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티나 예배당3] 페루지노의 시스티나 예배당 걸작

벽화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는 그리스도" 이야기

by 수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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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루지노, 시스티나 예배당에 걸작을 완성하다: https://youtu.be/n-w1PKh0t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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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스티나 예배당 속, 페루지노의 대표작

0view.jpg 시스티나 예배당(Cappella Sistina) 내부 왼쪽 벽면


시스티나 예배당(Cappella Sistina)의 왼쪽 벽면은 아치형 창문이 있는 상단과 그 아래의 두 부분으로 나뉘며 모두 빽빽하게 프레스코(fresco) 벽화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아랫부분에는 가로 550㎝에서 580㎝, 세로 330㎝에서 340㎝ 정도의 직사각 형태의 총 여섯 점의 벽화가 남아 있습니다. 그 중 다섯 번째 그림은 피에트로 반눈치(Pietro Vannuchi, 1446-1523), 일명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의 작품으로 페루지노의 대표작이자 15세기 르네상스 미술 전체에서도 중요한 작품으로 꼽힙니다.


2. 페루자의 피에트로, 로마에 입성하다!

프란시스코 수도회의 신학 박사인 프란체스코 델라 로베레(Francesco della Rovere, 1414-1484)추기경은 1471년 8월 9일 제212대 교황에 즉위합니다. 그는 1477년 사도궁전(Palatium Apostolicum)의 카펠라 마냐(Cappella Magna) 자리에 자신의 교황명을 딴 새 예배당을 건립하기로 결정합니다. 설계 및 건축 총감독은 지오반니노 디 피에트로 데 돌치(Giovannino di Pietro de’Dolci, 1435-1485)에게, 내부 벽화 작업은 페루자(Perugia)에서 활동하는 피에트로 반눈치에게 맡깁니다. 1479년 페루자에서 온 남자 피에트로는 교황의 명을 받고 로마(Roma)에 입성합니다.


DSX0560.Perugino-Self-Portrait.jpg Raffaello?, <Portrait of Perigino> (1504)


당시 피렌체 공화국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전체의 무역 및 금융업의 중심지이자 문학과 미술을 선도하는 지역이었습니다. 피렌체(Firenze)의 최신 미술 양식으로 새로운 예배당을 장식하길 원했던 식스투스4세는 피렌체 미술가들을 작업에 동원하려 했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습니다. 1478년 4월 26일 파치(Pazzi) 가문의 메디치(Medici) 가문 암살 사건은 교황청과 피렌체 공화국 간의 전쟁으로 발전합니다. 당시에는 피렌체 공화국과 전쟁 중으로서 적국의 미술가들에게 작업을 맡기는 건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었습니다. 게다가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 루카 시뇨렐리(Luca Signorelli, 1445?-1523),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io, 1448-1494),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등 대부분의 피렌체 미술가들은 직·간접적으로 피렌체를 통치하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고 있었고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Medici, 1449-1492)가 적국에 미술가들을 파견할 리가 없었습니다. 식스투스4세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으며 피렌체 공화국을 위해 작업하는 미술가는 아니지만, 피렌체의 최신 미술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아야 했습니다. 피에트로 반눈치는 그 적임자였습니다. 그는 교황청의 영토인 움브리아(Umbria)의 시타 델라 피에베(Città della Pieve) 출신이었으며, 1466년부터 1472년까지 피렌체에서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 1435-1488)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1415-1492)로부터 지도를 받으며 피렌체 미술을 제대로 구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식스투스4세는 페루지노를 시스티나 예배당의 벽화 작업자로 발탁합니다. 1479년 로마로 건너왔지만 시스티나 예배당의 외부 공사는 1479년 9월에 시작되어 1481년 11월에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기 때문에 페루지노는 1481년 11월부터 작업을 시작합니다.


3. 콘스티투암 테 클라웨스 레그니 카엘로룸


key_.jpg Pietro Perugino, <Christ Handing the Keys to St. Peter> (1481-1482)


거대한 벽화의 가운데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크게 두 집단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벽화의 왼쪽에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곱슬머리의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성을 중심으로 여러 명이 서 있고, 그 맞은편에는 머리가 벗겨지고 흰색 수염의 남성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장발의 남성은 무릎을 꿇은 남성에게 두 개의 열쇠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벽화 위에는 다음과 같은 라틴어 문장이 쓰여 있습니다.


“CONSTITVAM TE CLAVES REGNI CÆLORVM”(콘스티투암 테 클라웨스 레그니 카엘로룸)


「마태복음」 16장 18절·19절에 기반 한 이 문장은 “내가 너를 세우리니, 하늘나라의 열쇠를 네게 주노라”라는 뜻으로 예수가 베드로를 후계자로 인정하는 순간입니다.


파비오 콜로네제(Fabio Colonnese)교수는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는 그리스도 Christ Handing the Keys to St. Peter>(1481-1482)를 선 원근법에 관한 페루지노의 열정이 집대성된 작품이라 평가합니다. 페루지노는 자신이 10년 전 제작한 <사산된 아기의 기적 The Miracle of the Stillborn Child>(1473)에서와 마찬가지로 선 원근법에 따라 그림을 근경, 중경, 후경의 세 부분으로 구성합니다. 근경, 중경에는 인물들이, 후경에는 선 원근법이 적용된 건축물이, 그 뒤로 풍경을 배치하는 방식도 동일합니다. 게다가 스승인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리스도의 채찍형 Flagellation of Christ>(1455), 그리고 이를 레퍼런스(reference)로 활용한 <사산된 아기의 기적>에서 이질적인 근경, 중경, 후경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주는 장치로서 그림 앞쪽부터 뒤쪽까지 이어지는 일정한 비율로 줄어드는 선 원근법이 적용된 바닥 역시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는 그리스도>에서 반복됩니다.


스크린샷 2025-07-22 오후 3.18.36.png Perugino, <The Miracle of the Stillborn Child> (1473)


하지만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및 페루지노 자신의 초기 작품과의 유사성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리스도의 채찍형>이나 <사산된 아기의 기적> 모두 선 원근법이 적용된 바닥뿐만 아니라 주변 역시 건축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습니다. 이들 그림에서 바닥 묘사는 근경, 중경, 원경을 하나로 이어주고는 있지만, 확실한 공간감을 구현하는 건 화면 양옆에서부터 일정한 비율에 따라 그림 뒤쪽으로 후퇴하는 건축물입니다. 하지만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는 그리스도>에서는 화면 앞부분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건축물이 생략됩니다. 비록 그림의 구성은 더욱 단순해졌지만 오히려 시스티나 예배당의 벽화는 앞서 제작된 그림들보다 좀 더 현실감 있는 화면을 보여줍니다.


스크린샷 2025-07-22 오후 12.58.06.png della Francesca, <Flagellation of Christ>(1455)


1480년대는 회화에 선 원근법이 적용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입니다. 공간감과 입체감 구현은 여전히 회화의 주된 목표였지만, 선 원근법이 적용된 건축물을 그림 배경으로 가득 채우는 건 인위적이라 생각한 새로운 세대의 화가들은 그림 전체에 은밀히 선 원근법이 적용된 더욱 자연스럽고 세련된 방식을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1480년대에는 탁 트인 자연 환경을 배경으로 빛과 대기 효과로 공간감을 구현해내려는 베네치아(Venezia) 미술이 피렌체에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광학(optical) 효과에 관심이 높았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스푸마토(sfumato) 기법을 연구하기 시작하며 15세기 전반기 피렌체 미술의 전통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피렌체 미술은 1500년부터 1520년대까지 이른바, 전성기 르네상스(High Renaissance) 시대를 맞이합니다. 1480년대는 초기 르네상스(Early Renaissance)를 마감하고 전성기 르네상스를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페루지노의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는 그리스도>는 15세기 전반기의 전통이 남아 있으면서도 다음 시대를 예고하는 1480년대의 과도기적인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amMagazin_MonaLisa_Teaser.jpg da Vinci, <Mona Lisa> (1503-1506)


그림 양옆을 채우는 건축물을 생략함으로서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는 그리스도>는 어느 누구의 눈에도 탁 트인 광장이 펼쳐진 실외를 배경으로 한 그림으로 보입니다. 그림 양옆을 가득 채우는 일정한 비율로 그림 뒤쪽으로 후퇴하는 건축물은 2차원 평면에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탁월한 효과를 지녔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그림이 실내에서 발생한다고 혹은 야외에서 발생한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모호함을 남기기도 합니다. 페루지노는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는 그리스도>에서 근경에서 후경으로 이어지는 건축물을 생략하면서도 그림에서 충분히 공간감을 만들어 냄으로서 명료함(clearness)이라는 가치를 획득하는 데 성공합니다.


스크린샷 2025-07-31 오후 2.46.42.png Raffello, <Madonna del Cardellino> (1507)


안정적인 비율에 기반을 둔 신체 표현, 고요한 분위기, 쾌적함의 미학 추구와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표현과 더불어, 애매모호하지 않은 명료한 표현과 분명한 메시지의 전달은 전성기 르네상스를 비롯한 고전적 미학의 특징입니다.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는 그리스도>는 회화에서 공간감을 만들기 위해 기존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던 그림의 앞부분에서 뒷부분까지 이어지는 건축물을 생략함으로서 그림의 모호함을 줄이고 고전주의 미학의 특징인 명료함의 미학에 한층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keys.jpg Perugino, <Christ Hadning the Keys to St. Peter> (1481-1482) (detail)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는 그리스도>의 명료함은 그림의 핵심 주제를 화면 전면부에 배치함으로서 한층 분명해집니다. <그리스도의 채찍형>이나 <사산된 아기의 기적> 모두 핵심 사건은 중경의 화면 왼편에 작게 등장합니다. 인간은 그림을 볼 때 앞부분부터 뒷부분으로 순차적으로 시각 정보를 수용하고 양옆보다 가운데를 중요한 요소로 인지합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의 채찍형>이나 <사산된 아기의 기적>은 그림의 중심이 되는 사건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반면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는 그리스도>에서는 주인공인 예수와 베드로가 그림의 가장 앞부분의 거의 중앙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벽화의 위에 쓰인 “내가 너를 세우리니, 하늘나라의 열쇠를 네게 주노라”라는 문장으로 요약된 사건은 그림을 유심히 관찰하지 않더라도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시스티나 예배당의 벽화 역시 그림의 중경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으며 무릎을 꿇은 베드로의 바로 뒤에 두 남성은 춤을 추는 건지 화면 왼편으로 뛰어가는 도중에 고개를 돌린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이들이 예수가 베드로에게 열쇠를 수여하는 사건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채찍형>이나 <사산된 아기의 기적>처럼, 핵심 사건을 그림의 중간 층위의 한 쪽 구석으로 내몰고 정체를 확신할 수 없는 인물들이 그림의 전면을 차지함으로서 그림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주는 수준은 아닙니다. 페루지노의 프레스코 벽화는 여전히 모호한 구석은 있지만 그림 자체를 이해하는 데 방해할 정도는 아니며 그림은 고전적인 명료함의 미학에 상당히 근접해 있습니다.


4. 시스티나 예배당 벽화 작업, 그 20년 후


Cattedrale-San-Lorenzo-a-Perugia-facciata-laterale.jpg 페루자 산 로렌조 대성당(Cattedrale Metropolitana di San Lorenzo in Perugia)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는 그리스도>는 1472년 마스터의 자격을 얻은 후 10년 동안 페루지노가 회화에서 선 원근법에 관한 연구를 지속해 왔다는 걸 보여줍니다. 선 원근법이 적용된 인공물의 묘사를 최대한 줄이면서도 회화에서 공간감을 만들어낼 정도로 페루지노의 능력이 발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 이상 회화의 우선적인 목적을 2차원의 평면에서 3차원의 입체감 구현에 두지 않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선 원근법은 현실감 있는 회화를 만들기 위한 시각 장치일 뿐, 그림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모호하지 않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듯 합니다. 종교화는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하며, 그 메시지는 되도록 모호하지 않고 명확하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변화를 감지할 수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전성기 르네상스의 고전적인 미학과 일치합니다. 이처럼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는 그리스도>에서 이룩한 성과는 20년 후인 1500년에서 1504년 사이, 페루자의 산 로렌조 대성당(Cattedrale Metropolitana di San Lorenzo) 내 산토 아넬로 예배당(Cappella del Santo Anello)에 조성될 목적으로 완성된 그림으로 이어집니다. 그 그림은 페루지노가 르네상스 미술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어도 여전히 미술가로서 건재하다는 걸 입증해줍니다.


marriage.jpg Perugino, <The Betrothal> (1500-1504)


- 이야기는 4부로 계속됩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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