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왜 그렸을까?

by 정유진

"나는 자주 혼자 있었기 때문에 자화상을 그렸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는 나였기 때문이다." - 프리다 칼로

2013년에 유행했던 셀카(영어로는 셀피 selfie)가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되었습니다. 1839년 사진기 다게레오타이프가 만들어진 지 180년 후의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진기가 나오기 이전에는 어땠을까요?


초상화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익숙한 장르입니다. 초상화는 나, 타인 누구든 포함되지만, 자화상은 스스로를 그리는 것입니다. 미술관에 가면 수많은 자화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화가들은 왜 자신의 얼굴을 그렸을까요?


역사 속의 자화상


고대 그리스, 이집트, 로마 시대에는 극소수의 자화상만이 발견됩니다. 자화상은 회화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었습니다. 조각은 변질되거나 사라지지 않아 회화보다 조금 더 남아있습니다. 이집트 파라오 아케나텐의 조각가가 만든 머리 조각이 초기 작품으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BCE 1365년경으로 추정). 그는 네페르티티의 유명한 흉상도 조각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조각가 피디아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가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아마존 전투>에 자신의 모습을 넣었다고 합니다.




서명으로서 자화상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1434)을 보면, 결혼식 하는 부부 뒤로 거울이 있습니다. 거울에는 네 사람이 보입니다. 푸른 옷을 입은 화가 에이크와 붉은 옷을 입은 조수, 그리고 부부의 뒷모습입니다. 거울 위에는 "얀 반 에이크 여기에 있었다. 1434년"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당시 결혼의 증인은 2명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1434 Oil on oak panel 82x60cm National Gallery, Londonⓒwikipedia


본격적으로 화가들의 자화상은 15세기 르네상스 시기에 나타났습니다. 르네상스 이전 중세에는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었기에 개성과 존엄성이 중시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신분이 높은 계급이나 교황들이 화가에게 돈을 주고 의뢰한 초상화가 많았습니다.


인본주의, 즉 인간이 모든 사물의 중심이라는 르네상스 정신이 나타나면서 예술가들도 새로운 시각을 찾게 됩니다. 인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예술가들의 사회적 지위도 이전보다 향상되었습니다.


(좌)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1536-1541, 시스테나 성당 (우) 최후의 심판중 성 바르톨레모가 살가죽을 들고 있는 장면 ⓒwikimedia commons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중 한 장면을 보면, 성 바르톨레모가 벗겨진 살가죽을 들고 있는데, 그 살가죽의 얼굴이 미켈란젤로 자신의 얼굴입니다. 성 바르톨레모는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형벌로 죽었다고 합니다.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살가죽을 그리스도에게 봉헌하는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 화가들은 군중 속 한 명으로 자신의 얼굴을 넣었습니다. 미켈란젤로뿐만 아니라, 라파엘의 <아테나 학당>, 마사치오의 프레스코들, 보티첼리의 <동방박사의 경배>에서도 군중 속에 화가 자신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기애의 표현


알브레히트 뒤러는 '자화상의 아버지'라 불리며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자화상을 남긴 화가였습니다. 그의 28세 자화상을 보면, 왼편에는 그림의 연도와 서명을, 오른편에는 "알브레히트 뒤러, 뉘른베르크 출신의 내가 불변의 색채로 스물여덟 살의 나를 그리다"라고 썼습니다.


알브레히트 뒤러 <자화상> 1500 Oil on panel 67.1x48.9cmAlte Pinakothek, Munichⓒwikipedia


당시 헨리 왕이나 왕비들의 초상화처럼 뒤러도 정면을 응시하고 있지만, 이렇게 완전 정면으로 그리는 것은 특이한 포즈였습니다. 정면을 응시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뒤러는 예수와 닮게 하기 위해 갈색 머리 스타일로 바꾸고, 종교화 양식처럼 어두운 톤과 대칭적 구조를 사용했습니다.


손이 없으면 그림이 평평하게 보일 수 있어서 왼손을 넣었고, 손가락 모양도 예수를 따라 했습니다. 손은 창조의 의미를 내포하며, 예수가 축복을 내릴 때 손을 올리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오른손이 보이지 않는 것은 붓을 잡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고급 모피 코트는 당시 귀족들이 입는 옷으로, 화가로서의 자부심과 자기애를 예수의 모습을 빌려 표현한 것입니다.


일기장과 같은 기록


17세기 네덜란드는 종교적 구속에서 벗어나 개인의 시각으로 사실을 묘사하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렘브란트는 거울을 통해 90여 점이 넘는 자화상을 남겼습니다.


렘브란트 자화상 23세 1628 ⓒRijksmuseum


23세 청년 렘브란트의 자화상에서 왼쪽에서 들어오는 빛이 목덜미와 왼쪽 빰에 비치지만, 헝클어진 머리와 얼굴 대부분은 어둠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빛과 어둠으로 심리적인 면을 부각하며 인간의 본질을 캔버스에 담아냈습니다.

(좌) 렘브란트 자화상 1634년 Uffizi Gallery소장 (우) 렘브란트 자화상 1640 National gallery London소장 ⓒwikiar

28세와 34세 때 그린 자화상들에서는 경제적으로 풍족했던 청년 시절의 모습이 보입니다. 모피, 펜던트, 베레모와 고급 옷을 입은 렘브란트의 눈빛, 시선, 표정에서 자신감이 드러납니다.


(좌) 1663, Wallraf-Richartz Museum (우) 1669, National Gallery LondonⓒWikidata


하지만 30대에 두 아들과 딸, 막내를 낳고 열병에 시달리던 아내마저 잃게 됩니다. 50세에 파산을 막기 위해 그림 대부분을 팔았고, 5년 후 결국 파산하여 살던 저택에서 강제퇴거를 당했습니다. 이후 그린 자화상에서는 젊은 시절의 자신감 있던 눈빛이 사라지고 가난하고 초라해진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90여 점의 자화상을 그의 일대기와 함께 보면, 마치 일기장을 읽듯 그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빛, 구도, 의상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였고, 자신의 영혼에서 나타나는 작은 변화까지 포착해 캔버스에 담아냈습니다.



내면의 상처들


47년을 살다 간 프리다 칼로는 총 143점의 작품 중 55점의 자화상을 남겼습니다. 6살 때 소아마비로 9개월간 방 안에 갇혀 지냈고, 18살 때는 버스 사고로 척추 손상을 입었습니다. 결혼 후에는 세 번의 유산과 남편 디에고의 여성 편력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부러진 기둥>(1944)에는 석고 깁스를 하던 그녀에게 의사가 권했던 강철 코르셋이 드러나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고통을 견디는 모습이며, 건조하고 갈라진 뒷배경은 그녀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대변합니다.


(좌) 프리다 칼로 <부러진 기둥> 1944 (우) 영화 프리다의 한 장면 줄리 테이머 감독, 2002


<상서 받은 사슴>(1946)은 뉴욕에서 척추 수술을 받은 후에도 극심한 통증과 우울증을 겪던 시기에 그린 작품입니다. 어린 사슴의 몸을 한 프리다의 얼굴이 피를 흘리고, 주변은 죽은 나무와 부러진 나뭇가지들로 가득합니다. 멀리 번개가 치는 하늘 아래, 숲을 빠져나갈 수 없는 사슴의 모습은 그녀의 공포와 절박감을 나타냅니다.


프리다 칼로 1946 <상서 받은 사슴> ⓒFridaKahlo.org


나는 자주 혼자 있었기 때문에 자화상을 그렸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는 나였기 때문이다."
-프리다 칼로-



무료 모델


빈센트 반 고흐는 돈이 없어 모델을 구할 수 없었기에 거울을 사서 자신을 그렸습니다. 10년간 36여 점의 자화상을 그리며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는 모델인 자신을 통해 다양한 회화 형식을 시도했습니다.


고흐 <Self-Portrait with Straw Hat> 1887 Oil on pasteboard, 34.9 × 26.7 cm Detroit Institute of Arts, ⓒWikipedia


20세기 예술가들은 자화상을 통해 회화의 형식보다 내면을 탐색하고 주목하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화가들은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표정, 옷, 배경 등을 통해 자기애, 사회적 성취, 자신감과 욕망을 내비쳤습니다. 또한 눈빛과 신체적 자세로 내적 고통과 자기 연민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캔버스는 자기 고백적 일기 같은 것이었고, 자신에 대한 관심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작업이었습니다. 붓을 들고 자기를 받아들이고 들여다보는 작업이었습니다.



네가 너 자신의 본질을 포착할 수 없다면 ,
어떻게 네가 다른 사람을 포착할 수 있겠나?
- 브리짓 브로우(Bridgetbrow)-





참고 논문

김서진, [자화상의 형성 분석 연구], 경기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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