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티나 예배당2] 수학! 그림을 지배하다!

선 원근법과 페루자에서 온 피에로라는 남자(Pietro Perugino)

by 수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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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황의 남자, 피에트로 페루지노


프랑스의 프랑수아1세(François I, 1494-1547)에게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제216대 교황 율리우스2세(Iulius II, 1443-1513)와 제217대 교황 레오10세(Leo X, 1475-1521)에게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otti, 1475-1564)와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1483-1520), 신성로마제국의 카를5세(Karl V, 1500-1558)와 스페인의 펠리페2세(Felipe II, 1527-1598)에게는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 1477?-1576)가 있듯, 제212대 교황 식스투스4세(Sixtus IV, 1414-1471)에게는 피에트로 반눈치(Pietro Vannucci, 1446-1523), 일명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라는 최애 미술가가 있습니다.


DSX0560.Perugino-Self-Portrait.jpg Raffaello 혹은 di Credi, <Portrait of Perugino> (1504)


2. 선 원근법과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1446년 움브리아(Umbria) 주의 시타 델라 피에베(Città della Pieve)에서 태어난 피에트로 반눈치(Pietro Vannucci)는 10대 시절 그림을 배우기 위해 움브리아의 중심 도시인 페루자(Perugia)로 떠났습니다. 그는 1466년에는 피렌체(Firenze)로 미술 유학을 떠나 다빈치의 스승인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 1435-1488)를 거쳐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1415-1492)의 문하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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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15세기 전반기 피렌체 회화 문화를 대변하는 미술가 중 한 명으로서 화가이자 수학 덕후였던 수학자였습니다. 그는 평생 기하학과 산술뿐만 아니라, 원근법을 연구하였고 회화에서의 선 원근법(linear perspective) 적용에 몰두하였습니다. 선 원근법은 건축가인 필리포 브루넬리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에 의하여 15세기 초반에 고안된 기법입니다. 처음에는 건축에 적용되었던 선 원근법은 건축가이자 화가인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4)에 의해 이론으로 체계화 됩니다. 원근법은 2차원의 평면에도 3차원의 거리감과 공간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시각적 착시 효과(trompe-l’oiel)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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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원근법은 보이지 않는 여러 선이 존재하며, 그 선들이 하나의 가상의 점, 일명 소실점(vanishing point)으로 수렴하며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진화된 원근법의 방식입니다. 기존의 원근법은 단순히 인간의 시각 경험에 의존하여 가까운 것은 크게, 멀리 있는 것은 작게 그리는 수준이었지만, 선 원근법은 엄격한 수학적 계산에 따른 과학적 방식의 원근법입니다. 그러므로 선 원근법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수학에 관한 배경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했습니다. 선 원근법의 선구자인 브루넬리스키나 알베르티가 모두 당시 뛰어난 수학자였으며 선 원근법은 실제로 수학적 원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그림뿐만 아니라 수학 이론 정립에 몰두했던 것도 놀랍지 않습니다.


tribute.jpg Masaccio, <Tribute Money> (1426-1427)


브루넬리스키의 친구였던 도나텔로(Donatello, 1386-1466)가 선 원근법을 조각에, 도나텔로의 지인이었던 마사치오(Masaccio, 1401-1428)가 회화에 선 원근법의 원리를 적용하며 선 원근법은 건축뿐만 아니라 조각과 회화 분야에도 알려졌습니다. 그러던 중 알베르티가 『회화론 Della Pittura』(1435)을 발표하며, 선 원근법의 원리, 특히 회화에서의 적용 방식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림에 따라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95-1455), 파올로 우첼로(Paolo Uccello, 1397-1475) 등이 회화에서 선 원근법 구현에 몰두합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그 2세대 화가에 속합니다.


3.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리스도의 채찍형 Flagellation of Christ>


스크린샷 2025-07-22 오후 12.58.06.png Piero della Francesca, <Flagellation of Christ> (1455)


<그리스도의 채찍형 Flagellation of Christ>(1455)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대표작입니다. 그림은 크게 근경, 중경과 후경의 세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그림의 앞 쪽에는 고대 그리스풍의 의상을 입은 두 명과 당대의 의복을 입은 측면으로 서 있는 세 명이 등장합니다. 이들이 그림의 근경에 배치되어 있지만, 그림의 주제가 되는 사건은 그림 중간의 왼편에서 전개됩니다. 황금 조각상으로 장식된 코린트(corinth)식 기둥에 예수 그리스도가 묶여 있고 예수의 앞에 관람자에게 등을 보이며 서 있는 남성이 채찍으로 예수를 가격하기 직전입니다. 그 앞에는 폰티우스 필라투스(Pontius Pilatus, ?-39)가 의자에 앉아 형 집행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폰티우스 필라투스의 뒤로는 문이 있고 문틈으로 위쪽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보입니다. 이 부분은 두 개의 건물 사이로 묘사된 하늘 및 나무와 함께 그림의 후경을 구성합니다. 그림의 주제가 되는 사건이 그림의 앞부분이 아닌 중간 파트에 그것도 작게 그려진 채 왼편 구석에 등장하는 이유, 그림의 앞부분에 위치한 세 사람은 누구이며, 이 세 사람이 그리스도의 채찍형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등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입니다. 각각 별도의 세 가지 그림을 하나의 그림에 동시에 그려 넣은 듯 한 이 그림을 하나의 그림으로 보이게 끔 해주는 건 선 원근법 덕분입니다. 그림의 앞부분에서 시작되어 일정한 비율로 크기가 줄어들며 그림의 뒷부분까지 이어진 선 원근법의 원리가 적용된 타일 묘사는 관람자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그림 앞쪽에서 중간을 지나 뒷부분으로 유도하며 그림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주는 핵심적인 기능을 합니다. 이 그림은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는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보다 기독교적 내러티브는 단지 수단으로 사용할 뿐, 선 원근법을 활용하여 2차원의 평면적인 회화에서 얼마나 훌륭하게 3차원적인 공간감을 조성해 내는지에 관한 화가의 능력을 보여주는 게 주된 목표인 작품처럼 보입니다. 또한 그림을 그린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뿐만 아니라 동시대 미술가들이 선 원근법의 원리를 회화에 적용하여 최대한 현실감 있는 화면을 재현하는 데 몰두했던 15세기 전반기 피렌체 미술의 특징을 대변해주는 작품으로 평가받곤 합니다.


7find01.jpg Piero della Francesca, <Finding and Recognition of the True Cross> (1452-1466)


선 원근법이 당시 회화의 가장 중요한 표현 기법으로 부상하자 이 시대의 미술가들은 안료를 비롯한 재료를 다루는 방법에서 붓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일반적인 그림을 그리는 방식뿐만 아니라 선 원근법 역시 별도로 공부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선 원근법은 건축가이자 수학가인 브루넬리스키와 알베르티에 의하여 고안되고 체계화 된 과학의 일종이었기 때문에 선 원근법을 마스터하기 위해서는 기초 수학을 배워야 했습니다. 피렌체 유학 시절, 페루지노는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에게서는 기본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배웠고,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로부터는 선 원근법을 집중적으로 배웠습니다.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역시 선 원근법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에 페루지노는 선 원근법에 관한 스승으로 화가이자 수학자인 델라 프란체스카를 선택한 겁니다. 페루지노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에게서 선 원근법을 집중 공부한 건 당시 최신 피렌체 미술을 제대로 전수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평생에 걸쳐 회화에서의 선 원근법 적용뿐만 아니라 수학 이론을 연구한 수학자였다는 점에서 페루지노 역시 스승 못지않게 선 원근법과 수학에 관심이 높았다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4. 페루자에서 온 남자 피에트로


피에트로 반눈치는 1472년 장인(master)의 자격을 얻습니다. 피에트로 반눈치는 1472년에서 1473년 사이 페루자로 돌아와 평생 그곳을 거점으로 활동함으로서 본명보다 “페루자에서 온 남자 피에트로”라는 뜻의 “피에트로 페루지노”로 불리게 됩니다. 페루자에 정착한 1473년, 페루자의 프란시스코 수도회는 1452년 완공된 성 베르나르디노 예배당(Oratorio di San Bernardino)을 장식할 목적으로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도(San Bernardino di Siena, 1380-1444)의 여덟 가지 기적을 주제로 한 목판 그림을 페루지노에게 의뢰합니다. 페루지노는 페루자 출신의 핀투리키오(Pinturicchio, 1453-1513)와 함께 작업에 참여합니다. 전체 여덟 개의 작품 중 핀투리키오가 단독으로 두 점을 완성하지만 페루지노가 절반 이상을 작업합니다. 완성 직후 이 연작은 예정대로 성 베르나르디노 예배당에 걸려 있었으나 어느 순간 예배당 옆의 산 프란체스코 알 프라토(San Francesco al Prato)로 옮겨졌고 현재는 페루자의 움브리아 국립미술관(Galleria Nazionale dell’Umbria)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스크린샷 2025-07-22 오후 3.18.36.png Perugino, <The Miracle of the Stillborn Child) <1473)


페루지노의 <사산된 아기의 기적 The Miracle of the Stillborn Child>(1473)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리스도의 채찍형>과 대단히 유사합니다. 페루지노의 그림 역시 집단을 이룬 남성들이 존재한 근경, 그림 왼편 아치형 회랑 아래에 다섯 명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중경, 건물 끝 아치형 문 사이로 보이는 자연 환경이 제시된 원경의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그림의 핵심이 되는 사건은 앞부분이 아닌 중경에 그것도 화면 왼편에 작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림의 중간 왼편에는 앉아 있는 어린 아기를 중심으로 네 명의 성인 남녀가 등장합니다. 가운데 어린 아기와 그 앞의 주홍색 옷을 입은 여인이 사건의 주인공 격입니다. 이 젊은 여성은 아이의 엄마로서 이 아이는 뱃속에서 사산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젊은 여인은 아이를 잃은 것도 슬펐지만 아이가 뱃속에서 사산되어 세례를 받지 못해 천국에 갈 수 없음에 더욱 비통해 했습니다. 아기 엄마는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를 찾아가 아이가 천국에 들 수 있도록 간청했고 성 베르나르디노는 아이를 잠시 동안 살려내어 세례를 해줍니다. 세례를 받은 후 아기는 다시 숨이 끊겼지만 이 사건은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가 인간의 영혼까지 구원할 수 있는 권능을 지녔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정도로 성 베르나르디노의 기적 중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채찍형>과 마찬가지로 그림 중간 왼편에 작게 등장할 뿐입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림처럼, 그림 앞부분에는 사람들의 무리가 등장하는데 이들이 중경에서 발생하는 그림의 핵심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사건에 관한 묘사보다 아이보리 색 건축물에 관한 묘사가 그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 역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림과 같습니다. 스승이 <그리스도의 채찍형>에서 각각 독립적인 그림의 세 파트를 근경에서 후경까지 이어지는 바닥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하나의 그림으로 유기적으로 묶어내는 시각효과 역시 제자는 그대로 답습합니다. <사산된 아기의 기적>은 피렌체에서의 미술 유학을 끝내고 페루자로 돌아온 직후 페루지노가 스승인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화풍을 거의 그대로 재현하였으며 그 역시 그림에서의 선 원근법 구현에 대단한 관심을 쏟았다는 걸 입증해주는 작품입니다.


baptism-2.jpg Perugino, <The Baptism of Christ> (1482) in Cappella Sistina


1473년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의 기적 시리즈로 페루자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피에트로 페루지노는 1479년 식스투스4세의 명령을 받아 교황청의 본거지인 로마로 건너갑니다. 교황이 자신의 교황명을 딴 시스티나 예배당 건립을 결정했기 때문이죠. 이 프로젝트는 페루자의 피에트로 반눈치, 일명 피에트로 페루지노가 피렌체의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 베네치아(Venezia)의 지오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 1430-1516)와 더불어 초기 르네상스(Early Renaissance)에서 전성기 르네상스(High Renaissance) 미술로 넘어가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해준, 페루지노 커리어의 일대 전환이 되는 사건입니다.


- 이야기는 3부로 계속됩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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