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 내향형 인간에게 층간소음은 공포다!
1. 내향형인 나에게 집은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나의 MBTI는 INFJ이다. 그 중 내향성은 무려 87%에 달한다. 원래 내향적이었지만 나이 40이 넘으니 기력이 딸려서 그런지 사람이 더더욱 외부와의 접촉을 굳이 만들려 하지 않고 왠만하면 집에서 조용히 쉬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졌다. 혼자 있는 거에, 혼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혼자 밥을 먹고, 사람들과 약속이 없으며, 주말에도 약속은 전혀 없으며, 1주일에 절반 이상은 입 밖으로 한 마디도 안 하는 삶에 괴롭거나 외로워 불편하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않는다. 사주에 타고나기를 고독한 팔자라고 그런지 가끔, 아주 가끔 무료하고 사람들하고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 스테미너가 딸려서 그런지 그런 생각도 아주 가끔일 뿐 그냥 하루를 홀로 보내는 고독한 삶에 딱히 불편함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당연히 약속이 없는데 그렇다고 밖에서 욜로(YOLO)를 즐길만한 경제적 여유도 없는 지극히 내향형 인간에게 집은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물론 집에서 지금과 같은 글쓰기 작업, 유튜브 영상 작업,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집에서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집에 가서 하던 일을 해야지 라고 밖에서 하던 일을 중단하고 막상 집에 돌아가면 일을 하지는 않는다. 부득이하게 밖에서 처리할 수 없는 일들. 이를테면 영상 작업을 위한 원고 녹음 작업은 밖에서 할 수 없으니 반드시 집에서 해야 하고 만약 썸네일 정도만 만들면 영상 업로드가 될 정도로 아주 후반 마무리 작업만 남았을 경우가 아니라면 나는 집에서 굳이 무언가를 하지는 않는다. 나에게 집이란 온전한 휴식의 공간, 외부의 자극과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차단하고 내가 회복하는 나만의 공간이다. 그렇기에 집은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하루 24시간 중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잠자는 시간 포함하여 절반 정도인 12시간 정도로 그렇다고 대단한 집돌이는 아닐 정도로 밖에서 일을 하고 돌아온 후에는 바로 헬스장에 가거나 요즘처럼 헬스장을 가지 않을 때는 야외 런닝을 하거나 혹은 잠시 휴식과 저녁 식사 후 야외 산책을 나갈 정도로 집에 있는 시간이 의외로 적지만 집이라는 공간은 나에게 가장 우선시 되는 공간이다. 시각, 청각, 후각에 예민하지만 그럼에도 마치 19세기 중반기 프랑스 파리(Paris)의 플라뇌르(flâneur)처럼 사람들과 거리를 둔 채 은밀히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로부터의 외부의 자극을 원하는 대단히 모순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그 특유의 예민함으로 인해 결국 기가 빨려서 집에서 조용히 아무 것도 안 하고 쉬어야 한다. 집은 나에게 휴식처, 외부로부터의 도피처, 과도한 외부 세계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어야 한다.
2. 휴식같은 집, 그런 곳은 나에게는 없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런 집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어릴 때 가정 형편이 좋지 못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나만의 공간이라는 곳이 집 안에는 없었다. 2006년 즈음,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그러한 공간을 가질 수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물리적인 공간이 주어졌을 뿐이다. 아버지의 폭언과 과도한 주사, 그로 인한 부모님의 잦은 다툼은 늘 나에게는 일상이었고 어린 시절 그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건 그저 안 들린다는 식으로 외면하는 것 이외에는 별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닫고 그러고 살아 왔다. 그러다가 부모님과 물리적으로 떨어진 집에서 2016년부터 혼자 살았다. 아버지의 주사, 그로 인한 부모님의 과격한 다툼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이었다. 그렇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혼자 살게 된 곳 밑에는 가게가, 옆건물 상가를 비롯한 동네 골목통에는 술집들이 들어서 있었고 집 자체가 시장 부근에 있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리, 옆집 술집에서 술 마시던 사람들의 고성방가, 다툼 등등이 외부로부터의 청각적 자극은 새벽 2, 3시가 되어도 가시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금 사는 곳으로 2022년에 이사를 왔다. 나 혼자 살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공간이다. 한 평생 제대로 된 일자리 한 번 가져본 적이 없는 잉여인간이 부모의 노력의 결과로 무임승차 하게 된 일종의 공짜 점심같은 그런 전세집이기에 감지덕지해야 할 집임에 틀림없다. 이 집을 계약하는 데 내 돈은 단 1원도 들지 않았고 나는 그렇게 신혼부부 혹은 신혼부부와 갓난 아이의 3인 가구가 살만한, 지하철역에서 불과 30초도 안 되는 거리의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다. 나보다 더 열심히 경제 활동을 하면서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더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호사로운 삶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지나치게 소리에 예민한 사람이다.
생활 소음은 내가 이사온 직후부터 감지됐다. 처음에는 분명히 복도 끝 집이고 특히 안방은 가장 끝쪽인데 아침 6시 즈음이면 어디서 사람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여성도 자는 동안 코를 골지만 여성의 코고는 소리와 남성의 코고는 소리는 구분이 되는데 그 소리는 분명 남성의 코고는 소리였다. 헌데 내 옆, 내 앞집에는 남자가 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코고는 소리의 원인은? 윗층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새벽에는 남녀가 물건을 집어 던지며 부부싸움을 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관리사무소에 물어보니 윗집에 부부가 산다고 했으니 소음의 발생지는 윗집이 분명했다. 나에게는 그 전까지 한 번도 누려본 적이 없었던 혼자만의 안락함의 공간은 이사온지 얼마 안 돼 이내 스트레스의 피하고 싶은 공간이 되었다. 끊임없이 들리는 발망치 소리, 무언가 바닥으로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 다용도실 문을 여닫는 소리 등등이 안방, 거실 가리지 않고, 이른 아침, 오전, 늦은 오전, 오후, 저녁, 밤, 새벽 가리질 않았다. 결국 관리사무소에 찾아가 상황이 이러하니 어떻게 조치를 해줄 수 없냐 했다. 그러자 관리사무소장은 자신도 별 다른 도리가 없다고 했다. 방송을 해도 특정 세대를 콕 짚어서 주의하라고 할 수는 없다는 거다. 요즘은 층간소음 때문에 살인사건도 발생하는 마당에 잘못 말하면 괜히 험한 사건이나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특정 세대를 지목하는 건 대단히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래미안, 자이 등등 대형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의 경비 일을 했는데 거기도 마찬가지라며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관리소장은 도리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본인이 너무 예민한 거 아니에요?"
층간소음 문제를 제기하는 데 도리어 이런 공동주택에 살기에는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예민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기분이 상했다. 이건 마치 절도피해를 당하거나, 살해 위협을 당한 사람이나 혹은 성ㅍㄹ 피해자에게 범죄 피해를 당할 여지를 준 게 네가 문제다라는 말처럼 들렸다. 왜 절도 피해를 당하게 비싼 옷을 휘감고 다니냐? 왜 절도 피해를 당하게 백팩을 등에 매고 걸어다녔냐? 혹은 왜 묻지마 살인을 당할 수도 있는데 길거리를 돌아다니냐 또는 왜 야한 옷을 입어서 ㅅㅍㅎ을 자처했냐는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게 가스라이팅인가... 예민한 니가 문제라며 자신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데 어떻하랴? 결국 참던가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이곳으로 이사오기 전 부모님하고 아파트에서 살 때윗층 아이들이 엄청 뛰어다니길래 올라가 초인종을 누르니 오히려 그 집 애비라는 ㅅㄲ가 애들을 현관으로 끌고 나오면서
"야~ 니들에 뛰어다녔으니까 잘못했다고 해!"
라면서 찾아온 나에게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애들한테만 지랄을 한 적이 있었다. 그걸 보고 이 세상에는 나와 다르게 상식이라는 것도, 부끄러움과 미안함이라는 것도 모르는 족속들이 많다는 걸 절실히 경험했었다.
3. "안녕하세요, 아래층 OOO호 거주자입니다."
결국 나는 이러 저러해서 불편하다 사람 하나 살린다고 생각하고 주의해 달라는 장문의 글을 써서 그 집 현관 앞에 붙여 놓이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 이후로는 발망치 소리나 무언가 바닥으로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의 발생 빈도는 크게 줄어들었다. 이런 곳에서 그런 소음 자체가 안 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냥 그 정도면 참을만 했다. 당연히 소음들의 발생이 줄어드니 당연히 집에 대한 만족감이 높아지게 되었다. 외부 세계로부터 피난처인 집이 이제 내가 생각하는 집이라는 곳이 된 것 같은 편안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소음이 시작되었다. 관리사무소를 통해 알아보니 그 부부는 이사 갔고 새로운 세입자가 바로 이사를 왔다는 것이다. 결국 그렇게 층간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시작되었다. 처음 장문의 글을 쓴 사람이 두 번째는 못하랴? 결국 또 써서 붙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전 세입자 때도 이것 때문에 고통을 받아서 붙인 적이 있다는 문장을 포함해서 이번에도 간곡히 부탁했다.
이 쯤되면 이건 세입자의 문제가 건물 자체, 집을 이렇게 지은 건설사, 시공사의 잘못이 확실했다. 도대체 집을 어떻게 지었길래 윗집 사람이 몇 시에 일어나고 지금 집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밑에 사는 사람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걸까? 심지어 발망치 소리의 강도 혹은 무게감이 다른 걸로 봐서 이번에도 남자와 여자의 두 명이 한 집에 사는 걸로 느껴졌다. 보아하니 남자는 일찍 출근을 하고 여자는 오전 10시, 11시까지도 돌아다니는 소리가 나는 걸로 봐선 이 둘이 같은 시간대에 출근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관리사무소장에게 물어보니 부부가 이사온 게 맞고, 남자는 아침 일찍 나가지만 여자는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내 짐작이 맞았다.
그 이후 나는 지금 이 집에 지금 5년 차 거주 중인데 위층은 그 사이에 다섯 혹은 여섯 번 세입자가 바뀌었다. 대체로 한 번 계약하면 2년을 살아야 하는데 모두 그보다 일찍 이사를 나간다. 내 옆집과 앞집은 모두 나보다 먼저 여기서 살았는데 아직까지 여기 살고 있지만 위층 집은 지나치게 거주자가 자주 바뀌고 그럴 때마다 나의 이 상황은 늘 반복된다.
<소음 발생 -> 고통 -> 집에 대한 불만감 및 평상시 스트레스와 불안감 증진 -> 참다참다 못 참아서 쪽지 써서 붙힘 -> 소음 그나마 감소 -> 다시 집에 대한 만족감 회복>
이 루프를 오늘까지 다섯, 여섯 번째이다. 층간소음이 바로 내 머리 위의 호수가 아니라 다른 곳일 수도 있다고 해서 이 지속적인 소음의 정체가 혹시 아랫 집이나 옆집, 혹은 앞집은 아닐까 꽤 오랫 동안 고민했지만 요 근래 확신하게 되었다. 아니다. 적어도 내가 사는 건물에 안방과 거실에서 나는 이 발망치 소리, 무언가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 안방의 다용도실 문 여닫는 소리의 진원지는 내 바로 윗층 집이 맞다. 왜냐하면 이 직전에 갓난아이가 있는 신혼부부가 이사온 지 채 6개월만에 이사를 나가고 이번에는 처음으로 바로 세입자가 들어온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사를 나가는 당일 아침 7시부터 드르륵 소리에 혹시나 하고 계단을 올라가 복도에서 위층을 보니 이삿집 센터 직원들이 와서 이사를 나가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이사를 나가는 걸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 관리소장에게 "저 집은 이사 온지 6개월도 안 됐는데 또 이사를 가네요."라고 하니 소장이 그렇다면서 그런데 이번에는 바로 세입자가 들어오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그 집은 당분가 비어 있었고 당연히 밤, 새벽, 이른 아침 내내 위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침 8시도 안 돼서 또 무언가 쿵쿵소리가 나서 이번에도 올라가 보니 이번에는 도배하시는 분들이 도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틀 동안 그러한 소리가 났고 도배 작업은 이틀 동안 이루어졌고 도배 작업이 끝나 다시 집이 비어 있으니 위에서는 2주 동안 세상 쥐죽은 듯이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토요일 아침 9시도 안 돼서 또 드르륵, 쿵쿵 하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설마 이사 오는 소리인가 보니 역시나 엘레베이터에 이삿집 직원들이 타서 짐을 옮기고 계단을 통해 올라가 복도에서 윗집을 보니 내 바로 윗집이 이사를 왔다. 이로써 결론은 확실했다. 나를 5년 동안 노이로제에 걸리게 한 그 소음, 소리의 진원지는 윗집이었다.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니 여태까지의 경험이 있으니 이제 또 저 위의 루프가 시작될 거라는 걸 직감했다. 어차피 저 세입자가 소음을 발생시킬테니 애초에 이사온 초장에 얘기를 해야 하나?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지켜보았지만 이내 위층 거주자의 루틴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위층 세입자는 매일 오전 6시 정도면 일어나 3-40분 정도 준비를 마친 후 출근을 했다. 그런데 어쩔 때는 새벽 3시에도 움직이는 소리가 나고, 새벽 4시에도 그럴 때도 있다. 둘이 사나? 혼자사나? 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이제 그 소음이 시작되니 집이 나에게는 세상 괴로운 공간으로 다시 바뀔 조짐이었으니. 결국 나는 오늘 아침 또 다시 장문의 쪽지를 썼다. 이번에는 차분했다. 윗집이나 이렇게 부실 시공을 한 건설사에 대한 분노는 사라졌다. 어쩌면 이사 온 2022년 7월 직후, 안방에 에어콘이 없다는 걸 처음 알고 그 무더위에, 전기세 폭탄이 떨어질까 무서워서 안방에서 자는 걸 포기하고 거실 바로 밑에서 자야만 했던 상황에 직면할 때부터 나는 이 집을 잘못 선택했다는 걸 깨달았음에도 그 후 2년이 지났을 때에도, 그리고 다시 또 2년이 지난 올해 2025년에도 2+2 전세 계약이 종료되어 새로운 곳으로 이사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탈출하지 못한 내 잘못 아니겠는가? 그 4년의 시간 동안 충분히 일을 해서 내가 돈을 벌어 부모님이 지원해준 지금 전세집 보증금에 더해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갔을 수도 있는데 취업을 하지도, 일도 하지도 않아 자력으로 다른 곳으로 점핑하지 못한 다 내 죄였다. 그냥 담담하지만 그럼에도 이 소음의 진앙지가 당신 집이라는 걸 어필하는 내용의 장문의 쪽지를 써서 붙였다. 과연 이 세입자는 상식이 통할까? 여태까지는 운이 좋아서 상식이 통하는 사람들이 내 머리 위에 살았는데 이번의 새 세입자는 아니어서 아마 이 상황에 삔또가 상해 돌아버리는 사람일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4. 층간소음이 주는 공포의 근원, 그것은...
내향형에, 감각적으로 예민하고, 그리고 집을 온전히 휴식의 공간으로 생각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층간소음은 다른 어떠한 사람들보다도 더욱 괴로운 문제로 다가온다. 집이 곧 공포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때문이다. 그건 일종의 밀실공포처럼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 그 자체에서 오는 공포지만 이를 넘어서는 근원적인 더 심각한 근원이 도사리고 있다. 이는 가장 안전해야 할 곳, 바깥 세계로부터의 잠재적인 위험으로부터 내가 가장 안전해야 할 곳, 편안함을 느껴야 할 공간이 사라졌다는 데에서 발생하는 공포감이다. 나에게 집이란 바깥의 자극으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내가 내는 소리, 나의 공간을 채우는 곳에서 나의 의도에 따라 혹은 이 집에 자리잡고 있는데 내가 동의함으로서 집안을 채우는 기기들 - 냉장고, 세탁기, 에어콘 등등 - 이 발생하는 소리를 제외하고, 내가 전혀 바라지 않았는데 그 근원지까지 정확하게 알기 어려운 소리는 이 집이 결국 나에게 가장 안전한 공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드러낸다. 분명히 이 집은 나 혼자고, 나 이외에는 다른 사람의 존재를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데 위층에서 들려오는 발망치 소리, 무언가 물건을 떨어뜨리는 갑자기 발생하는 둔탁한 소리, 문여닫는 소리, 침대에 누웠는데 베개를 통하여 아래로부터 퍼져 올라오는 무언가의 진동하는 소리 등등은 여기에 마치 내가 모르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걸 상기시켜준다. 나는 분명 혼자살고 있지만 나는 끊임없이 정체도 모르는 위층, 아래층, 혹은 옆집에 사는 누군가에게 내 일상이 침해받는다는 불쾌감과 불안감이다. 이들은 직장 동료처럼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면 더 이상 볼 이유가 없는 그런 존재도 아니고 수시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나의 개인적 삶에 침입해 들어온다. 직장 동료가 업무 시간 이외에 전화를 하거나 톡을 보내면서 업무를 내리는 스트레스에 버금가는 공포감이다. 집이 이러한 위협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수 없다는 걸 소리로서 증명을 해주는데 집이 가장 중요한 공간인 사람에게 집이 나의 바람을 충족시켜줄 수 없다면 그 감정은 실망을 넘어 공포에 가깝다. 집이 나를 지켜줄 수 없다면 나는 이제 어디 가야하지? 어딜 가야 내가 완전히 휴식하고 회복할 수 있지? 과연 이 세상에 내가 온전히 안전하다는 감정을 느낄만한 곳이 있을까? 그런 곳이 이 세상에 없다는 절망감에서 오는 공포감이다. 과장하자면 마치 세상 끝 낭떨어지로 내몰린 듯한 감정에서 오는 절박함이 변형된 공포감이다.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사회적 기질이나 감각의 예민성이 다르다. 나처럼 극 내향형의, 감각적으로 예민한 사람은 아마 집에 대한 기대감이나 바람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혼자 살아서 다른 가족 구성원이 발생하는 소리가 전혀 없고 그렇다고 큰 소리로 TV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닌 지극히 심심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 층간소음이 주는 스트레스는 나와 전혀 다른 기질을 가진 사람과는 그 강도가 전혀 다를 것이다. 그건 그저 불편함, 신경쓰임을 넘어 어쩌면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어쩌면 가장 확실한 현실 공포, 가장 절박한 공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