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2020 서울사진축제 《보고싶어서》
보고싶은 것을 재연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전제를 가진다. 무엇인가를 보았을 것. 그것을 옮겨내기 위한 노력을 시도할 것. 그제야 우리는 최초에 보았던 것의 다른 시공에서 열망하는 것을 재생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진은 최초의 이미지이자, 매개이자, 재연된 대상이 된다. 그동안 사진은 공공에서 우리 주변의 방향으로 렌즈의 시선이 이동해왔고, 이에 따라 작가 개인의 주관성이 개입되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희미해졌다.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 1968-, 독일)는 자신의 일상을 틈틈이 기록하는 작업을 선보이는 방식으로 기존의 프레이밍을 벗겨낸 실험적 인물이다. 그는 사진을 압정, 테이프처럼 임시적인 방식으로 벽면에 부착함과 동시에 사진을 모으고 흩트리는 등 탈-위계적인 방식의 설치를 시도하며 사진사에서 다층적인 시각 경험을 선보였다. 정형화된 개념에 맞선 그의 역동적인 유산은 이번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2020서울사진축제 《보고싶어서》 전시 전반에 녹아들었다. 기획자는 전시 관람 순서를 특정하지 않고, 사진들을 자신만의 맥락에 놓게 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국내외 12명의 작가는 각자의 시공에서 담아낸 내러티브를 사진이라는 형식을 바탕으로 지속해서 전복시키고 확장하며, 삶의 유대와 보편적인 순간들을 선보인다. 더불어 사진을 물질화하는 과정에서 비-위계적인 전시설치방식이 활용됨과 동시에 그것으로도 담아낼 수 없는 불분명한 인식의 임계점에 있는 이미지 간 병치를 시도한다. 이는 관람객에게 무의식 중에 각자의 보기 방식으로 스스로 내러티브를 생성시키며, 나아가 현상의 찰나와 그것을 넘어선 순간의 경계를 낯설게 개입하도록 유도한다.
인지: 불균형의 순간
전시실 입구 벽면은 관람객에게 마치 ‘캐비닛 오브 큐리오시티’를 연상시키듯 전시영의 거대한 스마트폰 사진 19점이 무작위로 부착된 인상을 준다. 작가는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했던 낯선 느낌을 일상성에 투과하여, 이를 극대화시키는 방식으로 작업을 펼쳐놓았다. <쿼터>는 손쉽게 사진을 담아내는 기기가 카메라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겨가면서 사라지는 것을 지금의 시공에서 바라보게 함으로써 그 순간을 현재에 소생시킨다. 이 과정에서 인화지 여백이 그대로 노출된 채로 크고 작은 사진이 집게에 걸리며 우리 주변에서 단지 못 본 것이 아니라 결코 본적 없는 특유의 영적 분위기를 소환*시키고, 나아가 이는 일상의 의미를 다시금 발견케 한다.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산책자의 시선으로 주위를 살펴보는 것과 유사하다. 특히 일상성을 중심으로 이미지를 탐구하는 작가는 세계 주변을 서성이며 사회가 애써 외면해온 내밀한 삶의 기록을 건져낸다. 이러한 인물 가운데에서 대표격으로 꼽을 수 있는 낸 골딘(Nan Goldin, 1953-, 미국)은 그의 연인, 친구들을 카메라에 노출하며 즉각적인 현상을 건조하게 풀어내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그는 약물에 취해있는 모습, 폭력에 의한 상흔 등 파격적인 프레임을 시도하면서 스냅사진을 사적인 장르에 위치시켰다. 이에 황예지의 작업은 카메라를 자신의 가족에게 향하며, 그가 외부에 내보이고 싶지 않았을 수 있는 가족사를 끌어낸다. 이는 사진을 매개로 내밀한 삶을 들여다보는 낸 골딘의 시각적 계보에서 읽힐 수 있다. 가정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범위이다. 그중에서도 긴밀한 감정적 유대 관계인 엄마가 부재하여 발생했을 무언의 결핍은 <절기> 속에서 피사체 간 묘한 어색함과 긴장감으로 포착된다. 애나 폭스는 좀 더 적극적으로 가정사 속 긴장감을 써 내려갔다. <어머니의 찬장과 아버지의 말>은 멀리서 보면 분홍색으로 뒤덮인 공간에 설치되어 있어 화려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헝겊으로 잘 닦아낸 듯 빛나는 집기와 정돈된 가정용품 사진이 폭력적인 텍스트와 쌍을 이루며 기이한 광경을 자아낸다. 가정폭력이 화려한 이미지에 은폐되면서 그의 작업은 역설적이게도 환상적이면서 현실적이다.
이렇듯 내밀한 사진에서 드러난 맥락은 현대적인 방법론으로 재생되기도 한다. 사이먼 후지와라는 소셜 마케팅이라는 방법론을 기반으로 사진과 무빙 이미지를 활용했다. 그는 이미지가 일단 생성되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다는 사실을 <조앤>을 통해 증명해 보이고 있다. 조앤은 사진 스캔들의 희생자 신분에서 자신을 소비되는 콘텐츠로서 그 위치를 달리함에 따라 광고사진처럼 얄팍한 기호들을 생산한다. 우리는 이것이 조작된 드라마라는 사실을 안다. 그런데도 순간적으로 동요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통해, 카메라는 관계를 통제하면서 관계를 재인식시키는 장치임을 드러낸다. 이미지는 이전의 것을 덮어씌우는 성격을 가진다. 소피 칼은 반려묘 수리와 결부된 기억을 영상, 텍스트, 음원 등으로 확장하며 멀리 떠나버린 존재를 매체로 다시금 소생시킨다.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모호하게 구축하는 과정에서 사진을 매개로 하여 사랑하는 존재를 언제라도 다시 볼 수 있는 대상으로 전유(專有)한다. 《보고싶어서》의 중심부에서 2020년의 <수리 칼> 공간은 불특정 다수와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연결고리가 된다.
이러한 기억의 서사는 극한의 상황을 통해 사회 전체가 공유하게 되면서, 분명 주변에 존재하지만 미미하게 느껴지던 장면들이 금세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왈리드 라드/아틀라스 그룹은 전쟁으로 균열한 레바논의 현대사를 기록했다. 벽면에 늘어뜨린 34점의 사진은 마치 하나의 타임라인처럼 등장했다. 가까이에서 본 개별 사진은 레바논이 아니어도 어디선가 일어날 것만 같은 보편적인 장소의 모습을 띤다. 폭죽이 터지고, 사람들이 모여 있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한 풍경들은 사적 정서를 불러일으키지만, 이를 파노라마처럼 전체를 이어보고 나면 순간 피의 역사로 스며든다. 일련의 몽타주는 일상을 잃어버린 지금과도 맞닿으면서 현실을 환기한다.
시도: 끊임없이 유동하는 공간
사진으로 특정 모습을 담아내는 것은 그것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그 자체로 변화하는 것임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사진의 부재는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개인의 심리적 공간마저 사라지게끔 유도하며 기억을 소실시키는 역할도 한다. 이러한 자연 소멸의 이치로부터 함혜경은 <나의 첫사랑> 작업을 통해 자신의 기억 속 편린을 끄집어내며 마음 한 쪽에 추억할 공간을 마련해두고 있다. 빛바랜 텍스트들이 그것과 연관 없는 바닷가의 (무빙) 이미지와 함께 나열되며 시각화된다. 이는 텍스트와 이미지의 상호작용으로 특정한 사실이나 정보로서 기능하는 데 집중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의 맥락으로 수렴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허상(虛想)의 성격을 띤다.
이러한 정서적 영감은 거주지처럼 개인이 주로 활동하는 일상 공간을 중심으로 또렷하게 등장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다면 사진은 기억 작용을 위한 ‘환적지’가 될 수 있을까. 브레다 베번(Breda Beban, 1952-2012, 세르비아)은 삶의 흔적이 녹아있는 공간의 모습을 담아냈다. 인물이 부재한 사진은 평범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 보냈던 상실의 공간으로 기능하며, 사진이 기억을 위한 중간지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이에 사나이 마사후미는 브레다 베번처럼 그리운 대상이 특정돼있기보다는 스쳐 지나가는 주변 광경에서 느껴지는 생명력을 포착하고자 한다. <살아있는> 시리즈는 이미 죽은 것을 소생시키는 것이 아닌 일상의 모든 것을 담아내려는 일본 사진 특유의 경향이 드러난다. 일본에서 유학한 고정남의 <여름방학_여행에서 만난 풍경>, <진달래> 작업에서도 일상에서 마주한 인상들로부터 무언의 적절한 순간을 발견하는 앞선 작업의 속성이 드러난다. 이와 달리 스톤김은 서울 성북구의 동네 모습을 통해 일반적인 고향의 정서를 담아낸다. <두부 사러 가던 길>은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파랗고 빨간 지붕의 집들, 이불이 펼쳐져 있는 좁은 골목길 등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고요함을 연상케 한다. 이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우리가 잃어버린 일상 공간에 대한 그리움도 자연스레 겹쳐진다.
사진은 이러한 일상의 범위로부터 확장하여 규모의 환경에서도 유동하는 이미지로서 충실히 매개 역할을 수행한다. 서민규는 개발 이슈에 둘러싸인 자신의 고향 모습을 보존하기 위한 방식으로 사진을 택했다. <홈타운>은 휘어진 공간에 손바닥 크기의 사진 17점을 일렬로 나열시키면서 작가 개인의 입장에서 어찌할 수 없는 정책-경제적 논리를 은유한다. 또한 낮게 설정된 아이레벨은 거대 존재로 인해 조만간 사라질 장면에 대한 아련함을 유발한다. 이와 달리 캐서린 오피는 대자연의 풍경에 집중하는 전략을 취한다. <Landscape> 시리즈는 파노라마로 펼쳐진 자연의 일부를 프레이밍하며 맥락을 분절시킨다. 그는 인위적으로 초점을 흐리고, 잘라내는 과정을 통해 애써 섭리를 굴복시키려는 시도를 전개한다. 이를 통해 사진은 실재로부터 비실재의 영역을 포괄하는 연속적인 이미지로서 기능함을 유추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진공상태에서 느껴지는 사진 특유의 고요함에 천착하기보다는 지금의 현실을 환기하면서 찰나 그 너머의 차원에서 드러나는 사진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장이 됐다. 개인은 사진이 지닌 확대와 축소의 화술을 기반으로 하여 작가가 발견한 시공의 틈새를 자신의 삶 속에 한 장면으로 재배치한다. 이에 우리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서 쉽게 지나쳤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아주 익숙하면서도 낯선 어제와 공명한다. 인간은 사진으로 하여금 현재를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도록 순간의 소유를 욕망해왔다. 그러나 기억은 시간에 의해 흐려진다. 게다가 나날이 섬세해지는 기술력은 재빠르게 기억을 붙잡거나 조작하며 이미지의 가치 진위를 뒤바꾸고 있다. 전시영의 스마트폰 작업을 축제 서두에 내놓은 이번 전시는 미미한 존재를 유의미한 것으로 일상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언급한다. 동시에 이는 우리에게 사진 그 자체에서 빠져나와 우리 각자의 삶 속으로 더욱 파고들어갈 수 있도록 확장을 은유했다. 이렇듯 사진은 마법적인 기억술(記憶術)을 통해 ‘사진적이지 않은 순간’들을 소환하면서, 그것을 더 보고싶은 인간의 정서를 끊임없이 환기하는 이미지 간 상호작용체로 끊임없이 작동할 것이다.
참조
*『이미지의 삶과 죽음』, 레지스 드브레, 정진국 옮김, 글항아리, p.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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