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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주 Mar 26. 2022

'어른'으로 가는 달콤 쌉싸름한 길

고양이를 부탁해(2001)

 영화의 제목은 중요하다. 제목에서 영화의 내용과 주제를 함축적으로 담기도 하고, 제목이 눈에 들어오는지에 따라 관객 수가 달라지기도 한다. 이 영화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몽글몽글하고 달달한 제목이라고 느꼈다. 그리고는 다른 영화들처럼 고양이에 관한 사연으로 이루어진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양이는 영화 내용과는 별 관련이 없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동물 이야기를 기대하고 봤다면 조금은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단언컨대, 두고두고 꺼내보고 싶은 영화다. 이 영화를 소개받은 것은 여러 해 전이었다. 이제 막 영화 쪽으로 진로를 정했을 때였다. 글을 쓰면서 인상 깊은 모놀로그를 찾다가 그때 누군가 결이 어울릴 것 같다며 한 독백을 내게 추천해주었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포스터
  “내가 있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이사도 못 가고……. 그래도 나 하나만 바라보면서……. 내가 너무 싫어요. 나만 살았다는 게 너무 죄스러워요……. 할머니한테 매일 소리 지르고 짜증내고… 다 죽고 차라리 고아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고아가 되었는데 기분이 좋지 않아요. 하루에 열 번도 더 할머니 할아버지가 빨리 죽게 해 달라고 빌었는데… 내가 죽인 거예요…….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中 지영     


 대사만 들어도 마음이 아려왔다. 이 아이가 겪은 일이 대체 무엇이길래, 궁금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영화를 찾아봐야만 했다. 하지만 정석적인 방법으로 영화를 찾아보는 일은 불가능했다. 나중에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할 때가 돼서야 제대로 영화관에서 볼 수 있었다. 이제야 안 얘기지만, 이 영화는 필름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한국 영상자료원에서 한국 영화 100편을 선정하여 필름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디지털 라이징하였다는데, 이유를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그 100선 안에 들지 못했다. 이 영화가 청년세대와 노동에 관하여 던진 화두가 현재까지도 논의되고 있고, 평론적으로도 호평을 받은 점을 고려하였을 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그러나 작년에 드디어 디지털화되어 재개봉하였다!)

 

 성 감독들이 한 해에 기껏 해서 1명 정도 등장하던 이 시기, 개봉했던 영화들로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라이방>, <꽃섬>, <고양이를 부탁해>가 있다. 사실 이 영화는 2000년대 초반인 개봉 당시에는 관객들로부터 그리 환영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98년도부터 멀티 플렉스 영화관이 자리 잡았는데 이 영화로 인하여 재개봉을 요구하는 관객 운동이 처음으로 생기게 되었다. 이를 이른바 '와라 나고'(와이키키 브라더스, 라이방, 나비, 고양이를 부탁해) 운동이라고 한다.  


 이 영화가 당시에는 덜 주목받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를 더해가는 이유는 한국 여성 감독 영화의 역사이자 원류가 되는 영화 중 하나라는 위와 같은 이유도 크다. 거기다가 비교적 최근의 영화들인 <소공녀>, <리틀 포레스트> 등의 영화들에서도 조금씩 드러나는 청년세대의 고민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를 이 영화에서는 심지어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20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드라마는 그때도 지금도 많다. 하지만 부모에 대한 반항, 성적인 것에 대한 호기심, 사랑 이야기 외에 진로와 인간관계에 관해서 이제 막 아이에서 성인에 들어선 여자아이들의 깊은 고민을 담은 영화는 흔치 않았다.


 이러한 점 외에도 영화를 보면 산업이 IMF 이후의 도시 속에 어떻게 집약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월미도, 동대문의 장소성과 역사성이 두드러지게 나온다. 월미도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동대문의 의류산업 관련 노동자들은 거리를 활보한다. 당시는 단기 비정규직이 지금처럼 다양한 형태로 세분화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청년 노동의 주요 형태인 아르바이트, 즉 비정규직은 일상생활 속에서 광범위하게 촘촘히 자리 잡고 있다.   

   

 여상을 졸업한 혜주는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으나 본인의 의욕과는 달리, 잔심부름 위주의 일을 한다. 그나마도 혜주를 제외한 캐릭터들은 소위 말하는 월급 받는 ‘제대로 된 일’을 가지지 못한 상태로 설정돼있다. 혜주는 취업에 대한 확실한 보장 때문에 여상에 갔으나 그곳에서 거의 유일하게 취업한 인물이다. 지영이와 태희를 비롯한 친구들에게 그는 늘 가르치는 말투로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그렇다며 철없는 사람 취급을 한다. 정이 안 가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태희는 어떻게 보면 가장 낭만적인 캐릭터다. 모든 것에 대해 일차적으로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뇌성마비 시인 친구의 편지를 타이핑하고 길가를 떠돌아다니는 거지를 보며 자유롭게 산다고 하면서 모험을 떠나는 것을 꿈꾼다. 반면, 지영이에게 일과 직업은 꿈이 아닌 생존의 문제이다. 그에게 유일한 가족은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다. 지영이의 무너져가는 집은 디자인에 재능이 있어도 그것을 직업으로 갖는다는 것은 사치에 불과한 소외된 젊은 세대의 빈곤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태희는 친구들의 연락 담당이며 모두를 따스하게 이어주는 역할을 하면서도 가부장적인 집안에서는 반기를 드는 용기 있고 흥미로운 인물이다. 규격화된 현실을 벗어나는 삶을 꿈꾸는 태희 캐릭터가 개봉 당시엔 인기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위와 같은 독백을 하며 모든 의지를 잃고 자책하는 지영이에게

 “나는 네가 도끼로 사람을 찍어 죽였다 그래도 네 편이야.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나 너 믿어.”

라는 말을 하는 이 인물을 어떻게 싫어할 수가 있을까.      


 하지만 어떻게 최소한의 노동을 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면서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가 화두로 떠오르는 지금, 지영이와 혜주의 캐릭터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10대 후반과, 20대와 30대 40대 등 시기별로 이 영화를 다시 볼 때마다 드는 느낌이 다른 이유도 이 인물들에 대한 관점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얌체같이 친구들을 대하는 혜주가 결코 긍정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그도 어떻게 보면 이혼가정에 ‘여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대졸자들 틈에서 ‘저부가가치’의 인간이 되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 마음의 상처를 가리고 아등바등하는 친구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보호자가 사라져 이제는 갈 곳이 없는 지영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했기에 보육원에 들어갈 수도 없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조차 없는 사회에 내던져졌다. 이 친구들에게 왜 모험을 찾아 ‘외국’이라는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씩씩한 태희처럼 행동하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 속에 고양이가 등장하기는 한다. 고양이는 지영이에게서 혜주에게, 그리고 혜주에게서 다시 지영이에게, 태희에게서 비류와 온조에게로 옮겨 다닌다. 돌보기 귀찮아서, 고양이를 키울 상황이 안돼서 등의 이유는 자기 자신 외에 누군가를 돌보기 어려운 우리네 현실과 닿아있다. '고양이'는 이들 각자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애정과 책임감, 돌봄이라고 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순수한 ‘마음’ 일 것이다. ‘고양이’는 다시 친구들과의 기억을 떠올린 혜주에게 돌아갈 것이고 태희와 지영이는 비행기를 타고 새로운 시작을 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열린 결말은 이들의 시작을 마음속으로 응원하게 한다.


우리도 각자의 ‘고양이’를 품으며 어른이 되어가는 달콤 쌉싸름한 길을 걷고 있기에.

 

 난 그냥 계속 돌아다니고 싶어. 어떤 곳이든 한 곳에 머물러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답답해. 계속 배를 타고 그 어디서도 멈추지 않고 물처럼 흘러 다니면서 사는 거야. 이렇게 배안에 누워서 지나가는 구름도 보고 책도 읽고.   

(<고양이를 부탁해> 태희의 대사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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