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글을 쓰는 이유
나의 생일은 1월 달이다.
연초가 지나고 딱 일주일 뒤라, 새해의 설렘과 다짐 속에 자연스럽게 묻혀버리는 날이다. 사람들은 아직 새해 인사에 여념이 없고, 막 시작된 일상의 리듬을 찾느라 바쁘다. 학창 시절에는 겨울방학의 한가운데였기에 더욱 조용히 보냈다.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었고, 교실의 북적임도 없었다. 그 고요함 속에서 혼자만의 생일을 맞이하곤 했다. 어릴 적에는 그래도 케이크라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꼭 맛있는 베이커리를 찾아다녔다. 생크림이 부드럽게 발린 케이크, 그 위에 놓인 촛불이 아름답게 빛나는 모습에 행복했다. 생일 하루만큼은 특별하게 기억하고 싶었던 어린 마음이었다. 평범한 겨울날 하루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소박한 바람이기도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생일은 내가 축하받는 날이 아니라,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리는 날이라고. 가족과 함께 소박하게 밥을 먹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일 년을 되돌아보는 날이라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이번 생일도 그렇게 조용히 지나가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생일날, 특별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연출 언니의 작품에 우정 출연을 한 적이 있었다. 짧은 장면이었지만, 언니는 그 작은 도움을 기억하고 계셨다. 언니는 본인의 동료 연출분 두 분을 더 모아 스튜디오에서 사진 촬영을 진행해 주셨다.
"우리 다 초보 사진가들이에요. 기대하지 말고, 사진 못 나오면 쓰지 말아요!"라며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 마음은 무엇보다 큰 선물이었다. 누군가의 시간과 재능, 정성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스튜디오 안은 따뜻했다. 세 분 모두 촬영 스타일이 현저히 달랐다. 화각과 심도, 구도와 감도,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각기 달랐다. 한 분은 조용히 측면에서 나를 관찰하듯 찍으셨고, 다른 분은 정면에서 눈을 마주치며 촬영하셨다. 또 다른 분은 나의 표정 변화를 이끌기 위해 농담을 건네기도 하고, 갑자기 진지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굳어 있던 몸이 서서히 풀리면서, 카메라 앞이 점점 편안해졌다. 어느새 나는 웃고 있었고, 그들도 함께 웃고 있었다. 카메라 셔터 소리 사이로 짧은 대화들이 오갔고, 그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촬영이 끝난 뒤 언니와 동네의 작은 고깃집에 갔다. 사장님은 고기에 대한 큰 자부심을 가지고 계셨다. 원래 양식을 전공했고, 자신의 후배는 미슐랭 스타를 받은 파인다이닝에서 일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주셨다. 그분이 직접 구워주신 고기는 정말 맛있었다. 적당히 구워진 고기에서 육즙이 흘러나왔고,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았다. 언니가 고기를 사주셨다. 나는 미안했지만, 언니는 생일이니까 사주는 거라며 웃었다. 입봉 하기 전의 독립 영화감독들은 대부분 여유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언니 역시 오랜 시간 모은 예적금과 아르바이트비를 깨서, 포트폴리오가 될 독립 영화에 쏟아붓는 중일 것이다. 그럼에도 언니는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마음을 나누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고기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서로의 눈빛을 마주쳤다. 그 순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걸 안 하고 평생 살아갈 수 있을까?
뭐가 될지는 몰라도 가 보자, 끝까지.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어?
예술을 안 하면, 정말 안 될 것 같은 사람들. 미래가 불확실하고, 주변 사람들 모두가 걱정하고 때로는 흔들어도 결코 멈출 수 없는 사람들. 서로 말없이도 그 마음을 이해했다. 우리는 콜라 잔을 부딪치며 따뜻함을 나눴다. 밖은 바람 부는 추운 겨울날이었지만, 앉은자리는 어느 날보다도 따스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바로 이런 순간들 때문이라고. 우리의 삶과 감정, 서로의 열정과 작은 우정을 기록하고, 그것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서. 글과 영화는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삶의 이야기를 붙잡아 타인과 정서를 나누는 진실된 방식이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져도, 순간의 온도와 감각은 글 속에 남아 있다.
그래서 글을 쓴다. 하루 중 스쳐 지나가는 작은 순간들, 마음 깊이 새겨두고 싶은 장면들을 기록하기 위해. 고깃집에서 마주친 눈빛, 스튜디오에서 들린 셔터 소리, 잔이 부딪치던 그 짧은 순간까지. 순간의 감각과 마음을 나만의 언어로 남기기 위해. 그 기록이, 언젠가 나를, 그리고 누군가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리라는 믿음으로.
생일은 그렇게 고요하게 지나갔다.
하지만 이제 안다.
특별함은 요란한 축하 속에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나눈 작은 온기 속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온기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