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티나 예배당4] 페루지노의《마리아와 요셉의 결혼》

시스티나 예배당 속 페루지노의 걸작이 르네상스 미술에 남긴 유산

by 수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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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토 아넬로 예배당의 《스포살리치오》


이탈리아 페루자(Perugia) 산 로렌조 대성당(Cattedrale Metropolitana di San Lorenzo)


산 로렌조 대성당(Cattedrale Metropolitana di San Lorenzo)은 랜드마크이자 주교좌성당으로 페루자(Perugia)의 가장 중요한 종교 건물입니다. 1345년 공사가 시작된 산 로렌조 대성당은 150년만인 1490년 완공됩니다. 완공 이후 대성당은 핀투리키오(Pinturicchio, 1453-1513)에게 그림을 의뢰합니다. 그러나 작업은 1499년 피에트로 반눈치(Pietro Vannuchi, 1446-1523), 일명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에게 넘어갑니다. 페루지노는 가로 185㎝, 세로 234㎝로 윗부분이 돔(dome) 형태인 루네트(lunette) 모양의 그림을 4년 동안 제작합니다. 1513년 이 그림은 산 로렌조 대성당 내 한 예배당의 중앙제단에 봉헌됩니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침공한 나폴레옹(Napoléon Bonaparte, 1769-1821) 군대는 1797년 이 성화(聖畫)를 프랑스로 반출합니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페루자는 반환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해 페루지노의 그림은 노르망디(Normandie)의 캉 미술관(Musée des Beaux-Arts de Caen)에 있습니다. 이 그림은 프랑스의 문화재 약탈의 역사뿐만 아니라, 신으로부터 재능을 부여받아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학을 완성시킨 미술가의 위대함을 입증해주는 작품입니다.


Perugino, <Engagement: Sposalizio> (1500-1504)


2. 산 지롤라모 교회의 《스포살리치오》 벽화

페루지노의 그림이 봉헌되었던 장소는 산토 아넬로 예배당(Cappella del Santo Anello)입니다. 산토 아넬로(Santo Anello)는 성반지(Holy Ring)라는 뜻으로, 성처녀 마리아(Virgin Mary)가 나사렛의 성 요셉(St. Joseph of Nazareth)에게 받은 결혼반지를 지칭합니다. 이 반지는 이탈리아 키우시(Chiusi)의 교회에 보관되어 있었지만 1478년 페루자에게 넘어갔습니다. 산 로렌조 대성당이 완공된 후 페루자는 성반지를 대성당 내 별도의 예배당에 보관하기로 결정합니다. 예배당은 성반지를 위한 공간이므로 예배당은 성반지 예배당(산토 아넬로 예배당)이라는 이름이 붙어졌습니다. 산 로렌조 대성당은 산토 아넬로 예배당의 중앙제단을 장식할 미술품이 필요했습니다. 대성당 측은 산토 아넬로 예배당의 주인공이 성반지이므로 중앙제단 그림은 성반지가 돋보이는 주제여야 했습니다. 결혼반지는 마리아가 요셉과 혼인함으로서 기독교의 성유물(relic)로 거듭났습니다. 이런 이유로 산 로렌조 대성당은 산토 아넬로 예배당 중앙제단화가 마리아와 요셉의 혼인 장면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di Lorenzo 혹은 Zoppo, <Bethrothal: Sposalzio> (1482)


산 로렌조 대성당으로부터 마리아와 요셉의 결혼식 그림을 의뢰 받았을 때 페루지노는 두 개의 그림을 주로 참고합니다. 첫 번째는 스펠로(Spello)의 프란시스코 수도회의 산 지롤라모 교회(Chiesa di San Girolamo)의 <성모의 결혼 Sposalizio>(1482)입니다. 이 벽화는 피오렌초 디 로렌초(Fiorenzo di Lorenzo, 1440-1522) 또는 로코 추포(Rocco Zoppo, 1450-1508)의 그림으로 추정됩니다. 배경에 건축물이 있는 야외에서 화면 가운데에는 사제를 사이에 둔 채 마리아와 요셉이 마주 보고 서 있으며, 신랑과 신부 뒤로 하객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의 결혼은 중세 말에 처음 등장한 기독교 도상으로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일반적인 기독교 이미지는 아니었습니다. 해당 도상에 관한 특정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페루지노는 성처녀 마리아와 나사렛의 성 요셉의 혼인, 즉 “스포살리치오”(sposalizio) 도상에 관한 레퍼런스(reference)가 필요했습니다.


Giotto, <Betrothal: Sposalizio> (1304-1306)


이미 지오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7-1337)가 스크로베니 예배당(Cappella Scrovegni) 벽화로,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400?-1455)가 산타 마리아 누오바 병원(Oespedale di Santa Maria Nuova)의 패널화로 스포살리치오 도상을 제작했지만 각각 페루자와 멀리 떨어진 파도바(Padova)와 피렌체(Firenze)에 있기 때문에 페루지노가 쉽게 참고할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Fra Angelico, <Engagement: Sposalizio> (1431-1432)


반면 스펠로는 페루자 광역 도시권에 속한 시골 마을로서 페루지노가 참고하기에 유리하였습니다. 그러나 산 지롤라모 교회의 벽화는 인물들이 지나치게 밀집되어 답답한 느낌이 날 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움이 결여된 채 그림 전체가 지나치게 경직된 분위기입니다. 페루지노 역시 이 벽화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페루지노는 산 지롤라모 교회 벽화로부터 큰 틀은 차용하되 단점을 대폭 수정하기로 결심합니다. 그 과정에서 페루지노는 또 다른 작품을 떠올립니다.


3.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는 그리스도》의 영향


Perugino, <Christ Handing the Keys to St. Peter> (1481-1482)


페루지노가 떠올린 작품은 20년 전 자신이 시스티나 예배당(Cappella Sistina)에 완성한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는 그리스도 Christ Handing the Keys to St. Peter>(1481-1482)입니다. 산토 아넬로 예배당의 중앙제단화는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는 그리스도>와 여러 모로 비슷합니다. 산 지롤라모 교회의 <스포살리치오>가 답답한 느낌을 주는 건 인물들이 빼곡하게 들어 찬 근경에 곧바로 건축물이 등장해 화면에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페루지노는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는 그리스도>처럼 화면을 세 부분으로 구성합니다. 근경에는 신랑, 신부와 결혼식의 증인 혹은 목격자인 하객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중경은 근경에서 후경으로 넘어가는 사이 여유를 주기 위해 추가되었으므로 소규모의 인물들이 넓게 퍼져 있습니다. 그들은 근경의 사건에는 관심 없는 듯 각자의 일에 몰두합니다. 근경에서 시작되어 일정 비율로 줄어드는 선 원근법이 적용된 기하학적 무늬의 바닥을 통해 그림을 하나의 유기적 통일체로 만들어주며 관람자의 시선을 근경에서 중경과 후경을 지나 원경으로 최종적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합니다. 뿐만 아니라 시각적 안정감을 구현하기 위하여, 정확히 그림의 세로축에 세밀하게 묘사된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을 위치시킨 것도 시스티나 예배당 벽화와의 공통점입니다. 이 건물의 지붕은 보이지 않지만, 건물 앞쪽이 세 개의 면으로 구성된 8면 채 건물로서 건물 양옆으로 주 출입문과 같은 높이의 회랑이 붙어 있는 십자가 형태의 구조는 자신이 20년 전 완성한 벽화 속 건물 외형과 같습니다.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는 그리스도>는 가로로 긴 형태인 반면, 산토 아넬로 예배당의 중앙제단화는 세로로 긴 형태이므로 고대 로마 제국 시대의 개선문을 생략한 건 사소한 차이일 뿐입니다.


산 지롤라모 교회 벽화가 경직되어 보이는 주된 원인은 특별한 개성 없이 여러 인물들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페루지노는 그 해결책 역시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는 그리스도>에서 찾았습니다. 어느 정도의 간격을 주고 근경 속 인물은 좌우 각각 5~6명 정도로 제한한 채, 다양한 포즈를 부여하였습니다. 이들은 마리아와 요셉의 결혼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머리 위치, 고개 방향, 시선, 자세 등에서 다양한 변주를 주었습니다. 산 지롤라모 교회 벽화 속 시선을 사로잡는 남성의 포즈를 따오되 관람자의 시선이 이 남성에게 지나치게 쏠리지 않도록 보다 세련되게 보정하였습니다. 그 결과 성반지가 탄생하는 장엄한 순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경직되고 단조로운 분위기에서 벗어나 그림의 생동감을 불어 넣는 데 성공합니다.


산토 아넬로 예배당 중앙제단화에 묘사된 장면은 요셉이 마리아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어주기 직전의 순간입니다. 하지만 산 지롤라모 교회의 벽화, 그 이전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에는 요셉이 마리아의 손을 잡기 직전일 뿐 결혼반지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산토 아넬로 예배당은 성반지를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중앙제단화에는 반드시 결혼반지가 등장해야만 했습니다. 이에 페루지노는 다시 한 번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는 그리스도>를 레퍼런스로 활용합니다. 페루지노는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는 그리스도>에서 예수가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전달한 후가 아닌, 전달되는 상황을 제시하여 기독교 교리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관람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하여 극찬을 받았습니다. 그림의 주인공이 또 다른 주인공에게 성물을 전달하는 순간의 극적 효과를 정확하게 알고 있던 페루지노는 스포살리치오 도상에도 이 전략을 그대로 가져옵니다. 요셉이 마리아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어주기 직전의 상황을 제시함으로서 비록 그림의 전체 분위기는 고요하지만 단순한 결혼반지가 기독교의 성물로 완전히 그 의미가 바뀌는 찰나의 순간을 제시합니다.



이 순간은 단지 진정한 주인을 찾은 성반지가 탄생하는 순간에 그치지 않습니다. 마리아의 오른손은 반지를 받기 위해 요셉에게 향하지만 왼손은 배 위에 얹혀 있습니다. 그녀의 배는 약간 불룩하여 그녀가 뱃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마리아와 요셉의 혼인은 예수 탄생 이전의 사건으로 예수가 등장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마리아의 배를 불룩하게 표현하여 이 역사적 사건에 예수도 함께 했음을 보여줍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기독교의 주요 성인으로 추앙받는 건 이 둘이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현세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마리아의 남편이며 예수의 현세의 아버지이자 보호자인 건 그가 자신과 성관계를 하지 않았음에도 예수를 임신한 마리아를 예정대로 자신의 아내로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페루지노는 마리아의 배를 살짝 불룩하게 표현하여 스포살리치오가 마리아와 요셉의 혼인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성 요셉으로 구성된 성가족(Holy Family)이 탄생하는 사건으로 그 의미를 확장합니다.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는 그리스도>에서 예수가 베드로에게 두 개의 열쇠를 건네기 직전을 묘사함으로서 성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공식적인 후계자로 거듭나는 상황을 극적으로 제시하였던 것처럼, 산토 아넬로 예배당 중앙제단화에서는 요셉이 마리아의 손가락에 결혼반지를 끼어주기 직전 상황을 제시하여 성가족이 탄생하는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페루지노는 스펠로의 산 지롤라모 교회 벽화의 기본 틀을 가져오면서 벽화의 단점을 자신이 약 20년 전에 완성한 시스티나 예배당의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는 그리스도>에서의 장점을 성공적으로 결합하여 4년이라는 오랜 제작 기간 끝에 <마리아와 요셉의 결혼 Sposalizio>(1500-1504)을 완성합니다. 페루자 산 로렌조 대성당의 산토 아넬로 예배당의 <스포살리치오>는 페루지노의 후기 걸작으로 인정받습니다.


4. 지오반니 산티와 페루지노


Anonymous, <Bust of Giovanni Santi> (?)


페루지노와 같은 시대에, 페루자로부터 북동쪽으로 약 110㎞ 정도 떨어진 우르비노(Urbino)에는 화가이자 미술이론가인 지오반니 산티(Giovanni Santi, 1435-1494)가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논점 Disputation』이라는 미술 에세이를 집필하였습니다. 이 글에서 산티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와 함께 페루지노를 신으로부터 재능을 부여받은 인물로 평가합니다. 그가 페루지노를 천재로 인정한 건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는 그리스도> 덕분입니다. 산티는 1504년에 완성되는 <마리아와 요셉의 결혼>을 못 보고 사망하였습니다. 하지만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건네는 그리스도>를 기반으로 하지만 더욱 정확해진 인체 비례, 인물의 우아한 포즈, 색채의 섬세한 처리 등으로 더욱 완성도가 높아진 <스포살리치오>를 목격했다면 페루지노의 천재성을 또 다시 극찬했을 겁니다. 산티는 1483년 48살 즈음 자신보다 25살 어린 마지아(Màgia, 1461-1491)와 혼인합니다. 그녀와 혼인한 건 마지아가 산티의 아이를 임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1483년 마지아는 아들을 출산했고 지오반니 산티는 48살에 늦둥이 아들을 얻습니다. 이 아들은 산티의 유일한 자식입니다. 자신의 글에서 페루지노를 천재라 평가했던 지오반니 산티는 자신의 늦둥이 아들에게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페루지노의 그림들을 마주했던 경험을 종종 이야기하였습니다. 자신의 가업을 잇기를 바란 산티는 아들에게 시간 날 때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피에트로 페루지노의 천부적 재능을 칭송하였습니다. 1494년 59세의 나이로 산티는 11살의 아들과 작업장을 남겨둔 채 사망합니다. 지오반니 산티가 사망하자 그의 유일한 아들은 화가가 되어 부친의 작업실을 물려받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그는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고향 우르비노를 떠나 페루자로 향합니다. 아버지가 생전에 입에 침이 마르게 칭송한 페루지노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Raffello 혹은 di Credi, <Portrait of Perugino> (1504)


- 이야기는 5부로 계속됩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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