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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찬희 Sep 25. 2024

작가 인터뷰 - 에스맴맴

"좋은 날 다시 만나요."

"인생 후반전, 그림 그리는 기쁨을 나누고 싶어요."

인생의 전반전을 무사히 마치고 후반전을 시작하는 한 사람이 있다. 30년간 한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기에 좀 쉴 법도 한데, 쉽사리 쉬지 못하고 무언가를 하려 자꾸 애를 쓴다. 엄마의 마음이기 때문일까.

어린 시절 꽃피우지 못한 미술이라는 꿈을 다시 한번 피워보기로 한다. 꺾었던 붓을 30년 만에 다시 들고 어엿한 작가가 된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드로잉 클래스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공방에서 두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다.


『 잊고 있던 꿈을 다시 꾸다. 』

-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저는 늦깎이 일러스트레이터 에스맴맴입니다. 미사에서 조그마한 공방을 하고 있고 디지털 드로잉, 오일 파스텔, 그밖에 많은 재료로 클래스 운영을 하고 있어요."


- 늦깎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 저는 워커힐 파라다이스 카지노에서 27년 근무하고 2022년 1월 희망퇴직을 했어요. 3개월은 너무 좋더라고요. 전 3교대 했거든요. 근데 그걸 안 해. 그냥 자도 돼. 늦게 자도 되고 새벽에 안 일어나도 되고 이거 너무 좋은 거예요.

사소한 그런 일상들이 3개월 지나고 나니까 다시 돌아갈곳이 없다는 사실에 상실감은 커지고 금세 우울해지더라고요. 그러던 어느날 우리 아이가 "엄마 퇴직해서 난 너무 좋은데 엄마 그럴 거면 왜 그만뒀어? 이렇게 우울하게 집에 있을 거면?" 아이의 그 말에 딱 정신 차렸죠. 안 되겠다. 뭐 하지? 하다가, 우리 애가 포켓몬 캐릭터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애가 내 의뢰인이다 생각하고 등교를 할 때 "고객님 오늘 뭐 그려드릴까요?" 이러면은 "꼬부기 그려줘, 뭐 그려줘" 막 부탁을 해요. 그럼 막 그려주죠. 그걸 가지고 애가 너무 행복해하고. 그걸 또 학교 가서 자랑을 하니까 반 아이들이 "나도 갖고 싶다." 이러면서 의뢰인이 늘어났어요. 되게 행복한 거예요. 그렇게 조금씩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되었어요. 원래 제가 디자인 전공이니깐 뭔가 30년 동안 잊고 살았던 저 가슴 깊숙한 곳에 드로잉에 대한 열정 그런 게 남아있었죠."

- 초기 그림에는 색연필을 사용한 그림이 주를 이루고 있어요. 옛날에 그림 그리던 습관이 남아있는 걸까요? 그 후엔 아크릴, 오일파스텔 등 재료가 다양하게 변화하기도 합니다.

" 집에서 그림을 그리니까 처음엔 간편한 재료를 쓴 거예요. 색연필은 밀도감을 높이 쌓아야 되는 작업이거든요. 굉장히 힘을 줘서 그리다 보니까 관절에도 무리 오고 손가락 마디가 아프더라고요. 제가 나이가 있잖아요. 자꾸 아파요. 그래서 색연필은 힘든 것 같아서 뭘 쓰지 하다가, 아크릴을 한번 해볼까? 아크릴이 다 좋은데 물도 떠와야 되지 붓도 빨아야 되지 물감도 짜야 되지 뭔가 번잡해요 집에서 하기가. 그래서 그것도 포기. 재료에 대한 탐구를 진짜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오일 파스텔을 한번 해봤는데 잘 맞는 거예요. 일단 간편해요. 크레파스지만 오일 함유량이 높아서 칠해보면 뭔가 유화 같은 느낌도 주고 내 실력보다 돋보이게 해줘요. 너무 매력이 있는 거예요. 이거 괜찮다 싶어서 오일파스텔을 집중적으로 이제 매일매일 그렸죠.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이 놀러 왔다가 깜짝 놀라는 거예요. "언니 이렇게 그림 잘 그리면 인스타그램 그림 계정을 하나 만들어서 세상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하고 그림으로 소통을 해봐." 처음에 또 소심해서 비공개로 아는 지인들하고만 공유했는데  지인들은 되게 신기한 거죠. "이 언니가 30년 동안 카지노에서 우리랑 똑같이 일하던 사람인데 갑자기 그림을 이렇게 막 잘 그려" 이러면서 칭찬을 많이 해줬어요."

- 기본적으로 식물이 많이 등장해요. 강아지 그림도 많이 보이고요. 지인들의 프로필 사진을 그려주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것들을 그림으로 표현을 하고 있어요. 작가님이 그림을 그리는 방향성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나는 그림을 통해 이런 걸 표현하고 싶다. 추구하는 방향이 어떻게 되시나요?

" 퇴직 후에 잠깐 우울증이 왔어요. 그림을 그리면서 나도 모르게 치유가 되는 거예요. 깜짝 놀랐죠. 컬러가 주는 힘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크구나. 아주 사소한 일인데 지인들을 그려주니까 너무 고마워하고 너무 감사해하고 그걸 보는 또 기쁨이 큰 거예요. 드로잉으로 인해 치유가 되는 걸 사람들에게 알리고 함께 하고 싶다.

결국은 나눔이죠. 그림을 보는 그 자체의 즐거움과 본인 스스로가 드로잉을 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 그 당시 그렸던 그림 중 하나인데요. 이 그림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라 설명 부탁드릴게요.

" 직장 다닐땐 바빠서 몰랐는데 퇴직하고 집에 계속 있다보니 집안을 구석구석 관찰하게 되었어요. 이 그림은 안방에 걸려있는 그림을 보고 그린 건데, 저 안에 뭔가 그냥 강아지들이 숨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강아지를 키워서인지 모든 게 다 강아지랑 연결이 되더라고요. 저 안에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자기들끼리 바깥세상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 2022년 5월 게시글이에요. 서울일러스트코리아를 구경하면서 내년에는 도전해 볼 용기가 조금은 생긴다라고 하셨는데 어떤 느낌을 받았던 걸까요?

" 30년 전에는 미술을 하기 위해서는 좀 돈이 많이 필요했어요. 화가의 길을 가려면 개인전도 몇 번 해야 되고 유학도 갔다 오면 좋고 그랬는데 저는 형편이 어려웠어요. 20대에 좀 두려움이 없잖아요. 그래 나는 형편이 안 되니 못하네. 그럼 안 해. 붓을 꺾은 거죠. 좋아했던 그림을 포기하고 워커힐 카지노 딜러로 입사했어요.

카지노에서 일을 하면서는 아예 그림을 그려 본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런 건 있었죠. 전시회를 자주 다녔는데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을 보면 언젠가 한번은 그려보고 싶다. 문득문득 그런 생각은 했던 것 같아요.

비공개 인스타 계정에 그림이 하나씩 늘어갈수록 지인들 말고 나를 모르는 제3자 대중에게 평가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방법을 찾던 중 일러스트페어를 알게 되었고, 작가들의 등용문이라는데에 호기심이 생겨서 후배와 함께 구경을 갔어요. 2022년 5월 서일코를 처음으로 가보았죠.

가보니까 계급장 다 떼고, 성별 궁금해하지 않아, 나이, 학벌 무관. 오로지 그림으로만 봐주는 거예요. 깜짝 놀란 거예요. 30년 전에 그렇지 않았거든요.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다고? 나도 그럼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이런 느낌을 받았죠."

- 서일코에 다녀오고 나서부터 토리 그림이 많이 올라오기 시작을 합니다. 페어를 둘러보니 뭔가 영감을 받은 걸까요? 강아지 그림으로 가자는 방향을 정한 걸까요?

" 방향은 없었던 것 같고요. 강아지를 키우다가 몇번을 하늘나라로 보냈어요. 다시는 강아지를 안 키우려고 했어요. 그 슬픔이 진짜 지워지지 않거든요. 그래서 오래도록 안 키우다가, 우리 아이가 외동인데 남자아이 치고는 감수성이 좀 있어요. 외롭다고 맨날 그러는 거예요. 아이 때문에 다시 한번 강아지를 키워보자는 용기를 낸 거고, 지금 우리 토리를 그림으로 많이 남기고 싶었던 거죠."

- 22년 7월. 드디어 토리와 명화가 합쳐진 그림이 등장을 합니다. 너무 갑자기 새로운 장르로 발전이 됐어요. 어떻게 명화와 연결을 할 생각을 하셨을까요? 탄생 과정이 궁금합니다.

" 저만의 그림체도 있어야 될 것 같고, 주제가 있어야 될 것 같은 생각이 계속 있었는데, 어느 날 토리에게서 이 표정이 한번 보였어요. 표정을 보는 순간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그려봤는데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오마주에 대한 걸 좀 본격적으로 해볼까 싶었어요. 우리 토리를 주인공으로 한번 해보자.

20대 초반에 예술의 전당에서 고흐 특별전을 한 적이 있었어요. 우연히 갔다가 '생트마리드라메르의 바다풍경'이라는 고흐의 파도그림을 보았어요. 액자 프레임은 창문이 되고 창밖은 푸른 바다가 펼쳐진 듯한 느낌. 고흐의 작품에 완전 매료됬죠. 고흐의 모든 전시와 그의 대한 서적을 보고 또 보았어요. 그러다가 꿈이 생긴 거죠. 정년퇴직을 하면 꼭 한번 아를에 가봐야겠다. 고흐의 유명한 작품들이 탄생했던 프랑스 아를. 이제 퇴직을 해서 가야 되는데 가고 싶어도 갈 수 있는 게 아니던데요. 살림하랴 아이 키우랴 현실은 그렇지 못했죠. 나는 이게 큰 소망 중의 하나였는데 형편이 또 안 되는구나. 토리야 네가 대신 아를로 가라. 그래서 고흐 그림에 토리를 하나씩 넣게 된 거죠. 혼자 상상을 하는 거죠. 토리가 아를로 여행을 가는 스토리를."

- 2022년은 퇴직도 하셨고 새로운 길을 찾기도 했는데 22년은 작가님께 어떤 한 해였나요?

" 퇴직 후 처음에는 내가 그냥 좀 버틸 걸 그랬나? 후회도 남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림을 그리고 몰입을 하면서 차츰차츰 후회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었고, 또 보내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나의 모든 어린 시절이 그 안에 다 있잖아요. 30년 가까이 회사생활하면서 힘든시절도 많았지만 우리 엄마도 잘 모실 수 있었고,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고 참 좋았다. 파라다이스 안에 있어서 행복했다. 아련하고 좋았던 그 기억 때문에 미련이 많이 남았었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잘 보내줄 수 있는 좋은 이별을 했다. 이렇게 말하면 좋을 것 같아요."



『 그림의 즐거움을 나누다. 』

- 좋네요. 이제 23년으로 오게 됩니다. 23년 1월 글인데요. "이 나이에 현대 문명 따라가는 게 쉽지 않네"라는 멘트와 함께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 페어에 갔더니 디지털 드로잉을 많이 하더라고요.  디지털 드로잉이 도대체 뭐야? 검색을 했죠. 아이패드로 그리는 거래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그리기 시작했죠. 저는 아직도 기술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그 부분을 채우기 위해선 끊임없이 노력하는 방법밖에는 없겠죠."

- 드디어 일러스트 페어에 참여를 하게 됩니다. 첫 참여임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었는데요. 첫 페어의 기억이 궁금합니다.

" 지금도 그때의 감사함과 감동을 잊을수가 없어요. 부산을 첫 시작으로 한 이유는, 지인들이 없는 곳을 원했어요.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했어요. 나를 아예 모르는 곳은 어딜까. 서울에서 가장 떨어진 곳이 어딜까. 그래서 부산에 신청을 한 거죠. 지인들한테 신세 지기도 싫어서 조용히 몰래 가자 했는데도 부산까지 응원와준 친구들도 많았어요.

페어 날에는 주변 작가님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너무 낯설고 어떻게 말을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서비스업에서 고객 응대를 30년이나 했는데도 뭔가 다른 거예요. 그런데 한 분 두 분 보시면서 너무 재밌다, 아이디어가 너무 좋다, 색감이 좋다, 칭찬을 막 듣기 시작하니까 기분이 너무 좋은 거예요. 아 이렇게 칭찬해 주신다고? 이러면서. 정말 감사하게도 거기 걸었던 그림을 다 팔고 왔어요."

- 페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오일 파스텔 원데이 클래스를 오픈합니다. 원래 하시던 건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시작을 하셨나요?

" 페어를 마치고 주변에서 오일파스텔 클래스 문의가 들어왔어요. 운좋게 지인 작가님 찬스로 그분의 작업실에서 클래스를 오픈하게 되었어요. 드로잉의 즐거움을 나누고 싶은 꿈에 한발 다가서게 된거죠."

-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스튜디오를 오픈하게 됩니다.

" 클래스를 하려면 장소가 필요하니 공방을 오픈을 했죠. 우리 신랑이 엄청 반대했어요. "이게 된다는 보장이 없는데 왜 굳이 돈을 쓰면서 하냐. 이거 사업이야." 제가 뭣도 모르고 밀어붙였죠.

주위에서 사람들이 아니 어떻게 이렇게 빨리 진행이 될 수가 있어요?라고 묻는데, 이유는 의외로 되게 간단하거든요. 제가 5호선 4번 출구 아닙니까. 여기서 머뭇거리면은 6호선 타야 돼요. 그때 가면 뭘 할 수 있겠어요. 물론 그때도 저는 뭔가를 하고 있겠지만 지금보다 자신감은 많이 떨어질 것 같아요.

결정적으로 정말 이렇게 추진하게 된 포인트는 우리 엄마한테 말을 해봤죠. "엄마 나 사실은 이렇게 돼서 공방을 오픈하고 싶은데 돈 낭비지? 내가 이제 와서 뭘 이걸 한다고 해~" 라고 하니까, 엄마가 이러는 거예요. "해라. 너 집 팔아서 그거 애 줄 생각하지 말고 너 다 쓰고 죽어. 팔순이 돼 보니까 못한 거에 대한 아쉬움만 남는다. 그 아쉬움을 너는 갖지 마라." 그래서 오픈을 하기로 결심을 했죠. 가장 마음에 드는 이곳을 덜컥 계약을 했어요."

- 아이패드 드로잉 클래스도 하고 계셔요. 아이패드를 사용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가르칠 수가 있는 건지 참 놀랍습니다.

" 저는 앞으로 시간이 많지 않잖아요. 그래서 뭘 배우면 하루 종일 해요. 그림도 그렇고 패드도 그렇고 이게 기술이잖아요. 한번 해서 알 것 같지만 며칠 있으면 또 다 잊혀져요. 연식이 있다 보니까 남들보다 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손에 안 붙는 거죠. 거의 뭐 살림을 놓다시피 그림만 계속 그렸어요. 그리면서 저 나름대로 쉽고 즐겁게 배울 수 있는 노하우가 생겨났죠.

저는 아이 엄마잖아요. 디지털 세대인 우리 아이들이 배우면 너무 좋을 것 같았어요. 패드로 유투브만 보지 말고 유익하게 활용할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죠. 작년 오픈 하고는 수강생분들이 몇 명 없었어요. 그런데, 올해 여름방학을 기점으로 수강생분들이 많이 늘어났어요. 여름방학 동안 학생들이 시간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었고, 그만큼 iPad 드로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거겠죠. 또한, 디지털 아트의 접근성이 높아지고, 여러 소셜 미디어에서 디지털 드로잉에 대한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수요가 증가된것 같아요."

- 22년은 그림을 시작한 해였다면, 23년은 많은 발전을 이뤄낸 해가 아니었나 싶어요. 2023년 어떠셨나요?

" 제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실천을 하게 된 거잖아요. 손그림을 디지털화 시키고, 일러스트 페어에 참가도하고, 공방도 오픈을 한... 많은 것을 한 해죠.

2022년은 시작의 해였다면, 2023년은 실천의 해라고 말하고 싶어요."


『 어엿한 작가로 자리매김하다. 』

- 이제 2024년이 시작이 되는데요. 본격적으로 페어에 좀 많이 나가기 시작합니다.
대구일러스트코리아
서울일러스트코리아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
부천일러스트레이션페어
수원일러스트코리아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이제는 어엿하게 페어에 참여할 수 있는 작가님이 되었어요. 작가님에게 페어는 어떤 의미인가요?

" 이 많은 걸 처음에 신청했던 이유는 1년 동안 흐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모든 페어를 한번 느껴보고 싶었어요. 도시마다 분위기는 어떨까 하는 호기심도 있었죠.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는데. 페어에 방문해 주시고 구매해 주시는 분들은 제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잖아요. 꼭 칭찬을 해주시죠. 충전이 돼요. 진짜 충전이 돼요."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 부일페가 기억이 남는데, 부천 현대백화점은 서일페에 나갔기 때문에 연결됐던 거예요. 관계자분들이 오셨다가 제 그림을 보고 메일을 주셨더라고요. 소수 정예로 20분 정도 팝업을 했었는데, 약간 페어하고는 좀 다른 느낌이었죠. 이분들은 백화점에 오신 분들이잖아요. "이게 뭐예요?" 하면서 오시더라고요. 페어 같은 경우는 목적을 갖고 오시잖아요. 그림을 보고 뭘 살려고 오시지만 백화점은 불특정 다수, 밥 먹으러 식사하러 오시거나 쇼핑하러 오신 분들이거든요. 제가 영업부 출신이잖아요. 저기 앞에 나가서 설명을 했죠. "저희 다 작가들인데 직접 나와서 그림도 선보이고 굿즈도 판매하고 있으니까 한번 보고 가셔요~" 몸에 배 있으니까 낯선 분들 봐도 아무렇지가 않거든요. 정말 우리는 모르는 분들이 좋아해 주셨어서 참 기억에 많이 남아있죠.

올해 12월에 열릴 서일페는 진짜 놓치기 아까웠어요. 우리 애 때문에 포기했어요. 공방일과 각종 전시와 페어로 아이와 많이 놀아주질 못했어요.

"엄마 12월에 나랑 스키장 가줄 수 있어?" 12월에는 엄마가 집에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럼 그때까지 자기 삶을 열심히 살고 있겠대요. 그 한마디에 12월 서일페를 과감히 보냈습니다."

- 이건 제가 작가님을 처음 뵀던 곳이예요. 다른 작가님과 함께하는 클래스인데요. 앞으로도 콜라보 클래스를 할 생각이 있으신가요?

" 저는 이런 생각을 왜 했냐면은 제가 지금 클래스를 계속하잖아요. 오셨을 때 다른 그림도 좀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물론 제 그림을 좋아하셔서 와주시는 거 너무 감사한 일인데 이왕이면 오셨을 때 다른 작가님도 만나고 하면 더 배울 게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걸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이때는 연진 작가님이랑 아니까 이렇게 했지만, 2명 이상 3명 4명도 다 같이 하는 그런 생각을 또 갖고 있죠."

- 가장 최근 근황입니다. 지금 작가님 그림을 볼 수 있는 단체전이죠. 압구정 빈칸 단체 전시에 참여하고 있는데, 전시는 페어랑은 조금 느낌이 다를 것 같아요.

" 단체전이라는 건 이제 함께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게, 물론 그림은 혼자만의 작업이긴 한데 여러 페어도 나가보셔 아시겠지만 여러 작가님이 있으면 그 시너지가 엄청 커지는 거예요. 와서 한 그림만 보는 것보다 여러 그림 봐서 좋잖아요. 다른 작가님들 그림이랑 어우러질 수 있고. 그래서 저는 단체전이 중요하다 생각하거든요. 요번에 일렁일러닷R 이라는 컨셉이 좀 약간 밝고 경쾌한 그런 느낌이거든요. 제 그림이 어울리는 것 같아 흔쾌히 하겠다 했죠."


『 인생 후반전. 』

- 인생의 후반전, 삶의 여정을 아름답게 채워나가고 싶어요. 제겐 아직도 물이 반이나 남았으니까요. 참 인상깊은 말씀입니다.

" 이 그림이 딱 그냥 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00세 시대잖아요. 지금 딱 50이니까 몇 살까지 살진 모르지만 반이라고 생각했을 때, 난 퇴직도 했고 다 끝났고 이렇게 생각을 저는 안 했거든요. 그냥 1막이 이제 끝났고, 1막은 아름답게 잘 보내주고 이제 좀 두렵기는 하지만 좀 설레는 마음으로 2막을 한번 멋지게 살아보자. 그렇게 마음먹게 된 게 계기에는 우리 아이가 제일 컸고 아이한테 물려줄 게 없거든요. 우리 애한테 줄 게 없어, 하지만 그런 기억은 남겨주고 싶어요. 우리 엄마가 우리 아빠가 그래도 성실하게 인생을 잘 살다 가셨다."


- 퇴직 후에 원래 이렇게 바쁘게 살아갈 생각이셨나요? 아니면은 좀 쉬자 이런 생각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이런 삶을 살고 계신 건가요?

" 저는 무계획형이에요. 사실 약간 등 떠밀려서 나왔잖아요. 제 자의로 나온 게 아니에요. 희망퇴직을 권고를 받았기 때문에 그냥 그래 이쯤에서 물러나자라고 해서 나와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어요. 근데 그 아쉬움은 상실감으로 가고 그 상실감이 우울감으로 가서 아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각성하고...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찾은 거죠. 근데 꿈이 뭔지 어떻게 알아요. 모르죠 살아보지 않았고 막연히 꿈꾸는 건데.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아요. 미래의 일은 나 자신조차도 모르기 때문에 하루하루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다 보면은 조금씩 조끔씩 알게 되어가는 것 같아요. 이왕이면 잘살다 가면 좋잖아요. 한 번뿐인 인생이니까요."

- 마지막 질문입니다. 현재 작가님은 그림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클래스를 진행하는 강사로도 활동을 하고 있죠.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큰가요? 아니면 퀄리티있는 클래스를 진행하는 강사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더 큰가요?

" 그러니까요? 이게 양날의 검인데 둘 다 완벽하게는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저는 그냥 지금 만족해요. "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에요. 이런 그림을 배워보실래요? 그리면서 굉장히 즐겁고 재미있습니다." 이거거든요. 막 그렇게 크게 그런 게 막 훌륭한 사람은 될 수도 없지만, 지금 이대로 둘 다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에스맴맴 작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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