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나의 전시상황] : 2017.1.~6.
어느덧 9년전, 실기 석사 합격했던 이야기로부터 출발하는 오늘, 공교롭게도 대학원 박사진학 면접을 보고 왔다. 두번의 학사와 두번의 석사 과정을 융합하고, 연구 분야를 좁힐 수 있는 학과를 선정하여 면접에 임하긴 했다. 하지만 과연 진학이 내게 맞는 선택일지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 이 생각은 2016년 12월 대학원에 실기 석사를 합격했을 시절에 가졌던 미래에 관한 또렷한 확신과는 참 자신감이 작아진 듯 하다. 나의 고민이자 모두의 고민인 '소외'에 관한 문제의식을 시각언어 작업으로 선보이며, 작가를 꿈꿨던 순수하고도 패기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여전히 작가의 꿈은 놓지 못했다.)
#2-1.
나는 학부에서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며 기업의 흉짐을 덮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기업의 입장에서 이는 마치 절세처럼 합법적이고도 당연한 행위이지만, 나는 사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도덕함에 관해 아름답고 예쁘게 덮을 자신이 없었다. 그때부터 피어오른 내면의 반골기질. 23살의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지독한 고민의 시간을 보내다가 불현듯 떠오른 미술로 진로를 틀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사는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가졌다.
K미술관에서의 짧은 도슨트 계약이 끝나갈 즈음 대학원 합격 알림은 처음 맞이한 나의 결실이었다. 이와 동시에 대학원 과정에서의 재료비와 생활비에 관한 압박이 몰려왔다. (모든 학비는 국가장학대출로 무마를 했지만 말이다.) 다행히 석사 수업은 야간에 이루어졌기에, 나는 주간에 어딘가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전공과 관련되면서도 K미술관에서 경험한 업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2016년 12월, 종로구에 위치한 한 국립박물관에서 교육실습생 선발 공고를 보았다. 당시 정권에서 처음 도입했던 '교육실습생' 개념은 알고보니 이전 해까지 채용했던 인턴과 같은 매커니즘이라고 한다. 다만 실습의 개념을 넣고, 4대보험을 적용하지 않는 '일용직' 계약의 형태였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던 나는 앞뒤를 가릴 수 없었다.
면접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한 면접관이 내게 이 분야에서는 남자가 귀하다는 말을 하며 "망치질을 잘하는지", "물건을 잘 고치는지" 물었다. 나는 학예에 관한 생리를 전혀 몰랐기에 대체 왜 저런 것을 묻는 것인지 의아했다. (알고보니 내가 배치된 과는 어린이 관련 파트였고, 전시 및 교육 교구가 참 많이 망가지는 부서였다. 어린이의 순수함이 무서움으로 처음으로 다가왔다. 학부모의 마음을 십분 경험했던 시기였다..)
일용직으로서 배치된 첫날 내 동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다들 미술사 혹은 박물관학을 공부하던 석사생들이었다. 다들 대단해보였고, 실기를 하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학교에서 작업을 하며,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은 나의 욕심인가"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내가 이들보다 못할 건 뭐야,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까스로 끌어내었다. 그럼에도 양갈래의 마음은 수없이 맞닿았다.
이곳에서 나의 업무는 인포데스크에서 어린이의 전시 입장을 도와주고, 관람객 입장 숫자를 조절하는 일이었다. 전시 관람을 위한 어린이 관객 수요(실제로는 학부모와 학교의 수요)는 많지만 공간은 한정적이었다. 그에 따라 하루에도 다종 다양한 종류의 질문을 받았다. "멀리서 왔는데 왜 우리는 못들어가나. 잠깐만 보고 나오겠다", "영상이 안나온다", "아이들이 싸운다. 아이가 다쳤다", "전시 체험 물품이 고장났다", "전시실 안에서 밥을 먹고 싶다", "예약한 전시실 입장 시간을 바꿔달라" 등이 그것이었다. K미술관에서 배치된 나의 의자에서 지나가는 관객을 지켜보며 느꼈던 고요한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공간이었기에 모든 말투는 늘 부드럽고 상냥해야 했다. 그에 따라 직원의 정갈한 용모도 업무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였다. (물론 어느 직종, 업무나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이는 수시로 몰아치는 관람객의 민원을 덜어내기 위함이었다. 일련의 과정이 내게는 상대방과 대화하며 관람객을 환대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일을 (크게)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한 관습화된 업무의 쳐냄으로 느껴졌다.
나는 이곳에서 박물관의 다양한 직급이 있음을 처음 알게 됐다. 학예 직종은 교육실습생(인턴)-기간제-공무직-연구사-연구관 등으로 구성되었고, 제일 하단에 내가 있었다. 계약서 상 나는 일급을 받는, 견습하고, 만인을 보조하는 사람이었기에 모든 사람의 행동을 배웠다. 원치 않게도 느껴지는 개인 간, 집단 간 특유의 음습한 분위기까지도.
여름을 맞이할 무렵, 나는 동기와 근무하던 중 '학예사 자격증'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석사학위 소지자이되, 2년 이상, 2,000시간 이상 경력을 쌓은 경우에 소정의 심사를 거쳐 발급되는 자격이란다. 다만 심사를 위해서는 학예 업무를 수행했다는 서류 증빙이 필요한데 뉴스 기사로 치면 바이라인, 책으로 치면 콜로폰처럼 본인 이름이 기재된 모종의 증거가 있어야 한단다. 이로써 내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그러나, 생각지 못한 '이름 전쟁'이 시작되었다. 마음에서 독기어린 소용돌이가 몰아쳤던, 나 자신을 '소외'로 본격적으로 몰아갔던 시점은 그때부터였다.
#2-2. [나의 전시상황] : 2017.7.~12. 로 이어집니다.
s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