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사는 우리가 1990년대의 우리보다 더 행복할까?
얼마 전부터 집에 변화를 주고 있다. 이 집에 이사온 지는 5년 정도가 되었지만 당시에 나는 그 전 세입자들이 이사가면서 남겨두었던 것들과 내가 살던 집에서 살던 낡은 가구들을 거의 그대로 가지고 왔다. 당시 나는 새로 이사가는 집에 맞게 새 가구를 살 만한 경제적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전 세입자가 남겨두고 간 책장 책상 세트, 행거, 철제 선반 이런 것들은 마치 이 집의 옵션인냥 그것들이 있었던 자리 그대로 5년 동안 남아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혼자 남으신 어머니의 집에 들어가지 않고 각자 독립적으로 살기로 합의하면서 나는 경제적이 이유 때문이라도 계속해서 이 집에 살 수밖에 없게 되었고 그렇다면 앞으로의 2년이 될지 혹은 4년이 될지 이 집의 만족도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경제적 투자, 그러니까 그 때 쓰지 못한 돈을 써서 책상, 식탁, 책장, 수납장, 옷장 등을 사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집에 관한 내 만족도가 올라 갔냐고? 그건 아직 모른다. 결제를 한지 2주가 지났지만 가구 특성 상인지 아직 절반은 도착을 안 했고, 기다리다 빡친 나는 2주 동안 기다렸으면 기다릴만큼 기다렸다는 판단에 아직 배송조차 하지 않은 것들은 죄다 결제 취소를 했다. 앞으로 나의 경제적 실험의 최종 결과가 도출되는 시간은 예정보다 더 지체될 것 같다.
우선 내가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침실은 오늘 주문한 가구가 도착해서 얼추 정리가 끝났다. 그 전에는 그저 잠자거나 가볍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침실은 거실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었던 CD 플레이어와 CD들을 죄다 옮겨와 침실+toilette+음악 감상실 같은 용도로 바뀌었다. 이미 이번 주부터 기존의 CD 플레이어와 CD들을 옮겨 왔기에 침실은 음악 감상실의 용도가 강화되었다. 그 동안 그저 집을 장식하는 장식품에 불과했던 CD 플레이어와 CD들은 이제 음악 감상이라는 제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기에 나는 즉각 CD로 음악을 듣기를 실행하였다. 어떤 음반을 들어볼까? 생각보다 보유하고 있는 음반의 수가 많지는 않다. 그 전에 많이 갔다 팔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게 고민고민 하던 끝에 음반 하나를 집어 들고 음반을 재생시켰다.
2026년 현재, CD로 음악을 듣는 시대는 지났다. CD는 여전히 생산되고 음반시장에서 유통되지만 음악 산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줄어 들었다. CD를 대체했던 mp3로 음악을 다운 받아서 mp3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던 시기도 2010년대를 끝으로 스마트폰의 보급, 그리고 저렴한 가격의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가 통신사3사와 알뜰폰을 통해 자리 잡음으로서 이제 음악은 데이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스트리밍(streaming)해서 듣는 시대다. 더 이상 mp3 플레이어 혹은 스마트폰 안에 mp3 파일을 다운받거나 집어 넣어서 듣는 것도 지났다. 이렇게 2000년이 시작되고 불과 26년밖에 흐르지 않은 현재지만 음악을 듣는 방식 역시 대단히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이런 현실에서 CD로 음악을 듣는 건 그저 과거의 유물, 갈라파고스화 된 옆 나라의 구시대적인 행동 양식일 뿐이다. 아이돌의 포토 카드 등을 사 모으려는 소수의 팬들을 위해 CD가 발매되고 그마저도 국내 아이돌 그룹의 음반이 아니라면 해외 음악들은 CD를 구해서 듣는 게 더 어려워졌다. 아~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되려나? 2000년 이전 과거에는 정신 라이센스로 국내 음반사를 통해 동네 음반 가게에서 쉽게 음반을 구매할 수 있었던 대중적인 뮤지션들의 음반마저도 이들을 국내판으로 정발을 해주는 중간자, 즉 국내 음반사가 거의 없으니 수입판이 소량으로 유통될 뿐이다. 그게 싫으면 아마존에서 직구하던가.
과거보다 음악을 듣는 통로, 방법 등은 대단히 확장되었고 저렴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알뜰폰 통신사를 통해 저렴한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에 가입하고 유튜브 계정만 가지고 있다면 한국에 사는 누구나 자신이 듣고 싶은 음악,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과 비슷한 장르의 자신이 그 전에는 몰랐던 음악들을 아무런 제약없이 들을 수 있는 "음악 청취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listening to music)"가 이루어졌다. 지만 역설적이게도 음악은, 그 중에서도 대중음악은 더 이상 소장할 만한 대상이 아니라 그저 쉽게 생산되고 쉽게 소비되고 시간이 지나 다시 듣고 싶을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라는 인식이 사라졌다. 음악을 소장하는 행위는 꼰대들의 고리타분한 행동일 뿐이고 심지어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뮤지션들 역시 음악 생태계가 완전히 바뀐 걸 매우 잘 알기 때문에 CD를 발매하는 데 큰 의의를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여러 곡들을 하나의 주제 혹은 테마로 묶는 음반(album) 작업을 할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 음악을 CD가 아닌 mp3 혹은 실시간 스트리밍 방식으로 듣는 시대에 활동한 뮤지션들은 말할 것도 없고 과거 CD 혹은 카세트 테이프, 그리고 그 이전의 LP로 음악을 듣던 시기부터 현재까지 활동하는 뮤지션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세상은 지난 40년 동안 완전히 근본적으로 바뀌었는데 자신만 과거 속에 살아갈 수 없지 않은가? 그것도 대중 음악의 뮤지션들처럼 대중의 취향과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들이야 말로.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한지 5년이, 그리고 부모님과 떨어져 산지 10년이지만 어머니 집에는 내 짐, 그러니까 책과 더불어 음반들이 주인의 눈길받지 못하고 그저 책장에 꽂혀 있을 뿐이다. 어머니 집에는 K-pop, 아니 그 시절에는 가요라는 명칭으로 불리던 국내 대중음악의 CD들과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이 되어서까지 음악 청취에 대한 나의 욕구를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충족시켜 주었던 카세트 테이프들이 남아 있다. 이번에는 얘네를 전부 지금 사는 집으로 가지고 올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보니 이번에도 어려울 것 같다. 어머니 집에 남아 있는 양도 지금 우리 집에 있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니까... 나는 1990년대에 10대 시절을 보낸 세대다. 1990년대에는 CD가 획기적인 문명이었다. 1980년대 카세트 테이프가 LP를 밀어내고 음악 감상의 민주화를 이끌었지만 카세트 테이프는 저렴한 대신 테이프가 늘어지거나 꼬이거나 그래서 음질의 변형이 발생하기 쉬었다. 그런 카세트 테이프의 단점을 보완하면서도 음질을 잡고 CD에 기스와 같은 파손/손상이 발생하지 않는한 영구적으로 고음질의 음악을 소장할 수 있는 매체는 음악 산업계에 일종의 꿈의 장치와 같았다. 1990년대 대중음악평론가 중 어느 한 사람도 CD가 지배하는 시대가 끝날 것이라 예상한 사람이 없었다 21세기가 코앞까지 아니 21세기가 시작된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아니다. mp3가 등장해서 음악을 다운로드 해서 듣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mp3는 음악을 듣는 또 다른 방식의 추가이지 CD라는 매체 자체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고 호언장담을 해댔다. 결국 그건 현대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스마트폰, 그리고 여기에 편승해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의 출시로 완전히 틀린 예측이 되었지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나는 LP로 음악을 듣던 세대는 아니지만 CD가 고급, 카세트 테이프가 대중적으로 음악을 듣던 1990년대를 겪었고 그 때 나는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이 형성되던 10대를 보냈다. 이 말은 이 때 내가 듣던 음악들은 내가 아마 평생동안, 늙어 죽을 때까지 아마 종종 들을만한 음악 자원들이고 그 때의 경험을 꽤나 아름답게 간직할 세대라는 거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자신의 10대, 20대의 젊은 시절을 황금시절로 기억하듯, 나 역시 CD와 카세트 테이프가 음악을 듣는 거의 유일한 매체였던 1990년대를 황금시대라고 기억할 거다. 2020년대인 현재가 물질적으로 더욱 풍유롭고, 여유로우며, 쾌적하고, 위생적이고, 정치적으로 보다 더 자유롭고 평등하며, 사회적으로는 더욱 더 다문화적이고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라 하더라도. 글쎄... 지금으로부터 또 다시 20년, 30년이 지난 후에 그 때에 2010년대, 2020년대를 회상하면 아마 그 때는 2040년대, 2050년대부터 물질적, 정치적, 사회적으로는 후진적이더라도 그 때를 황금시대라고 보거나 혹은 당대보다는 더 좋은 시기였다고 평가하려나? 그건 살아봐야 알겠지만 2020년대는 사는 지금은 CD 그리고 보다 저렴한 매체인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1990년대가 마지막 황금시기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2,30여년 동안 물질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발전에는 희생이 따른다. 원칙적으로는 발전을 위해 무언가가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이상적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상일 뿐이다. 무언가가 발전하거나 잘 나가려면 반드시 그에 대한 댓가, 즉 희생이 필요한 법이다. 엔트로피 법칙을 기억하면 내 말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자원들이 필요하고 이 자원들을 소비 혹은 소진함으로써 현재의 발전이 이루어진다. 자원의 투입 없는 생산, 혹은 소비 없는 생산이란 없는 법이니. 1990년대를 지나 지난 2,30년 동안 물질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희생시겼거나 혹은 잃어버렸는지를 길게 나열하지는 않겠다. 그건 각자가 알아서 판단하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가족 간의 행복이나 정서적 유대감을, 다른 사람은 사랑 혹은 우정을, 또 다른 이는 사람들 사이의 인정(人情)이나 유대감, 공동체 의식,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사회적 자본 등이라 말할 것이다. 글쎄 이 모든 건 "인간성(humanity)"이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으려나. 분명 보다 더 인간을 인간답게, 인간들 간의 차별과 장벽을 없애고 평등하고 언제 어디서나 쾌적한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했던 선한 의도에서 시작된 변화일테지만 그 결과는 과연 그들 더 나아가 우리의 의도대로 되었을까? 모르겠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지금이 아닌, 훨씬 더 불편했으며 심지어 뮤지션의 네임 밸류, 혹은 우연히 딱 한 곡만 듣고서 나머지 수록곡 전체도 좋을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마치 도박(batting)하듯 CD나 그보다 저렴한 카세트 테이프라는 매체 형식의 음반을 구매하던 1990년대를 더 좋은 시대라고 생각하는 건 아마 지금 시대가 주는 풍요로움과 편리함이 좋지만 불만족스럽다는 것 아닐까? 나만 그런가? 나만 내가 10대 시절을 보낸 1990년대가 마치 인류의 마지막 황금 시대였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나 혼자만 현재가 아닌 과거 속에 사는 걸까??? 나 혼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