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동창은 대학 교수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나는...???

by 수다인

동네에 장년의 남자 선생님 혼자서 운영 겸 강습을 하는 영여교습소가 있었다. 언어에 흥미가 높았던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쯤 엄마를 졸라 그 곳을 다녔고 그 반에는 외향적이고 다소 허풍적이고 과장된 말투에 목소리도 큰 남자 아이가 한 명 있었다. 나와는 기본적인 성향 자체가 달라 나는 그 아이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다. 그런데 그 아이와 나는 같은 중학교에 배정되었다. 나는 늘 그 아이와는 같은 반이 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결국 중학교 3학년 때 그와 같은 반이 되고 말았다. 같은 반이 되었어도 그와는 애써 거리를 두고자 하였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그의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그는 우리 집에서 대략 800m 정도 떨어진 조용한 주택가에 살았다. 그의 집은 2층으로 된 단독주택이었다. 시장에서 상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낮은 최종 학력의 부모님을 따라 시장 한복판에 살았으며 우악스러운 상인들에게 둘러싸여 늘 소란스러운 환경에서 집 안에 화장실도 샤워실도 없어서 공용화장실을 쓰고 샤워는 설겆이와 빨래를 하던 곳에서 빨간 다라이에 받아놓은 물로 쭈구려서 바가지로 물을 끼얹으며 1주일에 겨우 한 번 샤워해야 했던 당시 우리 집과 비교하면 천국이었다. 딱 봐도 좋은 집에 부모님의 최종 학력과 좋은 직업을 증명하듯, 집 전체는 엔틱한 분위기에 골동품이 장식된 서재까지 갖춘 당시 TV에서 일반적으로 보던 중산층, 프티-부르주아, 부르주아, 혹은 엘리트 계층의 그런 집이었다. 그 아이의 방은 2층에 마련되어 있었다. 날라다니는 무시무시한 바퀴벌레가 밤만 되면 머리 위에서 기어다니는 소리를 들으면서 엄마 옆에서 잠을 자야 했던 나로서는 그의 집안 환경은 말 그대로 부러움 그 자체였다.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우리는 각자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같은 반이었을 때도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 않았기에 졸업하고 굳이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한 후에 그에게 따로 연락할 이유가 없었다. 그도 마찬가지지 않았을까?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쯤 대학교를 다닐 때 쯤 그가 미대나 디자인 쪽으로 대학을 진학했다는 얘기를 우연히 전해 들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선택이라 생각하고 그러려니 했다. 그 후로 다시 10년 정도가 흘러서 지금으로부터 10년, 12년 전쯤이었을 거다. 태어나서 쭉 같은 동네에서 살던 나는 어느 날 늦은 저녁, 산책을 나갔다가 멀리서 그 아이가 또래의 여성과 함께 지가나는 걸 보게 되었다. 당시에는 30대 초/중반이면 이미 남자도 혼기가 꽉찬 나이라 아마 그 여인은 그 친구의 여자친구 혹은 와이프였을 것이다. 둘의 복장은 외출복이 아닌 편안한 실내복이었고, 당시에는 혼전 동거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던 지라, 아마 그 둘이 결혼을 했지만 아직 아이가 없는 신혼 부부 상태일 것으로 짐작했다. 그게 그 친구를 본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 그렇게 그 친구의 존재를 까막히 잊고 있다. 그러던 며칠 전, 아마 2-3주 전 쯤일 거다. 갑자기 그 아이 생각이 났다. 40대 중반에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도, 직업도, 재산도 그렇다고 가족도 없고, 앞으로 비참한 노후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절실히 깨달을 때 나는 종종 중, 고등학교 동창들이 떠오르곤 한다. 현재 동갑 친구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는 나로서는 나와 같은 나이의 다른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얼마나 성공적인 삶을 사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도태됐는지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길이 없다. 그냥 40대 중반의 남성이라면 분명히 사회에서 중진급이고 왠만하면 결혼을 해서 못해도 초등학생의 자녀는 두었을테고 자기 분야에서 베테랑 혹은 전문가로서 인정 받으며 인생의 최정점을 보내는 완전히 나와는 대척점에 있는 삶을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당시에도 친구라곤 거의 없을 정도로 같은 반 학우들마저도 어울리고 싶어하지 않았던 나와 그나마 같은 책상을 쓰고 자기 옆자리에 앉는 거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던 나름 너그러웠던 그 친구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면서 살고 있을까, 그들은 나와는 다르게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을까 종종 궁금해지곤 한다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 중학교 동창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저 궁금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의 이름을 구글에서 검색해 보았다.


그의 이름은 평범하다면 평범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흔한 이름은 아니었다. 그의 이름을 치니 정치가가 상단에 떴다. 이미지 검색을 하니 그는 동명이인이었다. 계속 이미지를 보다보니 그 중학교 동창의 사진이 발견되었다. 성인이 되었지만 그 아이는 중학교 때 내가 기억하던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는 서울의 모 대학교의 교수가 되어 있었다. 그 대학교는 나와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내고 같은 중학교를 다녔던 바로 서울의 그 자치구에 있는 대학교이다. 그 동창이야 말로 진정으로 서울의 그 자치구가 낳은 아들이었다. 사진의 업로드 시점을 보니 2017년이었다. 그는 적어도 2017년도에 그 대학의 교수로 임명된 거다. 이내 네이버에서 그 학교의 그 학과에 접속했고 교수목록에 그가 있는지 확인했다. 2025년 8월 시점에도 그는 여전히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교수소개에는 그의 학력과 연구경력 등의 resume가 대략적으로 나와 있다. 그는 해당 대학교의 디자인 계열 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영국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디자인으로 명망이 있는 영국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니 그는 금위환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친구는 자신이 졸업한 이후 신설된 학과의 교수로 임명됨으로서, 동대학 출신으로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임명되는 전형적인 교수 엘리트의 노선을 걸어온 것이다. 구글에는 2017년도 사진 이외에는 다른 사진은 안 나온다. 2017년이면 지금으부터 8년 전이라 지금은 아마 그 당시와 비교하면 얼굴이 변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30년이 지나서도 사진으로도 금방 그임을 알 수 있을 정도라면 2025년 현재에도 내가 기억하는 중학교 시절의 얼굴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다.


사람마다 성공의 기준, 욕심의 정도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그는 아마 자신의 현재 위치보다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것을, 더 큰 성공을 원할 수도 있지만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서울의 4년제 대학교에서 교수로서 학자이자 연구자로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그의 모습은 15년 전 내가 바랐던 삶 딱 그 자체였다. 내 입장에서 그는 성공한 인생 그 자체이다. 아~ 물론 그의 개인사는 알 수 없으니 그건 논외로 두더라도.


그렇게 의도치 않게 그 친구의 뒷조사를 하고 난 이후 그 친구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고 있다. 부러움도, 질투도 그렇다고 저주도 아닌 말그대로 중립적이며 순수한 축하해주고 싶은 그런 감정이다. 그에게 그저 짧게 축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어떨까라는 다소 기괴한 생각이 떠올았다. 대학 교수이기 때문에 대학교의 비지니스 이메일 계정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할 수 있는 상황이라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것 같다.


도서관에서 텀블러에 커피 마시면서 맥북으로 작업하는 안경 쓴 30대 한국인 남자.jpeg


"이미 30년도 더 전에 잠시 스쳐갔던 사람이라 너는 나를 기억은 못 하겠지만 얼마 전 갑자기 니 생각이 났다. 혹시 너라는 사람이 구글링하면 나오는가 해서 니 이름을 쳐보니 이미지에 니 사진이 검색되었고 그렇게 니가 현재 그 학교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결국 이렇게 이메일까지 쓰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뒷조사 아닌 뒷조사 혹은 스토킹 짓을 하게 된 것 같아 미안하지만 별다른 의도는 없다. 그렇다고 보험을 팔거나 사기를 치려는 건 아니다. 내가 누군지 굳이 너의 기억을 들쳐낼 생각은 없다. 그런데 니가 졸업한 대학교에서 교수가 되어 있는 사실을 알게 되니 그저 순수한 의도로 너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고 싶어졌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더욱 성공하면서 좋은 교육자, 연구자가 되길 바라며 가정에서도 행복이 넘쳐나길 바란다."


대충 이런 메시지의 축하의 메시지를 보낼까 고민이 들었다. 물론 내 신분을 밝힐 생각은 없고. 신분을 밝히고 그가 나를 기억해내면 나는 그토록 싫어하는 질문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래, 넌 요즘 어떻게 지내? 뭐하고(직업은 뭐고?)? 결혼은 했고?" 등등.

그런 질문들에 난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다. 그런 질문에 뭐라고 할까?


"응, 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제대로 된 변변찮은 직업도 가져본 적이 없는 말그대로 요즘 2030 세대에서나 만연해 있다는 프리터족인데 그것도 2030도 아닌 40대 중반의 나이의 늙다리 프리터족이고, 직업도 없으니 당연히 벌어놓은 돈도 없어서, 언제 굶어 죽을지도 모를 상황이야. 결혼은 안 했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경제적 능력이 없어서 내 몸 하나 건사할 능력이 없어서 아예 엄두조차 못 내서 못한 것도 맞고, 심지어 평생 내 돈으로 자동차 사서 자동차 몰고 다닐 가능성이 없어 보여서 자동차 면허도 없고 그래. 지금은 그냥 죽지 못해서 살고 있어."


30년만에 쌩뚱맞게 연락한 동창이라는 새끼가 저런 새끼라면 과연 어느 누가 저 놈을 제정신이라고 보겠는가? 오랜만에 만나는 사이에 의례껏 나오는 질문 자체를 회피하기 위해 주변사람들을 거의 다 손절친(?) 나같은 극 회피형 인간이 이미 30년 전에 끝난 인연에게 갑자기 축하의 이메일이라니...???


어릴 시절, 그 당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특별한 사람이야, 타고나길 우아한 기품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혼자 망상에 빠져 있으며 다른 친구들에게 은근히 우월감을 가지며 나만의 세계에 빠져 나르시시스트적인 경향이 있었던 나라는 애가 30년도 더 지나 세상 모자란 사람처럼 살고 있다면 얼마나 웃길까? 굳이 내 자신을 먹잇감으로 던져줄 필요는 없을 거다. 아마 그 친구는 나와 다르게 나라는 존재는 아예 기억조차 못할 확률이 더 높지만 그럼에도 그가 나를 기억한다면 그의 기억 속에 나는 어떤 사람일까? 우연히 길에서 혹은 어느 공간에서 마주쳤는데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어릴 때 그렇게 잘난 척을 하더니 겨우 그 꼴이니? 라고 꼬시다가는 생각이 들 정도일까?


어쩌면 내가 있었던 곳에서 더 멀리 도망쳐 왔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아무도 나의 과거를 기억할 수 없는, 아무도 내가 누구였는지 모르는 곳으로. 그런데 더 먼 곳으로 도망갈 수도 없다. 어릴 때 그토록 부끄러웠던 최종 학력, 직업, 그리고 그 말투와 행동이 부끄러웠던 부모가 모은 돈에 기대에 지금까지도 부모의 노후자금에 기대어 흡혈귀처럼 살아가면서 부모의 도움 없이는 더 먼 곳으로 도망갈 최소한의 자금조차도 없는 나로서는 여기서 더 먼 곳으로, 사람들이 아예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갈 수도 없다. 길거리에서 굶어 죽을 각오가 아니라면. SPC 시화 공장에라도 들어가야 되나. SPC 시화 공장은 받아줄려나? 하긴 목숨을 담보로 한다면 받아는 주겠지. 사회에 아무런 기여도 못 하는 나 따위의 목숨이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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