습니다. 제목처럼 브로드웨이의 지도를 보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 '부기우기(Boogie woogie)'는 몬드리안이 좋아했던 음악입니다. 발음에서도 경쾌한 멜로디가 느껴집니다.
몬드리안은 세상을 선과 직사각형 면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같은 형태를 가진 것을 '기하학적 추상'이라고 합니다. 1차 세계 대전을 경험한 몬드리안은 노란색, 빨강색, 파랑색과 무채색만 사용해 정신적 생기를 넣고자 했습니다. 캔버스 안에 새로운 보편적 미적 언어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도시는 선과 네모로 단순화, 추상화되었습니다.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추상화가 될 때까지 그는 수없이 많은 단순화 작업을 거쳤습니다.
현실을 그대로 보고 베끼지 않는, 재현하지 않는 작품. 비재현적인 요소를 우리가 스스로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작가가 했던 생략의 과정을 반대로 해본다고 생각해보세요. 선을 늘리고 색을 퍼트려 머릿속에 상상력으로 선을 헤집어 보다 보면 작가가 봤던 현실이 보일 것입니다.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과정입니다.
몬드리안의 나무 작품들을 보면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과정을 잘 볼 수 있습니다. 사물의 겉에 드러난 것이 아닌 본질을 찾기 위해 불필요한 부분을 삭제하고 중요한 부분만 남긴 것입니다.
대상의 본질을 색, 선, 면으로 구성하기
칸딘스키의 <컴포지션 8>을 보세요. 음악 소리가 들리시나요?
당신이 받은 느낌이 무엇인지 선뜻 대답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의 추상화들은 인간의 공통된 경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것이 어떤 경험을 말하는 것인지 찾아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눈이 아닌 마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이 작품에서 칸딘스키는 음악을 색과 선으로 표현했습니다. 음악이 멜로디로 감동을 주듯, 회화는 색과 선만으로도 다양한 감정과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작품의 하단은 악보 같습니다. 반원들은 강, 약, 중강 약을 나타내는 듯 크기와 색, 진하기가 다르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원의 색과 크기는 오케스트라에서 여러 악기가 크고 작은 소리를 내는 듯합니다. 칸딘스키는 무의식적인 비물질적인 것들을 즉흥적으로 그려낸 듯합니다.
색으로 가득 채우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보세요. 색만 있는 이런 작품을 '색면 추상' 또는 '단색화'라고 합니다. 로스코는 자신의 그림이 인간의 감정들을 사실적으로 그린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오렌지와 노랑>에서 어떤 감정이 느껴지시나요?
사물의 본질은 내면의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따뜻한 느낌을 주는 파랑인가요? 슬픔이 느껴지는 푸른색인가요? 바다처럼 무한대로 뻗는 공간 또는 우주 공간처럼 느껴지나요?
내면의 직관과 무의식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미로에게 영향을 받은 잭슨 폴록의 작품을 보세요. 그는 몬드리안의 기하학적인 선과 면의 단순함조차도 벗어났습니다. 폴록은 계획 없이 자연스럽게 몸을 맡겨 물감을 이리저리 뿌리고 흘렸습니다. 우연성의 효과로 만들어낸 이 회화는 내면의 직관, 무의식과 관련된 새로운 추상표현주의를 만들어냈습니다.
작가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저 수많은 선에서 어떤 느낌이 드나요?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움직이면서 물감을 쏟는 모습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미술 놀이 같습니다. 잭슨 폴록은 내면의 감정들을 움직임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작품이란 그리는 사람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추상화와 대화
추상화는 작가와 우리 사이의 독특한 대화 방식입니다. 풍경화나 초상화와는 다르게 생략한 부분이 많기에 단숨에 알아차리기 어렵게 느껴집니다. 겉모습을 삭제하고 본질을 색, 선, 패턴으로 담아내려 노력했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천천히 여러 번 보아야 합니다.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휘파람으로 노래를 불러 어떤 노래인지 맞추기 게임을 한다면 그것이 추상이다.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두세 줄로 요약해서 전달한다면 그것이 추상이다."
사실 매일 우리는 추상을 알게 모르게 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하루 일과들 중 한 가지씩 지우고 단 한 문장, 한 선으로 그려보세요. 그것이 당신만의 추상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