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학원을 마치고 집을 향하는 마을버스 안. 집까지 10분 정도면 도착하지만, 사범님의 혹독한 수련으로 온몸이 후들거려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그 순간, 한 노인이 나를 가리키며 하는 말.
"저기 앉아, 영감."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앉아 있는 자리를 두고 마치 빈자리인 것처럼 손가락질을 하는 그 행동에 당황했고,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다가오는 영감님에 한 번 더 당황했다. 어쩔 줄 몰라하는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영감님은 당장 비키라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었고, 나는 우물쭈물하며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제 자리인데요."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린 나이였고,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모두가 나를 나쁜 아이로 볼 것 같았다. 노인에게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옳은 행동이라고 학교에서 배웠으니까. 하지만 나는 억울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 누구보다도 약한 존재였다. 혼자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초등학생. 키도 작고 목소리도 작은 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쫓겨나는 건 늘 나였다.
노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들의 이기심은 정당화되고 있다. 단지 버스 자리 하나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은 늘 어른을 공경하라고 가르친다. 노인을 먼저 모셔라, 배려해라, 양보해라. 하지만 정작 그들이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한 질문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배려를 강요받은 쪽은 언제나 나였고, 그 예의를 지켜야 할 어른들은 당연함 속에 숨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된 나는, 나이 든 사람을 특별히 배려하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노인이 앞에 서 있어도 무조건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을 보는 순간 어릴 적 그 기억이 떠오르니까.
사람들은 말한다.
"너무 각박하게 살지 마라."
"어른을 공경하라."
하지만 나는 그런 말들에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상처받았던 과거를 모르는 누군가의 충고일 뿐이지 않나. 내가 어떤 이유로 지금의 성격과 태도를 갖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고, 다짜고짜 도덕을 들이밀 뿐이다.
물론 모든 노인이 그렇진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지하철에서 웃으며 말 건네는 분도 있었고, 손주처럼 다정하게 대해주는 어르신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경계한다. 어린 시절의 내가 느꼈던 감정이 너무도 선명해서 쉽게 지우거나 넘길 수가 없다. 상처는 대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남으니까.
이런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느낀다. 나는 배려심 깊은 사람은 아니다. 억지로 착한 척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때때로 그것을 '차갑다', '무심하다'라고 표현하는데, 나는 그런 내가 싫지 않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어디서부터 이런 마음이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이런 나를 나는 숨기지 않는다.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