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적어보는 나만의 비전 퀘스트
연말이 되면 생각이 많아진다.
달력이 몇 장 남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소란스러워진다. 하루는 여전히 똑같이 흘러가는데, 한 해는 왜 이렇게 속절없이 빠른 걸까.
어느 순간,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대체 올해 무엇을 이루었지?
그 질문이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면, 일부러 아주 사소한 성취들을 하나씩 적어 내려간다. 끝까지 읽은 책의 제목, 포기하지 않고 써 내려간 글 몇 편, 관계를 함부로 놓아버리지 않았던 날들, 마음이 무너질 뻔한 순간에도 다시 일어나 숨을 고른 기억들. 그렇게 목록을 채우면서 되뇌어 본다.
그래도, 나름 충실하게 살았어.
그 말은 스스로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이자,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연료다.
한 해 동안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세상에는 정말 여러 종류의 인간 군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해가 갈수록 더 실감하게 된다. 가끔은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올해의 나는 다행히도 그 질문을 부정이 아닌 긍정의 의미로 더 많이 떠올릴 수 있었다.
당장은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하고자 하는 일에 열정적이며 성실했고,
자기 몫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해였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관계와 일도 있었다. 해결해야 할 업무와 풀리지 않는 감정들이 엉켜,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릴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 문장을 떠올린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한다.
인간의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쟁이 있지만,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하기 어렵다. 류시화 작가의 삶을 떠올리면 특히 그렇다. 안정적인 직업을 내려놓고 인도로 떠나 명상을 배우며,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다소 기이해 보일 수도 있는 선택들을 해온 사람. 그러나 그는 언제나 ‘자신의 목소리’에 충실했다.
어쩌면 1인 크리에이터와 인플루언서가 넘쳐나는 요즘 시대에는 그런 삶의 방식이 하나의 트렌드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언컨대, 삶에 대한 깊은 통찰로 타인의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지는 ‘테라피스트’ 같은 존재는 여전히 드물다. AI와 로봇이 일상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고, 정년이라는 개념조차 점점 희미해지는 대퇴사의 시대 속에서, 이제 사람들은 남이 정해준 답이 아니라 자신만의 답을 찾으려 한다. 목적지를 향해 걷는 존재, 호모 비아토르로서의 삶이 어느 때보다 주목받는 이유다.
평균 수명을 90세로 가정한다면 인생의 삼분의 일 지점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예전처럼 두렵지는 않다. 천천히 가는 것처럼 보여도, 나중에 돌아보면 그 길이 결국 가장 빠른 지름길이자 유일한 길이었다는 사실을 이미 한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2년 동안 입시와 방황을 반복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아무런 해답도 찾지 못한 채, 단지 성실하게 학업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선택할 자유’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에 아파했다. 집안 사정 때문에 꿈꿔왔던 유학은 물론 성악, 미술, 연극·영화과 같은 예체능 계열은 선택지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때의 방황은 삶에서 결코 불필요한 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절망적인 현실을 견디게 해 준 힘이 되었고, 그 시간을 지나온 이야기에 공감해 주는 독자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류시화 작가는 시인 루미의 말을 인용한다.
너 자신의 신화를 펼쳐라.
나만의 신화는 무엇일까. 진정한 행복을 찾아 자기만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지금의 흐름은 분명 긍정적인 면이 많다. 다만 그 움직임이 자본과 결합될 때, 물질 만능주의나 성과주의라는 또 다른 함정에 빠질 위험도 함께 존재한다. ‘남과 다른 길을 걷는 것’과 ‘사회적으로 빠른 인기와 성공을 얻는 것’은 결코 같은 말이 아니다.
그래서인가, 요즘 이 문장을 마음에 품고 산다.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에서 발견된다는 것.
안전지대를 떠나 나만의 비전 퀘스트를 만드는 중이다. 사회가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기준과 타인의 시선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면서 마주칠 수많은 기쁨의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싶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자신뿐이니까.
그 가슴 뛰는 순간들과,
흔들리면서도 계속해온 노력의 과정을
진솔하게 나누는 일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로,
온기 있는 테라피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연말의 이 조용한 밤에, 다시 한번 이 문장을 마음속에 새긴다.
'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위 글은 제가 진행하는 독서&에세이 클럽 '내일의 문장'의 독후감 겸 에세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