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달리기의 본질은 천천히 오래 달리는 것은 아닐까?
1. 운동에도 유행이 있다!
운동에도 유행이라는 게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대유행을 하기 전 웨이트 트레이닝, 일명 헬스가 일반인들의 가장 많이 하는 운동이었다. 운동 혹은 다이어트르 결심하면 일단 주변의 휘트니스 센터, 일명 헬스장을 등록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렇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헬스장 및 실내 운동시설이 전염병에 대단히 취약하다는 이유로 헬스장의 인기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서 다시 헬스장으로 돌아온 사람들도 많지만 그 사이 사람들은 런닝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찾았다. 달리기는 인간의 본능적인 움직임이라는 데에서 오는 낮은 진입 장벽으로 인하여 런닝은 어느 순간 핫한 운동 종목이 되었다.
유행은 단지 선호하는 운동 종목이 바뀌는 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해당 행위 내에서도 패러다임 자체가 유행에 따라 변하한다. 2010년대 후반,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불법 약물의 오남용을 고발한 약투 운동이 있은 후 케미컬을 쓰지 않는 반대의 존재로 내추럴이 주목을 받았다. 이 약투 운동은 본의 아니게 로이더 vs. 내추럴의 대립으로 이어졌고 각각의 운동 방식은 다르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헬스장에서 하는 일반적인 행위는 보디빌딩 방식의 운동으로 케미컬을 사용하는 로이더들을 위한 운동 방식이며, 케미컬에 의존하지 않는 일반 내추럴들에게는 보디빌딩 식 훈련으로는 몸을 만들 수 없다는 지적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런 내추럴들을 겨냥하기 위한 운동 방법으로 3대 운동 - 백스쿼트(backsquart), 벤치프레스(bench press), 컨벤셔널 데드리프트(conventional deadlift) - 이 휘트니스에서 어느 순간 가장 핫한 운동 법이 되었다. 이 3대 운동의 인기는 최근에는 과거와 같은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수준은 아니다. 다시 헬스장에 얼마나 명품 브랜드들이 채워져 있는지가 중요하게 거론되고 있는 걸고 봐선 다시 머신 운동을 중심으로 한 보디빌딩식 운동 방식으로 유행이 바뀌며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달리기의 본질은 속도!"라는 환상
런닝, 달리기에서도 이와 유사한 변화가 감지된다. 일단은 런닝 자체가 핫한 운동 종목으로 부상하게 되고 그러면 우리가 익히 아는 방식의 그런 행태로 그 종목을 한다. 헬스라는 운동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사람들이 희안한 각종 기구들이 헬스장의 정체성이라고 생각되어 이 기구들과 관련한 운동을 주구장창 하는 방식이었듯, 런닝 역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런닝의 정체성이라고 생각되는 그 행태대로 사람들이 접근한다. 스포츠로서의 달리기, 런닝, 일명 육상 종목들은 하나같이 기록 싸움이다. 100m 단거리든, 800m든, 1,500m 든 혹은 마라톤(marathon)이든 누가 정해진 길이를 가장 먼저 주파하는지에 따라 등수가 결정된다. 누가 어떤 동작으로, 혹은 어떤 주법으로, 달리는 동안 행위자의 신체 움직임은 전혀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1894년 프랑스의 쿠베르탱 남작(Pierre de Coubertin, 1863-1937)은 근대 올림픽을 부활시키고 올림픽은 20세기 동안 인류 최대의 메가 스포츠 이벤트로 자리 잡음에 따라 불과 100년만에 올림픽은 인류의 운동, 스포츠에 관한 개념 자체를 완전히 바꾸었다. 런닝, 달리기는 빠르게 달리는 게 본질이라는 개념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머리 속에 이미 어릴 때부터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선수가 아닌 나와 대부분의 일반사람들이 달리기나 런닝에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는 아마 거의 같을 것이다. 살을 빼기 위해, 체지방을 감소시키는 다이어트 목적으로, 혹은 체력 부족으로 인한 건강 목적으로.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나는 10km를 30분 대로 독파하기 위해 런닝을 할 거야.' '나는 마라톤 풀코스를 4시간 이내에 완주하기 위해 이제부터 달리기를 해보려고 해.' 라고 접근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목표는 달리기가 익숙한 후에 자연스럽게 생길만한 목표이지, 생활체육의 관점에서 달리기, 런닝에 관심을 갖는 우리같은 일반인들이 달리기에 완심을 가지게 되는 첫 번째 이유는 건강, 미용의 목적이다. 당연히 여기에 속도, 얼마나 빠르게 등은 고려 사항이 아니다. 오히려 달리기 습관이 없던 사람이 처음 1km만 달려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엉덩이, 다리는 천근만근이고 땀은 비오듯이 쏟아지는 통에 내가 왜 달리고 있지? 라는 생각에 당장 그만두고 싶을 거다. 달리기의 그 고통스러운 경험 때문에 달리기는 나하고 맞지 않는 운동이야 라고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우리는 접근법 자체가 잘못되었을 것이다.
"달리기=빠르게 이동하는 것"
우리는 달리기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를 가지고 있다. 경쟁 스포츠로서의 달리기, 학교 체육 시간에 체육 점수를 주는 기준도 니가 얼마의 시간 안에 정해진 길이를 완주했느냐가 평가 기준이니 당연히 우리는 빠르게 달리기에 익숙할 것이고, 특히 처음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당연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달리기=빠르게 이동하는 것"이라는 정의에 따라 그 행위를 수행했을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안 하던 걸 하기 때문에 오는 신체의 불편함을 넘어, 터질 듯이 뛰는 심장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3. "천천히 오래 달리기": 달리기에 관한 새로운 패러다임
최근 몇 년 사이 런닝이 핫한 운동이 되면서 달리기에 관한 패러다임 역시 변했다는 게 주목할만한 현상이다. 런닝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음과 동시에 관련된 몇 가지 키워드들이 알려지게 되었다. '슬로우 조깅'(slow jogging), '존2 달리기'(Zone 2 running). 런닝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 두 가지 키워드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 둘은 차이가 있지만 둘 다 "달리기=빠르게 이동하는 것"이라는 기존의 달리기에 관한 관념과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걷는 듯 뛰는 행위, 남들이 봤을 때 지금 저 사람이 뛰는지 걷는지 분간이 안 갈 정도여서 남들이 봤을 때도 그리고 자신이 생각할 때도 저렇게 뛰어서 살이 빠지겠어? 혹은 운동이 되겠어? 라고 의구심이 들 정도의 강도로 달리는 걸 지향한다. 물론 상급자라면 존2 런닝이 누군가에게는 존4 혹은 존5 정도겠지만... 슬로우 조깅, 존2 러닝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동일 행위를 지속하는 지구력 향상을 강조한다. 자신이 페이스를 유지하며 오랫동안 달릴 수 있다면 그 다음에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달리기, 즉 빠르게 달리는 것도 가능하고, 마라톤 풀코스도 가능하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작년 11월부터 9월 현재까지 꾸준히 실내 트레드밀에서든, 야외에서든 런닝을 해오고 있다. 분명 많게는 1주일에 5-6번, 적게는 2-3번씩 한 번에 5km 이상 씩을 달려왔지만 이상하게도 작년 11월이나 지금이나 내 달리기에는 발전이 없었다. 같은 거리를 달리는 데도 속도가 단축되는 것도, 그렇다고 피로도를 덜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그 동안 길고 독한 더위를 지났으며 지나치게 몸이 빨리 더워지고 더위를 잘 타는 나의 신체적인 특징이 기량 향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문제의 원인일 수도 있다.) 오히려 휴식 일 수를 더 가져갔음에도 다음 런닝 때 피로감은 더 심했고 몸은 늘 천근만근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약 10개월을 꾸준히 달렸는데 체지방 감소는 커녕 눈바디는 오히려 그대로였다. 그렇다고 과거에 비해 더 많이 먹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올해 3월 중순부터 8월까지는 5개월 동안은 웨이트를 전혀 하지 않고 달리기만 해서 팔은 더 가늘어지고 상체는 더 볼륨이 줄어들어 보였다. 그런데 더 괴랄한 건 아랫배, 러브핸들의 옆구리살은 더 흉찍해졌다는 거다. 대체 뭐가 문제지? 차라리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더 낫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 나 역시 그저 달리는 행위에만 초점을 둔 데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효율충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효율성이나 효능감 없이 어떠한 행위를 하는 걸 싫어한다. 작년 11월 내가 휘트니스 센터의 트레드밀에서 다시 런닝을 하기로 결심한 것도 이번 기회에는 체지방을 감소하다는 목적에서였다. 그래서 웨이트의 비중을 줄이고 대신 웨이트 후에는 무조건 최소 20분에서 30, 35분 정도는 트레드밀에서 달리기를 시작했고 중간중간 스텝퍼, 천국의 계단을 섞어 주었다. 그러다가 달리기에 더 재미를 느꼈고 결국 유산소는 달리기로 완전히 대체했다. 올해 3월 헬스장에서 거의 매일 같은 시간에 마주치는 배려심이라고는 없는 헬스 이용자들 때문에 헬스장에 온갖 정이 떨어지면서 나는 야외 달리기만을 5개월 동안 해 왔다. 달리기 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눈바디 상으로는 내 몸은 차라리 아예 달리기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보다 더 별로인 거다. 대체 뭐가 문제지?
생각해보니 나 역시 그냥 달린다는 행위 자체를 할 뿐 똑똑하게(smart)하게 달리지는 않았다. 똑똑하게 달리는 방법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그러다가 존2라는 기법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그렇게 존2 런닝을 실행해 보기로 했다. 다행히 나에게는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실시간으로 심박수를 체크할 수 있는 애플워치가 있기 때문에 달리면서 실시간 심박수를 확인할 수도, 달리는 속도를 유지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었다. 존2 런닝을 한 후에는 챗GPT에게 트레이닝 결과를 보여주면서 분석을 요구했고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심박수 135가 넘지 않는 선에서 그 이상이 되면 존3로 넘어가는 편이니 되도록이면 최대 심박수 130이 넘지 않게 전형적으로 존2 구간에 있게 운동하는 게 지금 내 고민에 더 적절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받기도 했다.
4. 존2 런닝: 남들을 신경쓰지 않는 오직 나와의 지루한 싸움
존2 훈련을 해보니 역시 이것도 운동이니 어려운 부분은 있다. 일단은 매우 지루하다는 거다. 지속적으로 속도의 변화 없이 달리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사람이 빨리 달리려고 노력하는 것도 힘들지만 자신이 더 빨리 달릴 수도 있지만 심박수를 유지하기 위해 애써 그보다 더 천천히 달리려고 노력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인내심이라는 마인드 컨트롤 능력이 크게 요구된다. 게다가 젊은 남성, 중년 아저씨, 장년 혹은 60대로 보이는 남성분이나, 혹은 젊은 여성, 중장년 여성이 나를 앞질러 갈 때면 남성 입장에서는 심적으로 흔들릴 때가 있다. 나를 추월하는 다른 러너들도 혹은 내 주위에 걷고 있는 산책자들 중 어느 누구도 내가 누군가에게 추월당하는 것을 전혀 신경쓰지 않지만 처음에는 그 자존심이 상하는 듯한 감정이 들곤 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경쟁심, 승부욕이라는 게 있고 특히 테스토스테론의 지배를 받는 남성은 일반 여성보다 더 그러할테니. 그 감정을 이겨내는 것이 존2 훈련이 익숙하지 않을 때의 가장 힘든 점 중 하나인 것 같다.
그 외에는 장점이 크다. 특히 나처럼 지나치게 체온 상승이 빠르고 땀도 많이 흘리는 사람은 존4, 존5 런닝보다 훨씬 천천히 달리니 운동 중 상승하는 체온도 높지 않으며 흘리는 땀도 그보다는 적은 편이다. 무엇보다 달린 후 운동 전 평상시로 회복하는 시간이 매우 빠르다는 점이다. 같은 코스, 같은 거리를 존4, 존5로 달리면, 특히 무더운 한 여름에는 아무리 런닝을 멈추고 1km 이상의 거리를 천천히 걷거나 혹은 하천 음수대에서 세수를 하고 10분 이상 땀을 식히면서 체온을 내리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신체는 계속 고(high) 체온 상태여서 샤워를 하고 나와도 다시 땀이 줄줄 흐르고 1시간 이상은 높은 신체 온도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존2 런닝을 끝내면 굳이 별도의 쿨다운(cool-down)을 한다거나 1km 걷기 등의 체온 하강을 위한 시간을 갖지 않아도 될 정도이다. 런닝을 끝내고 집 엘레베이터의 거울을 봐도 그냥 얼굴에 땀이 흐르지 얼굴이 빨겋게 달아 올라 누가봐도 '나 열운 하고 왔어요'라는 티는 내는 수준이 아니라 나도, 나를 마주치는 다른 사람도 덜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당연히 체온은 여전히 운동을 하지 않는 일상 수준과 거의 같기 때문에 샤워를 하고 나와서도 몸이 높은 체온 수준에 오래 머무르고 있는 불편함 따위도 없다. 여기에 더해 런닝이라는 행위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신체 이곳저곳에 무리를 많이 주는 움직임인데 천천히 달리니 다음 날 또 런닝에 도전해도 큰 부담이 적은 편이다. 비록 존2 런닝을 실시한지 채 2주 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은 것 같다.
나는 한 동안 수영에 꽤 빠져 있었다. 수영 역시 런닝과 마찬가지로 기록 싸움이다.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다양한 영법이 있지만 모두 swimmer들 사이에서 누가 가장 먼저 피니시 라인에 들어오느냐를 겨루는 속도를 책정하는 운동이다. 스포츠로서의 수영과는 달리 나는 나만의 수영 철학이라는 게 있다. 남들에게 우아하게 보이는 수영 요법, 힘들이지 않고 수영하는 데 부드럽지만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도 않은, 빠르지는 않지만 이쁜 자세를 가진 swimmer가 되는 게 늘 나의 목표였다. 당연히 빠르게 수영하는 것, 기록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남들이 자유형 100m를 얼마나 빨리 들어오나에 관심 있을 때 나는 어떻게 힘들이지 않고 1,500m 수영을 하고 1,500m 수영을 마쳤을 때도 전혀 숨을 가파하지 않고 얼굴은 상기되지 않은 채 여유롭게 물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에 더 관심을 두었다. 수영을 하면서 나는 내가 speed, 속도전에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왜 그걸 나는 달리기에는 알지 못하고 있었을까? 육상 동물인 인간에게 수영은 별도로 배워야 가능한 움직임인 반면 - 적어도 현대인에게는 -, 인간이라면 별도의 학습이 필요없을만한 기본적인 움직임인데도 나는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 걸 수영을 통해서 깨달았던 걸 왜 달리기라는 보다 원초적 행위에서는 잊었던 걸까?
5. 천천히 오래 달리기: 인류의 본질?
많은 학자들은 강력한 이빨도, 엄청난 악력을 지닌 것도 아닌 우리 호모족이 지구 최상의 포식자가 된 데에는 천천히 오래 달릴 수 있는 지구력이 결정적인 이유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아무리 빨리 달려도 대부분의 육식 및 초식 동물들의 순간 시속을 절대 넘을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이들과 달리 꾸준히 지속적으로 달릴 수 있는 능력을 지녔고 바로 이렇게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능력으로 앞서 일치감치 달아난 먹잇감이 쉬고 있는 사이에 뒤쫓아가 기력이 남아 있지 않는 목표를 사냥함으로서 이들을 제압하며 최상의 포식자로 거듭났다는 게 정설이다. 이는 곧 인류에게 달리기, 런닝이라는 빨리 달리는 게 목적이 아닌 오래 달리는 게 본질적인 가치에 부합하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빨리 달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빨리 달려야만 살이 빠진다고 생각해 왔다. 달리기 자체를 하지 않는 오늘날의 인간에게, 아니 20, 21세기가 아닌 오히려 역사 시대에서 계급제 사회가 고착된 인류의 역사에서 달리기는 건 노예를 비롯한 하층민들이 하는 천박한 행위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달리기 자체를 하지를 않았는데 빨리 달리는 것 자체가 너무 지나친 이상이 아닐까? 일단 달리기 자체를 못하는 데 무슨 빨르게 달리고 느리게 달리기를 논하냐? 느리게 조차도 못 달리는데. 여기에 달리기가 경쟁 스포츠고 순위를 매기는 기준이 속도, 얼마나 빨리 피니쉬 라인을 끊었느냐의 기록 결과를 따지는 올림픽으로 인해 우리는 인간과 달리기와의 본질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살아온 게 아닐까?
허먼 폰처(Herman Pontzer)는 『운동의 역설: 다이어트와 운동에 관한 놀라운 과학 Burn: the Misunderstood Science of Metabloism』(2022)에서 먹잇감을 추적하기 위해 하루에 10km는 기본적으로 달렸던 인류의 조상들에게는 비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고 지적한다. 물론 조상들은 사냥감을 잡기 위해 경우에 따라 스프린트(sprint)를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스프린트로 10km를 뛰어다닐 수는 없다. 게다가 순간 시속이 매우 빠른 동물들은 별도의 땀샘이 없어 열 배출 능력이 인간에 비하여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결국 얼마 못 가 뛰는 걸 멈추고 인간은 그저 먹잇감의 이동 경로만 알고 있는 상태에서 꾸준히 천천히만 걸어도 먹잇감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비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인류의 조상들이 날씬했던 건 빠르게 달려서가 아니라 천천히 오래 달려서였던 것이다. 천천히 달리는 게 더 이익이라는 걸 경험상으로도 그리고 그 전에 『운동의 역설』을 읽으면서도 알았는데 왜 그걸 런닝이라는 또 다른 분야에서의 실천에는 적용하지 못했을까?
6. 천천히 달릴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아직 천천히 달리기를 해본 시간이 길지 않아 무작정 찬양하는 듯한 나의 어조가 별로 신빙성은 없어보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천천히 달리면 심장박동이 여동치지 않고 그러면 밖에서 변화하는 자연, 지나가는 사람들, 농구 코트에서 농구하는 젊은 친구들, 벤치에서 물을 바라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연인들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빠르게 달리면 보일 수 없는 것들이다. 빠름, 속도는 중요하다. 그렇지만 빠름, 속도가 전부는 아니다. 지나치게 속도에 치중하면 그 안의 것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잃을 때가 많다. 하천에서 다양하게 이 시간을 나와 같이 혹은 나와 다르게 보내고 있는 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큰 재미이다. 그건 빠르게 달려서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천천히 달려야만 보이고 알고 느껴지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