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간 성 접촉으로도 종족 번식이 가능했다면?

우리는 왜 비주류의 권리가 커지는 걸 싫어할까?

by 수다인

1. 성 소수자 자긍심의 달(LGBT Pride Month), 6월

2025년 6월 21일 토요일 JTBC 뉴스 마지막에 <딸을 키우는 두 엄마 가족>이라는 제목이라는 보도가 성출되었다. 해당 보도의 취지는 성 소수자의 부부 관계 인정, 성 소수자 부부의 자녀 양육권과 관련 가정에서의 자녀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고 6월이 "성 소수자의 달"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성 소수자의 달(month)"이라는 건 해당 내용으로 처음 들었다. 구글링을 해보니 6월 한 달 동안을 성 소수자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성 소수자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취지로서 미국에서 1969년부터 지정되었다고 한다. 2025년으로 성 소수자의 달, 보다 정확한 명칭으로는 "성 소수자 자긍심의 달(LGBT Pride Month)"은 56년째를 맞이한다. 생각보다 상당히 긴 역사를 지녔지만 미국보다 훨씬 더 성 소수자에게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대중에게 굉장히 생소하다. 6월이 끝나기 전 JTBC가 관련 기획보도를 송출한 건 사측이 한국에서 나름 진보적인(?) 언론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기 때문으로 언론의 나름의 사명감에서 비롯된 보도였다고 본다. 어쨌든 나처럼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던 대부분의 JTBC 뉴스 시청자는 성 소수자의 달이라는 게 있구나, 그리고 성 소수자 가정이 한국에서도 꽤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을 것이다.



뉴스에서는 딸 아이를 키우는 두 여성 한국인 동성 부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 되었지만 두 한국인 동성 부부는 당당히 얼굴과 자신들의 실명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부부가 된 과정 - 미국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 된 주(state)에서 결혼 후 혼인 신고를 했다고 한다 -, 정자를 기증받아 인공수정으로 딸 아이를 출산하였으며, 현재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에게 아빠라는 존재가 없고 엄마만 둘인 상황을 설명시키는 과정, 이웃의 이성 부부가 이 두 부부와 딸 아이에게 갖는 태도 등등이 개괄적으로 소개되었다. 그러면서 한국에 동성 부부에 대한 인식이 재고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2. 사랑의 역사: 이성애와 동성애 그 대결의 기록

현재 전 세계는 동성애에 관한 입장은 크게 네 가지일 것이다.


1) 완전 혐오적 입장, ex) 이슬람 국가들

2) 형벌의 대상은 아니지만 사회적 차별이 옹호되는 지역, ex) 러시아

3) 그다지 용인하고 싶지는 않지만 국제 사회의 지탄을 받지 않는 수준에서 포용적인 나라, ex) 한국

4) 비교적 포용적인 입장, ex) 태국, 대만 및 대체적인 서구의 고도의 민주주의 국가들


유형을 굳이 구분했지만 기본적으로 동성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에서 동성애를 어느 정도까지 받아주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포용적인 사회라 하더라도 이성애처럼 차별이 없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사회 자체가 포용적인 사회라 하더라도, 개개인 중에서는 동성애에 대해서 혐오적인 입장인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이성애에 대해서 혐오하고 이성애자들을 차별하거나 폄하하는 태도를 지닌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결국 동성애에 대해서 혐오는 하지만 개인의 혐오를 드러내는 게 용인이 되느냐, 그리고 그 혐오가 사회 전체적으로 이들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을 용인하는지의 차이가 있을 뿐, 근본적으로는 동성애는 현대인들에게는 비난과 혐오의 대상이다.


거의 10년도 더 전일 것이다. 교보문고를 돌아다니다가 매대에 쌓여 있는 강렬한 붉은색 표지가 인상적인 낭만적인 제목의 <사랑의 역사>라는 책을 발견했었다. 이 책의 부제가 더 흥미로웠다. <이성애와 동성애 그 대결의 기록>. 저자는 루이-조루쥬 탱(Louis-Georges Tin, 1974-) 프랑스인으로 프랑스에서 집필된 책이었다.


그 당시 프랑스라면 모든지 눈이 돌아가던 시기였는데 프랑스 인이 쓴 책이라는 점에서 무조건 흥미가 갔다. 첫 페이지에 적혀 있는 책의 원제를 보니 원래 제목은 "L'invention de la culture hétérosexuelle", "이성애 문화의 창조(탄생)"이었다. 이성애 문화? 이성애 문화가 창작되었다고? 목차를 빠르게 대충 훑어보고 서문을 대충 읽어 보니, 이성애 문화는, 프랑스를 기준으로 중세 말, 르네상스 시기 초, 기존의 동성애적인 문화를 몰아내고 생겨난 비교적 근대적(modern) 문화적 현상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었다. 저자 루이-조르쥬 탱은 중세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문학들을 통해서 그 증거를 수집해서 이 시기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체가 반(anti) 이성애적 사회에서 이성애적 사회로 변화해 나갔음을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성애 문화는 인류가 만들어낸 창작의 결과물이며, 이성애 문화가 중심이 된 건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극히 일부인 최근의 몇 백 년 길어야 5-600년 밖에 되지 않은 비교적 새로운 문화적 현상이다."


읽은지 너무 오래 되어서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저자는 이성애와 이성애 문화가 다르다고 주장한다. 인류는 오랫동안 이성애와 이성애 문화를 완전히 다르게 인식해 왔다. 이성애는 개인이 사랑의 감정과 성 행위를 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대상이 이성인 심리적 상태이자 그러한 행위이다. 인류는 오랜 기간 동안 이성애를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이성애야 말로 유일하게 인간이 종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그러한 점에서 남성과 여성은 반드시 서로 섹스를 해서 임신과 출산에 성공해 또 다른 인간을 생성해내야 했다. 그렇지만 이 외의 목적으로 남성과 여성이 함께 어울리는 것, 즉 이성애 문화에 대해서는 철저히 배격했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어울리는 것, 이 둘이 함께 정서적으로 교류하면서 서로가 함께 일상의 행위들을 하는, 이성애 문화는 철저하게 억제되어 왔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분리되어 있어야 하며, 피치 못할 사정, 즉 종족 번식을 위한 성 행위를 할 때가 아니면 일상에서는 분리되어서 남성은 남성 동료와 어울리고 남성 동료와의 우정이 더욱 중요하다고 가르쳐 왔다.


3. 이성애 문화는 인간의 창작물이 맞을지도...

저자 루이-조르주 탱은 프랑스와 유럽의 문학만을 언급하지만 그의 주장이 딱히 틀리지는 않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유교 등 대부분의 종교들은 성욕이 인간의 타락을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계해 왔다. 기독교, 불교에서는 가정을 일구는 것보다 독신 생활을 하는 게 각 종교의 가르침에 보다 가까운 도덕적인 삶이라고 보았으며 종교인은 결혼하지 않은 채 독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계율을 가지고 있다. 딱히 성직자가 없는 유교에서도 "남녀칠세부동석"을 주장하며 남성과 여성이 일상에서 분리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거의 대부분의 종교에서 성 행위는 부득이한 경우에만 용인 되었다. 임신과 출산으로 종족을 번식하기 위한 목적의 성 행위만 인정되었으며 그 외의 성 행위는 성적 욕망, 정념을 자극하기 때문에 피해야만 했다. 더불어 출산과 관련이 없는 자위행위 역시 죄악시 했다. 성인 남녀가 같이 있는 것 자체는 반드시 두 남녀의 성적 욕망을 자극하여 성적 타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중세 말기에 집필된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1375)의 <데카메론 Decameron>(1353) 속 젊은 수도승과 처녀의 이야기는 당시 전통적인 기독교의 남녀 간의 관계의 전형이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도 불교나 유교 문화권의 동아시아에서도 남성과 여성 간의 사랑은 찬양이 대상이 아니었고 우정(信)이나 충정(忠)이 훨씬 더 중요한 가치였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우정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보았으므로 당연히 우정이나 충정을 강조하는 건 이성애 문화보다 동성애 문화였다는 걸 의미한다.


Velázquez, <성 안토니우스와 은둔자 성 바오로 St Anthony Abbot and St Paul the Hermit> (1635)


그러던 게 유럽에서는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가 등장하면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녀로 구성된 오늘날의 가족의 개념을 정착시키며 가정의 중요성을 설파하였다. 개신교에서는 가정은 진정한 기독교인을 배출해내는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기 때문에 그 출발점인 남녀 간의 사랑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하였다. 남성과 여성이 어울리는 건 칭송 받는 거고, 그 때부터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 노래하는 문학 및 음악들이 속속 등장하게 되었다. 16세기 개신교의 등장 이래로 유럽은 이성애 문화로 변화해 나갔지만 동시대 이슬람과 유교 문화권은 그만한 급진적 변화가 발생하지 않았다. 유교 문화권인 조선의 경우에는 오히려 17세기 이래로 여성에 관한 차별이 더욱 심화되었다. 그러다가 유럽이 19세기 산업화와 근대화를 기반으로 아시아, 아프리카를 식민지화 하고 세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유럽적인 가치관이 전 세계의 표준이 되면서 개신교가 등장한 이래 정착된 이성애 문화가 아시아를 비롯한 비기독교 문화권에 전파되었다. 유교 문화권인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남녀칠세부동석"의 가치관을 사라졌고, 이슬람 역시 남녀평등과 함께 남성과 여성의 자연스러운 만남과 일상에서의 교류, 어울림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1970년대의 아프가니스탄 여성들과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여성들


그렇지만 이성애와 이성애 문화가 확실히 다르다는 걸, 중동 이슬람 문화권 국가들이 다시 이슬람화 되면서 확실하게 목격하게 되었다. 이슬람은 동성애도 사형 등으로 엄격하게 다스리지만 그렇다고 이성애 문화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아프카니스탄이나 이란, 튀르키예 등 20세기 중반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했던 나라들이 이슬람에 의해 정부가 장악되면서 여성에 관한 차별이 보다 엄격하게 부활하였으며, 남성과 여성이 어울리는 문화를 없애버렸다. 남성과 여성은 결혼하여 자식을 낳는 성 행위는 용인되지만, 남성과 여성이 한 장소에서 기도하는 것, 식사하는 것, 교육을 받는 것 등, 이성애 문화는 폐기되었다.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가톨릭과 개신교가 분리된 유럽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발전하면서 한 편에서 이성애 문화가 이들 사회에서 만들어지고 주류가 되었다는 걸 오히려 중동 국가들의 이슬람 근본주의로의 회귀가 입증해준 셈이다.


4. 동성 간 접촉으로도 종족 번식이 가능했다면?

2025년 6월 21일 토요일 JTBC의 기획 보도를 보고 난 후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동성 간의 성 접촉으로도 종족을 번식할 수 있었다면, 동성애가 지금처럼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었을까?"



그러고 보니, 지구 상의 생명체 중에서는 동성 간의 성 접촉으로 종족을 번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진화한 생명체는 없다. 있는데 내가 모르는 걸까? 생명체의 종족 번식의 방법은 네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 이성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한 후 수정체가 만들어지는 방법

2) 자기 분열을 통해 자신과 똑같은 유전자를 남기는 방법

3) 수컷과 암컷이 생식기를 모두 지닌 자웅동체로 방법 <- 이 경우는 동성 간 성 접촉으로 보기는 힘들다

4) 번식기에 특정 개체가 성전환하여 번식 하는 것


이렇게 네 가지 방법인데 동성 간의 성 접촉으로 자신의 DNA를 후대에게 남기는 경우는 동물은 커녕, 식물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어째서 지구 상의 생명체가 여러 가능성 중 동성 간의 결합으로 종족을 번식하는 방법으로 진화하지 않은 걸까? 수컷과 수컷끼리 결합하면 반드시 수컷이 나오고, 암컷과 암컷이 결합하면 반드시 암컷이 나올 것이기 때문에 유전자 다양성을 획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그 이유는 별로 타당하지 않다는 건 혈액형을 통해 알 수 있다. AA형과 AA 혈액형이 결합하면 후대의 혈액형은 AA형이다. AO형과 OO형이 결합하면 AO형의 A 혈액형과 O 혈액형이 나올 수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혈액형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AO형과 OO형이, 두 AA형이 결합해서 만들어진 AA형의 A형과는 구분되는, 유전자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이성 간 뿐만 아니라, 수컷과 수컷, 암컷과 암컷의 동성 간 접촉으로 번식도 가능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었을텐데 왜생명체는 이런 전략을 개발하지 못했을까? 나는 생명과학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이공계 쪽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하기 때문에 그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만약 애초에 생명체의, 특히 인류의 조상인 호미닌(hominin)이 동성 간의 성 접촉으로도 번식할 수 있었다면 아마 이성애나 동성애는 서로 동등하게 존중 받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Tiziano, <수태고지 Annuciation> (1535)


JTBC의 보도에 소개된 한국인 여성 동성 부부는 인공수정을 통해 딸 아이를 낳았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인 19세기만 하더라도, 인공수정이나, 남녀 간의 성 관계 없이 임신과 출산을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상상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가톨릭에서의 입장이지만) 성모 마리아만에게만 일어난 불가사의였다. 얼굴과 이름 등의 정체와 관련해서 전혀 모르는 누군가의 정자나 난자를 기증받아서 인공수정, 체외 수정, 심지어 자궁 외 임신이 가능해서 실제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19세기 사람들에게 설명한다면 이들은 과연 이걸 믿거나 상상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지금으로부터 200년이 흐른 2300년 정도에 동성 간에도 성 접촉으로, 지금과 같은 방식을 넘어선 보다 근본적인 방식으로 종족 번식이 가능할 수도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혹시 그런 날이 온다면 이성애 문화와 동성애 문화와의 오랜 대결의 역사, 동성애에 대한 인류 보편적인 차별과 혐오 역시 사라질까?


5. 외세행살: 외로운 세상, 행복하게 살자!

나는 딱히 동성 결혼의 합법화나 동성 부부의 권리 향상에 관심이 없다. 그저 나에게는 장애인이 이러 저러한 이유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과 같은 입장으로 성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 받는 것 자체가 사회 정의와 공정에 위배된다고 생각할 뿐이다. 오히려 나는 왜 사람들이 동성 결혼을 반대하거나 동성 부부의 권리가 이성 부부의 권리와 같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가에 더 관심이 가는 편이다. 그 이유가 무얼까?



아마 결정적인 이유는 인류의 비교적 최근의 짧은 역사 동안이지만 이성애 문화가 사회의 주류로 완전히 자리 잡은 데 있는 것 같다. 개인의 성향을 보수 혹은 진보로 판단하는 여러 문항들에는 반드시 동성애에 관한 개인의 입장을 묻는 문항이 포함된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반면, 진보적인 사람은 동성애에 대해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입장인 편이다. 보수적이라는 건 기존의 가치관을 지키려 하고 변화를 싫어한다는 말이다. 현대 사회는 이성애 문화가 완전히 주류가 되었고 부부는 일정 연령 이상의 성인 남성과 여성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데 여기에 난데 없이 남성과 남성이, 여성과 여성이 자기들도 부부고 우리도 너희와 같은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성애 부부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자신들이 당연하다고 느낀 권리를 종족 번식도 못하는 애들이 똑같이 주장하고 나서니 황당함을 넘어 위기의식을 느꼈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한다. 기존의 가치관을 유지하려고 하고, 특히 자신이 보다 우위에, 우월한 위치에, 혹은 주류의 입장에 있으면 자기보다 열등한, 낮은, 혹은 비주류인 사람들이 치고 올라오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그 동안 누렸던 것을 뺏길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새롭게 쟁취하려는 욕구만큼이나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데에도 치열하다. 솔직히 이성애자 입장에서 동성 결혼을 인정하든, 동성 부부의 권리를 이성 부부의 권리와 동등한 수준에서 인정하든 그게 자신들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실제로는 자신들의 이익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렇지만 그 동안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혹은 어디 감히 호모 나부랭이인 게이와 레즈비언이 부부랍시고 나타나서 "우리도 부부니까 너희들과 같은 권리를 인정해주쇼!"라고 하니까 자신들이 부정당한다는 생각이 드는 걸 것이다. 이를 사회에서 우리의 위치가 좁아지고 결국 우리가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날 거라는 명백한 징후로 해석하는 것이다.



시야를 조금만 넓혀보자.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참 각박하지 않은가? 분명 우리는 과거 어떠한 인류 조상들보다도 서로 초연결되어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외롭고 고립감을 호소한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싶으면서도 끊임없이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한다. 태양과 지구의 이 절묘한 위치처럼 적정한 거리를 찾는 건 기적과 같이 어렵고. 그래서 일상에서 실제 사람들과는 단절하지만 한 편으로는 간접적으로나마 연결되고 싶어한다. 소셜미디어로 사람들을 팔로우 하거나 팔로어 수를 늘리고 좋아요와 댓글 숫자에 민감해지고. 사람한테 온 종일 시달리고 집에 돌아왔지만 그럼에도 사람들과의 소통이 그리워, 내가 구독하는 유튜버의 영상을 보면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 하고 싶어한다. 인류 역사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일상을 공유하는데 이렇게 고립되어 있는 시대는 없을 것이다. 이는 앞으로 더 심해지면 심해지지 완화되지는 않을 것 같다.


라우브(Lauv), "Modern Loneliness" <- 강추! 들어보삼!


요즘 세대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결혼, 출산, 심지어 연애마저 포기했다고 한다. 성욕이 인간의 기본 욕구이듯, 인류는 정착 생활을 한 이후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당연히 부모가 결정해 준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별 다른 이유가 없으면 아이를 가지고 부모가 되었다. 누군가의 배우자가, 부모가 되는 게 특별한 누군가가 아닌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걸어가는 기본 공식과 같은 삶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인간의 기본적인 삶의 방식이 21세기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삶의 루트라 생각했던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하고 그 모든 걸 포기한 채, 어디에도 의자할 곳 없는 많은 현대인들이 스스로 삶의 의지를 놓아버리는 경우가 너무나 빈번하게 발생하는 오늘날이다. 특히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렇게 극도로 외롭고 고립된 세상에서 내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게 해주는 데에는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아껴주며 내 옆을 지켜주려는 누군가가 있는 게 관건이다.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세상은 아무 의미가 없는데 내가 삶을 포기하지 않고 힘들고 괴로운 세상에서 삶을 버틸 힘을 줄 사람이 이성이면 어떻고 동성이면 어떠냐? 우리는 나와 다른 누군가의 권리를 인정/보장해주는 게 나의 권리가 빼앗기고, 나의 정체성이 무너지는 것으로 두려워자미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우리 모두 행복한 삶을 원한다. 내가 이성 배우자와의 삶을 통해 행복을 느끼듯, 누군가는 동성 배우자와의 삶을 통해 행복을 느낄 것이다. 그게 나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나와 관련이 없으면 그냥 쿨하게 인정해줘라. 아래의 말은 진리다.


"I'm happy, You're happy, and Everybody is happy!."


그냥 행복하게 살다가 때 되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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