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미술품", 투자 대신 취향으로: 미술 소비의 새로운 대안
1. 급증하는 미술품 투자 사건
2024년 9월 서울 동대문구의 갤러리 K에서의 미술품 사기 사건이 발생하였다. 갤러리 K는 연 7%에서 9%의 수익과 더불어 원금 보장이 가능하다고 홍보하고 급기야 유명 배우까지 광고 모델로 기용하며 투자자들을 모았다. 그러다가 2024년 8월 갤러리 대표 김씨는 갤러리 문을 닫고 해외로 도주하였다. 피해금액은 수 천 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갤러리 측은 계약 1건 당 아트딜러(dealer)에게 판매 금액의 최대 15%의 수수료를 지불했고, 실적에 따라 top art dealer, executive art dealer 등으로 진급하며 더 높은 수수료를 제공했다.이러한 피라미드 조직과 같은 운영 방식이 결국 피해자와 피해 금액을 키운 것이다.
갤러리 K 사건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2025년 6월, 서울 강남구의 서정아트갤러리에서도 유사한 사기 사건이 보도되었다. 갤러리 소속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면 매년 저작권료 명목으로 일정한 수익금을 제공하고 원금 역시 보장해준다는 조건으로 투자자들을 모아 일종의 폰지 사기극을 벌였다. 서정아트갤러리 뿐만 아니라, 지웅아트에서도 '아트테크(art-tech)'라는 명목으로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집한 후 대표가 잠적하는 사기 사건이 발생하며 미술품 투자에 관한 사기 사건들이 최근 여럿 발생하였다.
최근 미술품 투자 사기 사건의 피해자들 중 상당수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평소에는 미술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억울함을 토로한다. 그들은 그저 높은 연간 수익률에 거기다가 원금까지 보장된다는 말에 혹하여 투자했다고 밝힌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구매 혹은 투자한 미술품의 작가와 작품명을 알지 못하고 심지어 작품의 실물조차도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아파트를 비롯한 부동산과 주식에 이어 가상화폐, 명품, 금은과 같은 귀금속이나 보석률에 대한 실물투자에 이어 높은 투자처를 찾는 투자자들의 관심이 미술품으로 쏠린 것이다. 시장의 유동성 자금이 넘쳐나고 화폐의 가치가 하락하여 현금 보유에 대한 비판 여론이 팽배해지면 자연스럽게 부동산이나 금과 은과 같은 실물자산으로 돈이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최종 종착지는 거의 예외없이 미술품이다. 미술품을 구매하고 미술품을 수집(collecting)하는 건 오래된 행위이지만 그것이 폭넓은 대중이 참여하는 투자처가 되는 시기는 시장의 유동성 자금이 넘쳐날 때이다. 특히 그 호황기의 시작점이 아닌 종착지에 가까운 시점이다. 만약 우리같은 the 서민 of 서민s, 혹은 평소 미술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에게까지 미술이 hot한 투자처라는 시장의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면 이제 이 경제적 호황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고 그로 인해 미술품 투자로 실패를 할 가능성도 높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화폐 가치가 하락하고 실물 자산 전반에 관한 투자(investment)를 넘어 투기(speculation)의 광풍(maniac)이 발생했다면 사기꾼들이 넘쳐나고 내가 그 사악한 사기꾼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만 한다.
2. 투자자의 투자는 신중해야 한다!
미술품 투자와 관련한 최근의 투기 사건과 관련하여 가장 큰 잘못은 단연코 사기꾼 놈들이다. 남의 돈으로 한 탕 해먹겠다는 마인드 자체가 삼족을 멸할 죄이며 일반적으로는 법적으로 투자자들에게 귀책 사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 시에 투자자들은 충분히 자신에게 발생할 위험이나 손실(risk)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High Risk High Return이라고 수익률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에 따른 손실이 크고 그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건 투자자 개인이다. 그런데 거기다가 원금 보장이라니... 원금이 보장되는 건 은행의 예적금, 혹은 국채나 지방채 정도의 정부 채권이 아닌 이상은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심지어 주식 중에서도 비교적 안전한 종목이라는 ETF 조차도 연 4에서 5%의 수익률 정도라고 보아야 하고 그마저도 원금이 보존되지 못한다는 걸 기본 전제로 깔고 간다. 그런데 연 7에서 8퍼센트(%)의 수익률에 원금 보장 자체가 의심해야 할 조건이다. 결국 투자를 하기 전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주식 투자의 icon 워런 버핏(Warren Buffett, 1930-)은 가치 투자를 대단히 강조한다. 닷컴(.com) 버블 때나 가상화폐 투자가 핫할 때에도 버핏은 그러한 종목들은 전혀 구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당시의 유행이 흔들리지 않고, 늘 동일한 기업의 주식을 일정한 기업의 주식을 투자해왔다. 그의 투자율은 연간 4에서 5퍼센트 사이였고 지금과 같은 주식 부자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 건 그가 60대가 되어서라고 한다. 남들이 보았을 때 그는 고지식하거나 나쁘게 말하자면 우둔한 투자자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신념(faith), 가치(value) 혹은 기준(criteria)에 따라 투자를 결정한다.
투자를 결정하는 신념, 가치, 기준은 투자자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주식 시장에 상장된 기업들은 모두 다 영리를 추구하는(for-profit) 기업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은 기업의 건전한 재무제표 푠황, 수익성, 자산가치 등일 것이다. 하지만 상장 기업은 다수의 사람들의 운명 공동체이므로 공공의 선(public good)을 추구해야 한다. 피고용인들에게 높은 복지 환경을 제공하거나 안전하고 훌륭한 근로 환경 제공, 친환경적인 생산 라인 구축하며 영리를 추구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몇 십 년 전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ies, CSR)'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이들 기업이 이를테면, 기업의 문화예술에 대한 메세나(mecenat) 혹은 후원/지원, 국내/외 가난 혹은 빈곤 문제 해소 등등으로 기업의 이윤을 추구하는 직접적인 존재 이유와 전혀 무관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서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기여를 하는 것 역시 그 기업의 주식을 투자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내 돈을 쓰면서 투자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는 건 개인에 따라 다양할 수 있지만 워런 버핏과 같은 투자자들이 강조하는 가치 투자는 그저 이 종목이 hot하다는 이유로 단기적 수익성에 함몰되어 투자를 결정짓지 말고 기업의 장기적 지속가능성(long-termed sustainability)에 주목하라는 의미이다. 어느 부분에 방점을 찍을 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건 본인의 평소 신념, 삶의 방식, 철학 혹은 취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3. 무슨 그림을 사야지 돈을 벌 수 있어?
작년이었다. 지역의 공공도서관 직원에게 일반성인들을 대상으로 미술사 교양강의를 할 수 있는지를 문의했다. 직원은 요즘 지역 주민들의 미술에 대한 강좌 개설에 대한 요구가 높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관심은 미술사(art history)와 같은 인문학 쪽 분야가 아닌 미술 투자(art investment)라고 하였다. 미술 투자가 유행인 상황에서 자신도 미술품 투자에 뛰어들고 싶은데 어떤 미술가의, 무슨 작품을 구매하면 수익을 얻을 수 있을지, 싼마이로 이야기하자면 어떤 그림을 사면 싸게 사거 나중에 비싸게 되팔아서 돈을 벌 수 있을지를 알려줄 수 있는 강의 수요가 높다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하는 교양강의에 어떤 미술품이 돈이 되는지, 어떠한 작품을 사야 돈이 되는지, 무슨 부동산 경매 학원도 아니고 이게 도서관에서 진행해야 할 강의인가 라는 생각에 씁쓸했다.
이 일화를 문화 기관의 평가 업무를 10년 넘게 해 오고 있는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 친구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토로했다. 문화예술계 쪽에 10년 넘게 일해오다 보니 하루는 자신의 친구가 요즘 미술품이 hot한 투자처인데 어떤 그림을 사야 돈을 버는지 정보를 공유해 달라고 묻더란다. 그러자 그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한다.
"야! 그거 알면 내가 먼저 사서 부자됐지 지금 이러고 살겠냐?"
확실히 불과 2-3년 사이에 사람들의 미술품 투자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두 일화를 통하여 나는 미술품 투자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점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평소에는 미술에 관심이 별로 없다. 그들은 미술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니라 미술을 통해서 단지 돈을 벌고 싶은 거였다. 이는 특별히 미술만의 특징은 아닐 것이다. 투자 혹은 투기의 대상이 되면 모든 것들은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 대신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경제적 수익을 가져다 줄 지의 해당 재화의 본질과 관련이 없는 외재적 가치(extrinsic value)에 더 주목한다. 부동산 혹은 아파트만 하더라도 살(living)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 아니라 시세 차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살(buying)만한 가치가 있는가가 더 중요한 척도가 된다. 미술품 역시 그 미술품으로 인하여 획득하는 미적 자본(aesthetic capital)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중요한 건 미술품을 되팔 대 얼마의 수익을 가져다 줄 것인가 이다. 그러한 점에서 부동산이나 미술품은 투자자들에게는 전혀 다를 바 없다. 다만 부동산에 비하여 미술품이 보다 저렴하면서도 일반적인 투자처가 아니라는 점에서 발생하는 uniqueness, 현재 투자 시장에서 일종의 blue ocean라고 느껴질 뿐이다.
4. 미술의 역사는 돈의 역사이다!
미술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미술은 늘 경제적 가치와 무관하지 않았다. 미술품 그 자체는 인간의 생존에 관련 없는 기호품 혹은 사치재(luxurious goods)이다. 그렇지만 미술품이 생산은 철저히 경제적 원리를 따른다. 직업 미술가는 경제적 관점에서 미술품이라는 최종 재화의 생산자(producer) 혹은 공급자(supplier)이다. 과거에는 황제나 왕, 왕족, 귀족, 교회나 불교 사찰, 특정 단체, 부유한 개인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미술가에게 자신이 원하는 미술품 제작을 명령하거나 주문하였다. 이들은 계약금 명목으로 미리 소정의 금액을 지불하고, 미술품, 즉 재화가 완성되면 최종 비용을 미술가들에게 노동의 댓가로 제공한다. 대체로 미술가들의 수익은, 이른 바 '건 by 건'으로 발생한다. 물론 서양의 궁정화가, 조선시대 도화서(圖畵署)의 화원처럼 왕실 혹은 왕국의 미술 전담 부서에 공무원으로 고용되어 연봉이나 녹봉을 지급받은 고용직 형태로 수익을 얻을 수도 있었다.
그러던 전통이 19세기 이른바 낭만주의(Romanticism) 시대부터 오늘날과 같이 프리랜서 방식의 작업으로 거의 전적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그 전에는 주문자가 원하는 그림을 order-made 방식에서 제작하였다면, 이제는 미술가가 미리 자신이 창작하고 싶은 미술품을 만든 후 자신의 최종 재화를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에게 판매하는 pre-made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그렇지만 미술가는 돈을 벌 목적으로 창작 활동을 하는 미술 생산자이고 미술 활동, 그들의 미술 창작품이 그들의 이익의 원천이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구체제(ancien regime)에서 미술품을 주문하거나 미술가를 후원하던 사람들이나 오늘날의 미술품 구매자 모두 미술 애호가(amateur)로서 경제적 관점에서는 소비자(consumer) 혹은 수요자(demander)이다. 미술의 제작과 유통에 생산자와 소비자라는 핵심 행위자가 존재하고 이들이 실물의 재화(producti)를 일정한 프로세스(process)에 따라 거래(transaction)하고 그 과정에서 소비자가 생산자에게 재화에 대한 비용을 지불한다는 점에서 미술은일반적인 경제 원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러므로 미술품 역시 경제적 가치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미술품 역시 다른 소비재(consumer goods)와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내재적 가치를 지녔다. 식품은 누군가의 입에 들어가서 영양분을 제공하는 게 원래의 목적이고, 의류의 본질은 더위나 추위를 피하고 몸을 보호하기 위함이며, 의자는 누군가가 앉는 것이 존재의 의미, 혹은 본질적인 '이데아(ἰδέα)'이다. 미술품의 본질적 가치는 미적 경험을 제공하며 미적인 감성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우리 집 거실이나 방 한 벽면에 걸어두면 집의 분위기를 바꾸어줄 수 있는 인테리어 목적으로, 종교적 주제의 미술품일 경우 기독교의 신앙 생활이나 불교의 신행 생활을 더욱 몰입하기 위해 미술품을 구매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보다 순수하게는 그저 아름답거나 나의 미적 취향과 일치하기 때문에 혹은 내가 그 미술가를 좋아하기 때문에 구매할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이 그림을 가지고 있다가 되팔을 때 이로부터 큰 돈을 벌 의도는 미술의 본질적 이데아는 아니다.
역사상 최초의 경제 버블(bubble)이 발생했던 17세기 초중반의 네덜란드는 경제적 호황을 누리며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다. 당시 수도 암스테르담(Amsterdam)에는 전체 인구 대비 직업 미술가들의 수는 오늘날 미국 뉴욕(New York)을 상회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는 당시 네덜란드에 미술에 대한 수요가 대단히 높았다는 걸 의미한다. 실제로 17세기 네덜란드의 왠만한 가정집에서는 미술품 한 두 점은 기본적으로 소장하고 있었다. 비싼 유화(oil painting)을 살 여유가 없었던 최하층의 가정집은 하물며 그보다 저렴한 판화 작품이라도 집 안에 붙여져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네덜란드 길거리에서 판매되던 풍속화(genre painting)이나 풍경화(landscape), 정물화(still-life painting)의 가격은 비싸지 않았고 네덜란드 시민들의 전체 수입이 높은 상황에서 이들은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맘에 드는 그림을 하나 둘 사갔고 집에 돌아갔고 그렇게 평범한 가정집에서도 여러 점의 미술품을 소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상당한 그림을 사모은 집안이 나중에 상당한 시간이 지나 집안의 물품을 정리하거나 혹은 가계 사정이 악화되어 미술품이라도 팔아야 될 상황에서 그림을 시장에 내놓으니 그 사이 자신의 선조가 네덜란드 시장에서 싼 가격에 샀던 이름모를 미술가는 어느 순간 꽤 중요한 미술가가 되어 있었고 그의 그림은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림을 애초에 샀던 조상은 애초에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지만 결국 그 조상은 자신의 후손에게 그림을 통하여 상당한 경제적 수익을 가져다 준 거다. 오늘날로 말하면 조상 덕에 재테크에 성공한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시간의 가치가 축적되어 미술품의 가치가 증폭되어 예상하지 못한 수익이 발생할 수는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우연일 뿐이며 암스테르담의 거리에서 그림을 구매한 조상은 투자 목적으로 미술품에 접근한 게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집에 걸어두면 좋을 것 같고, 집에 이미 있는 그림들과 잘 어울리거나 그도 아니라면 집안의 벽날로 때문에 더러워진 벽을 가릴 목적으로 샀을 뿐인데 의도치 않게 재테크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그저 시간과 우연이라는 요소가 겹쳐진 드문 사건이다. 아마 당시 네덜란드 거리에서 판매되던 많은 그림들은 오늘날에도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조상에게서 500년 전 네덜란드 화가가 그린 그림을 물려 받은 오늘날의 후손들은 자신이 물려받은 그림이 높은 가격을 받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아무 불만이 없을 것이다. 애초에 그럴 의도로 구매된 것도, 그런 의도로 500년 후의 후손에게 상속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그 그림은 자신의 가족, 자신의 핏줄에 대한 역사의 증언이라는 가치가 있으니.
5. 미술품에 대한 평가와 가치와 평가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미술은 인간의 생존에 전혀 무관한 사치품이지만, 우리의 삶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며 인간을 인간답게 혹은 나를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나로 만들어 줄 있는 잠재력을 지닌 가치재(merit goods)이다. 삭막한 나의 집에 아름다운 분위기를 줄 수 있는 혹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름다운 그림이 집에서 나를 맞이해주고 해당 미술품와 관련한 과거의 일화들을 떠올리면서 일상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도 있다. 특정 미술품을 통해 내가 어떠한 미적 취향을 지녔는지 깨달을 수 있으며, 해당 그림을 계속해서 관찰하다보면 그림의 장점과 단점, 이와 유사한 작품들과의 비교를 통하여 작품의 장점과 단점을 발견해낼 수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그 이전의 나보다 한 단계 더 발전된 내가 될 수 있다.
미술을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건 개인의 선택, 또는 개인의 취향 차이일 뿐이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지만 미술은 좋아하지 않을 수 있고, 그림은 좋아하지만 조각은 좋아하지 않을 수 있고, 사진은 좋아하지만 그림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미술을 좋아하더라도 추상미술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로 추상미술만 좋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나처럼 고전미술은 좋아하지만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에 대해서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건 전혀 잘못된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미술품 투자자가 된다는 건 내가 미술이라는 영역의 행위자 1이 된다는 뜻이다. 해외의 유명 경매에 참여하여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살바토르 문디 Salvator Mundi>(1499-1510)나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화 Portrait of Adele Bloch-Bauer>(1907)와 같은 이전 시대의 거장들의 역사적인 작품들을 낙찰받든, 동시대 한국현대미술의 거장인 이우환(1936-)의 <점으로부터>를 구입하든 이제 겨우 석사 학위(Master of Fine Art, MFA)를 받고 커리어를 시작해서 아트 페어에 출품한 무명의 젊은 미술가의 소품이든 미술품 시장에서 돈을 지불하고 미술품을 구입하였다면 당신은 미술시장에서 소비자(consumer), 수요자(demander)로서 참여한 것이다.
고전주의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1920년대 등장한 수정자본주의 혹은 복지국가론에서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야 하는 논리를 주장한다. 이들은 시장이 전적으로 민간에 의하여 유지될 경우 시장실패(market failure)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정보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은 시장실패의 대표적 유형이다. 생산자가 최종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 유통과 관련한 정보를 모두 공개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경우 정보를 덜 있는 - 대부분은 소비자들 - 집단에게 피해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생산자가 과도한 이익을 얻으면 시장 전체의 효율성 저하를 유발한다는 의미이다. 시장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win-win 하기 위해서 더 나아가 시장실패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가지고 있는 정부의 양과 질이 동등해야 한다.
내가 이 글이서 정보 비대칭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미술 시장에 소비자 혹은 구매자로 참여하려는 사람들은 실패하지 않으려면 많은 정보 혹은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다 빈치, 클림트, 혹은 김환기(1913-1974), 박수근(1914-1965), 이우환,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65-) 등 이미 대가로 인정받거나 대중적으로도 그 진가가 알려진 미술가들의 작품을 구매하는 건 이들의 미술가로서의 지위, 이들의 작품이 지닌 가치에 대한 정보를 내가 별도로 수집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다 빈치 하면 어느 누구나 다 아는 인류사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가 중 한 명이다. 한국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의 근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김환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이들은 그들의 이름 자체가 그들과 그들의 손에서 탄생한 미술품의 가치에 대한 정보의 원천이다. 하지만 지금 동시대에 활동하는 미술가들은 그런 정보를 알기가 어렵다. 현재 활동하는 미술가들 중 평단 및 시장에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 미술가가 몇이나 될까? 요즘 미술은 미술품 그 자체의 퀄러티 보다는 그림의 크기로 기본 가격이 매겨지는 상황에서 그림의 크기가 크면 일단은 몇 천만은 깔고 간다. 그런데 그 그림이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까?
미술의 가치는 유동적이다. 부그로(William-Adolphe Bouguereau, 1825-1905)는 인상주의자들과 같은 시대에 프랑스 살롱 전시회에 참여했던 프랑스 아카데미시즘(Academicism)을 대표하며 당시 대단한 명성을 누렸다. 하지만 오늘날 그의 이름은 거의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반면 빈센트 판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당대에는 전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사후 재평가가 이루어지며 지금은 그의 작품은 부르는 게 값이 될 정도가 되었다. 시간이 축적됨에 따라 누군가는 자리에서 내려오고 누군가는 음지에서 양지로 완전히 운명이 뒤바뀌기도 한다. 해당 미술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그 미술가가 활동했던 혹은 미술품이 창작되었던 시기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둔 후에야 발생한다.
현대미술관(modern art museum) 혹은 동시대미술관(contemporary art museum)이 동시대 미술가의 작품을 수집하는 것이 지속적으로 논란을 일으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그 가치가 검증이 이루어지는 미술품의 특성상 그 가치가 완전히 일반적으로 인정되기 전에 특정 작품을 구입하여 collection에 편입시키는 게 정당한가의 문제를 일으킨다. 1980년대 미술관이 소장품을 매각하는 행위(deaccession)가 처음으로 이루어지면서 미술관이 소장했던 작품을 포기하는 길이 열렸지만 미술관의 수집 정책은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미술관의 작품 구입 예산은 한정되어 있으며 미술관 전체의 한 해 예산 중 극히 일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미술관이 이러한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미술관이 명확한 정체성과 비전, 목표를 우선적으로 설정하고 이에 부합하는 작품들을 찾아내어 기관의 전체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야 한다.
이는 단지 미술관이라는 기관에만 해당하지 않다. 미술품 구매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개인이 '나는 어떠한 미술품만을 컬렉팅 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기에는 어렵다. 서양화를 좋아하면서도 동양화도 좋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의 취향은 대부분 비슷하다. 취향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 선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의 범위가 일정 범위 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미술품을 좋아하는지를 본인 스스로가 먼저 알고 있어야 한다.
6. 미술에 대한 취향을 갖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본인이 어떠한 미술품을 좋아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안타깝게도 타고난 미적 감각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은 경험의 동물로서 자신이 이미 듣고 보고 알고 경험한 것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알지 못하고 경험해보지 못해서 머릿 속에 존재하지 않는 건 굳이 원하지 않는다. 취향이란 이미 자신이 알고 있고, 아는 것을 넘어서 경험하거나 체험해 본 것들이 축적되어 이루어진 결과이다. 경험, 체험 그리고 반복이 취향을 만들어낸다. 취향을 가지기 위해서는 많이 접하고 경험해보는 수밖에 없다. 당연히 많은 것을 경험해보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좋아하지 않는지, 동일한 것들 중에서 무엇이 더 뛰어난지를 골라낼 수 있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피아노협주곡 20번(K.466)은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중 가장 유명한 곡이기 때문에 무수한 연주자들이 연주했고 엄청난 수의 레코딩이 존재한다. 심지어 유튜브만 다양한 연주자들의 버전을 마주하게 된다. 한 가지 버전만 들으면 그 rendition이 뛰어난지 아닌지 비교할 수가 없다. 하지만 다른 곡들도 찾아 들어보면 다른 interpretation과의 비교가 가능하다. 오케스트라와의 밸런스는 잘 맞는지, 1악장의 카덴차(cadenza)를 어떻게 표현했는지, 2악장의 로망스(romance)를 지휘자는 어떻게 해석하는지 등등. 이렇듯 비교 혹은 무엇이 더 뛰어난지를 판단해서 무엇을 더 선호하게 되는지는 경험의 축적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럴려면 많은 경험이 필요하며 경험을 하려면 이것저것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여러 경험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선호하는 것, 덜 선호하는 것, 선호하지 않는 것들이 생긴다. 개인의 취향에 호소하는 것들 미술, 음악, 문학 등은 결국 경험이 관건이다.
오늘날은 이러한 관점이 거의 사라졌지만 서양에서는 조르지오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가 활동했던 16세기에 이미 미술은 유기적인 순환 관계가 있다고 여겨져 왔다. 즉 태초기에서 유년기를 지나 청년기의 절정기에 도달한 후 다시 인간의 노년기에 해당하는 쇠퇴기가 존재한다고 여겨져 왔으며 무려 20세기 말까지 이러한 개념이 유지되어 왔다. 어떤 특정 시대의 미술이, 이를테면 16세기 후반의 후기 르네상스, 일명 매너리즘(Mannerism)은 1500년대 초반의 다 빈치,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1483-1520),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88?-1576)의 르네상스 4대 거장이 살아 있던 전성기 르네상스(High Renaissance) 시대의 미술과 비교하면 쇠퇴한 미술, 조악한 미술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러한 해석은 지양되곤 한다. 16세기 후반의 여러 불안한 사회적 문제들이 뒤섞여 사람들의 태도와 정체성 자체가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며 이는 그 당시의 시대정신, 미감의 차이에서 오는 결과일 뿐으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세기 후반의 후기 르네상스 미술(Late Renaissance)이, 16세기 초반의 전성기 르네상스 미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은 부정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16세기 후반의 후기 르네상스 미술은 17세기 초반의 이른바 바로크(Baroque) 미술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후기 르네상스 미학의 특징들이 계승되면서도 특유의 기괴함을 극복하고 전성기 르네상스 미술의 사실성을 회복하려는 시도가 17세기 이탈리아 미술계에서 발전했기 때문이다. 17세기 초반의 미술의 드라마틱하며 다소 과장된 분위기는 17세기 후반 다소 차분해진다. 이전 세대의 과장성에 피로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의 미술은 다시 18세기 미술로, 이렇게 서양 미술의 특정 시대의 미술은 직전 세대가 오랫동안 지속해 온 과정에 지겨움과 피로감을 느껴 새로운 변화를 꾀하려는 노력의 연속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은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의 진자처럼 오간다"라는 말처럼, 서양 미술 역시 기존의 미술이 지속됨에 권태를 느끼면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기 위한 고통스러운 작업들이 몇몇 혁신적인 미술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역사를 반복해 왔다.
그리고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미술가들은 기존의 권태를 깨기 위해 고통을 감내했거나 혹은 이 권태로운 상황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미술가 둘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 미술가들의 작품이 당연히 미술 시장에서 높은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아 높은 가격에 판매되거나 혹은 다시 시장에 나올 때 애초 구매 금액을 상회하며 기존 소장자에게 막대한 차익을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은 미술투자로 큰 돈을 벌고 싶다면 본인이 막대한 투자금을 가지고 있는 부호이거나 아니면 본인이 작품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거나의 둘 중 하나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이 둘 중 아무도 아니다. 다 빈치의 <살바토르 문디>를 4억 5,000만 달러를 주고 살 돈을 가진 사람은 전 세계에 손꼽을 정도이거나 아니면 미래에 대박이 날 선구안적인 안목을 지니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어렵다. 심지어 modern art 비평의 선구자인 미술비평가이자 시인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 역시 자신의 대표적인 미술비평 에세이인 「현대적 삶의 화가 Le peintre de la vie moderne」(1863)에서 모던 아트의 선구자인 에두아르드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가 아닌, 겨우 보들레르의 그 글을 통해서만 기억되는 콩스탕탱 기(Constantin Guys, 1802-1892)를 근대적 삶의 화가의 대표적인 예로 제시하며 정확하게 틀린 예측을 내놓았다. 보들레르의 사례처럼 결국 미술비평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마저도 누가 미래에도 계속 기억되는 불멸의 예술가로 남을지, 보다 세속적으로 표현하자면, 누구의 그림이 나중에 더 비싸게 팔릴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거다.
그럼 미술품 투자를 하지 말하는 얘기냐? 그건 아니다. 미술가는 1인 자영업자로서 생산 경제의 주체로서 미술품은 그가 시장에 납품하는 최종 재화이자 생계의 원천이다. 미술가가 계속 창작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을 사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그 돈이 미술가에게 주어져야 미술가는 그 자금을 바탕으로 또 다른 작품, 즉 새로운 재화를 만들어 시장에 공급할 수 있다. 만약 구매자가 없다면, 그 미술가는 생산 활동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시장에서 퇴출되고 말 것이다. 상품성이 없는 재화나 서비스가 시장에서 퇴출되는 건 자연스러운 이치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취향의 영역인 미술은 시대에 따라 완전히 평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재화가 지금 시장에서 인기가 없으므로 시장에서 퇴출되어 마땅한 것은 아니다. 미술은 재능의 영역이지만 꾸준함의 영역으로 경력이 쌓일수록 더욱 발전하는 경우가 다수로서 초기 작품보다 중기, 후기 작품이 더 뛰어난 결과를 보여주는 미술가들이 상당하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보잘것 없는 명성을 지닌 미술가가 퇴출되도록 하는 건 미래의 거장의 탄생 가능성을 없애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가 10년 후, 20년 후, 그의 사후 아니면 내가 죽은 후, 나의 자손들의 시대에는 그가 거장의 반열에 올라 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 물론 그런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7. 그냥 자기 마음에 드는 그림을 사라! 그게 정답이다!
미술가도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직업군 중 하나이다. 미술은 우리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재화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으며 우리를 보다 더 나은 우리로 만들어 줄 수 있도 있다.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 우리에게 시각적, 정서적 즐거움을 주는 게 미술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이다. 그저 나에게 그러한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미술품은 그 자체로서 나에게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미술품으로 돈을 번다는 생각은 잊자. 아니 돈을 벌 수는 있지만 내가 아닌 내가 산 그림을 물려받을 나의 자손들에게 그 혜택이 넘어간다고 생각하자. 그리고 당신은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자신의 취향에 부합하는 그림을,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구매하자. 자신의 좋아하는 그림을 자신의 집 거실이나 벽면에 걸어두고 매일같이 이것들을 보고, 벽면에 걸려 있는 시간이 너무 오래 되어 그 그림이 있는지조차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무뎌지더라도 문제될 게 없다. 그 상황이 되면 그 미술품은 이미 당시 가정의 일부가 된 거니까.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애완견, 고양이를 애완묘라고 불러왔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들 동물들이 가정의 일부로 그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의미에서 반려동물이라는 용어로 대체되었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식물에 대해서도 반려식물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쓰곤 한다. 미술품 역시 한 번 구매하면 왠만한 상황이 아니면 계속 그 집에 남아 있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미술품 역시 비록 생명력은 없지만 당신의 남은 생애 혹은 당신이 죽은 후에도 당신의 후손들과 함께 한다면 그 미술품은 당신의 가정의 일부, 가족 구성원(혹은 구성품)이라 봐도 되지 않나? 그러한 차원에서 나는 "반려미술품"이라는 용어를 제안한다. 나는 "반려미술품"을 다음과 같이 정이하고자 한다.
"반려동물이나 반려식물처럼, 늘 곁에 두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나를 위로해주는 그림. 돈벌이 혹은 시세 차익을 목적으로 한 미술품 구매 혹은 투자가 아닌, 삶의 동반자로서 나의 일상과 함께하는 그림"
싼 값에 사서 나중에 비싼 가격에 되팔려는 시세 차익이 아닌 나의 취향에 맞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저 나의 기준에 따라 투자하여 구매하자. 그냥 반려미술품을 내 집에 들여온다는 생각으로.
반려동물을 가정에 들이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와 준비가 필요하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미술품을 반려미술품으로 맞이할 생각이 있는 분들이라면 지금이라도 미술에 대한 자신의 취향과 안목을 길러 보자. 이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많이 보고 많이 공부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미술에 대한 성공적 투자 혹은 나의 취향에 맞는 훌륭한 미술품을 소장하기 위한 첫 걸음은 지금 당장 어떤 미술가가 잘 나가는지를 아는 게 아니다. 과거의 미술들에 대한 역사를, 미술이 어떠한 흐름으로 전개되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어떠한 작품들이 등장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흔히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로서,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라도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며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미술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훌륭한 미술품 컬렉터, 혹은 성공한 미술 투자자가 되려면 과거의 미술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미술사(art history)야 말로 미술품을 소장하고 싶은, 미술품 투자를 고려 중인 사람들에게, 다시 말하자면 반려미술품을 내 집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전 준비 작업과 마찬가지이다. 과거를 알면 미래에 대한 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