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은 처음이라서…

by 수다인

2026년 3월 26일. 2026년이 시작된지 3개월이 지났다. 나의 아버지도 돌아가신지 3개월이 넘었다. 작년 12월 중순, 어머니로부터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을 전해 듣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시던 집으로 따릉이를 타고 가던 그 날 오전 11시 넘은 시간은 따릉이를 타기에는 다소 쌀쌀한 날씨였다. 하지만 그날의 바람이 차가웠다는 건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한 참 후에야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오래 사시지는 못할 줄 알았지만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거라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갑자기 유가족이 되어 3일 동안의 장례식을 치루었고 그런 정신없는 1주일이 지나서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던 그 날 아침이 초겨울로서 쌀쌀했던 날이었던 게 기억이 났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사후 처리를 하다 보니 12월이 지나 2025년이 끝났고 년도는 2026년이라는 그 다음 숫자로 넘어가 있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후도 정신이 없었는데 그 사이에 우리 가족에게는 또 다른 사건이 발생했다. 그렇게 한겨울인 1월에 나와 우리 가족은 날씨만큼이나 차가운 현실로 인해 나는 이 겨울이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2월달이 지나갔고 어느 순간 3월이 시작되어 있었다. 2026년도에는 3월 5일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었고 그렇게 절기 상으로는 봄에 도달하였다. 경칩이 지나고도 쌀쌀했던 날씨는 3월 셋째 주가 되니 언제 겨울이었나 싶을 정도로 몰라보게 따뜻해졌다. 아니 이미 둘째 주 주말인 토요일만 해도 부쩍 따듯해진 날씨에 청계천과 한강 공원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겨우내 텅텅 비어 보였던 청계천과 한강 공원이 또 다시 사람들로 채워지니 이제 겨울이 완전히 봄이 되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그 다음 일요일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 전에도 나는 매주 일요일 점시 시간 즈음에 본가에 가곤 했다. 아버지 사후,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사시던 집에 혼자 사신다. 처음에는 내가 어머니 집에 들어가 사는 게 진지하게 논의되었지만 여러 우여곡절 끝에 나는 나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살던대로 살기로 결정이 났다. 그 후로도 매주 일요일마다 부모님 댁에 가는 것처럼 갔지만 지난 일요일만큼은 기분이 달랐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계절은 어쨌든 초겨울이지만 겨울이었고 바로 전 주까지만 해도 봄이라고 해도 날씨는 겨울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추었기 때문이다. 나와 사람들은 여전히 한 겨울에나 입을 패딩이나 겨울 외투를 입고 있었고 집 앞 성북구청 앞의 광장이나 성북천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에는 불과 1주일만에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따뜻해진 날씨에 반응하듯, 사람들은 성북천과 성북구청 앞 마당으로 몰려 나왔고 성북천에는 산책이나 런닝/조깅을 즐기는 사람들로 활력을 띄고 있었다. 성북천을 따라서는 겨울 동안 완전히 메말라 있던 나뭇가지에는 새 순이 돋아났다. 그렇다. 계절은 이제 도저히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봄이 왔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던 겨울은 가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불과 그 전 주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 이질감이 없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계절은 여전히 시기 상으로는, 달력 상으로는 봄이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추웠고 주변의 풍경은 여전히 겨울의 무채색으로 남아 있었고,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오지 않고 실내에 머물렀으니까.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시기와 당시가 단절이 아니라 시기적으로는 여전히 연속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렇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어느 누구라도 겨울이라고 할 수 없을 때가 되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와 지금 현재가 전혀 다른 세상인 것 같았다. 아버지의 죽음은 완전한 과거고, 아버지는 과거 속의 인물이고, 나와 우리 가족은 지금 현재를 사는, 현재의 인물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신지도 100일이 지났으니 아버지의 죽음은 아버지의 죽음이고 산 사람은 산 사람이라지만 불과 100일 전만 하더라도 살아 있던 사람이 죽은 사람이 되어 서로 다른 차원의 존재(?)가 되었고 이 세상에 아버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뭔가 엄청난 미스테리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100여일 전에는 나와 같이 이 세상에, 이 지구 상에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던 한 인물은 100여일이 지난 지금 2026년 3월 22일,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2026년 3월 26일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과연 죽음이란 뭘까? 삶이란 또 뭐고? 100여일 전에만 하더라도 숨이 붙어 있었던 한 사람은 죽고 나서는 어디로 갈까? 죽음 이후의 삶이란 존재하지 않을까? 불교에서는 사람은 죽은지 49일이 지나면 인간이 되었듯, 축생이 되었던, 아수라가 되었든 혹은 귀신이라는 몸을 받고 태어난다는데 그러면 불과 100일 전에는 나의 아버지였던 존재는 과연 이 세상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을까? 반대로, 나는 언제 죽을까? 나는 언제까지 사는 거지? 나는 죽은 후에는 어디로 갈까? 나는 인간의 몸을 받을까? 아니면 축생이나 아수라의 몸을 받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아귀 혹은 무간지옥에 떨어질까? 아니 그걸 다 떠나서 나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까??? 나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나와 아버지의 관계는 평생 좋지 못했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아버지를 싫어했고 내가 좀 더 어렸을 때는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가졌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내가 느끼는 감정이 뭔지 모르겠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나 동정? 연민? 그 어떤 끈끈한 감정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가족, 보다 intimate하게 표현하자면 이 지구 상에 몇 안 되는 혈족인 내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이렇게 일상을 유지한다는 게 과연 도덕적, 윤리적인 걸까? 유가족으로서, 아버지를 잃은 나로서 지금 이렇게 존재하는 게 과연 맞는 걸까? 푸훗... 이렇게 존재하는 게 비 도덕적이고 비 윤리적이고, 이렇게 존재하는 게 틀렸다면? 그러면 뭐 나도 따라 죽는 게 답인가? 그건 아닐 거다. 가족이, 혈족이 죽었다고 나도 따라 죽어야 한다는 건 무슨 고대 시대의 순장제도도 아니고 말도 안 된다는 건 알지만 과연 유족으로서의 애도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살면서 한 번쯤은 유가족이 될 것이다. 부모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거나 혹은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거나 자손을 낳지 않고, 그리고 그들 어느 누구라도 자신보다 먼저 죽는 경우가 아니라면 인간은 살면서 한 번쯤은 유족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거다. 그런데 내가 유가족 당사자가 되는 건 지금과 같은 핵가족 혹은 초핵가족화 된 사회에서는 손에서 꼽을 정도의 경험이다. 하지만 왠만하면 두 번 정도는 경험을 할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존재는 왠만한 사람들은 다 살아 있고, 부모에게 버림을 받지 않고 살아갈테니. 그리고 그 두 분이 자신보다 자연의 확률상으로는 자식인 자신보다 먼저 죽음을 맞이하게 될테니. 하지만 유가족이 된다는 건 예행 연습이라는 게 별로 없다. 아무리 부모 혹은 가족 중 누군가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살아갈 가족이 유가족으로서의 살아가는 데 대한 준비 과정, 교육이라는 건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현대인들은 유가족이라는 걸 막상 그 상황이 되어서 그저 직접 몸으로 부딛혀서 경험해야만 한다. 그리고 막상 유가족이 되더라도 준비했던, 말 그대로 시뮬레이션 상황에서도 완벽하게 대비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실제로 삶에서 죽음이란 누구에게는 딱 한 번 일어날 뿐이고 인간은 죽은 후에는 이를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가족의 죽음을 가정해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자 시뮬레이션을 시물레이션일 뿐이다. 왜냐하면 예행 단계에서는 가족이 죽었다는 가정만할 뿐 아직 해당 가족은 지구 상에서 살아 숨쉬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러한 의미에서 누구나 유가족이 된다면 한 번은 아무리 잘 준비한다고 해도 유가족이 되는 첫 경험은 미흡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한 번 유가족이 된 경험이 있다고 또 다음에 같은 경험을 한다고 해도 그 때는 잘 대응하리랄 보장도 없다. 이번에 죽음을 맞이한 가족은 이전에 죽은 가족과는 다른 사람이니. 내가 그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과 애정의 정도, 나와의 관계, 추억 등등의 micro한 그 모든 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늘 유가족이 처음일 것이다. 내 가족인 A의 죽음은 B의 죽음과 다르기 때문에 나는 A가 사망했을 때는 A의 유가족이었고, B의 사망 때에는 B의 유가족 혹은 A+B의 유가족이 될테니. 결국 우리 모두는 늘 유가족은 처음인 존재들이다. 우리는 늘 새롭게 유가족이 처음이 될 때 과연 세상을 떠난 고인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처/행동하고 그리고 애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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