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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네의 스승 부댕 - 모던 아트의 조용한 개척자: https://youtu.be/v7xqQHVoM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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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변 화가, 외젠 부댕
<트루빌 해변 Beach on Trouville>(1869)으로 1864년 살롱 전시회(Exposition de Salon)에 입선한 외젠 부댕(Eugène Boudin, 1824-1898)은 자신감을 얻어 1865년에도 유사한 주제로 살롱 전에 도전합니다. 부댕은 이번에는 <트루빌 해변에서의 해수욕 시간 Bathing Hour at Trouville Beach>(1864)과 <도빌 카지노에서의 콘서트 Concert at the Casino of Casino>(1865)의 두 점을 출품하였습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부댕은 1864년부터 1869년까지 6년 동안 총 10점을 살롱 전시에 제출하였습니다. <트루빌 해변>, <트루빌 해변에서의 해수욕 시간>과 <도빌 카지노에서의 콘서트> 등의 여섯 점만이 그 실체가 확인되지만 10점 모두 해변에서 여가를 즐기는 파리(Paris) 및 도시 부르주아들을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860년대 중·후반의 활약으로 부댕은 “해변 화가(Beach Scene Painter)”의 명성을 얻습니다. 부댕의 인상적인 활약으로 동료 미술가들 역시 해변 그림에 도전하기 시작합니다.
2. 해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동료 미술가들
<풀밭 위의 점심식사 Le déjeuner sur l’herbe>(1863)로 단번에 파리 미술계의 유명인사로 떠오른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는 1865년 살롱 전시회에는 그보다 더 큰 논란을 일으킨 <올랭피아 L’Olympia>(1865)를 제출합니다. <올랭피아>로 당대 최악의 악동 미술가 이미지가 고착된 마네는 1869년 살롱 전시회에서는 논란의 소지가 적은 <발코니 Le Balcon>(1869)와 <아틀리에에서의 아침식사 Petit déjeuner aux ateliers>(1869)의 두 점을 출품합니다. 두 작품 모두 입선하지만 여론은 여전히 이 두 작품을 조롱하기에 바빴습니다.
아무리 대중의 시선을 즐기는 성격이었지만 7년 동안 온갖 추문과 스캔들로 마네는 심신이 매우 지쳤습니다. 그는 1869년 가족과 함께 프랑스 북부 파-드-칼레(Pas-de-Calais) 주의 불로뉴-쉬-메르(Boulogne-sur-Mér)로 여행을 떠납니다. 파-드-칼레는 파리로부터 약 260㎞, 노르망디(Normandie)의 센느-마리팀(Seine-Maritime) 주와는 170㎞ 거리로 오히려 영국에 더 가깝습니다. 1848년 불로뉴와의 철도 개통으로 파리 시민들의 이곳 접근성은 비약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불로뉴로의 여행으로 마네는 새로운 시도에 도전합니다. 그는 도버 해협(Strait of Dover)의 바다와 해안 풍경뿐만 아니라, 해변에서 여가를 즐기는 부르주아 사람들의 모습 역시 그립니다. 마네의 그림에서 해변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도시 부르주아들의 모습이 등장한 건 이 때가 처음입니다. 휴식을 위해 가족 여행으로 떠난 불로뉴-쉬-메르에서의 새로운 시도는 1870년대 마네의 그림이 획기적으로 변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 이후 마네는 더욱 불분명하고 거친 붓질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자연광에 따라 실외를 배경으로 한 보다 인상주의적인 그림들로 넘어갑니다. 1860년대까지 비교적인 오랜 뿌리를 지닌 주제들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하였지만 1870년대 이후 마네는 이러한 주제와 방식들을 포기하고 대신 당대 파리 부르주아들을 집중적으로 탐구합니다. 마네의 회화적 관심이 변화한 건 1869년 파-드-칼레에서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는 파리 사람들을 그리면서부터입니다.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 역시 1869년 파-드-칼레 주와 노르망디 등지를 여행하였습니다. 드가 역시 여행지에서의 풍경을 그렸습니다. 인물이 배제된 파스텔 그림도 그렸지만 그는 해변에서 여가를 즐기는 도시 부르주아의 모습에도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드가도 이 시기 해변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파리지엥(Parisien)의 모습이 담긴 <해변 풍경 On the Beach>(1869-1870)을 완성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해변 풍경>은 이 시기 드가가 노르망디 해변에서 그린 총 네 점의 그림 중 하나입니다. 부댕과 마네의 해변 그림들과 달리 드가는 특정 인물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줍니다. 소녀는 엄마로 보이는 여인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고, 아이 엄마는 딸의 갈색머리를 빗겨주고 있습니다. 긴장감이 풀린 소녀는 잠든 모습입니다. 비록 이 그림은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작업실에서 완성됐지만, 드가 역시 부댕이 처음 개척한 해변에서 여가를 즐기는 도시 부르주아라는 주제에 호기심을 느꼈음을 입증해줍니다.
마네와 드가 뿐만 아니라 1869년 마네의 <발코니>의 모델이자 훗날 마네의 제수씨가 되는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미술가인 베르트 모리소(Berthe Morisot, 1841-1895) 역시 1869년에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는 fashionablel한 파리 부르주아를 그립니다.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의 작은 항구도시 로리앙(Lorient)을 그린 <로리앙 항구 The Harbor at Lorient>(1869)에는 흰색 드레스에 흰색 양산을 든 채 제방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젊은 여인이 등장합니다. 비록 얼굴은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마네의 <발코니>에서 그녀는 흰색 옷을 입고 등장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이 패셔너블한 의상을 입은 여인은 모리소 자신으로 추정됩니다. 베르트 모르소는 1870년대에도 꾸준히 해변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아이와 아기 엄마의 모습을 그리며 해변을 배경으로 여가를 즐기는 파리 부르주아들의 모습에 꾸준한 애정을 보입니다.
3. 해변 그림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부댕
1870년 부댕은 <브레스트 만 Brest Harbour>(1870)과 <피니스테르 주 케르호의 어부들 Fishermen at Kerhor, Finistère>(1870)의 두 점을 출품합니다. 지난 6년 동안 부댕이 살롱 전시회에 출품한 그림들과 달리 이 두 그림은 브르타뉴 지방의 자연 풍경과 현지 주민들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동료 화가들이 1869년부터 해변에서 여가를 즐기는 도시 부르주아들의 모습에 관심을 드러내기 시작하지만 부댕은 오히려 그러한 주제들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부댕은 1870년부터 자신이 창시한 주제의 그림을 살롱 전에 더 이상 출품하지 않습니다.
1869년 살롱 전시를 마지막으로 부댕이 더 이상 해변에서 여가를 즐기는 도시 부르주아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살롱 전시에 보내지 않은 것에 관하여 미술사학자 로랑 마뇌브(Laurent Manoeuvre, 1956-)는 자신의 내적 갈등이 폭발했기 때문이라 주장합니다. 마네, 드가와 모리소는 모두 부유한 도시 부르주아 출신입니다. 하지만 부댕은 작은 어촌 마을의 서민 집안의 아들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비록 어부는 아니었지만 그와 그의 가족은 늘 지역의 어부들과 이웃으로서 친하게 지냈습니다. 1860년대 이후, 노르망디 해안의 르 아브르(Le Havre), 옹플뢰르(Honfleur), 트루빌(Trouville)은 파리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휴양지로 재탄생했지만 여기에 긍정적인 효과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해변을 따라 리조트가 개발되고 레스토랑, 카페, 카지노, 상점들이 개발되면서 기존에 어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더 편하고 고수익을 거둘 수 있는 서비스 직종으로 전업하였습니다. 관광 서비스업으로 외지인을 직접 대면하지 않더라도 도시 사람들의 옷차림과 행동으로 지역주민들이 오랫동안 고수해 온 삶의 방식과 전통, 더 나아가 정체성마저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지역주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자연이 파괴되는 현상은 말할 것도 없고요. 휴양지 개발 이면에 숨겨진 지역주민들의 혼란과 불편을 그들과 같은 정체성을 지닌 부댕과 같은 미술가는 견디기 힘들었을 겁니다. <트루빌 해변>으로 살롱 전시회에 입선했지만 그는 이미 1864년부터 해변에서 여가를 즐기는 도시 부르주아라는 주제에 괴로움을 느꼈던 것으로 보입니다.
1865년 동생 루이(Louis)에게 보낸 편지에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다른 걸 해야 할 테지만, 언제나 해변을 그리는 화가여야 하겠지.”
1869년 살롱 전을 끝으로 더 이상 해변에서 여가를 즐기는 도시 부르주아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을 살롱 전시회에 출품하지 않지만 그 이후에도 부댕은 작은 소품 형태로 지인들에게 선물이나 기념품 목적으로 관련 주제의 그림들을 계속해서 그렸습니다. 이는 부댕이 자신이 최초로 제시한 해변에서 여가를 즐기는 도시 부르주아들의 모습이라는 주제에 대한 애정 자체를 완전히 포기할 수 없었다는 걸 말해줍니다.
4. 모네의 스승이자 인상주의의 개척자 부댕
르 아브르 시의 장학금을 받고 파리로 미술 유학을 다녀온 후 1857년 33살의 나이로 가족이 있는 르 아브르로 돌아온 부댕에게 어느 날 18살 소년이 그림을 배우겠다고 찾아옵니다. 이 소년은 캐리커처(caricature) 화가가 되는 게 목표였습니다. 부댕은 이 소년의 그림 스승이 되어줍니다. 부댕은 이 소년에게서 남다른 재능을 발견합니다. 스승 외젠 이자베이(Eugène Isabey, 1803-1886)가 풍경화가로서의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해주었듯, 부댕도 제자에게서 풍경화가로서의 재능을 발견하여 풍경화가를 추천합니다. 소년은 풍경화가가 되기로 결심하였고 그가 바로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입니다. 풍경화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모네는 1860년부터는 스승의 영향에서 벗어나며 점차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모네는 부댕의 제자였지만 이들은 단순한 사제지간이 아니었습니다. 모네는 부댕에게 1860년 파리를 떠나 그들이 처음 만난 르 아브르로 돌아가 같이 바다 풍경을 그리자고 설득하였습니다. 부댕은 이에 응하였고 르 아브르를 거쳐 옹플뢰르까지 넘어갑니다. 그는 옹플뢰르에서 바다 풍경을 집중적으로 탐구했습니다. 이후 1870년 8월에는 모네 및 그의 가족들과 트루빌에서 같이 지낼 정도로 모네 가족과도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냈습니다.
1860년대부터 꾸준히 살롱 전시회에 도전했던 모네는 1874년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 드가, 장-오귀스트 르누아르(Jean-Auguste Renoir, 1841-1919) 등과 함께 단체전을 개최하였습니다. 모네는 이 전시에서 7점의 파스텔화를 포함하여 총 12점을 공개하였습니다. 모네가 전시한 다섯 점의 유화 가운데에는 <인상, 해돋이 Impression, Soleil levant>(1872)가 포함되었습니다. 화가이자 비평가인 루이 르루아(Louis Leroy, 1812-1885)는 전시작들이 회화로서의 자질이 형편없다고 판단하였고, 조롱의 의미로 기획자인 모네의 <인상, 해돋이>를 콕 집어 전시에 참여한 미술가들을 “인상주의자(Impressionistes)”라고 지칭하였습니다. 이 명칭은 대단한 파급력을 발휘하였습니다. 1860년대에서 이 단체전 이전까지 대상의 불분명한 윤곽 표현, 세련되지 못한 투박하고 거친 붓질 등의 표현적 공통점을 보인 미술가들은 “마네주의자”들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이 전시를 계기로 그들은 인상주의자들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시작하였고 현대인들은 마네주의자가 아닌 인상주의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그들이 주도한 미술 운동을 “인상주의”(Impressionisme)라 부릅니다.
인상주의자, 인상주의라는 용어가 탄생하며 서양 미술 사상 최초의 아방가르드(avant-garde) 미술 운동이 시작된 첫 번째 인상주의 전시에는 모네의 스승인 부댕 역시 참가합니다. 이 전시에서 부댕은 스케치를 포함하여 총 13점의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작품 수만으로는 전시의 주최자인 모네보다 더 많은 수준으로 부댕이 인상주의 시작에 상당한 공헌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부댕은 서양 미술 최초의 스캔들로서 modern art의 시작점으로 여겨지는 1863년 《낙선전 Salon des Refusés》뿐만 아니라, 인상주의의 시작점인 제1회 인상주의 전에서도 참가한 미술가입니다. 부댕은 modern art 역사의 초기 단계에서 조용히 그 역사를 함께 써나간 장본인입니다.
5. 인상주의의 아버지 외젠 부댕
파리의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Musée Marmottan Monet)에서는 2025년 4월 9일부터 8월 31일까지 특별전 《외젠 부댕: 인상주의의 아버지 Eugène Boudin: le Père de l’Impressionisme》가 개최되었습니다. 전시는 총 80점의 작품들을 선보이며 부댕의 미술세계를 총체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 회고전은 총 8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해변 풍경 Scènes de Plages]입니다. 해변에서 여가를 즐기는 파리 부르주아들이라는 주제가 부댕의 예술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정한 기획입니다. 이번 특별전을 통해 부댕이 서양 미술 최초로 해변 풍경과 해변에서 여가를 즐기는 도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미술가라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외젠 부댕이 modern art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부댕은 한국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단지 인상주의의 대표자 클로드 모네의 스승이자 동료였으므로, 1863년 《낙선전》과 1874년의 제1회 인상주의 전에 참가했기 때문에 주목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그는 17세기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에서 18세기 클로드-죠셉 베르네, 19세기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와 장-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에 이르는 프랑스 회화의 전통을 계승할 뿐만 아니라, 근대 미학을 제시한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가 강조했던 동시대 삶을 주제로 찰나의 순간을 빠르고 거친 붓질로 과감하게 표현해내야 한다는 modern art 미학을 수용하며 당대 프랑스 미술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인물입니다. 부댕은 마네와 드가처럼 전통에 기반을 두면서 새 시대의 미학을 추구한 선구자입니다. 그런 부댕의 개성과 영향력이 가장 잘 드러난 주제가 해변에서 여가를 즐기는 도시 부르주아들입니다. 해변 그림은 modern art의 선구자, 인상주의의 아버지로서의 부댕의 중요성이 담겨 있습니다. 아울러 현대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여름철 휴가 기간에 바닷가 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즐기며 더위를 피하는 오늘날의 문화가 당시로서는 이제 막 생겨난 새로운 현상이라는 역사적 사실 역시 숨어 있습니다.