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분통이 터질만한 상황이다. 1주일을, 혹은 한 달 동안 그 많은 시간과 노력, 에너지를 기울여 만든 나의 창작의 결과물, 내 모든 노력의 결과가 그깟 자동 추천 시스템, 이른 알고리즘(algorithm)에 의해 평가, 아니 평가조차도 못 받다니... 인간이 기계를 만들었지만 기계가 인간 그리고 그 인간이 만든 흔적과 결과물까지 모두 평가하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가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니다. 기술이 새롭게 발전하면서 늘, 인간은 소외되어 왔다. 산업혁명이 발생한 영국에서 기계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고 19세기 초반의 영국인들은 이에 대해 극심한 분노를 일으켜 기계들을 모조리 파괴하고 불살라 벌이는 과격한 행동, 즉, 러다이트(Luddite) 운동을 벌이기도 했지만 200년이 더 지난 현대인들의 관점에서는 그건 그저 현명하지 못한 보수적인 과격주의자들의 시대 착오적인 행동으로 보일 뿐이다.
지금 같은 시대에서는 오히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의 가치관을 받아들여야 할까? 자신의 시대가 기계 복제 시대(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라는 걸 받아들이고 이러한 시대가 주는 긍정적인 면, 오리지널 예술품(the work of art)이 사진이나 영상 등으로 거의 원본과 똑같이 복제(reproduction)됨으로서 예술품을 예술품으로서 만드는 의 유일무이한 특성에서 비롯한 아우라(aura)를 사라지게 함으로서 예술을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에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는 벤야민의 긍정적인 사고관을 적극 받아들어야 할까?
이 자동 추천 시스템의 시대(the age of automatic selection)에서 누군가는 분명 이득을 누릴테고, 누군가는 분명히 억까를 당할 것이다. 누군가는 알고리즘에 의해 자신과 자신의 창작물의 가치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서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둘 것이다. 반면 누군가는 그런 수혜를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확실한 건 알고리즘 자체는 창작자의 창작물과 창작 결과물에 대해서 평가하지는 않지만, 창작물이 대중에게 평가되는 기회를 중간에서 조절함으로서 최종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거다.
하루 일과를 끝낸 당신이 침대에 누워 유튜브 앱을 켜면 당신의 유튜브에 뜨는 영상들은 어떤 영상들인가? 아마 개인의 관심과 선호, 직전에 어떤 영상을 보고 검색했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추천되는 많은 영상들 중 상당수는, 내가 관심있게 보는 채널이 아니라면, 이미 조회수가 만 단위 혹은 몇 십만 단위를 넘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그렇게 추천에 뜬 영상을 보면 어떤 영상은 내 마음에 들 수도, 내 마음에 안 들수도, 혹은 영상의 퀄러티가 좋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평가에 대한 정량적 기준은 없다. 그저 소비자 개개인인 내가 봤을 때 이 정도면 좋다 나쁘다, 마음에 든다 아닌다 정도를 판단할 따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만 해도 유튜버가 몇 명인데 오늘 하루에 만들어진 영상이 과연 이게 다일까? 아닐 것이다. 아마 그보다 더 적은 구독자와 조회수, 노출수를 지닌 유튜버의 영상들이 오늘 하루에만 무수히 제작되었을 것이다. 1주일이라는 기간으로 산정해도 아마 수 만, 수 십만의 영상들이 제작되어 유튜브 서버에 올라갈 거다. 그들은 시장의 평가를 받으며 자신들의 창작의 결과에 대해서 검증을 받고 싶어하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을 거다. 그런데 생산자이자 창작자와 소비자이자 시청자 혹은 구독자와의 사이에 이 알고리즘이라는 놈이 자리를 잡고서 콘텐츠 소비자에게 평가할 기회마저, 창작자에게는 자신의 창작물이 평가 받을 기회조차도 주지 않는다. 아니 도대체 알고리즘이라는 이 자동 추천이라는 시스템 그게 뭔데? 무슨 자격으로???
톰 벤더빌트(Tom Vanderbilt, 1968-)는 <취향의 탄생 You May Also Like: Taste in an Age of Endless Choice>(2016)에서 사람들의 취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해서 탐구한다. 그 중 제3장 "재생목록으로 취향을 예측하다"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의 취향에 알고리즘이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익숙한 것, 자신들이 좋아하던 것을 좋아한다. 알고리즘은 사람들은 우리의 과거의 행동들을 분석하고 그와 유사한 것들을 지속적으로 노출시켜 줌으로서 우리의 취향을 강화시키는 거다. 사람들은 대부분은 - 내가 특히 그렇다 -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좋아하며 동시에 낯선 것들에 대해서는 경계하고 거부감을 느낀다. 그런데 알고리즘은 내가 만약에 부동산 투자와 관련한 영상을 한 번 검색해서 봤다면 그 채널의 다른 영상 혹은 다른 채널의 또 다른 부동산 투자와 관련한 영상을 추천해준다. 이미 한 번 소비한 콘텐츠로부터의 경험이 나쁘지 않으면 우리는 그렇게 또 다른 콘텐츠를 소비한다. 그게 그 채널의 또 다른 영상이든 다른 채널의 유사한 내용의 콘텐츠 등. 그렇게 관련된 영상을 보다보면 어느 순간 나는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높아지게 된다. 부동산 투자를 예로 들었지만, 헬스나 피트니스, 주식이나 부업, 공포나 미스테리 등등 그 대상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그 본질은 벤더빌트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 알고리즘, 혹은 자동 추천 시대에 우리의 취향은 결국 알고리즘의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거다. 그런데 알고리즘이 그저 순기능만 있는 건 아니다. CTR(Click-Through Rate)이나 시청 지속성(duration) 등을 기반으로 지 멋대로 다음 영상에 대해서 이 영상도 구릴테니 사람들에게 노출되면 안 되라며 지 멋대로 사람들에게 평가 기회조차 주지 않을 때가 많다. 그 전 영상이 별로였으니 다음 영상도 별로라고 누가 장담하는데???
벤터빌트는 알고리즘이 현대인의 취향을 만드는 기제라고는 지적하지만, 더 무섭게도 창작자의 창작물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결국 창작자도 사람이니 사람들에게 더 많이 노출되고 사람들이 더 좋아할만한 것들을 만들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 창작의 과정이 생계나 수익과 직결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이 미치니 알고리즘 시대는 축복일까 아니면 재앙일까가 헛갈린다. 분명 소비자의 입장에서 알고리즘은 축복이었다. 특히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듣는 나로서는 테이프나 CD 혹은 라디오를 통해서 음악을 들었던 시대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클래식 음악가나 그의 작품을 이 알고리즘 시대에 알게 된 경우도 상당하고, 클래식 음악뿐만 아니라 Alexander Stewart나 Max McNown, 그보다 더 인디적인 뮤지션들의 대중 음악들도 이 알고리즘을 통해서 알게 되어 즐기고 있으니까.
그런데 창작자의 입장에서 이 알고리즘이 마냥 축복은 아닌 것 같다. 창작물이 성공(?) 여부가 결국 알고리즘을 통해 얼마나 사람들에게 노출되고 소비되어 지는가에 결정되니 때문이다. 그리고 알고리즘은 현대 사회가 그렇듯,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더욱 가속화 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나같은 구독자 겨우 100명짜리는 어떻게 하라고??? 반면 구독자 10만 명 이상, 아니 그보다 적어도 충실한 팬층을 가진 창작자는 그가 똥을 싸지르는 게 아니라면 "오늘도 업로드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볼게요."라는 댓글을 받으며 그저 당시의 업로드 자체가 감사함을 받는 창작자들이 넘쳐 난다. 든든한 내 팬층이 있는데 창작의 욕구가 넘쳐나지 않을까? 결국 초짜이자 벤쳐인 누군가는 이 시장을 금방 떠나고 이미 자리 잡은 생산자는 더욱 생산에 박차를 가하겠지...
이 자동 추천 시대에 콘텐츠 생산자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이러한 시대의 우리의 머리와 손을 거쳐 만들어진 영상이나 글이든, 그 창작 작품은 과연 어떻게 해야 온전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사람들에게 좋아요를 많이 받으면, 사람들에게 많이 노출되고, 사람들이 많이 봐주면 좋은 창작물일까? 반면에 사람들의 좋아요가 적고, 노출수가 적고, 조회수가 적거나 지속 시간이 적으면 그건 안 좋은 콘텐츠일까? 벤더필트가 지적하듯, 알고리즘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개개인이 콘텐츠로부터 느끼는 미묘한 감정까지는 절대 알지 못한다. 그저 계량화 된 데이터, 좋아요 수, 클릭률(CTR), 지속 시간 등을 통해서 이 창작물이 좋은지 나쁜지를 추정할 뿐이다. 만 명의 사람들에게 그저 그랬지만, 내 창작물이 단 한 명의 사람의 인생을 바꿀 정도의 강렬한 인상과 감동을 주었다면 나의 창작 작품의 가치는 100만 명의 사람들이 그저 "잘 봤는데 그래서?" 라는 창작물보다 더 가치 있는 거 아닐까?
이 자동 추천 시대에 비록 아마추어지만 창작자로서 살아가는 게 혹은 살아가고 싶은 사람에게 참으로 버겁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