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합격자입니다

계속 나아가도 될까요

by 조우주
얼마 전 오디션을 봤다.
이상하게도 그즈음부터 집안의 전자기기들이 하나씩 고장 나기 시작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요즈음 그런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글이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혹시 기다려주신 분이 있었다면, 늦게나마 글을 올린다.

아래와 같은 약간의 사정이 있었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꽤 규모가 큰 한 상업영화의
주조연 오디션에서 탈락했다.

얼마 후에는 집안의 전자기기들이 고장이 났다.

10년을 넘게 쓴 전자레인지는 갑자기 작동이 안 되었고

엄마께 드렸던 세컨드 노트북은 느닷없이 액정이 깨졌으며

아끼던 그릇도 어느 날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부서졌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글을 쓰기가 힘들었다.


캐스팅 기사도 많이 나온 영화였다.

회사도 없는 배우가 주조연 오디션을 보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인데,

운 좋게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

오디션장은 친절하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배구 잘하시나 봐요?


"오 나도 리베로 아는데! 가끔 경기도 보러 가요."

"글도 쓰시네요? 전공도 그렇고 혹시 연출은 생각 안 해봤어요?"


나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해하셨다.

그리고 카메라로 정성껏 촬영해 가셨다.

끝나고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하고 나왔다.

대기실에 있던 분들이 조금 놀라셨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다고 느꼈다.


그러나

한 달이 넘게 지난 후에도 연락은 오지 않았고

그렇게 탈락을 곱씹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경력이 오래되신 선배분이 그 역할에 되신 것 같았다.


‘왜 부른 걸까? 경력도, 나이대도 맞지 않는데.’

생각이 밤마다 머리를 맴돌아 잠을 편히 이루기가 어려웠다.

기회를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데

사람 욕심이라는 게 끝이 없는 것 같다.


마음을 비우자,

알아봐 주신 것만으로도

연기를 중간에 끊지 않고 봐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아직까지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그런 순간들은 이번 한 번뿐이 아니었다.


첫 번 째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가,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그 뜨거운 조명의 열기만큼은 아직도 생생한 방송국에서의 기억이다.


어린 시절에 방송국에서 동요 프로그램에 나갔을 때다. 전국에 방송되는 큰 어린이 프로그램이었다. 방송에서는 내 별명을 마음대로 '키다리'라는 자막으로 붙였다. 초등학생치고는 키가 크다고 느꼈나, 겸연쩍었다. 치렁치렁한 공주풍의 드레스를 싫어했기에 깔끔한 원피스를 입고 나름대로 노래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이름은 방송 끝까지 불리지 않았고 대상은 가장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던 아이에게 돌아갔다. 방송이 끝나고 무대에서 펑펑 우는 나를, 한 안경 쓰고 나름대로 까다로워 보이셨던 심사위원분이 어머니처럼 안아주셨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 노래하는 것을 관뒀지만, 정말 너무 잘했다고, 미안하다고 연거푸 말씀하셨던 그분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따스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두 번째 기억은 유명한 특목고를 포기했을 때였다.

초중고를 강남 8 학군에서 다녔다. 중학생 때의 성적이 나름대로 나쁘지 않았던 탓에 특목고를 지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교문에서부터 이어진 선배들의 열띤 응원을 뒤로하고, 영어 듣기 시험을 치는데 도저히 집중이 되질 않았다. 창밖을 보니 첫눈이 내리고 있었지만 다들 시험문제를 푸느라 교실 유리창 밖을 보는 사람은 없었다. 눈을 마음껏 구경하며 시험을 보는 둥 마는 둥 연필을 굴렸다.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정답을 서로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전교 1등, 하나 틀렸다, 그런 말들이 교실을 채우고 있었다.


숨이 막혔다.

빨리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곳은 이곳이 아니었다.

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는 자유로운 일을 하고 싶었다.


시험이 끝나고 바로 영화관에 갔다. 그때 본 '늑대인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관한 영화는 전 세계적인 틴에이저 무비였기에 영화관에서 우는 사람은 없었지만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 이야기가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늑대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었을까?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또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생명을 걸고 지키는 마음은 어떠할지,


마음이 참으로 절절하고 아프게 다가와

울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세 번째 기억은 삼반수를 실패하고 대학을 탈락했을 때이다.

'사수를 해야 하나? 그런데 그 정도로 꼭 이름 있는 대학을 가야 하나?'

'고작 대학교를 가려고 초등학생 때부터 그 모든 교육과정을 거친 걸까?

'나라는 사람을 그런 것으로 정의하는 게 맞는 것일까?'

됐어 이젠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 이젠 족해
내 사투로 내가 늘어놓을래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들어가면 고등학교를 지나 우릴 포장센터로 넘겨 겉보기 좋은 널 만들기 위해 우릴 대학이란 포장지로 멋지게 싸버리지

이젠 생각해 봐 "대학" 본 얼굴은 가린 채 근엄한 척할 시대가 지나버린 건
좀 더 솔직해봐 넌 알 수 있어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있는 그 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 날을 헤맬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서태지, 교실이데아

무려 1994년에 발매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네 번째 트랙 수록곡이자 3집 활동 당시 두 번째 활동곡이다.

이 당시의 모습과 기상시간이 좀 늦춰지고 동아리 활동과 특활시간이 생긴 것 외에는

현재의 교실 모습이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대학에 가려고 했던 이유는

기존 시스템이 가진 한계를 직접 극복하면서 동시에 증명하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어서였다.


개강총회도 끝나고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과의 연락도 모두 끊긴 채

고등학교만 졸업한 채로 살아가야 하나

절망 속에서 고민하던 어느 막바지 겨울날이었다.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고 집안에 터벅터벅 막 들어온 참이었다.


우연히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OOO 씨, 수험번호 OOOO 맞으신가요?"

"네 그런데요."

"합격하셨습니다."

"네?"

"정말 축하드립니다.
마지막 합격자입니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보이스피싱이 아니었다. 정말로 입학사무처였다.

그렇게 나는 얼떨결에 원하던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인생을 아직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이와 같은 극적인 순간들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끝없이 속상했을 때 가장 기쁜 일이 일어났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을 것이다.


그저 나는

나만의 페이지를 쓰며 나아가겠다.

계속 나아가도 될까요, 하고 묻는 마음으로.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남들보다 조금은

느린 것 같아도

살다 보면 선물 같은 하루도 있을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